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41화
“진짜 이게 제일 힘들단 말이야. 아이돌이 이렇게 배고픈 직업일 줄은 몰랐어.”
시찬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비 맞은 똥강아지가 되어 버린 시찬을 강문이 그래, 그래 하고 웃으며 달래 주었다.
안 그래도 먹는 낙으로 사는 데다 한창 배고플 나이인데, 저게 얼마나 서러울까. 참 안쓰러우면서도 귀여웠다.
“시찬이는 이대로 대답해도 괜찮을 것 같네.”
“진짜?”
“응. 딱 네 나이 같고 귀여워.”
완전히 참신하다고 할 수는 없는 대답이지만, 시찬의 이미지와 너무 찰떡이라 이보다 더 나은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시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준 강문이 이번엔 휘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너는?”
“어? 나?”
당연히 다음은 차율을 지목할 거라 여기고 있던 휘건이 눈을 크게 뜨며 손가락으로 저를 가리켰다. 강문은 고개를 두어 번 크게 끄덕였다.
“휘건 씨는 뭐가 제일 힘들었나요?”
“저는, 어…….”
휘건이 눈동자를 도로록 굴리며 제법 진지하게 고민했다. 가만히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모습마저 그림 같아서, 강문은 감탄스레 벌어지려는 입을 애써 꾹 다물었다.
짧게 고민을 끝낸 휘건이 코로 숨을 한번 크게 내쉬고는 강문의 눈과 똑바로 마주했다. 그리고는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는데, 생각보다 타격이 컸다.
“기다리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언뜻 팬들을 만나고 무대에 서기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강문은 알고 있었다. 휘건이 말 속에 담은 의미는 그게 아니라는 걸.
“크흠……. 다음 질문.”
“엥? 우리한테는 안 물어봐?”
“알아서 생각해.”
“와, 뭐지?”
서둘러 넘어가버리는 강문에 차율이 입을 떠억 벌리며 어이없어했다. 호재는 무언가 눈치 챈 모양인지 그 옆에서 소리 없이 낄낄 웃었다. 강문은 괜히 머쓱해져 손가락으로 애꿎은 볼만 긁었다.
인터뷰 연습을 핑계로 한참이나 수다를 떨었지만 그래도 시간은 더디게만 갔다. 꼭 시곗바늘에 껌이라도 붙여둔 것처럼 자꾸만 늘어졌다. 그럴수록 시찬은 점점 긴장을 등에 업고 핼쑥해졌다.
“야…… 너 괜찮아?”
앉지도 서지도 못한 애매한 자세로 멈춰 있는 시찬에게 호재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시찬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 안 괜찮은 것 같아…….”
시찬이 뿌엥 하고 우는 소리를 내며 다시 연습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워낙 친화력이 좋고 쾌활해서 긴장과는 거리가 멀 것 같았는데, 저리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니 좀 의외였다.
지금도 이런데, 후에 무대에서 긴장 때문에 실수라도 하는 건 아닌지 내심 걱정되었다. 귀엽게 넘어가줄 수 있는 실수라면 괜찮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 남들 앞에서 한 번도 떨어본 적 없는데 왜 이러지…….”
그런 강문의 마음을 읽은 듯 시찬이 잔뜩 억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멤버의 안위보다 다른 쪽을 더 걱정한 자신의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얼굴이 조금 화끈거렸다.
“에이! 이러고 있으니까 더 처지는 것 같잖아.”
누워서 팔을 퍼덕거리던 시찬이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다시 벌떡 일어섰다. 눈가에 먹구름처럼 끼어 있던 걱정을 억지로라도 조금 밀어낸 얼굴이었다.
“우울한 기분은 탄수화물로 녹이는 거라고 했어.”
그렇게 선언하고는 소파 쪽으로 쪼르르 달려가 가방을 주섬주섬 챙겼다.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아들은 멤버들 역시 오늘 연습은 글렀다고 판단했는지 시찬을 따라 나갈 채비를 했다.
“그래, 가자. 휘건이가 산대.”
“내가?”
제 어깨를 턱 짚으며 당당하게 꺼내는 말에 휘건이 강문을 내려다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강문은 흡사 ‘아니야?’라고 쓰인 듯한 얼굴로 휘건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휘건의 한쪽 눈썹이 아리송하게 올라갔다.
“어……. 내가 산대.”
얼떨떨한 목소리 뒤로 와아아 하는 환호성이 뒤따랐다. 3초 정도 멍하니 있던 휘건 역시 멤버들과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연습실 밖으로 나가는 내내 차율과 시찬이 ‘박휘건! 박휘건!’하고 연호했다. 휘건이 쪽팔리다고 제발 그만하라며 말렸지만 1층에 도착할 때까지도 두 사람은 멈출 줄을 몰랐다.
“짜증 나……. 체할 것 같아.”
하지만 시찬은 그렇게 좋아하는 떡볶이를 앞에 두고도 몇 입 먹지 못했다. 괜찮은 척 해보려 해도 지나치게 긴장한 탓인지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떡볶이 하나에 콜라를 한 컵씩 마셔대더니, 결국 탄산으로만 배를 채워버렸다.
“…….”
“…….”
연습실에서보다 더 풀이 죽어 버린 시찬을 사이에 두고 호재와 강문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럴 때는 자극적인 걸로 정신을 쏙 빼놓아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만들어주는 게 최고다.
“뭔데. 뭐 하는데, 둘이.”
