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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39화 (39/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39화

관객이 전부 빠져나간 놀이공원은 어딘지 모르게 스산했다. 촬영 스텝들과 현장 직원 몇몇으로는 그 넓은 공간을 채우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조금 전까지 빽빽하게 몰려 있던 인파가 다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딱 30분 뒤에 시작할 거니까 그 때까지 마무리 해.”

“의상 체크 다 됐어?”

“조명! 똑바로 고정 안 해?”

촬영장 한 구석에 마련된 파우더 룸에 앉아 있어도 현장의 바쁜 소음은 고스란히 들려 왔다. 물론 저 사람들도 다 돈을 받았으니 그만큼 열심히 하는 거겠지만, 그래도 자신들을 위해 고생하는 걸 앉아서 지켜보기만 하려니 영 불편했다.

“형, 이거.”

메이크업 차례를 기다리며 눈만 굴리고 있는데,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호재가 손에 잡기 편하도록 핸드그립이 연결된 작은 카메라를 건넸다.

“이게 뭔데?”

“우리 비하인드 영상 찍어야 한대.”

그러고 보니 퀘스트에 비하인드 촬영까지 잘 마무리하라는 내용이 있었던 것도 같았다. 오늘의 선택이 미래를 만든다는 다소 무시무시한 조언과 함께.

강문은 복잡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받아 들고는 여태까지 보았던 비하인드 영상들을 떠올렸다. 매니저가 촬영하면서 묻는 질문에 대답과 함께 자유롭게 리액션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멤버 하나가 대표로 들고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찍는 경우도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온 걸 보니 아마도 이번엔 후자인 모양이었다.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엔 딱이지.

“내가 대표로 찍는 거야?”

“그럴 생각이기는 한데, 아마 중간에 이시찬이나 차율이 뺏어가지 않을까?”

그건 그래, 하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자 호재가 피식 웃었다. 두 사람이 신나서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벌써 들리는 것 같았다.

모니터를 젖히고 전원을 켜니 화면 가득 주인공의 얼굴이 보였다. 자주 봐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화면을 통해서 보니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 게 조금 어색했다.

이것저것 버튼을 살펴보던 강문이 목을 가볍게 가다듬고 촬영 버튼을 눌렀다. 화면 상단에 빨간 동그라미가 깜빡이며 촬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렸다.

“안녕하세요, 와인의 리더 강문입니다.”

활짝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든 강문이 옆에 멀뚱히 서 있는 호재에게 가까이 다가오라 손짓했다. 호재가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다가와 상체를 숙여 눈높이를 맞췄다. 이제 화면에 두 사람의 얼굴이 들어찼다.

“그리고 여기는 저희 팀의 메인 래퍼이자 정신적 지주, 호재입니다.”

“정신적 지주? 내가?”

“됐으니까 빨리 인사해.”

강문이 카메라를 들지 않은 손으로 호재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입술을 삐죽거린 호재가 옅게 미소 지으며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강호재입니다.”

“어휴, 딱딱해…….”

“형이랑 나랑 뭐가 다른데?”

진심으로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그 반응이 재미있어 강문이 작게 키득키득 웃었다.

“어……. 오늘은 뮤비를 촬영하는 날인데요. 처음이라 그런지 너무 어색하네요. 그래도 예쁘게 봐 주세요!”

강문이 야무지게 주먹을 말아 쥐고 파이팅 포즈를 취하자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호재가 똑같이 따라했다. 만족스러운 듯 강문이 호재의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며 활짝 웃었다.

처음엔 뭘 찍어야 하나 난감해 하던 강문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많은 것들을 찍었다. 간단하게 멤버들 소개도 하고, 가벼운 장난을 치며 농담도 주고받았다. 호재의 예상대로 중간에 차율이 카메라를 뺏어 들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강문 님, 오세요!”

이정도면 할 만큼 했다 싶어 앉아서 숨을 돌리고 있으니 금세 제 차례가 되었다. 가만히 앉아서 메이크업을 받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얼굴에 뭐가 치덕치덕 얹어지는 느낌이 이상했다. 평소에 답답해서 선크림도 겨우 바르고 다니던 터라 더더욱.

“잠깐 눈 감아 주세요.”

눈을 감으니 간지러운 붓이 눈꺼풀 위를 훑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까슬까슬한 감촉이 왔다 갔다 하는데, 붓이 지나가는 자리가 간지러워 눈꺼풀이 움찔거렸다.

“눈 살짝 뜨고 아래 봐주세요.”

아이라인을 그릴 때는 행여 눈을 찌르지는 않을지 계속 걱정되었다. 저도 모르게 속눈썹이 파르르 떨릴 때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눈에 힘을 빼라며 곤란해 했다.

겨우 메이크업을 마무리해서 이제 끝인가 했더니 뒤를 이어 헤어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전 샵에서 다 끝내고 온 건줄 알았는데, 아직 더 남았을 줄이야. 스프레이 한 통을 다 쓸 기세로 뿌려대는 모습에 조용히 시선을 돌려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았다.

“끝! 수고했어요.”

언제 끝나나 싶어 속으로 염불을 열 번은 외웠을 때쯤, 드디어 모든 준비가 끝났다. 뻑뻑해진 눈을 두어 번 감았다 뜬 뒤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조금 놀랐다.

