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36화
강문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덜컹거리는 소음에 깰 법도 한데, 휘건은 강문이 다시 문을 닫고 옆에 앉을 때까지 미동도 없이 곤히 잠든 채였다.
눈을 감은 모습도 물론이지만,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얼굴을 맞대는 건 처음이라 강문의 눈동자가 바쁘게 굴렀다. 컴퓨터 그래픽을 잘 빚어놓은 것처럼 잡티 하나 없는 피부가 어둑한 주차장에서도 환하게 빛났다.
염색 대신 머리만 다듬는다고 하더니, 앞머리에 살짝 가려져 있던 짙은 눈썹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미간에서부터 내려오는 오뚝한 콧대는 물론이고, 기다랗고 촘촘하게 뻗은 속눈썹까지 그림처럼 예술이었다.
“진짜 볼수록 잘생겼다니까…….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생겼지?”
휘건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다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휘건은 유니콘 사냥꾼이라고 놀림 받던 자신의 눈에도 단연 최고일 만큼 확신의 미남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먼 훗날 관에 들어가면서 ‘정말 잘생겼었어.’하고 유언을 남길 수도 있을 것 같은 정도? 물론 객관적으로 잘생긴 외모와 더불어 자신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사소한 디테일들이 더해져 만들어진 결과였다.
예를 들자면, 자신은 선이 뚜렷하고 날카로우면서 예민함이 느껴지는 서늘한 미남을 좋아한다. 마냥 둥글둥글, 누구에게나 다정할 것 같은 이미지보다는 나한테만 상냥하게 굴어주는 어려운 남자. 실제 성격이야 어떻든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그래야 한 번이라도 더 눈이 갔다.
그런 자신에게 휘건은 실재하지 않을 거라 확신하며 평생 독거노인으로 살아야지 다짐했던 날들을 다 깨버리는 이상형의 집합체였다. 외모만으로도 이미 합격인데, 성격이나 하는 짓까지 깨물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외모와 성격의 차이에서 오는 갭이 자신을 꽤 자주 미쳐버리게 만들었다.
“현실이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움에 입맛을 쩝 다신 강문의 시선이 조금 더 아래로 향했다. 뭘 바르지 않아도 촉촉하고 말랑해 보이는 입술이 잠꼬대하듯 미약하게 우물거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저 입술이 제게 닿아오던 때의 뜨끈한 감촉이 입가에 스쳤다. 코끝을 맞대고 공유하던 더운 숨도,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어오던 이도, 미끄러지듯 들어오던 뜨거운 혀도.
“…….”
강문의 손가락이 천천히 휘건에게로 향했다.
손끝에 입술이 닿자 팔을 타고 등줄기까지 찌릿하게 떨렸다. 일정한 박자를 유지하던 심장 박동이 점점 속도를 올렸다.
할까…… 말까?
콩고물에 더 관심이 있다고 휘건을 타박한 게 불과 몇 시간 전인데, 어쩐지 지금은 상황이 뒤바뀌어 있었다. 저도 사람인지라, 본능적으로 끌리는 마음을 숨기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혀끝으로 입술을 축이며 고민하던 강문이 스르륵 얼굴을 가까이 붙였다.
어차피 곤히 잠들어 있고, 입술만 살짝 붙였다 떼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자기 합리화가 머리를 지배했다.
쪽.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는 건 정말 찰나였다. 혹시나 깬 건 아닌지 몸을 물리고 얼굴을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미동조차 없었다. 처음과 똑같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묘하게 죄책감이 몰려오며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
자괴감이 짧게 스친 자리를 이번엔 아쉬움이 꿰찼다. 엄지로 제 입술을 느릿하게 한번 훑다 시선을 다시 아래로 떨어트렸다. 역시 겨우 그 정도로는 아무 것도 충족되지 못했다.
딱 한 번만 더.
침을 꼴깍 삼키고 다시 가까이 다가갔다. 행여 잠에서 깰까 숨쉬는 것마저 조심스러웠다.
“읏……!”
입술이 부딪히는 순간, 분명 잠들어 있다고 생각했던 휘건이 강문의 팔을 붙잡고 제 쪽으로 확 잡아당겼다.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은 강문의 몸이 휘건의 무릎 위로 안기다시피 고꾸라졌다.
놀라서 일어서려는 강문의 목덜미를 감싸 쥔 휘건이 몸을 더욱 가까이 붙였다. 당황해서 벌어진 강문의 입술 사이로 자연스레 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하, 잠깐…….”
“먼저 시작한 건 너야.”
휘건은 기다렸다는 듯 더욱 깊숙하게 입 속을 탐했다. 화장실에서의 짧은 키스가 퍽 아쉬웠던 모양인지, 어째 평소보다 더욱 저돌적이었다.
당황한 것도 잠시, 강문 역시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던지라 두 팔로 휘건의 목을 끌어안았다. 무릎에 올라앉은 자세 덕분에 자연스레 시선이 높아졌다. 입을 맞추기 위해 들어 올린 휘건의 턱선이 더욱 도드라졌다.
집요하게 입 속의 여린 살들을 헤집고 입술을 빨아댈수록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사탕을 녹이듯 굴리는 혀가 질척거리는 머릿속을 마비시켰다. 갈증에 목마른 사람처럼 정신없이 서로의 타액을 삼켰다.
턱이 뻐근해질 정도로 쉴 틈 없이 주고받는 축축한 숨에 차 안의 공기가 금세 습기를 머금고 무겁게 달아올랐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 옆 창문에 뿌옇게 김이 서렸다.
혹시 누가 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보다, 당장 지금 나누고 있는 온기가 더 중요했다. 쾌락은 사람을 좀 멍청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그게 그다지 싫지 않다는 게 가장 어이없는 문제였다.
