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38화
작게 한숨을 내쉰 강문은 사람이 너무 몰려 있지는 않은지 주변을 살폈다. 구석진 곳에 있는 화장실이라 한산한 것을 확인하고는 휘건의 팔목을 약하게 잡고 이끌었다.
“잠깐 따라와 봐.”
휘건은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 강문이 이끄는 대로 얌전히 따랐다. 이게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선 길을 돌아 도착한 곳은 실내에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는 공간의 뒤쪽이었다.
커다란 고목나무 옆으로 돌아가면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나갈 만한 좁은 길이 나오는데, 그 곳을 통과하면 꼭 일부러 숨어서 쉬라고 만들어 둔 것처럼 벤치 하나가 덜렁 자리해 있었다. 인테리어용 가로등 하나와 함께.
“어차피 애들이 줄 서있으니까 여기 잠깐 앉아서 쉬다 가자.”
친구들과 드림랜드에서 놀다 다리가 아파지면 꼭 여기서 혼자 벤치에 누워 쉬곤 했다. 한참이나 나타나지 않는 저를 찾는 전화가 올 때까지 조용히 누워 있으면 여러 가지 기분이 들었다.
분명 천장엔 콘크리트와 철근밖에 없는데, 꼭 별이 가득 쏟아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그게 누워 있는 공간 때문인지, 단순히 제 기분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올 때마다 여기서 쉬는데, 이쪽에 길이 있는지 몰라서 사람들 절대 안…….”
거기까지 말하다 아차 싶어 말꼬리를 늘렸다. 아무런 기억이 없는 상태에서 예전 이야기를 꺼낸다는 건 말이 안 되어서였다. 그리고 휘건이 알고 있을 주인공의 과거와 맞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온다고 인터넷에서 봤어.”
“그래?”
강문이 재빠르게 말을 바꾸고 벤치에 앉아 제 옆자리를 팡팡 두드렸다. 다행히 휘건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 눈치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으으……. 오늘 하루 왜 이렇게 기냐.”
“그러게. 한 일주일은 지난 것 같은데.”
휘건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강문이 아하하 웃었다. 하루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도 이런데, 정식으로 데뷔하고 나면 정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겠지. 신인 아이돌은 특히 지방 행사 스케줄이 많이 잡힌다던데 바깥보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그 시기가 가장 설레면서도, 가장 버티기 힘든 시기일 것이다.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감과 더 나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공존하는 시기. 자신도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
“여기만 오면 다 괜찮을 것처럼 기분이 들떠버리는 게 신기하지 않아? 이렇게 조금 떨어져 있으면 다시 또 현실인데.”
벤치 등받이에 깊게 기대어 앉은 강문이 늘 그랬듯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드림랜드를 한 바퀴 크게 도는 열기구 모양 어트랙션이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언뜻 보면 하늘을 날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 순간이 즐거우면 됐지. 다들 그러려고 오는 건데.”
휘건이 강문을 따라 천장을 올려다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때로는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도 있는 법이었다.
아이돌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늘 대가 없는 사랑을 무한대로 안겨 주는 팬들은 참 대단한 존재인 것 같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얕은 서운함에 발을 담그기도 하겠지만, 곧바로 털어낼 수 있는 그들은, 자신이 본 중 가장 강한 사람들이었다.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겠지? 보기만 해도 들뜨고 기분 좋아지는 사람.”
그리고 팬들에게 W.A.IN이, 그리고 W.A.IN에게 팬들이 그런 존재가 되길 바랐다. 비록 자신이 돌아가고 난 뒤엔 작은 데이터로밖에 남지 않겠지만, 그 안에서라도 서로를 행복하게 보듬으며 지냈으면 좋겠다고.
“나한텐 네가 그래.”
뜬금없이 튀어나온 휘건의 대답에 하늘로 향했던 고개를 스르륵 다시 내렸다. 휘건은 여전히 아이돌로서의 성공보다 주인공과의 관계를 더 신경 쓰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게 밉지 않았다.
“휘건아. 너는 내가 왜 좋아?”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
“그냥, 궁금하잖아. 우리의 첫 시작이 어땠는지, 언제 처음 감정이 싹텄는지, 첫 키스는 어땠는지…….”
주인공의 과거에 대한 기억이 아무 것도 없는 게 이럴 때 참 별로였다. 어차피 알아도 거기에 맞춰서 살아갈 생각은 없지만, 누군가와 함께한 기억을 저만 모른다는 사실이 퍽 외로웠다.
얼른 퀘스트를 완료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분명 이 호기심이 나중에 제 발목을 잡을 텐데.
그럼에도 행여 돌아가지 못할까 하는 불안함보단 남겨질 휘건에 대한 걱정이 더 먼저였다. 휘건의 마음을 이용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자신이 더 휘둘려버린 꼴이었다.
“기억…… 돌아왔으면 좋겠어?”
그렇게 물어오는 휘건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넌 아니구나?”
기억이 돌아오면 다시 서로를 향해 안 좋은 감정을 내비치던 시절로 돌아갈지도 모르는데, 당연히 불안하고 싫겠지.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미안.”
“미안할 게 뭐가 있어. 다른 애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찌 보면 주인공도 참 불쌍하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휘건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지금 상황에 더 만족스러워 하니까.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적도 없을 텐데, 누구 하나 저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없다니. 소름 돋을 정도로 쓸쓸했다.
