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46화
<나의 첫 쇼케이스!>
드디어 처음으로 팬들을 만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실수 없이 무사히 쇼케이스를 마치고, 인기를 늘리세요!
(해당 퀘스트는 스킵이 불가합니다.)
[수락]
드디어 쇼케이스날 아침이 밝았다. 컨디션 관리를 해야 한다며 일찍 눕기는 했는데, 다들 설레는 마음에 잠을 설쳤는지 푹 잔 것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조금 피곤해 보이는 얼굴들이 거실에 모여 눈빛으로 ‘너도?’를 주고받으며 씨익 웃었다.
“일어나 이것들아! 일어……! 났네……?”
멤버들이 아직 자고 있다고 생각한 성수가 크게 소리 지르며 들어오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걸 보고 놀랐다.
양손을 허리에 척 올린 차율이 성수를 바라보며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형. 우리 늦잠자고 그런 사람 아니야.”
“얼씨구.”
아침잠이 많은 호재도 간만에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 차율의 옆에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성수가 어이없다는 듯 두 사람을 쳐다보다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침 사 왔으니까, 먹고 출발하자.”
“뭔데? 뭔데?”
시찬이 기대하며 성수의 손에 들려 있던 종이 가방을 받아 들었다. 식탁 위에 펼쳐 보니 제법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이었다. 반찬 구성이 속이 불편하지 않을 만한 것들이라 그래도 꽤 신경 썼구나 싶었다.
“더 맛있는 거 먹고 싶었는데…….”
“아침부터 뭐 얼마나 대단하게 먹으려고. 샐러드만 아니면 됐지.”
묘하게 실망한 듯 축 처지는 시찬의 어깨를 강문이 토닥토닥 다독였다. 시찬 역시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그건 그래, 하며 다시 헤헤 웃었다.
호재는 아침을 안 먹고, 시찬은 이른 시간에 등교하다 보니 이렇게 다 같이 앉아서 아침을 먹는 건 처음이었다. 행여 긴장감 때문에 체할까 싶어 다들 평소보다 더 꼭꼭 씹어 삼켰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도시락 때문에 컨디션이 안 좋아져 다 망쳐버리면 안 되니까.
“잠은 푹 잤냐?”
“Nein1). 설레서 제대로 잠들지 못했소.”
“그래 보이네.”
차율의 대답에 성수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허허 웃었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는지 더 묻지는 않았다. 성수 역시 잠을 설쳤는지 눈 밑이 퀭했다. 그런데도 실실 웃고 있는 걸 보니 잠을 못 자서 반쯤 미쳤거나 아니면 기분이 꽤 좋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았다.
“밥 먹고 샵으로 가?”
시찬이 우물거리며 묻자 성수가 고개를 저었다.
“공연장으로 바로 갈 거야. 가서 무대 점검하고, 리허설 하고, 헤어랑 메이크업은 카메라 리허설 전에 현장에서 할 거야.”
“우와…….”
성수의 말을 듣던 차율이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리 진짜 연예인 같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본 호재가 물을 마시다 말고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진짜 연예인 맞거든?”
흐뭇하게 바라보던 매니저가 양 검지손가락으로 두 사람의 머리통을 가볍게 툭 밀어 넘겼다.
“아직 아니거든, 이 자식들아? 데뷔도 안 한 것들이 벌써부터 라방이나 켜고 말이야.”
“아, 형! 그래도 반응 좋았지 않소?”
차율이 손가락이 닿았던 곳을 슬슬 문지르며 속없이 웃자 성수가 실소를 터트렸다. 으이구, 하는 한 마디에 많은 감정이 담겨 있는 듯했다.
계획에 없던 라이브 방송 이후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순수한 모습에 더 관심이 생겼다는 등의 긍정적인 반응도 있고, 데뷔하기도 전부터 나댄다거나 김채고의 인지도를 이용하려 한다는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매니저는 부정적인 반응이 벌써 올라오는 것에 걱정하고 있는 듯했지만, 강문의 생각은 달랐다. 인지도와 화제성이 생기면 잡음은 자연스레 따라오기 마련이다. 부정적인 기운도 관심이 있어야 발산할 수 있는 것이라, 작은 관심조차 못 받고 가라앉는 것보단 나았다. 물론 지나치게 악질적인 경우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겠지만.
아무튼, 결과적으로 아직까진 긍정적인 반응이 더 많았다. 아직 텅 빈 계정이기는 하지만 강문의 별스타 팔로워도 차츰 늘어가고 있고, 벌써부터 팬 계정도 많이 생겼다. 특히 휘건과 강문을 함께 엮어 파는 ‘처돌이’들이 정말 많아졌다. 예상했던 대로 이 둘의 관계성은 덕후몰이를 하기에 아주 최적화 되어 있었다.
“흐음…….”
조용히 도시락을 먹으며 생각을 정리하다 대각선 맞은편에 앉은 휘건을 바라보았다. 문제는 휘건이 적당한 선을 지키면서 제 의도에 따라줄까라는 것이다.
비즈니스 게이 퍼포먼스, 즉 비게퍼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좀 우습고, 의도하지 않은 척 스킨십을 유도하자니 이미 둘 다 어느 정도 마음이 있는 상태라 쉽지 않았다. 어디까지가 적합한 팬서비스인지 강문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다.
“……왜?”
저를 쳐다보는 시선을 느낀 휘건이 고민하느라 심각하게 미간을 구기고 있는 강문을 향해 작게 물었다. 강문은 대답 대신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다시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그냥 평소처럼 행동해도 덕후들이 알아서 먹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너무 노리고 들면 오히려 거부감이 들테니까.
