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27화
안무 연습에 집중한 일주일 동안은 정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다. 일정이 바뀌어 녹음까지 틈틈이 해치워야 하는 통에 밥 먹을 시간도 부족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녹음실 역시 같은 건물에 있어 여기저기 오가는 시간은 줄일 수 있다는 거였다.
먹는 걸 그리 좋아하던 시찬도 먹고 바로 몸을 움직이면 속이 안 좋다는 이유로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호재는 그러다 속만 더 버린다며 단백질 음료를 쥐여 주곤 했다.
다들 기진맥진한 채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강문은 그저 휘건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녹음실에서의 휘건은 프로듀서보다 더 예민하게 굴었다. 다들 괜찮다고, 충분하다고 하는데도 만족하지 못하며 남들보다 두 배의 시간을 더 썼다.
강문은 휘건의 이런 프로페셔널한 모습에 또 한 번 반했다. 역시 예민한 얼굴은 이렇게 가끔 얼굴값을 해줘야 더 짜릿한 법이다. 물론 프로듀서는 휘건이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한다며 피곤해 했지만.
“흐어…… 명이 다할 것 같소.”
뮤직비디오 촬영 전 마지막 연습 날, 10분 남짓한 쉬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 서 있던 그 자리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운 차율이 우는소리를 했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느라 배가 볼록하게 솟았다가 다시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안 죽어.”
공기를 가득 머금고 빵빵해진 배를 옆에 앉은 호재가 퉁퉁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차율이 제 배 위로 올라온 손을 툭 밀어 치웠지만 이번엔 두 손이 올라와 배로 드럼을 쳤다.
“그렇게 두드리는 게 좋으면 가서 밴드나 하지 아이돌은 왜 하냐?”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차율의 말에 호재가 짐짓 상처받은 표정으로 제 가슴께를 부여잡았다. 차율은 쟤가 왜 저러냐는 듯 얼굴만 비스듬히 들어 보였다.
“난 그냥 널 놀리는 게 좋은 거거든?”
“에라이.”
낄낄 웃는 호재를 차율이 몸을 옆으로 돌려 걷어찼다. 제법 크게 퍽 소리가 났는데 아프지도 않은지 호재는 그저 웃기 바빴다. 한국말 많이 늘었네, 하는 소리에 차율이 진절머리를 치며 소리 질렀다.
거울에 비친 두 사람을 지켜보던 강문이 기지개를 쭈욱 펴고는 조금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는 휘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휘건은 작게 구멍이 난 양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눈에서 나온 레이저로 구멍을 다시 메워버릴 기세였다.
“그러고 있으면 양말이 다시 붙냐?”
“그건 아닌데, 왜 몰랐나 싶어서.”
분명 신을 땐 멀쩡했는데, 하는 중얼거림이 먹먹하게 흩어졌다. 입술은 삐죽 튀어나와 가지고는, 별거 아닌 일에 투덜거리는 게 퍽 우습고 귀여웠다. 고작 양말에 구멍 좀 난 게 뭐라고.
“그만큼 열심히 연습했다는 거지, 뭐. 그나저나 우리 이 부분 할 때 있잖아.”
“어디?”
슬쩍 시선을 옮겨온 휘건을 향해 강문이 앉은 채로 상체만 움직였다. 휘건이 센터에서 원샷을 받기 좋은 파트였다.
“이때 카메라 보면서 한쪽 눈썹 찡긋. 이렇게. 꼭 해, 알겠지?”
강문이 턱을 든 채 눈을 살짝 내리뜨고 한쪽 눈썹을 까딱거렸다. 너도 해보라는 듯 손짓하자 휘건이 쭈뼛쭈뼛 자세를 잡았다.
“어…… 이렇게?”
“대박……. 거기서 살짝 웃어봐. 너무 활짝은 말고 입꼬리만 씨익.”
주문대로 휘건의 오른쪽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그래도 약간의 어색함은 묻어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작정하고 다 홀리겠다는 위험한 얼굴에 저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팬이 아닌 사람들도 휴대폰에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을 만한 그런 얼굴. 팬아저의 대명사.
“벌써 보정만 다른 짤 오천만 장 나왔다…….”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박수를 두어 번 짝짝 치고 양손 엄지를 척 들어 올리자 쑥스러운 듯 휘건이 시선을 돌리며 입술을 우물거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온 세상 사람들 다 홀려버릴 기세였던 주제에, 귀엽기 짝이 없었다.
“너무 끼 부리는 것 같아서 좀 부끄러운데…….”
“무슨 소리야? 우리가 끼를 안 부리면 누가 부려? 그리고 앞으로 온갖 종류의 하트란 하트는 다 하게 될 텐데, 뭘 이 정도 가지고.”
“하트?”
“자, 봐봐.”
멀뚱히 눈만 깜빡이는 휘건을 향해 강문이 손가락으로 작은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손가락 하트를 시작으로 풍선 하트, 깨물 하트, 화살 하트, 대포 하트 등 무궁무진한 하트가 쏟아졌다. 각각의 하트와 어울리는 깜찍한 표정은 덤이었다.
