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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31화 (31/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31화

안쪽에 있는 피팅룸으로 안내받아 들어가니 옷걸이에 각자의 이름이 적힌 옷들이 차례로 걸려 있었다. 흰색과 푸른색이 섞인 의상은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였다.

강문은 자연스레 제 이름보다 휘건의 이름을 먼저 찾았다. 잘 어울릴만한 의상인지 살펴보려는데, 뒤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와 옷걸이를 낚아챘다.

“내 옷은 왜 쳐다봐? 자, 네 거.”

“아…… 응. 고마워.”

휘건이 내민 다른 옷걸이를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하긴, 어차피 바로 입어볼 건데, 갈아입고 난 뒤에 봐도 되겠지. 코로 숨을 한번 내쉬고는 제 손에 들린 옷을 훑어보았다.

“……반바지?”

어쩐지 천이 좀 짧다 싶더라니, 양쪽에 파란 줄이 그어진 하얀 반바지에 네이비 블루 상의였다. 상의 카라는 또 어찌나 큰지, 움직이는 대로 펄럭거릴 것처럼 생겼다. 그래도 가운데에 달린 머플러만큼은 평범한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이것 또한 일반적인 것들보다 넓고 길었다.

그러니까, 의상이 지나치게 귀여웠다.

“야, 난 옷이 왜…… 헉.”

불만을 토로하려 고개를 돌리자 시야에 휘건의 너른 등판이 가득 찼다. 옷에 가려진 실루엣을 보며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휘건의 몸은 역시 보기만 해도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마주했을 때는 더더욱.

“옷이 왜?”

상의를 벗은 채로 의상 단추를 풀고 있던 휘건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돌아보았다. 좀 마르기는 했지만, 적당히 보기 좋게 자리 잡은 근육들에 강문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점점 얼굴에서 밑으로 내려갔다.

숨만 쉬어도 근육이 붙는 체질이 있다고들 하던데, 아마 휘건이 그런 체질을 타고난 건 아닐까. 아침부터 뭘 하지도 않았을 텐데 단단히 화가 나 있는 가슴 근육에 저도 모르게 눈동자가 바삐 굴렀다.

그냥 벗겨서 활동하면 안 되나? 이렇게 보기 좋은걸.

아주 잠깐동안 청량이 아니라 섹시 컨셉으로 갔어야 했는지 후회했다. 후속곡은 조금 노출이 있는 쪽으로 기획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방송 규정상 양쪽이 다 노출되면 안 되니까 한쪽은 가리고…….

“왜? 뭐?”

“어?”

채근하는 휘건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침을 꼴깍 삼켰다. 너무 뚫어지게 본 건 아닌지 눈치를 살폈지만, 의외로 휘건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말로 칭찬하는 건 얼굴이 새빨개져서 도망갈 정도로 못 견디는 주제에, 이렇게 대놓고 쳐다보는 건 또 괜찮은 게 웃겨 작게 키득키득 웃다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아니, 나는 왜 반바지야? 이 카라랑 머플러는 또 뭐냐고.”

“저기 이시찬도 반바지 입었네.”

휘건이 뭘 그런 걸로 유난이냐는 표정을 지으며 턱짓으로 시찬을 가리켰다. 시찬은 일찍이 옷을 다 갈아입고 차율에게 깐족거리며 참견하고 있었다.

“시찬이는 막내고 귀엽잖아. 근데 난 좀 아니지 않아?”

투덜거리는 강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휘건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었다. 강문의 입에서 나온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썹이 올라갔다.

딱 자신이 헛소리를 할 때 나오는 표정이라, 그 반응 때문에 더 어리둥절해졌다.

“일단 입어보고 얘기하지 그래?”

하긴, 여기서 옷만 부여잡고 구시렁거려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차라리 일단 입어서 어울리지 않는 걸 눈으로 직접 보여주는 편이 더 낫겠다. 수정 요청은 그다음에 해도 되니까.

“하아아…….”

한숨을 길게 내쉰 강문이 느릿느릿 피팅룸 구석으로 향했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훌렁훌렁 옷을 벗어 던지는데, 역시 그건 아직 좀 쑥스러워서였다.

“이게 뭔 꼴이야, 진짜.”

꾸물거리며 옷을 갈아입은 강문이 벽면 한쪽에 마련된 전신거울 앞에 섰다. 아무리 생각해도 과하게 귀여운 복장이 자신, 아니 주인공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옷이 이상하다기보다는, 본인이 생각하고 있던 스스로의 이미지와 차이가 너무 컸다. 나름 그룹의 리더이자 맏형이니 좀 더 차분하고 단정한 분위기가 더 어울릴 거라 생각했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리던 주인공의 캐릭터도 그렇고.

그런데 이런 귀여운 옷이라니. 키라도 좀 작았으면 모를까, 아무래도 맞지 않는 컨셉이 온 것 같았다.

“형, 왜? 그거 묶어줘?”