휘건이 안쓰러운 만큼 주인공의 삶도 가여웠다. 어쩌면 자신이 돌아가고 난 뒤 괴로워지는 건 휘건 뿐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만약 내 기억이 돌아오더라도, 지금처럼 나한테 잘해줘야 해. 나 많이 미워하지 말고. 알겠지?”
강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휘건이 툭 떨어져 있는 손을 스르륵 겹쳐 잡았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앉자 순식간에 공기가 달아올랐다. 처음 마주했을 때 무슨 속셈이냐며 죽일 듯이 노려보던 휘건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너도 그런 말 하지 마. 꼭 어디 가버릴 것처럼…….”
강문이 느릿하게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힘들어도, 그 정도는 약속해줄 수 있었다.
천천히 맞붙은 입술이 온기를 나누어 가졌다. 별거 없는 담백한 입맞춤이었지만, 코끝이 찡해질 정도로 다정하고 절박했다.
“밖에서 하는 것도 스릴 있는데?”
“뭐?”
일부러 너스레를 떨어대는 강문을 휘건이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며 웃었다. 강문 역시 휘건을 따라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접으며 낄낄거렸다.
“그래서, 대답 안 해줄 거야?”
“무슨 대답.”
“내가 왜 좋냐고.”
아직도 그 소리냐며 휘건이 한쪽 눈썹을 못마땅하게 찡긋거렸다.
“좋은 데 이유가 어디 있어. 그냥…… 그냥 좋은 거지.”
“흐으음…….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데…….”
강문이 눈을 가늘게 뜨며 살짝 흘겼다.
다른 건 캐묻지 않아도 이것만큼은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궁금했다. 뭐가 그리 휘건의 마음을 절절하게 만드는지.
입술을 뗄 듯 말 듯 움찔거리며 고민하던 휘건이 이내 포기하고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나도 몰라. 그냥 어느 날부터 네 노래만 들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 그래서 좋아하나보다 했지. 그런데…….”
말꼬리를 흘리는 휘건을 보면서, 강문은 노을 지는 하늘 아래에 나란히 놓인 그네에 앉은 어린 두 사람을 떠올렸다. 왜인지 휘건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모습이 딱 그랬을 것 같았다.
“그런데 뭐? 왜 말을 하다가 말아.”
“……아니야.”
휘건이 픽 웃음을 흘리며 강문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흩트렸다.
“가자. 애들 기다리겠다.”
자리에서 먼저 일어선 휘건이 강문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주 잡은 손바닥에 뜨끈하게 열이 올랐다. 조금 간지러운 것 같기도 했다.
* * *
[잡담] 나 오늘 드림랜드 갔다가 존잘남들 봤음
익명 | 조회 281
처음에는 머리색이 존나 화려해서 뭐야 하고 쳐다봤는데 키크고 개잘생김
연예인인가 뭐 촬영하나 싶어서 좀 따라다녀봤는데 놀이기구만 개신나게 타서 아무것도 못 알아냄
보고만 있어도 걍 광대 자동발사ㅏㅏ
일반인인거같아서 사진은 펑함ㅠㅠ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잘생겼다
┗ 22 아이돌인가?
헐 얘네 누구지?
┗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 아 뭐지 익숙한데
┗ 222 왜 본거같지
헐 나 저기 두명이랑 같은 학교 나왔는데 데뷔했다는 소식 못들었는데?
┗ 안친해서 그런거 아님?
┗ ㄴㄴ 쟤네 조오오오온나 유명했음 데뷔했으면 진작 난리났을걸 그리고 한명은 수영하던애임
┗ 헉ㅠㅠ 혹시모르니까 사진은 지울게
연습생일거같다
┗ 헐 이거 맞는듯
┗ 머리 보니까 곧 데뷔하나봐!!
┗ 에이 아닐걸? 나 그쪽 관련 일하는데 데뷔 예정인 애들 없어
┗ 뭐 무슨 일 하길래 이렇게 확신함ㅋㅋ
┗ 윗윗댓 너 뭐 돼?
┗ 온동네 연습생 다 아나봄ㅋㅋㅋ
아씨 나도 보고싶다 놓침ㅠㅠ
┗ 나도ㅠㅠ
┗ 아 좀만 빨리올걸
┗ 나 그냥 내일 오지 그랬냐
[잡담] 오늘 드림랜드에 온 연예인 누구야?
익명 | 조회 317
키 진짜 크고 잘생긴 남자들 몇명 몰려서 다니던데 연예인 잘 몰라서
연예인? 누구 갔다는 말은 못들었는뎅
┗ 22 나도
아까 누가 드림랜드에서 존잘남 봤다던데 걔네 아님?
┗ 오 맞는듯
┗ 뭐 얼마나 잘생겼길래 이러냐 궁금하게ㅋㅋㅋ
걔네 연예인 아니라던데
┗ 어떻게 알아?
┗ 댓글로 일반인이래서 사진 펑됨
오늘 드림랜드 존잘남 얘기 많이 나오네 존나 궁금ㅠ
┗ 22
┗ 333
┗ 4444
나만 못봐 존잘남
┗ 나도……
┗ 여기도 사람 있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