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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24화 (24/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24화

“대표님이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벗겨서 핥아먹을 듯한 시선에 서둘러 다른 말을 꺼내며 화제를 돌렸다. 여전히 거울 너머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해졌다.

얼렁뚱땅 꺼낸 말이기는 했지만 대표가 어디서 저렇게 자기랑 비슷한 사람을 데려왔는지 궁금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쪽 세계관은 잘 모르지만, 안무 영상을 봤을 때 실력은 꽤 수준급인 것 같았다.

“대표님? 아아.”

시영이 어디부터 말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듯 눈을 한 바퀴 크게 돌렸다. 이내 동그란 눈동자가 다시 제자리를 찾고는 씨익 눈꼬리를 접었다.

“비밀이야.”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비밀씩이나 되는지. 멤버들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었다. 그 반응이 재밌는 모양인지 시영이 아이구, 하며 낄낄 웃었다.

“자! 그럼 처음부터 천천히 한번 해 볼까?”

손뼉을 크게 짝 마주친 시영이 목을 가볍게 돌리며 거울 앞에 섰다. 자유롭게 풀어져 있던 멤버들 역시 시영을 따라 다시 자세를 고쳐 잡았다.

뚫어져라 박혀 있던 휘건의 시선이 그제야 슬며시 떨어져 나갔다. 느릿한 호령 소리와 함께 안무 연습실의 공기가 다시금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원, 투, 쓰리, 짚고! 턴, 뻗고!”

안무 연습은 생각보다 더 순조로웠다. 그동안 연습생 생활을 허투루 한 건 아닌지 다들 조금 버벅대다가도 금세 잘 따라갔고, 강문 역시 주인공의 몸에 밴 기억 덕을 톡톡히 봤다.

더위를 잘 타지 않는 것도 정도가 있지, 주인공의 몸은 꽤 특이했다. 땀이 줄줄 흐르는 대신 몸이 조금 끈적하고 뜨거워지는 게 전부였다. 보통 땀이 식으면서 체온도 떨어지는 원리라,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운동 열심히 해야 되겠네…….”

거울 속에 비친 발갛게 익은 얼굴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자칫 잘못하면 무대에서 쓰러지기 딱 좋은 조건이니, 미리 철저히 체력 관리를 해 두는 편이 좋겠다.

“노래 맞춰서 한 번만 더 해보고 끝내자.”

“쌤 1분만 쉬어여…….”

“1분 쉬고 10분 더 할래, 바로 하고 끝낼래?”

“와…….”

누가 봐도 답이 확실히 정해져 있는 질문에 시찬이 입술을 삐죽이더니, 뭐라고 작게 꿍얼거리며 얼른 시작하라는 듯 손짓했다. 뒤에서 보고 있던 차율이 호재와 마주 보고 낄낄 웃었다.

마지막 점검까지 끝내고 나니 어느새 해가 넘어갈 때가 되었다. 일단 전체 안무 숙지 후 내일부터 동선과 디테일을 잡겠다는 말과 함께 첫 연습이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했어, 다들.”

시간이 촉박한 만큼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진도를 쭉 나가서인지 기진맥진한 멤버들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차율은 아예 대자로 벌러덩 누워버렸다.

“남아서 연습 더 할 거지? 내일까지 다 외워서 와야 해.”

“저희도 밥은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

차율이 바닥에 누운 채로 얼굴만 살짝 들며 반박했다. 어느새 8시를 훌쩍 넘겼으니, 저녁 먹을 타이밍을 놓쳐 배가 고플 만했다. 강문 역시 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국인은 밥을 먹어야 하오!”

“뭐래, 독일인이…….”

“이중 국적이라니까? 차별 반대! 관아에 고할 것이오!”

“걘얘에 고핼걔시오~”

허공에 발길질을 하며 투닥거리는 시찬과 차율의 모습에 시영이 아하하 웃어 보였다. 뭘 하든 다 외워만 오라며 떠나는 시영의 뒷모습에 대고 호재가 꾸벅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난 찝찝해서 일단 좀 씻어야겠어.”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있던 휘건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그러자 밥보다 씻는 것을 택한 휘건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시찬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었다.

“어차피 또 땀 흘릴 건데?”

“넌 어차피 또 배고플 거 밥은 왜 먹냐?”

“그거랑…… 같나?”

시찬의 고개가 이번엔 반대쪽으로 기울었다. 심각하게 고민하는 눈썹에 휘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피식 웃었다.

어쩜, 땀에 젖어있는 모습도 참 근사해 강문이 입맛을 쩝 다셨다.

“숙소 가서 씻고 대충 챙겨 먹을 테니까 너네끼리 가서 먹어.”

“형 혼자 밥 안 먹잖아.”

그러고 보니 휘건은 혼자서는 절대 밥을 안 먹는다고 했었다. 밖에서 혼자 식사를 못 하는 사람은 꽤 봤는데, 집에서까지 그러는 사람은 솔직히 처음이었다.

특히 휘건은 요리를 잘하는 편이라 더 이해가 잘 안 됐다. 귀찮아서 그런 거라면 대충 배달 음식이라도 시켜 먹을 법 한데, 그것마저 싫은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지 궁금했다.

“왜 혼자야? 얘 있는데.”

휘건이 오른쪽 검지를 들어 당연하다는 듯 강문을 리켰다. 그러자 손을 등 뒤로 짚은 채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있던 강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어…… 나?”