조금 놀란 듯 슬쩍 몸을 뒤로 물렸던 휘건은 어느새 강문의 하트 퍼레이드에 홀린 듯 집중했다. 강문은 부끄럽지도 않은지 이 세상의 모든 하트를 다 끄집어낼 기세였다.
“이야압……!”
마지막으로 온 우주의 기운을 끌어올려 머리 위로 큰 하트까지 완성시키자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어찌나 웃겼는지 휘건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다른 한 손으로 바닥을 팡팡 내리쳤다.
“그게 , 큽, 그게 뭐야…….”
“어어? 진짜 이런 거 막 시킨다니까? 안 시켜도 우린 최대한 예쁘게 다 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문이 웃느라 찔끔 새어 나온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쳤다.
“무조건 팬들 귀한 줄 알아야 해. 그걸 잊는 순간 다 끝나는 거야.”
아이돌이 뿜어내는 빛은 곧 팬들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물론 데뷔 초에는 다 그 마음을 가슴에 품고 있겠지만, 점점 인기가 많아질수록 그게 다 자신이 잘나서 그런 줄 착각하는 이들도 꽤 많다.
“나중에 인기 많아지면 팬들이 생일 광고도 크게 걸어줄 텐데, 다는 못 가보더라도 최대한 인증샷 많이 찍어 줘.”
강문은 휘건과 다른 멤버들은 절대 그러지 말았으면 했다. 늘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그들에게 부끄러울 만한 행동은 하지 않기를.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고, 말과 행동으로 돌려주기를 바랐다.
“SNS는 가끔 셀카 올려 주는 용도로만 쓰고, 괜히 친목질 하거나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그리고 활발하게 소통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티스트와 팬은 적절한 거리감이 있을 때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동행할 수 있다. 너무 다 감출 필요도 없지만 너무 다 드러낼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요즘은 1:1처럼 보이는 구독 채팅 서비스 같은 것도 있던데, 차라리 그런 걸로 소통하는 편이 더 좋다.
“팬 사인회도 하고 콘서트도 하겠지? 다들 반짝반짝한 눈으로 너만 바라볼 텐데, 참 예쁠 거야.”
반짝이는 응원봉으로 가득 채워진 객석과, 공연장의 커다란 무대 위에 나란히 선 다섯 사람. 상상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벅차올라 호흡이 가빠졌다.
그때가 오면, 휘건은 어떤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볼까. 감히 단언하건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리라.
“눈에 잘 새겨두고 절대 잊지 마. 그게 다 모여서 널 만드는 거니까.”
말을 끝마친 강문이 후우 하고 숨을 크게 내뱉고는 후련한 듯 씨익 웃었다. 물론 다들 심성이 착하니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래도 한 번 짚고 넘어간다고 해서 손해 볼 건 아니니까.
“왜…….”
가만히 듣고 있던 휘건이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말문을 열었다. 강문은 이어질 말을 기다리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왜 거기에 너는 없을 것처럼 얘기해?”
휘건의 입에서 나온 문장이 화살처럼 콕 박혀 들어왔다. 그런 날이 오면, 그때도 자신이 이들과 함께 있을까 하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생각이 은연중에 드러난 모양이었다.
“어…… 내가 그랬나? 아하하.”
“자! 다 쉬었지? 일어나, 일어나.”
강문이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가볍게 웃는 것과 동시에 시영이 다시 연습 시작을 알렸다. 멀찍이 대자로 뻗어 있던 시찬이 데굴데굴 굴러와 시영의 종아리를 끌어안았다.
“아아아. 형, 진짜 딱 5분만 더 쉬면 안 돼여? 아니, 1분만!”
“뭐? 시찬이는 남아서 15분 더 하고 싶다고?”
“헐. 아니여. 저 완전 준비 됐어여.”
질척거리는 것을 멈춘 시찬이 후다닥 일어나 한쪽 팔을 척 들어 올렸다. 그런 시찬이 귀여웠는지 시영이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가볍게 헝클어트리며 쓰다듬었다.
“내일이 촬영 날이니까 딱 다섯 번만 더 맞춰 보고 끝내자. 대신 틀릴 때마다 한 번씩 늘어날 거야. 정신 똑바로들 차려.”
시찬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제 자리로 쪼르르 뛰어갔다. 어느새 일어난 차율과 호재 역시 자리를 찾아섰다.
강문도 다시 연습할 준비를 하려는데, 자리를 옮기던 휘건이 일부러 강문에게 가까이 다가와 붙으며 귓가에 무어라 속삭였다.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
“……뭐?”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고 홀연히 돌아가는 휘건의 뒷모습을 강문이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곧 연습이 다시 시작되고 난 후에도 머릿속에 물음표가 백만 개쯤 떠다녔다. 도망가지 말라는 게 주인공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저에게 하는 말인지 이상하게 헷갈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