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45화
kmoon_wain님이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으음…… 켜진 건가?”
휴대폰은 너무 작다며 차율이 가져온 태블릿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장정 다섯이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휘건과 호재와 차율은 소파에, 시찬과 강문은 바닥에 앉아 있었다.
김채고가 깔아준 판을 그냥 날리기 아쉬워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일단 호기롭게 시작하기는 했는데, 문제는 경험자가 아무도 없다는 거였다. 강문 역시 보기만 했을 뿐, 자신이 직접 해보는 건 처음이라 뭐가 뭔지 잘 몰랐다.
“사람들 들어오고 있는 거 아니야?”
휘건이 화면 아래 구석에 위치한 숫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방송이 진행된 시간이 표시되는 건줄 알았는데, 1초에도 숫자가 몇 개씩 올라갔다. 처음엔 한자리 수에 불과했던 숫자가 점점 올라가는 것을 보니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중인 것 같다.
“채팅 같은 건 안 보이네.”
“다른 사람들 보면 막 얘기 주고받고 하던데.”
“개인이라 안 되는 건가…….”
익숙하지 않아 이것저것 버튼을 눌러보는 동안, 멤버들이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말들이 전부 라이브로 송출되었다. 잠잠한 숙소 거실과는 달리 SNS는 이들의 갑작스러운 라이브 방송으로 시끄러웠다.
율무주전자 @yoolintheteapot
확신의 실물 미남
내 심장이 보증한다
문토끼 @moonlight_rabbit
애들 채팅보는 법 모르나봐ㅠㅠ 귀여워 미간 심각한것좀 봐
휘파람총 @gnlqkfkachd
니네 다 씻고 나온거니 끼발
존 나 자 극 적
풀딱 @ddackpullddack
데뷔도 안했으면서 벌써 개나댐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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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털바닥 @gomgomtultul
연예인병 오지고욬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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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딱 @ddackpullddack
김채고도 소문 존나 더럽던데 끼리끼리는 사이언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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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타임 @mybesttime_cg
사이언스는 니들 인성이 사이언스다 가만 있는 배우 머리채 잡는거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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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딱 @ddackpullddack
네 아줌마
“이거 봐! 필터도 있어.”
옆에서 보고 있던 시찬이 메뉴 버튼을 만지작거리다 필터 효과를 켰다. 카메라에 비친 멤버들 얼굴에 홍조와 반짝이가 씌워지자 휘건이 이게 뭐냐며 인상을 구겼다.
시찬이 재밌다는 듯 웃으며 옆의 또 다른 효과를 눌렀다. 이번엔 얼굴이 아니라 뒤의 배경에서 폭죽이 펑펑 터졌다. 애매한 각도로 앉아 있는 호재의 얼굴 위로 폭죽이 터지자 호재가 경악하며 손바닥으로 얼굴 앞을 털었다. 그 모습이 우스워 다들 바닥을 치며 웃었다.
휘파람총 @gnlqkfkachd
시밬ㅋㅋㅋㅋㅋㅋ강호재 뭐하냨ㅋㅋㅋㅋㅋㅋㅋ개웃곀ㅋㅋㅋㅋㅋ
호호별 @hohohappystar
호재얔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 존나기여어ㅠㅠㅠㅠㅠㅠㅠㅠ
“이건 뭐지?”
한참을 웃다 정신을 차린 강문이 옆에 있는 말풍선 버튼을 누르자 숨어 있던 채팅창이 나타났다. 그동안 쌓인 채팅이 우르르 쏟아지자 다들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얘들아 채팅 봐쥬ㅓㅠㅠㅠㅠ]
[말풍선 누르라고]
[채팅빼고 다 발견하는중ㅋㅋㅋㅋㅋ]
[OPPA!!!!!!!]
[이시찬 웃음소리 힝힝힝 씹덕그잡채]
[박휘건 미모 그대로네]
[산삼고 뿌!!!!! 산삼뿌!!!!!]