그 의문 섞인 대답에 휘건은 그저 눈썹을 한번 까딱이고는 끄덕끄덕했다. 이번에도 저 혼자 결정을 내린 이의 당당한 눈동자가 강문을 응시했다.

잔말 말고 원하는 대답을 내놓으라는 듯 씨익 웃는데, 정말이지 당해낼 수가 없었다. 박휘건은 자기 행동이 꽤 치명적일 정도로 귀엽다는 걸 알기는 할까.

“어어, 맞아. 응. 같이 먹어야지, 밥.”

강문이 한쪽 눈을 찡그리고 샐쭉 웃으며 휘건이 원하는 대답을 툭 던졌다.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눈빛이 오고 갔지만, 사이에 있던 시찬은 허기에 눈이 팔려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그래, 그럼. 형, 우리 떡볶이 먹자!”

옆으로 데굴 굴러 호재에게 간 시찬이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분식 지겹지도 않냐?”

“맛만 좋은데?”

타박하는 호재를 향해 시찬이 어깨를 으쓱였다.

허, 하는 바람 빠진 웃음소리와 함께 호재의 손이 시찬의 머리에 얹어졌다. 호재는 평균보다 손이 큰 편이고, 시찬은 얼굴이 작아서, 거의 손에 잡아먹히는 것처럼 보였다.

“운동할 거라더니 아주 고삐가 풀렸어.”

시찬은 저도 같이 운동을 하겠다 선언한 뒤로 그렇게 좋아하는 라면이든 뭐든 대놓고 열심히 먹어댔다. 저래도 되나 싶어 걱정하는 멤버들에게 강문은 어차피 돌아서면 배고플 나이니 그냥 놔두라고 했었다.

그리고 어차피 데뷔 후 스케줄을 돌다 보면 먹고 잘 시간도 부족해 살이 붙을 틈이 없을 것이다. 물론 그것도 잘 풀렸을 때의 이야기지만.

“일단 가자. 떡볶이든 뭐든 배고파서 뒤…… 아니, 아사할 것 같소.”

호재와 시찬에게 손짓하며 일어서던 차율이 말을 하다 멈칫하더니 단어를 바꿨다. 가만히 쳐다보던 호재가 잘했다는 듯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강문이 멤버들을 앉혀 놓고 얘기했던 날부터 다들 저렇게 서툴지만 습관을 바꾸려 열심히 노력했다. 사소한 부분이 긴가민가할 때는 강문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시찬은 자기가 국어책에 나오는 철수가 된 것 같다고 투덜거리곤 했지만, 그래도 꽤 성실하게 바른말을 고수했다. 가끔 같은 반 애들이 놀린다고 시무룩해 하는 걸 보면, 학교에서도 착실히 언어 습관을 고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열을 냈으니 시원한 게 당기지 않는가?”

“시원하고 얼큰한 떡볶이 어때?”

“Nein1)……. 지겹소.”

“이상하네. 외국인들 떡볶이에 환장하던데.”

“그러니까 이중국적…… 하.”

이젠 반박하는 것도 피곤한지 차율이 말을 하다 말고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낄낄거리는 시찬을 보니 분명 일부러 저러는 거다. 반응이 재밌어서 자꾸 놀리는 것도 모르는 게 퍽 귀여웠다.

세 사람이 저녁 메뉴를 두고 옥신각신하며 연습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형들 사이가 좋아져서 다행이라는 소리가 작게 들린 것도 같아 강문이 참지 못하고 풉 웃었다.

복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까지 전부 사라지고 나서야 주위가 조용해졌다. 끄응차 소리를 내며 일어선 강문이 구겨진 옷을 가볍게 털었다.

“나한테 뭐 할 말 있어?”

“……아니? 왜?”

멀뚱멀뚱 눈을 깜빡이며 묻자 휘건이 오히려 저가 더 궁금하다는 듯 멍청한 얼굴을 했다. 희멀건 얼굴에 ‘왜 저런 질문을 하지’라는 궁금증이 그대로 드러나 웃음이 나왔다.

“아니, 아까부터 너무 쳐다 보길래 혹시 할 말 있나 해서. 나 이마에 구멍 뚫리는 줄 알았잖아.”

눈을 가늘게 뜨고 낄낄 웃었다. 연습하는 내내 거울 속의 휘건과 눈을 몇 번이나 마주쳤는지 모른다. 그쪽에 시선이 갈 때마다 눈을 마주친 걸 보면 그냥 처음부터 쭉 저만 쳐다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 정도였다.

“아…….”

농담 삼아 가볍게 던진 말이었는데, 휘건은 어쩐지 생각보다 더 당황한 눈치였다. 하얀 얼굴이 점점 분홍으로 물들었다. 앙다문 입술 안쪽을 꾹꾹 씹는 게, 영락없이 부끄러워 죽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뭐야…… 몰랐어?”

슬쩍 강문의 눈치를 본 휘건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는지 도리어 놀란 강문의 눈이 동그래졌다.

“……눈을 그렇게 마주쳤는데?”

“거울이니까…… 착각인 줄 알았지.”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점점 더 기어 들어갔다. 휘건의 대답에 멍청하게 벌어졌던 강문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래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봤구나. 내가 모를 줄 알고. 휘건에겐 미안하지만, 너무 어이가 없고 귀여워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만하라는 작은 목소리가 웃음에 더욱 불을 지폈다.

결국 바닥에 주저앉은 강문이 찔끔 새어 나온 눈물을 손가락으로 찍어 눌렀다. 어느새 휘건은 얼굴뿐만 아니라 목까지 새빨개져 있었다.

1)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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