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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34화 (34/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34화

“자, 시간 없으니까 빨리 이동할까? 탈색은 엄청 오래 걸리는 거 알지?”

강문이 무어라 대꾸할 틈도 없이 예한이 멤버들을 서둘러 출구로 이끌었다. 진짜 같이 갈 거냐는 대표의 물음에 예한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다만 반드시 찰떡같은 헤어 컬러를 입혀주겠다는 의지가 눈동자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예한과 대표는 샵에 도착해서 만나기로 하고, 멤버들은 다시 사이좋게 밴에 올랐다. 강문은 궁금한 게 많아 성수에게 질문 폭탄을 던지고 있는 시찬에게 조수석을 양보하고, 휘건과 나란히 뒷좌석에 앉았다. 얼마 머무르지 않은 것 같았는데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표정이 왜 그래?”

정신 사나워 죽겠다는 성수의 호통과 함께 차가 출발하자 휘건이 속삭였다. 제 표정이 뭐가 어땠나 싶어 멀뚱히 옆을 바라보니 가만히 눈을 맞춰 오다가 픽 웃는다.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핑크.”

불난 데 기름을 붓는 것도 아니고. 휘건의 말에 강문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휘건이 약 올리듯 한쪽 눈을 찡그리며 낄낄 웃자 결국 주먹이 퍽하고 왼쪽 어깨에 날아들었다. 물론 휘건은 간지러움조차 느끼지 못한 듯했다.

“난 좀 더 단정하고 차분한 이미지로 가고 싶었단 말이야. 왕 리본 달린 베레모에 반바지에 핑크색 머리에…… 이게 뭐야?”

“디자이너님 아니면 안 된다면서 울 때는 언제고?”

“그건 그거고, 이건……!”

열변을 토하며 씩씩거리던 강문이 코로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한숨을 후우우 내쉬었다.

“에휴…… 됐다, 됐어. 이게 다 내가 귀엽고 예쁜 탓이지.”

입술을 삐죽이며 툴툴거리다 손등으로 꽃받침을 만들자 휘건이 이건 또 뭐냐는 듯 멀뚱히 쳐다본다. 그래서 일부러 더 보란 듯이 고개를 양쪽으로 까딱거렸다.

“왜? 예쁜 사람 처음 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이며 뻔뻔스레 말하자 휘건이 눈썹을 찡그리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뻔뻔하고 귀엽다, 너.”

“나도 알아.”

“차분해 보이고 싶은 사람의 태도가 아닌데?”

“타고난 걸 어쩌겠어?”

“그래, 좋겠다.”

휘건의 손가락이 강문의 이마를 아프지 않게 살짝 밀어 넘겼다. 강문이 뒤로 넘어간 고개를 벌떡 일으키고 찡긋 윙크를 하자 휘건이 으으, 하고 싫은 소리를 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하늘을 향해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는 숨기지 못했지만.

“평소에도 좀 그렇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머리까지 핑크색이면 진짜 복숭아 같겠다.”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와 함께 휘건의 손가락이 이번엔 강문의 머리카락에 닿았다. 파스텔 톤의 핑크색으로 바뀐 모습을 상상하는 듯 눈빛이 잠깐 먼 곳으로 향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핑크색 머리도 썩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요즘 아이돌들은 닮은 과일이나 동물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던데, 그마저도 특색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하얀 피부에 핑크색 머리로 복숭아라고 거의 떠먹여 주는 거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과일상 아이돌’이나 ‘인간 복숭아’ 등으로 한 번 더 눈에 익힐 기회가 생긴다면 꽤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

“복숭아는 껍질 벗기면 하얀색인데, 깡문 너도…….”

딴생각에 빠진 강문을 앞에 두고 멍하니 읊조리던 휘건의 입술이 퍼뜩 다물렸다. 강문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휘건을 쳐다보았다.

슬며시 달아오르는 귓바퀴와 손으로 틀어막은 입을 보니 제대로 들은 게 맞는 모양이다. 다행히 호재는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중이고, 차율은 이어폰을 낀 채 게임 중이라 못 들은 듯했다.

“이 새끼 봐라……?”

난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우리 그룹을 더 잘 각인시킬 수 있을지 밤낮으로 고민 중인데, 너는 콩고물에 더 관심이 많다 이거지?

강문은 일부러 더 과장스럽게 제 몸을 가리며 입을 떡하니 벌렸다.

“뭘 벗겨? 어? 뭐가 하얀색이야?”

“아니, 그게 아니…….”

“이게 아주 시도 때도 없이 플러팅이지? 은근히가 아니라 대놓고 밝히네.”

“아니라고…….”

휘건이 점점 불그스름해지는 얼굴을 손바닥 아래에 폭 감추고 고개를 숙였다.

“그냥 너도 피부가 하얀 편이니까, 그래서 그런 거야. 벗……크흠, 벗기겠다는 게 아니라.”

손바닥에 가려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맥없이 흘러나왔다. 제법 괘씸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확 씹어 먹어 버리고 싶을 만큼 귀여워서, 어찌 반응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고개 숙인 정수리를 노려보며 고민하던 강문의 눈이 장난기를 잔뜩 머금고 가늘게 찢어졌다. 호재와 차율을 눈으로만 슬쩍 살피고는 휘건에게 조금 더 가까이 붙어 앉았다.

“벗겨보고 싶었어?”

“…….”

“무의식적으로 말이 나올 만큼?”

휘건은 조금 놀란 듯 어깨만 흠칫 떨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냉큼 아니라고 말하며 호들갑을 떨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다른 반응에 강문의 입이 다시 한 번 멍청하게 멀어졌다.

“와……. 아니라고도 못 하네.”