완벽하게 세팅하기 전에도 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완성해놓고 보니 미리 갈아입은 뮤비 의상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예한의 감각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와…….”

감탄으로 떡 벌어진 강문의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신기해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 계속 보다 보니 익숙하면서도 또 낯설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예쁘게 잘 만들어진 건 사실 자신이 아니라 주인공의 얼굴이니까.

근데…… 내가 원래 어떻게 생겼더라?

“뭐 해?”

순간적으로 패닉에 빠질 뻔한 강문을 깨운 건 휘건의 목소리였다. 퍼뜩 정신을 차린 강문이 고개를 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지금은 퀘스트를 완료하는 데만 집중하자고 자신을 다독였다.

“아니야. 여기 앉아.”

자리에 앉으라고 얘기하며 올려다보는데, 휘건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미묘하게 커진 눈과 어쩔 줄을 몰라 하며 흔들리는 눈동자로 모자라 입까지 벌리고 있었다. 꼭 혼을 어디다 빼놓고 몸만 온 사람 같았다.

“왜?”

“어? 아니, 아무것도…….”

휘건이 가볍게 고개를 흔들고는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강문은 피곤해서 저러나 싶어 휘건을 조금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이어진 뮤비 촬영과 자켓 촬영은 순조로웠다. 강문이야 원래 뭐든 뻔뻔하게 잘 하는 편이었고, 다른 멤버들도 두 번째라 그런지 신인 치고는 꽤 능숙했다.

자켓 촬영 때는 옷을 세 벌 갈아입었는데, 처음엔 부끄러워서 숨어서 갈아입다가 나중엔 바빠서 그냥 훌렁훌렁 벗어던졌다.

이 모든 과정이 피곤하긴 해도 퍽 재미있었다. 어쩌면 아이돌이 천직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옆에서 본 멤버들 역시 자신과 비슷해보였다. 어쩌면 놀이기구를 타고 놀 때보다 더 즐겁고 활력이 넘치는 것도 같았다. 이런 열정이라면, 이대로 첫 단추를 잘 끼울 수 있을 것 같아 예감이 좋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컷까지 촬영이 끝나고, 나란히 선 멤버들이 꾸벅 허리를 숙이며 큰 소리로 인사했다.

정리하느라 소란스러운 가운데서 옷을 갈아입는 게 벌써부터 익숙해져 신기했다. 처음 입고 왔던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니 대표가 밝은 표정으로 반겨 주었다. 오늘의 촬영이 아주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베이비들, 고생 많았어! 저번보다 더 잘 하는데? 그새 좀 컸나?”

“아하하…….”

강문은 그런 컨셉으로 의욕이 생기기나 했겠냐는 말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그런 강문의 속도 모르는 대표가 달덩이처럼 웃으며 어깨를 툭툭 다독였다.

“보기 좋다. 앞으로도 딱 오늘처럼만 하자. 할 수 있지?”

“네!”

대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멤버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끄덕이는 대표의 얼굴에서 만족스러움이 잔뜩 묻어났다.

“내일 하루는 푹 쉬고, 다음 주부터 티저 하나씩 올라갈 거니까 연습 열심히 하고 있어.”

그 말을 끝으로 대표는 바빠서 먼저 가 보겠다며 발랄하게 사라졌다.

잠깐 처리할 게 있다며 함께 사라진 성수를 기다리며 시계를 보니 조금 있으면 해가 뜰 시간이었다. 스무 시간을 넘게 깨어 있었더니 정신이 몽롱했다.

“우리 진짜 데뷔하는구나…….”

아직 치우지 않은 간이 의자에 주저앉아 있던 시찬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뒤가 구겨진 신발을 고쳐 신은 호재가 시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왜?”

“그냥. 아직 안 믿겨서. 형은 믿겨?”

호재는 빳빳하게 세팅된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다 느릿느릿 고개를 저었다.

“나도 아직 실감은 잘 안 나.”

“컨셉 바뀌기 전에 촬영했을 때는 마냥 신났는데, 오늘은 기분이 좀 이상해.”

기대와 긴장, 그리고 불안함이 섞인 복잡한 감정을 알아차린 호재가 가만히 시찬의 머리통을 안고 다독였다. 시찬이 히잉 하는 소리를 내며 호재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역시 아직 애는 애였다.

“아, 매번 물어보려다가 까먹은 건데.”

“무엇이오?”

지치지도 않는지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던 차율이 강문의 물음에 쳐다보지 않고 대답했다.

“와인은 무슨 뜻이야? 마시는 와인은 아닌 것 같고…….”

“아아, 그거?”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화면을 끈 차율이 휴대폰을 내려두고는 똑바로 섰다.

“잘 봐.”

뭘 하려고 저러나 싶어 아리송한 얼굴로 강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율이 씨익 웃고는 이상한 손동작과 함께 비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We Are Insane! 안녕하세요, 와인입니다!”

그건 아이돌하면 빼놓을 수 없는 팀 구호와 고유의 인사법이었다. 그런 것까지 다 만들어놓았을 줄은 몰랐던 강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어때? 멋있지?”

뿌듯하게 어깨를 으쓱이는 차율을 보며 강문이 웃음을 터트렸다.

컨셉은 정말 별로였지만, 그룹명과 인사법은 참 잘 만들었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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