잠잠하던 화면이 채팅으로 가득해지자 꼭 팬들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앞에서 버벅거리던 모습까지 다 보였을 것을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어……. 안녕하세요.”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어색하게 한 마디를 꺼냈다. 자신이 건넨 건 한 마디인데, 수십 마디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런 관심은 처음이라 마음 속 어딘가가 벅차올랐다.
“일단 제대로 인사부터 할까?”
강문의 제안에 멤버들이 인사할 준비를 하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하나, 둘, 셋하고 구령하자 동시에 우렁차게 소리쳤다.
“We Are Insane! 안녕하세요, 와인입니다!”
조금 버벅거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연습해 둔 보람이 있었다. 남들 앞에서 보여주는 건 처음이라 손이 벌벌 떨렸다. 지금도 이렇게 긴장되는데, 쇼케이스 무대에서는 더 마음을 잘 다잡아야지 싶었다.
“안녕하세요, 이제 곧 데뷔할 와인의 리……더 강문입니다.”
“리더에서 왜 멈칫해? 우리가 부끄러워?”
“뭐라는 거야? 쑥스러워서 그러지.”
차율이 ‘리더’라는 단어에서 살짝 멈칫한 것을 놓치지 않고 장난스레 지적해 대충 얼버무렸다. 쑥스러운 것도 맞지만, 실은 입 밖으로 꺼내니 비로소 실감이 난 탓이 더 컸다.
그동안 막연하게 ‘성공적으로 데뷔해서 해체를 막아야지!’라는 생각으로 달려왔는데, 화면이기는 하지만 저를 보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못 박으니 정말 현실이구나 싶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상황이 참 역설적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안녕하세여. 와인의 막내 시찬입니다.”
시찬까지 전부 소개를 마치고 다시 화면을 보니 그새 또 시청자 수가 늘어 있었다. 게다가 늘어나는 숫자에 비례해 채팅이 올라오는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배속 설정 같은 게 있는지 메뉴를 살펴 보았지만 그런 기능은 없는 듯했다.
“갑자기 왜 켰냐구여? 아, 그게.”
“김채고 선배님께서 저희 응원한다는 글을 써 주셨더라고요. 감사 인사도 전할 겸 궁금하기도 해서.”
괜한 말로 오해를 살까 걱정된 강문이 시찬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평소라면 왜 말을 잘라 먹냐며 투정부렸을 텐데, 시찬도 라이브가 정신없고 긴장되는 모양인지 별다른 말은 없었다.
“김채고 선배님, 저희 노래 좋게 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에 들어가시는 드라마 ‘상자 속 고양이’ 대박 나시길 바라구요, 다음엔 꼭 직접 뵙고 인사드릴게요.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라이브 방송을 켜기 전 미리 준비해 두었던 감사 인사를 강문이 줄줄 읊었다. 멤버들이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박수를 짝짝 쳤다.
[우리 배우님 소식 듣고 왔습니다]
[김채고 얘기 끝남?]
[얼굴 보니 채고픽 될 만하네]
[채이더가 또ㅋㅋㅋㅋ]
“저희 이틀 뒤면 쇼케이스인데, 많이들 보러 와 주세요.”
“진짜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휘건과 차율이 서로 마주보더니 동시에 주먹을 쥐고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화면으로 보이는 비장하게 앙다문 입술이 귀여워 강문이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눈이 마주치자 휘건 역시 씨익 웃어 보였다.
[방금 둘이 보고 웃은거 맞지]
[뭐야 사장님 얘네 연애해요]
[무슨 벌써부터 게이질임;; 존나감사합니다;;;]
[음 맛있다]
[역시 산삼뿌 클라스]
그 모습에 채팅창이 잠시 터져나갈 뻔했지만, 쇼케이스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아 다행히 묻혔다. RPS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멤버들이 채팅을 보는 게 익숙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 티켓이 없다고요? 아이고…….”