“다 먹었으면 세수만 하고 나와.”
“네엡.”
동생들이 씻으러 들어간 사이 휘건과 강문은 성수를 도와 뒷정리를 했다.
다들 간단히 세수와 양치질만 한 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밴에 올랐다. 이번엔 호재가 조수석에 앉았는데, 가는 동안 부족한 잠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보충하라는 배려였다. 행여 잠이 부족해 사고라도 치면 안 되니까.
“니들도 눈 좀 붙이고 있어.”
공연장은 숙소에서 차로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예상 소요 시간은 그렇지만, 번화가라 차가 막힐 것까지 고려하면 2시간쯤 걸릴 거라고 성수가 말했다. 차가 출발하고, 눈 좀 붙이라는 성수의 말과 달리 멤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몇 시간 뒤에 시작될 쇼케이스를 준비했다.
시찬은 가사를 한 번 더 점검했고, 차율은 이어폰을 꽂고 안무 영상을 체크했다. 휘건과 강문은 질의응답 시간에 자신들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들어올 것이라 예상하고 나란히 앉아 미리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중이었다.
“노래는 언제부터 했다고?”
“중학교 2학년부터.”
“나랑 안 지 몇 년 됐지?”
“11년.”
“어떻게 만났어.”
“초등학교 3학년 때 니가 옆집으로 이사 와서. 놀이터 벤치에 앉아서 우리 노는 거 구경만 하고 있길래 같이 놀자고 했어. 그땐 내가 더 컸는데, 6학년 때부터 갑자기 니가 쑥쑥 크더니 중학교 들어가기 직전에 역전 당했지.”
“……놀이터랑 키 얘기까지 해야 돼? 너무 TMI 아닌가.”
강문이 당연한 거 아니냐며 휘건의 허벅지를 찰싹찰싹 쳤다. 이런 짧은 썰 하나만으로도 팬들이 얼마나 몰입해서 연성을 쏟아내는지에 대해 일장 연설이 시작됐다. 그러자 갑자기 극대노하는 강문에 눈만 동그랗게 뜨고 듣던 휘건이 저도 모르게 얼떨결에 사과했다.
“미안, 몰랐…… 아니지. 내가 왜 사과해야 해?”
잔뜩 억울한 표정에 강문이 배를 잡고 웃었다. 휘건이 눈썹을 구기며 그만 웃으라고 강문의 팔뚝을 꼬집었다.
이것저것 얘기하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공연장에 도착했다. 직원용 출입구를 통해 백스테이지로 들어가자 벌써 무대 스텝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일단 무대 위에서 몸부터 푼 다음에 1차로 드라이 리허설 가볍게 하면서 동선이랑 음향 체크할 거야. 점심 먹고 좀 쉬었다가 카메라 리허설 할 건데, 그땐 좀 더 꼼꼼하게 볼 거고. 혹시라도 다치면 큰일 나니까 리허설 때는 무리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우다다 말을 쏟아내며 대기실로 걸어가는 성수를 멤버들이 졸졸 따랐다. 무대 뒤편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늘 궁금했는데, 직접 눈으로 마주하니 신기해 눈동자가 정신없이 움직였다. 건성으로 대답하는 멤버들을 보며 성수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쯧 하고 찼다.
“우와…….”
대기실 문 앞에 ‘W.A.IN 님’이라고 적힌 A4용지가 붙어있는 것을 본 차율이 눈을 반짝 빛내며 감탄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대기실 이름표구나, 하며 살살 손으로 쓰다듬기까지 했다.
조금 떨어진 대기실에는 ‘이상상 님’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오늘 쇼케이스를 진행해주기로 한 MC 이름이다. 생소한 이름이라 전날 미리 검색을 좀 해 봤는데, 이제 막 행사를 다니기 시작한 신인 개그맨인 듯했다.
인터뷰 질문은 사전에 전부 협의되어 있지만, 유머랍시고 짓궂거나 무례한 질문을 예고 없이 던지진 않을지 조금 걱정되었다.
“앉아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성수는 할 일이 많은지 어디론가 가 버리고, 멤버들은 쪼르르 대기실로 입장했다. 별거 없는 평범한 공간이지만, 처음으로 배정받은 우리들의 대기실이라 눈길이 닿는 곳마다 신기하기만 했다. 뭐든 처음은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소중한 순간이니, 강문 역시 사진을 찍듯 눈에 꼭꼭 담았다.
한 쪽 벽에는 거울 달린 화장대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고, 가운데에 넓은 테이블을 두고 4인용 소파가 마주 보고 있었다. 그 옆에 1인용 카우치도 하나 붙어 있어 무척 여유 있는 공간이었다. 구석에 작은 화장실과 샤워실도 딸려 있어서, 대기 중에 굳이 바깥에 나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무대 어떨지 궁금하다.”
“나 너무 긴장해서 가사를 잊으면 어떡해?”
“아무 말이나 지껄여. 원래 가사인 것처럼.”
“Genau2)! 역시 자네는 천재일세.”
호재가 농담 삼아 건넨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차율이 경이로운 표정을 지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 모습에 헛웃음을 터트린 호재가 잠깐 통화 좀 하고 오겠다며 나가고, 그 뒤를 시찬과 차율이 성수에게 물어보고 마실 것 좀 사 오겠다며 따랐다.
순식간에 대기실에 휘건과 강문만 남았다. 바깥은 여전히 스텝들이 준비하는 소리로 소란스러운데,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이 공간에는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1) 아니오.
2) 정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