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52화
두 번째 인터뷰는 음악적인 이야기보단 개인적인 질문들 위주로 진행되었다. 팬들과 대중들에게 조금 더 친근감을 심어주기 위한 전략이었다. 첫 번째 인터뷰 때부터 거슬리는 이상상의 태도를 제외하고는 문제가 없어서, 이번엔 조금 더 마음 편히 임했다. 은근슬쩍 말이 짧아지는 건 여전히 불편하기는 하지만.
“차율 씨는 여기 본명이 윌리엄 밀러라고 되어 있네요? 차 씨가 아니네?”
“차는 모친의 성입니다. 가족들이 부르는 애칭이 윌이라, 한국 이름도 비슷하게 율이라고 지었소.”
“습니다.”
“지었습니다.”
휘건이 차율의 옆구리를 툭툭 치면서 말의 어미를 고쳐주었다. 객석은 귀여운 외모와 전혀 매치되지 않는 이상한 말투에 신기해하는 사람이 반, 그게 바로 매력 포인트라며 앓는 사람이 반이었다. 이상상은 당연히 전자였고, 내내 물어보고 싶어서 근질근질했다는 표정으로 휘건을 쳐다보았다.
“이 친구 말투가 원래 이래요? 아까 막 만나서 반갑소! 하면서 절도 하고 그러던데.”
“율이가 한국어를 사극으로 배웠거든요.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진 건데.”
차율은 또 거기다 대고 신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늘 자신이 사극 덕후인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어머니의 나라가 지닌 아름다움이 위대하다나 뭐라나. 가끔 보면 다른 멤버들보다 한국사에 대해 더 빠삭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한국말 너무 잘 한다~ 독일 출신이 아니라 뭐, 남해 독일마을 출신 이런 거 아니야?”
조금은 무례할 수도 있는 질문에 강문이 옆에서 차율의 반응을 살폈다. 평소 다른 멤버들이 독일이 아니라 조선에서 온 거 아니냐고 놀린 적은 있지만, 저 정도로 선을 넘는 발언은 처음이라 그랬다.
“지금…….”
서서히 표정이 굳어버린 차율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강문은 행여 돌발 상황이 생기면 나서서 무마하기 위해 마이크를 조금 더 꽉 쥐고 긴장했다.
“감히 나를 의심하는 것이냐! 무엄하도다!”
“아이고, 예! 예!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나으리!”
걱정과 달리 차율은 재치 있게 잘 받아쳤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있지도 않는 수염을 쓸어내리는 시늉을 하자 팬들 역시 까르르 터졌다. 하지만 모든 팬들이 다 웃어넘긴 건 아니었다.
율무주전자 @yoolintheteapot
내새끼 귀여운건 귀여운거고 시발 질문 수준이 왜저래요 엠씨바꿔
객석에서도 왜 저러냐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상상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새로운 먹잇감을 노리는 눈빛이 멤버들 사이를 빙빙 돌다 강문에게서 멈추었다.
“이쯤에서 돌발 질문 하나 들어갈 건데요. 어떻게, 괜찮겠어? 응?”
강문은 반말이나 찍찍 하지 말라고 따지고 싶은 걸 꾹 눌러 참으며 사람 좋게 웃었다. 돌발 질문이라고 해봤자 사전에 협의되지 않는 내용은 꺼내기 힘들 것이다. 행여 자신과 휘건에 대한 질문에 나오더라도 미리 말을 맞춰둔 게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긍정의 의미라고 받아들인 이상상이 신이 난 얼굴로 대본을 옆구리에 꼈다. 정말 즉흥적으로 던지는 질문이라는 사실을 어필하기 위함이었다.
“우리 휘건 씨와 강문 씨가 학창시절부터 굉장히 유명했다고 들었거든요. 둘이 너무 붙어 다녀서 별명이 부부였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여기까지는 이미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같은 지역에서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팬들 귀에까지 들어가 ‘뿌뿌즈’라고 두 사람을 묶어 부르기까지 하고 있으니. 물어볼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마이크를 쥔 강문이 아하하 가볍게 웃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친했거든요. 친구들이 장난으로 박뿌, 강뿌라고 부르긴 했어요.”
“친해진 계기가 따로 있나요?”
“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못 보던 친구가 놀이터 벤치에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길래 같이 놀자고 했었어요. 근데 알고 보니 옆집에 이사를 왔더라고요.”
“간택했네, 간택했어.”
“아하하. 그렇게 되나요? 그땐 제가 한 뼘 정도 더 컸는데, 6학년 때부터 휘건이가 갑자기 쑥쑥 크더니 중학교 들어가기 직전에 역전 당했어요. 좀 억울하네요.”
주인공의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기는 한데, 휘건과 둘이서 연습할 때와는 달리 이렇게 공공연하게 얘기하려니 기분이 좀 이상했다.
휘파람총 @gnlqkfkachd
미친 역키잡까지?