정신없이 올라가는 채팅들 대부분이 티켓 이야기라, 차율이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눈꼬리를 축 늘어트렸다. 그 얼굴에 이번엔 슬픈 똥고양이 같다며 또 한 번 난리가 났다.
“더 큰데서 해 달라고 하시는데, 저희도 다음엔 꼭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호재의 말에 강문은 ‘천 석을 어떻게 채우냐, 애들 기 죽으면 어떡하냐’면서 대표에게 우는 소리를 하던 성수를 떠올렸다. 그땐 일이 이렇게까지 잘 풀릴 줄 몰랐기에,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매진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진짜 감사드려요.”
저도 모르게 살짝 울컥해 중간에 목이 메였다. 그 사소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은 휘건이 뒤에서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뒤를 돌아보자 휘건이 몸을 숙이며 입모양으로 ‘울어?’ 하고 물었다. 웃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자 흐음, 하더니 다시 몸을 뒤로 물렸다.
문토끼 @moonlight_rabbit
미쳤다 방금 키갈하는줄
감빵순 @bbanggams
저게 우정이면 난 친구 없어
산삼뿌리 @healthy_ssbr
친구들아(0명) 본체가 밀어주는 건문 하자
첫 라이브라 어색해 꽤 자주 오디오가 비었지만, 그게 또 신인의 매력이다. 나중에 어느 정도 노련해지면 볼 수 없게 되는 모습이라 오히려 이런 풋풋함을 좋아하는 사람도 꽤 되었다. 연차가 쌓이고 팬덤이 커지면 이렇게 소박했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때도 가끔 올 것이다.
“노래 불러달라고 많이 말하시네요.”
휘건이 올라가는 채팅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아직 타이틀 곡만 뮤직비디오와 함께 선공개 된 터라 다들 많이 궁금해 보였다. 그리고 덕후라면 이렇게 편안한 분위기에서 흥얼거리듯 라이브 하는 걸 보고싶어 하는 게 당연했다.
“타이틀 말고? 그럼 스포일러 아닌가. 저희 혼나요.”
트랙리스트에 있는 모든 곡들이 뒤섞여 올라오는 것을 보며 강문이 난처한 듯 웃었다. 보통 이럴 때 회사에서 바이럴 차원으로 미리 조금씩 스포 하는 걸 권장하기도 하던데, 상의 없이 켠 라이브라 좀 애매했다.
[앨범 오백만 장 살게 한소절만]
[우리 와기들 철벽 잘 치네]
[못들은척 쌉가능한데 안되겠니?]
[oppa eng plz]
“앨범 발매 얼마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쇼케이스 다음날 바로 앨범 발매가 예정되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바로 들려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아쉬운 건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엥? 성수 형한테 전화 왔는데?”
라이브를 켜고 꽤나 오랫동안 잠잠하기에 괜찮은 줄 알았는데, 대뜸 성수에게 전화가 왔다. 차율이 진동이 울리고 있는 휴대폰을 들고 강문을 쳐다보자 강문이 받아 보라는 듯 턱짓했다.
“여보세요?”
-실수라도 하면 어쩌려고 허락도 없이 라이브를 해!
“어우…… 성량이 너무 좋소.”
쩌렁쩌렁 소리치는 성수의 목소리에 차율이 귀를 멀찍이 떨어트리고 낄낄 웃었다. 보나마나 화내고 있는 게 뻔했다.
“아하하. 저희 이만 가봐야겠어요.”
“곧 만나요. 안녕!”
“잘 자요~”
서둘러 라이브를 종료하자 차율이 전화를 스피커 모드로 슬쩍 바꿨다. 거실에 성수의 호통소리가 고래고래 울렸다. 입으로는 다들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는데, 표정은 웃고 있었다.
성수의 잔소리는 한 귀로 흘리고, 얼른 쇼케이스 날이 다가왔으면 하고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