“…….”
“…….”
정신없던 입맞춤 뒤에 비로소 눈이 마주쳤다. 축축하게 젖어버린 입술처럼, 휘건의 눈동자에도 어딘지 모르게 물기가 어려 있었다.
왜 그렇게 울고 싶은 얼굴인지 알 수 없던 강문이 손끝으로 휘건의 눈가를 쓸었다.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뜬 휘건이 강문의 허리를 끌어안고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문아.”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먹먹하게 흩어졌다. 늘 성까지 붙여서 부르거나 대충 야 또는 너 하고 부르더니, 이렇게 이름만 나지막이 불러오는 건 또 처음이었다.
“나…… 좋아해?”
느릿하게 물어오는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담백한 질문이었지만 그 속엔 여러 가지가 참 많이 담겨 있었다.
“싫으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냐? 사람 쓰레기 만드네, 갑자기?”
그래서 일부러 더 별거 아닌 듯 장난스레 대답했다. 생각보다 더 자신, 아니 주인공 ‘강문’에게 진심이라는 게 확연히 느껴져서. 그럴수록 휘건의 마음을 이용하고 있는 제 양심이 콕콕 찔리는 게 영 거슬려서.
“아하하…….”
강문의 반응에 휘건이 푸스스 낮게 웃었다.
“근데 난 왜 이렇게 불안하지.”
목소리만으로도 말을 더 이어 갈지 말지 고민하는 머릿속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았다. 허리춤에 닿은 휘건의 손끝이 불안한 듯 움찔거리고 있었다.
“기억이 돌아오는 게 아니라 꼭 네가 사라져 없어질 것 같아서……”
문장을 다 끝마치지 못하고 다시 입을 꾹 다문 휘건이 강문을 조금 더 세게 끌어안았다. 강문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다행히 휘건은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있느라 보지 못했다.
“……미안. 못 들은 걸로 해.”
당연히 못 들은 걸로 할 수 없었다. 휘건이 정말 뭔가 낌새를 알아차리고 있는 건지 아니면 본능적으로 불안함을 느끼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주인공의 기억이 돌아오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건 확실했다.
이곳은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라고 되뇌면서도, 이런 순간이 오면 이상하게 기분이 축 가라앉았다. 자신에겐 그저 데이터에 불과한 이 공간이 저들에겐 지켜내야 할 현실이라는 게 지독하리만큼 와닿아서.
그리고 빈말로라도 그런 일은 없을 거라며 위로해줄 수 없었다. 저는 다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남은 사람들은 변화를 오롯이 다 감당해내야만 하니까. 말을 돌리고 얼버무릴지언정 그런 무책임한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
강문은 조용히 제 품에 안긴 휘건의 뒤통수를 끌어안았다. 미안함을 포함한 복잡한 감정이 한데 뒤섞인 손길이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휘건은 자신이 아니었더라도 언젠가 주인공에게 같은 불안함을 품었을 것이다.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함께 부대끼고 있으니 당연하다. 휘건은 주인공을 정말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 과거에도, 지금도.
처음엔 그 마음을 잘 이용해서 저에게 호의적으로 만들고, 성공적인 데뷔에 기여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로 인해 따라오는 섹슈얼한 텐션은 보너스로 제공되는 서브 스토리 정도로 여겼다. 자고로 게임이란 즐기면서 하는 거니까.
하지만 지금은 과연 잘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
내가 뭐라고. 내가 저들보다 뭐가 그리 잘나서.
“하아아…….”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온 한숨이 휘건의 정수리 위로 흩어졌다. 어떻게 하면 빨리 현실로 돌아갈 수 있을 지만 신경 쓰고 싶은데,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저에게 녹아들어버렸다.
얌전히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받고 있던 휘건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물기 어린 눈동자에 강문의 얼굴이 선명하게 비쳤다.
“가지마, 문아.”
휘건의 목소리는 담담하고도 애절했다. 강문은 이번에도 도망갈 생각 하지 말라던 연습실에서의 휘건을 떠올렸다.
“그게 어디든…… 나만 두고 가지마.”
본능적으로 이별을 예감하고 불안해하는 휘건이 참 가여웠지만, 자신이 전부 해결해줄 수는 없었다. 그저 곁에 있는 동안에라도 최대한 좋은 기억들을 많이 심어주는 수밖에.
“쓸데없는 거 말고 데뷔 걱정이나 해. 망하면 전부 네 탓 할 거니까.”
강문이 장난스레 이마를 콩 맞대자 휘건이 낮게 웃었다. 끄덕이는 고개를 따라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살랑거렸다.
“……머리 어때? 복숭아 같아?”
“응. 딱 지금 벗겨 먹으면 맛있을 것 같아.”
“뭐라고?”
짓궂은 대답에 미간을 좁히며 휘건의 머리카락을 쭉 잡아당겼다. 낄낄 웃으며 입꼬리를 끌어올린 휘건의 입술이 쪽 닿았다 떨어졌다.
다시금 입술이 맞붙으려던 찰나, 소란스러운 발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들려 왔다. 나쁜 짓이라도 들킨 것처럼 후다닥 무릎에서 내려와 옆자리에 앉아 창문을 살폈다. 다행히 아무 것도 못 본 듯해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
“……풉.”
놀라서 동그랗게 커진 두 눈이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뭐가 그리 우스운지, 한 번 터진 웃음은 쉬이 그치지 않았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다.
두 사람은 멤버들이 차로 돌아오고 난 뒤에도 한참이나 키득거렸다. 왜 그러냐는 물음에도 끝까지 대답해줄 수 없었다. 딱 두 사람만 알고 있는 비밀이 하나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