게이팝 역사상 다시없을 서사 맛집
시발 냠냠긋 꺼억
산삼뿌리 @healthy_ssbr
간택당한 휘냥이 수인썰 벌써 오조오억개 나왔다
행여 말하는 게 어색하지는 않았을까 싶어 휘건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다행히 꽤 자연스러웠던 모양인지 휘건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소문으로는 중간에 잠깐 사이가 나빴었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뭐, 싸우기라도 했던 건가?”
이 질문 역시 예상 범위 내에 있었다. 같은 학교에 다녔을 뿐인 호재도 알고 있고, 친구라던 규민에게 전화가 왔을 때도 가장 먼저 물어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관심사였다. 관련된 질문이 안 나오는 게 더 이상했다.
“친구들끼리 가끔 싸우기도 하고, 또 화해하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별로 큰일은 아니었어요.”
“흐음…… 그래요?”
무난하게 답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상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이상하게 기분 나빠지게 만드는 표정을 지었다. 내내 태도 말고는 큰 문제가 없어 잠깐 안심했는데, 다시금 불안한 긴장감이 느껴져 마이크를 고쳐 잡았다. 휘건 역시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지 아예 이상상 쪽으로 몸이 조금 더 기울어져 있었다.
“혹시 휘건 씨가 수영을 그만두게 된 계기랑 관련이 있는 건가요?”
이상상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가고, 팬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강문 역시 저렇게 개인적이고 무례한 질문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해 할 말을 잃었다. 다급하게 휘건의 표정을 살피니 그 역시 놀란 듯 얼굴이 묘하게 굳어 있었다.
휘건이 청소년 수영 선수였다는 사실은 포털 사이트에 ‘박휘건’ 이름 세 글자만 검색해도 다 나오는 내용이니 놀랄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휘건이 ‘왜’ 수영을 그만두고 별안간 아이돌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청소년 때 선수 생활을 하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는 사실 흔하다. 너무 흔해서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휘건은 늘 수영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화제를 돌리며 회피하기만 했다. 그건 그만큼 꺼내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
그런 민감한 주제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자신과 휘건의 불화에 엮어버리다니, 이상상은 생각보다 더 악질적인 수를 던진 것이다. 객석을 보니 팬들도 그다지 달가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질문을 던져 놓고 혼자서 실실거리는 이상상의 머릿속이 새삼 궁금해졌다. 연예인이 아니라 질 나쁜 유튜버 같은 행동이었다.
“저기, 그건…….”
“60년 후에 공개하겠습니다!”
강문이 대충 노코멘트로 넘어가기 위해 운을 떼는데, 갑자기 휘건이 불쑥 끼어들어 말을 낚아챘다. 깜짝 놀라 휘건을 쳐다보니 조금 전 굳어 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능글거리는 미소만 남아 있었다.
“뭐? 60초가 아니고?”
“그만큼 같이 오래 건강하게 살자는 뜻이죠, 선배님.”
‘선배님’이라는 단어를 꼭꼭 씹어 내뱉으며 이상상을 향해 씨익 입만 웃어 보이는데, 누가 봐도 좋아서 웃는 건 아니라는 티가 났다. 역시 휘건은 순간 판단력이 빠르고 능청스러운 구석이 있지만, 감정을 숨기는 데에는 조금 서툴다. 질문 하나를 두고 선배와 신경전을 벌였다는 부정적인 기사나 후기가 뜨지는 않을지 걱정되었다. 먼저 예의 없이 군 것은 저쪽이지만, 원래 사람들은 밟혀서 꿈틀한 지렁이를 더 욕하기 마련이니까.
휘건을 클로즈업으로 비추고 있던 전광판이 팬들의 술렁거림에 급하게 풀 샷으로 바뀌었다. 인이어에서 당장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 달라며 화를 참는듯한 성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휘건은 한쪽 눈썹만 살짝 까딱거릴 뿐,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네, 뭐…… 60년 동안 우리 잘 기다려 보자고요.”
결국 기 싸움에서 진 이상상이 제 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한발 물러났다. 강문은 이상상이 왜 이렇게 멍청한 도발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얻을 게 뭐가 있다고.
“여러분도 그때까지 계속 와인 좋아해 주실 거죠?”
뒤끝이 남은 가시 돋힌 말에 팬들이 보란 듯이 소리쳤다. 공연장이 떠나가라 ‘네!’하고 외치는 팬들이 조금 귀엽게 느껴져서, 강문이 고개를 살짝 돌리고 입을 가린 채 피식 웃었다. 이때 찍힌 사진은 꽤 오래 강문의 레전드 직찍으로 회자되었다.
“자, 오늘 이렇게 We Are Insane! 와인 여러분과 이야기 나눠보았는데요, 다들 어떠셨나요?”
인터뷰를 마치기 위해 형식적인 질문을 던지자 객석에서 다양한 대답들이 튀어나왔다. 집단적 독백 사이를 뚫고 강문의 귀에 ‘박휘건 잘생겼다!’라는 한 문장이 들어왔다. 저 역시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완벽하고 날렵한 휘건의 옆선을 감상하며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