가슴께에 달린 넓은 끈을 쥐고 이것까지 묶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시찬이 다가왔다. 시찬은 조금 전에 봤던 것처럼 하얀 반바지에 무릎 아래로 오는 니삭스까지 신고 있었다. 동글동글 귀염상이라 그런지 역시 시찬에겐 제법 잘 어울렸다.

“이상하지 않아? 나도 호재처럼 단정한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엥? 아니?”

집중해서 매듭을 묶어주던 시찬이 진심으로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박하는 목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다른 멤버들의 시선까지 전부 한 데 꽂혔다.

“형. 봐봐.”

강문이 무어라 말릴 새도 없이 시찬이 양쪽 어깨를 쥐고는 거울을 똑바로 마주 보도록 세웠다. 강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거울 속의 자신과 멀뚱히 눈을 마주쳤다.

“얼굴 작지, 피부 하얗지, 눈 크지, 속눈썹 길지, 입술 통통하고 뭐 안 발라도 빨갛지, 예쁘지…….”

“뭐 하는 거야?”

“형이 괜히 센터인 줄 알아? 이상하게 맨날 휘건이 형만 잘난 줄 아는데, 형은 자기 객관화를 좀 할 필요가 있어.”

알 수 없는 말을 줄줄 늘어놓는 시찬에 강문의 미간이 점점 좁아졌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어어. 반바지랑 리본이 존나 잘 어울린다는 말.”

시찬이 거울 속의 강문을 바라보며 씨익 시원하게 웃고는 양손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아주 찰떡이야. 딱 형을 위한 옷.”

“나 놀리는 거지?”

“진심이거든? 떡볶이도 걸 수 있어.”

아무래도 의심스러워 눈을 가늘게 뜨다 떡볶이라는 말에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라면과 떡볶이는 시찬의 소울푸드나 마찬가지인데, 장난 한번 치자고 저렇게 쉽게 걸 것 같지는 않아서였다.

“아닌 것 같은데…….”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다시 거울 속 제 모습을 살핀 강문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움직일 때마다 가슴 한가운데 달린 머플러의 넓은 끈이 달랑거렸다.

키는 훤칠한 주제에 다리털도 하나 없이 매끈하기만 한 피부는 아무리 봐도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생활 자체는 익숙해졌다고 해도 남의 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뽀얗다 못해 핑크빛까지 도는 무릎에 시선이 닿자 이런 신체적 특징이 자신을 유약해보이게 하지는 않을지 사뭇 걱정되었다. 현실 세계의 자신도 피부가 남들보다 흰 편에 속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다 갈아입었으면 나와!”

대표의 외침을 듣고 밖으로 나가자 조금 전까지 대표가 앉아 있었던 소파 앞 테이블 위에 온갖 소품들이 와르르 늘어져 있는 게 보였다.

모자부터 안경, 브로치, 팔찌까지 다양한 소품과 장신구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뒤로 기다란 리본이 달린 흰색 베레모였다.

……저것만큼은 정말 쓰고 싶지 않다. 커다란 장식은 상의에 달린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역시 내 감은 틀리지 않는다니까. 다들 예쁘게 잘 어울리네.”

멤버들의 모습이 퍽 마음에 든 모양인지, 예한이 두 손을 모아 쥐고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율이는 좀 더 오버 핏으로 가는 게 낫지 않나?”

“그럼 균형이 안 맞아 보여서 지금이 딱 좋아. 모르면 좀 빠질래?”

“아하하. 네, 네.”

쏘아붙이는 예한에 대표가 낄낄거리며 두 손을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예한은 테이블 위에 두었던 소품들을 하나씩 멤버들에게 가져다 대며 어울리는 것을 찾는 데 집중했다.

“저, 대표님. 궁금한 게 있는데.”

자신의 옷깃에 이것저것 붙여보느라 바쁜 예한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호재가 대표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대표는 편하게 얘기하라는 듯 작게 고갯짓을 했다.

“그럼 이분이 저희 스타일리스트가 되시는 건가요?”

“흐음. 그럴까? 안 그래도 요즘 심심했는데.”

대표가 대답하기도 전에 예한이 말을 가로채며 시원하게 웃었다. 질문의 답이 다른 곳에서 나온 게 퍽 당황스러운 듯 호재가 눈동자를 느릿느릿 굴렸다.

“여긴 어쩌고?”

“밑에 애들 있잖아. 어차피 난 자주 나오지도 않아.”

“나 월급 많이 줄 자신 없는데.”

“그래? 그건 좀 곤란한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하나도 곤란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돈 정도는 충분하다는 여유로움이 얼굴에 묻어났다.

결국 실없는 농담으로 끝나버린 두 사람의 대화에 작은 웃음이 퍼졌다. 저 웃음이 정말로 웃겨서인지, 사회생활의 일종인지는 당사자들만 알겠지.

“……어?”

그리고 그 순간, 강문의 머릿속에서 최예한이라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이름이 빙글빙글 돌다 마지막 남은 퍼즐 조각처럼 제자리를 찾아갔다. 왜 자꾸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지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이제야 희미하게 기억났다.

최예한은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스타일리스트 중 가장 높은 능력치를 가진 조력자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영입해야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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