어이없는 탄성을 토해내는 와중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순간, 휘건은 빈말을 절대 못 한다던 호재의 말이 떠올랐다.

이 새끼, 진짜 진심이구나?

슬금슬금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힘겹게 끌어내렸다. 저를 가지고 그런 상상을 했다는 게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이번은 전혀 아니었다. 본능에 져버려 안달하는 미남은 언제 봐도 최고였다. 게다가 그 대상이 자신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현실보다 더 뚜렷한 목표를 성취해야하는 게임 속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멱살을 움켜쥐고 입술 박치기를 하고 싶지만, 조금 더 인내가 필요하다.

“그럼…….”

조심스레 휘건의 귓가에 얼굴을 기울인 강문이 작게 속삭였다. 휘건이 손바닥에 가려져 있던 눈만 빼꼼히 내밀고는 슬슬 눈치를 봤다.

나, 참. 귀엽기도 하지. 그래도 아직은 안 돼.

“나 대머리 되겠다.”

“……뭐?”

어떤 형태로든 기대에서 한참은 벗어난 엉뚱한 말에 휘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한쪽 눈썹을 까딱 올렸다 내린 강문이 웃으며 휘건에게서 몸을 물렀다.

“머리가 핑크색이면 복숭아 같다며. 그럼 머리카락이 복숭아 껍질이고, 껍질을 벗기면 난 머리카락이 벗겨질 테니까…… 대머리네.”

당연히 놀리는 거였지만, 제법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자 휘건이 아리송하단 얼굴을 했다. 역시 장난치는 재미가 있단 말이야.

“그건 좀 싫다……. 미안.”

강문이 진심으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손바닥으로 정수리를 소중하게 감싸 덮었다.

“한번 벗기게 해주려고 했는데, 아쉽네.”

내 머리 소중해.

입술을 삐죽거리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강문의 모습에 휘건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너, 진짜…….”

“뻔뻔하고 귀엽다고? 알아.”

강문의 손이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와 턱 밑으로 다시 꽃받침을 만들었다. 이번엔 손가락까지 꼼지락거리며 윙크하니 휘건이 또 한쪽 눈썹을 찡긋거리며 웃었다.

“머리카락 말고 다른 건?”

한참을 웃다 다시 자세를 고쳐 앉으려는데, 휘건이 옆에서 나지막하게 물어 왔다. 참 별거 없이 담백한 문장인데, 이상하게 발끝이 저릴 정도로 야했다.

그 속에 잘 숨겨진 의미 때문도 있겠지만, 아마 저 타고난 목소리 탓도 있겠지.

“음……. 내킬 때, 봐서.”

“안 된다고는 안 하네.”

“누구 닮아서 나도 빈말은 못 하거든.”

강문이 안전벨트를 고쳐 매고 옆으로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휘건은 그런 강문의 입술을 한참이나 말없이 쳐다보다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를 열심히 눌러 참고 있는 듯 턱뼈가 툭 불거져 있었다.

“호재 깨워서 내려.”

“얘는 진짜 머리만 대면 자네, 신기하게.”

도착한 헤어샵은 평소 다니던 미용실과는 차원이 달랐다. 커다란 건물 하나를 전부 사용하고 있었고, 거기서도 가장 꼭대기인 4층으로 안내받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다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자연스럽게 행동했지만 속으로는 황송하기 그지없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4층에 도착한 멤버들은 두세 명씩 나누어 나란히 앉았다. 한쪽에는 강문과 휘건과 시찬이, 맞은편에는 호재와 차율이 미용 가운을 두르고 자리했다.

거울 너머로 예한이 헤어 디자이너와 함께 컬러 차트를 보며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분명 대표도 함께 온다고 들었는데, 중간에 일이 생긴 모양인지 혼자였다.

“넌 염색 안 해도 되겠네?”

“그러게.”

휘건은 블랙이라고 했으니 세팅하기 쉽게 커트 정도만 하겠지. 붉은 머리나 흑발이 가장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하던 차였는데, 역시 탁월한 안목이었다.

파스텔 키워드에서 블랙이 어떻게 나온 건지는 좀 의문이기는 하지만.

“근데 나 탈색 한 번도 안 해봤는데.”

강문이 밋밋한 자연 갈색인 제 머리를 손끝으로 살짝 건드렸다. 실제로 강문은 남들 다 해본다는 염색도 해본 적 없었다. 안 어울린다는 생각도 있었고, 뿌리가 자라면서 머리카락에 경계가 생기는 게 싫어서이기도 했다.

친구들 중에는 매번 자라는 뿌리를 염색해가면서 관리하는 부지런한 이들도 있었지만 보는 자신이 더 귀찮았다. 살기도 팍팍해 죽겠는데, 머리카락 뚜껑까지 신경 써야 하나. 그리고 염색으로 빗자루처럼 푸석푸석해지는 것도 좀 별로고.

“머리카락 다 녹으면 어떡하지? 진짜 대머리 되면 어떡해?”

탈색할 때 두피가 타는 것처럼 따갑다고 하던데. 탈색을 너무 과하게 해서 머리카락이 다 녹아 미끈거리고 끊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남들이 듣기엔 쓸데없는 걱정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그는 제법 진지했다. 머리카락은 소중하니까.

“그럼 가발 쓰고 다녀야 하나? 그러다 무대에서 벗겨지면 망하는 거 아니야?”

강문의 눈썹이 걱정을 매달고 아래로 툭 떨어졌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휘건이 못 살겠다는 듯 한숨 섞인 웃음을 터트렸다.

“미치겠다, 진짜.”

뭘 또 그렇게 사랑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는 건지. 괜히 목덜미가 슬슬 간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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