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47화
“이제 진짜 코앞까지 왔는데, 기분이 어때?”
잘 닦인 가죽 소파 구석 자리에 앉으며 강문이 휘건에게 물었다. 눈을 한 바퀴 굴린 휘건이 한쪽 입꼬리만 올려 씨익 웃더니 맞은편 화장대 의자에 거꾸로 앉았다.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네? 누가 뭘 어떻게 줄지 알 수가 없어서.”
“미친, 그거 말고 데뷔 말 한 거거든?”
이번에도 콩고물에만 관심이 있다는 걸 잔뜩 티내는 말에 강문이 질색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휘건이 낄낄거렸다.
“설레고 좋지. 좋은데…….”
“……좋은데?”
휘건이 말을 하다 말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강문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었다.
“난 왜 이렇게 불안하냐?”
애써 웃는 듯한 휘건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지만, 강문은 휘건이 긴장한 탓이라고 믿었다. ‘가지마, 문아’하고 말하며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던 날이 떠오르는 걸 애써 무시했다. 괜한 잡생각이 실수를 불러올 수도 있으니, 오늘은 무조건 쇼케이스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에만 집중하고자 했다.
무슨 일이든 첫 단추가 중요한 법이다. 오늘 생길 일들이 나중에 어떤 결과로 다가오게 될지 알 수 없으니, 단 하나의 실수도 없어야 했다.
“누구나 다 처음은 불안한 거니까. 근데 너도 긴장을 하기는 하는구나?”
휘건의 말을 가볍게 받아 넘긴 강문이 소파에 깊숙이 등을 기댔다. 짧은 적막 후에 휘건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어. 긴장 돼서 뒤지겠다.”
“헐…… 뒤지면 안 되는데. 그럼 우리 센터 누가 해? 힘 줘서 참아 봐.”
“대놓고 부담 주네?”
“적당한 부담은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하지.”
“하여튼, 한 마디를 안 져.”
“뻔뻔하고 귀엽다고? 나도 알아.”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통화를 끝 마친 호재가 다시 들어왔다. 바깥에 사람이 더 많아 졌다며 눈이 동그랗게 커져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찬과 차율이 터덜터덜 빈손으로 들어왔다. 아무래도 매니저에게 밖에 나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곧 드라이 리허설 시작이니까 무대에서 몸 풀고 있으래.”
“아……. 그랬지, 참.”
새삼 여기 놀러온 게 아니라는 사실이 실감나서 한쪽 볼을 긁적였다. 다들 대기실 밖으로 나가려 일어서는데, 강문은 테이블과 벽 사이 구석에서 묘하게 신경 쓰이는 빛이 새어나오는 걸 발견했다.
강문은 저도 모르게 빛이 새어나오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부엌 식탁 밑에서 노트를 발견했던 때처럼 심장이 기분 나쁘게 쿵쿵 뛰었다.
“뭐해?”
“어어…… 먼저 나가. 금방 갈게.”
나가다 말고 대기실 구석으로 향하는 강문에게 휘건이 묻자 강문은 고개만 돌려 대충 대답하고는 다시 테이블 옆을 살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빛이 더욱 선명해졌다.
“이건…….”
강문이 발견한 건 홀로그램처럼 깜빡거리는 노트였다. 지난번 숙소에서 발견한 것과 같은 아이템 같았다. 다만 그때와는 달라진 특징이 있었다. 그 때는 식탁 밑 구석에 숨겨져 있었는데, 이상하게 이번엔 구석에 숨겨져 있으면서도 꼭 찾아내길 바란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게임에서 필요한 아이템에 빛 테두리를 둘러 강조하는 것처럼.
저도 모르게 노트를 줍기 위해 손을 뻗었다. 숙소에서는 손을 뻗자마자 에러 메시지가 떠서 확인하지 못했었는데, 이번엔 쥘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잡았다……!”
노트를 손에 들고 일어선 강문은 서둘러 펼쳐 안을 확인했다. 하지만 사용감이 다분해 보이는 상태와는 달리 안은 텅 비어있었다. 저도 모르게 아쉬움에 한숨을 내뱉었다.
ERROR CODE : 003-2
메모리 오류로 시스템을 재가동합니다.
예상하기는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시끄러운 경고음과 함께 오류 창이 떴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눈을 뜨자 또 조금 전으로 돌아가 문을 열고 터덜터덜 들어오는 차율과 시찬을 반기고 있었다.
“곧 드라이 리허설 시작이니까 무대에서 몸 풀고 있으래.”