둘이서만 눈빛을 주고받는 게 영 못마땅한 듯 맞은편에 앉은 휘건이 잔뜩 부루퉁해졌다.
강문은 대답 대신 눈썹을 까딱하고는 씨익 장난스레 웃었다. 휘건은 어째 더 심기가 불편해진 얼굴이었다.
“가자! 밥 먹었으면 소화시키러 가야지.”
“됐어…….”
“어어? 그럼 여기 계속 있을 거야?”
강문과 호재가 시찬의 팔을 한 쪽씩 끼고 억지로 일으켰다.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난 시찬이 도대체 왜 이러냐며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왜 이러긴. 이시찬 기 살리기 프로젝트 하려고 그러지. 이 형아들만 믿어.”
강문이 자신 있는 목소리로 제 가슴께를 툭툭 치는 동안 호재는 옆에서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동조했다. 휘건은 여전히 심기가 불편해 보였고, 차율은 재미있겠다며 까르르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특별할 건 없었다. 근처에 있는 오락실로 데려가 격투 게임을 몇 판하고, 같은 건물에 있는 코인 노래방에서 실컷 노래를 불렀다. 사실 노래라기보다는 그냥 소리치는 것에 더 가까웠지만. 그래도 그 덕분인지 시찬은 한결 마음이 편해 보였다.
마무리로 버블티를 한 잔씩 사 먹으며 걸어서 숙소에 도착하니 어느덧 6시가 되기 딱 5분 전이었다. 멤버들 모두 서둘러 신발을 벗어던지고 들어와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슬슬 손바닥에 땀이 끈적하게 배어 나왔다.
“조회수 1에서 안 올라가는 거 아니겠지?”
스마트 TV를 켜고 티저가 올라오기로 한 채널에 들어가며 시찬이 걱정스레 물었다. 팔자로 눈썹을 뚝 떨어트린 시찬의 등을 휘건이 다독여주었다.
“설마. 우리 타임 테이블 본 사람만 몇 명인데…….”
강문 역시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휘건의 말이 맞았다. 회사 공식 SNS 계정에 올라온 티저 공개 타임 테이블이 많이는 아니지만 소소하게 입소문을 탔다.
뒷모습 실루엣만으로도 피지컬이 느껴지는지, 일찍이 알아본 사람들 사이에서 작게 화제가 되었다. 덕분에 적어도 소리 소문 없이 묻혀버리진 않겠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강문 역시 티는 내지 않았지만 목이 바짝바짝 탔다.
대형 기획사에서 나오는 아이돌처럼 화려하고 떠들썩한 데뷔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초반에 어느 정도 얼굴을 익혀 놔야 나중에 뭐라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시찬의 티저가 그 물꼬를 잘 터줘야 할 텐데.
“여기서 새로고침 하면 되나?”
“새로고침 어떻게 해?”
“몰라? 그냥 정각 땡 하면 채널 다시 누르자.”
긴장으로 발발 떠는 멤버들을 보던 강문은 휴대폰을 들어 SNS에 접속했다. 공식 계정을 살펴보니, 가장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W.A.IN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창에 그룹명을 넣고 검색하자 벌써부터 몇몇이 티저를 기다리며 얘기하고 있는 게 보였다. 신생 기획사라 아무런 정보도 공개되지 않은 게 오히려 신비주의로 마케팅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휘건과 강문에 대한 이야기도 드문드문 있었다. 이름만 보고 내내 붙어 다녔던 그때의 그 유명한 애들이 맞냐 아니냐로 떠드는 거였다. 호재의 말대로 학창시절에 두 사람이 정말 유명하긴 했던 모양이다.
“후…….”
어느덧 59분이 되었다. 차율이 작게 비명을 지르며 휴대폰으로 초시계를 켰다.
“10…… 9…… 8…….”
차율이 파들파들 떨리는 목소리로 초조하게 카운트를 셌다. 드디어 59가 00으로 바뀌었다. 차율과 호재가 눈을 마주쳤다.
“누른다?”
호재의 말에 시찬과 차율이 동시에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재가 리모컨을 쥐고 비장하게 채널을 누르자 조금 전까지 없었던 새로운 영상이 나타났다. 으으으 하고 낮게 앓은 호재가 영상을 눌러 재생했다.
4번 트랙인 ‘홀로그램’의 반주가 깔리며 시작된 영상은 시찬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매력적으로 보여줬다. 그 속에서 시찬은 레트로 풍의 곡에 맞게 리듬을 타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백금발에 가깝게 밝게 뺀 머리가 반짝반짝 빛나는 놀이공원 배경과 아주 잘 어울렸다.
뮤직비디오에 들어가는 장면이 중간에 편집되어 스쳐가는 부분에서는 시찬 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언뜻 비쳤다. 다음에 공개될 멤버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겠지. 마냥 허술하게 일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대표가 머리를 잘 썼다. 아니, 편집자가 머리를 잘 쓴 건가.
[Why you look like a hologram-]
킬링 파트가 흘러나오고, 카메라를 마주보는 시찬의 얼굴 위로 ’SICHAN’이라는 글자가 나타나며 화면이 암전되었다. 그리고는 검은 화면에 W.A.IN의 시그니처 타이포가 쿵 소리를 내며 박혔다. 그 뒤에 앨범 발매일까지 뜨고 난 뒤 영상이 끝났다.
시끌벅적하던 거실에 고요가 찾아왔다. 그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입을 여는 순간, 미친 듯이 펄떡이는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서였다.
W.A.IN의 기념비적인 첫 티저는 가히 성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