시찬이 아까 들은 말을 반복하자 눈앞에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일시적인 오류로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사과의 의미로 보상이 지급되었으니 확인해주세요.
보상 : 위기 탈출권
“위기 탈출권은 또 뭐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유용해 보이기는 했다. 이쯤 되면 보상을 주기 위해 일부러 오류를 만들어 내는 건지 의심이 되기까지 했다. 심지어 자신은 이 게임 속에 어떤 아이템들이 존재하는지, 또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등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저 퀘스트를 완료해 랜덤하게 얻는 뽑기 이용권을 사용해 키워드 카드를 뽑을 수 있다는 것밖에.
“……퀘스트도 뭐 많이 주는 것도 아니면서…….”
“응? 뭐라고?”
“아니야. 얼른 가자.”
백스테이지에는 철골로 된 여러 구조물들이 위험하게 늘어져 있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피해 무대로 나가니 넓은 객석이 한눈에 보였다.
“와…….”
텅빈 객석이지만 무대 위에서 바라보는 광경은 밑에서 보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 넓은 공연장이 자신들을 보기 위해 시간을 내어준 사람들로 가득찰 것을 생각하니 온몸의 솜털이 다 쭈뼛 설 것 같았다.
강문은 늘 W.A.IN의 성공이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잘 되면 좋고 잘 되어야 하기는 하지만, 저와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자신은 퀘스트를 마무리한 뒤 돌아갈 사람이고,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무대 위에 서서 객석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여전히 게임 속 시스템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속이 울렁거리려던 찰나, 타이밍 좋게 퀘스트 창이 나타나며 시선을 돌렸다.
<나의 첫 쇼케이스!(1)>
곧 드라이 리허설이 시작됩니다. 미니게임 점수를 얻어 부상 발생 확률을 줄여 보세요.
[시작]
“미니 게임?”
혹시 어떤 게임인지 설명이 덧붙어 있나 싶어 퀘스트 창을 요리조리 살폈다. 하지만 대놓고 불친절한 게임답게 아무런 부가 설명도 없었다.
“부상 위험이라니, 너무하잖아.”
구시렁거리며 시작 버튼을 누르자 챠라랑 하는 윈드차임 소리와 함께 퀘스트 창이 사라지고, 준비할 틈도 없이 바로 미니 게임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잠깐, 준비 할 시간은……!”
MINI GAME START!
속으로 욕을 씹고 긴장한 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어떤 게임인지 알 수 없으니 미리 대비하기도 힘들었다. 당장이라도 시작할 것처럼 카운트를 해놓고는 시야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어디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게임이 나타날지 몰라 잔뜩 경계하며 주변을 살폈다.
“구경은 나중에 하고, 일단 몸부터 풀자.”
호재의 말에 대충 넓게 퍼지자 저 멀리서 이상한 형체가 가까워지는 게 보였다. 본능적으로 저게 미니 게임과 관련 있다 싶어서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뭐야? 뭐야!”
푸른빛으로 빛나는 형체는 스트레칭 하는 사람 모양이었다. 똑바로 선 채로 손깍지를 끼고 팔을 하늘로 쭉 뻗고 있는.
점점 다가오는 빛나는 형체를 보며 무언가 깨달은 강문이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강문과 키가 같은 형체가 강문을 순식간에 통과해서 지나갔다.
“된 건가?”
‘Great!’하는 효과음과 함께 두 번째 형체가 슬슬 다가왔다. 이번엔 같은 자세에서 상체만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 있었다. 미니 게임을 통해 허리 스트레칭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제 모습이 이상하게 보이진 않을지 걱정되어 멤버들의 눈치를 슬쩍 봤지만, 다행히 시스템의 영향으로 그들에겐 평범하게 스트레칭 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듯했다.
“아, 잠깐……!”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 형체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조금 늦게 상체를 기울였지만 다행히 패스된 모양이다. ‘Good!’하는 효과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꼭 쿠키틀에 찍히는 쿠키 반죽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헛웃음이 흘러 나왔다.
아슬아슬한 순간이 몇 번 있기는 했지만, 마지막 스트레칭 동작까지 무사히 마무리했다. 평소 연습 전 몸을 풀 때 많이 하던 동작들이라 익숙해서 다행이었다. 이정도 난이도라면 후에 다른 돌발성 미니 게임이 등장하더라도 덜 당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SCORE : 9176
CLEAR!
<나의 첫 쇼케이스!(1)>
미니 게임 클리어!
멤버 전원의 부상 발생 확률이 10% 하락합니다.
[확인]
이런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멤버들의 부상 위험을 줄일 수 있다면, 몇 번이고 반복해도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