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22화 (22/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22화

얌전히 숙소로 돌아온 두 사람의 주위를 차율과 시찬이 뱅뱅 돌며 어디에 다녀왔냐고 캐물었지만, 얘기 좀 하고 왔다는 말 외에는 더 듣지 못했다.

“무슨 얘기 했소? 왜 나에게는 언질이 없소?”

“아, 진짜. 시끄러워 죽겠네.”

시찬은 이미 관심을 껐는데, 차율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러 가는 휘건의 뒤를 집요하게 쫓으며 괴롭혀 댔다. 종알거리는 차율이 시끄러운 듯 휘건이 미간을 찌푸리며 한쪽 귀를 막았다.

“수상해, 수상해. 둘이 연애하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휘건이 입에 머금고 있던 물이 차율의 얼굴에 뿜어졌다.

“아악! 무슨 짓이오!”

순식간에 물을 뒤집어쓴 차율이 뒤로 물러서며 머리를 털었다. 축축하게 젖은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휘건은 물병을 든 채로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기침을 해댔다.

“그러게 누가 쓸데없는 말하래?”

“아니, 농담도 못해?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지 않소!”

소파에 앉아서 보고 있던 호재가 혀를 끌끌 차며 차율을 탓했다. 휘건이 뿜은 물을 얼굴에 맞은 것도 서러운데, 호재까지 제 탓을 하니 차율의 얼굴에 억울함이 가득 차올랐다.

강문은 씩씩거리는 차율 뒤에서 여전히 손으로 입을 막고 기침하고 있는 휘건을 조용히 살폈다.

조금 전에 둘만 있을 때는 그렇게 당당하게 굴더니, 고작 저런 농담에 동요하는 모습이 귀여워 눈물이 다 났다. 만약 진짜 사귀게 된다면, 그때도 저렇게 표정 관리가 안 될까? 궁금해 미칠 지경이라 중간 과정은 다 빨리 감기로 건너뛰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차피 우리 데뷔하면 팬들이 알아서 휘건이 형이랑 문이 형 엮을걸?”

“그건 그래.”

식탁 의자에 걸려 있던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차율이 작게 투덜거리자 시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돌 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가 있었지. 엮는다는 단어에 잊고 있던 게 불현듯 떠올랐다. 휘건과 자신은 어떤 커플링으로 불리게 될까. 아무래도 외모로만 따져 보면 휘건이 왼쪽이겠지. 그치만 아주 극 마이너를 파는 소수의 팬들은 휘건을 오른쪽으로 밀지도 모른다. 아마 대충 ‘휘문’ 정도로 불리려나.

“그럼 난 호재 형이랑 붙어야지.”

소파 아래에 기대앉아 있던 시찬이 제 옆에 삐죽 내려와 있는 호재의 종아리를 끌어안으며 히히 웃었다. 호재가 기분 나쁘다며 다리를 흔들어도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이이잉, 하는 이상한 소리에 결국 호재의 입에서 어이없으면서도 귀엽다는 듯 헛웃음이 터졌다. 이내 호재의 커다란 손바닥이 시찬의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듯 쓰다듬었다.

“……뭐지? 갑자기 찾아온 이 외로움?”

부엌과 거실 사이에 애매하게 우뚝 서서 두 사람이 하는 양을 지켜보던 차율이 한층 더 서러워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강문이 뚱하니 입술을 삐죽 뺀 차율을 조금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멤버가 홀수면 이게 문제다.

보통 회사에서도 팬 서비스 차원에서 은근히 둘씩 엮어 활동시키는 경우가 잦은데, W.A.IN은 뭘 해도 꼭 한 명이 남을 것이다. 무대에서의 대열은 홀수가 더 보기 좋지만, 이런 면에서는 확실히 좀 아쉽기는 했다.

“율이는 존나 외로운 도토리 신세라오…… 율토리…….”

처량한 표정의 차율이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며 제 가슴을 토닥거리자 호재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와서 앉으라며 낄낄 웃었다. 그러자 흥, 하고 콧소리를 낸 차율이 일부러 발을 쿵쿵 구르며 소파로 가 앉았다.

강문이 다시 휘건에게로 시선을 돌리니 조금 전 차율이 얼굴을 닦았던 수건으로 바닥에 떨어진 물을 훔치고 있었다. 뭐라 짜증스레 중얼거리고 있는 것 같았는데, 강문의 위치에서는 움직이는 입술만 얼핏 보일 뿐 들리지는 않았다.

“도와줘?”

강문의 물음에 휘건이 눈만 슬쩍 치떠 보고는 다시 바닥으로 시선을 옮겼다.

“됐어.”

그리고는 휴지로 조금 남은 물기까지 말끔히 닦아내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빨래 바구니에 수건을 넣고 돌아온 휘건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부자연스럽게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리는 게 귀여워 괜히 놀리고 싶어졌다.

“얘들아.”

개인적인 감정은 잠깐 미뤄 두고, 다시 그룹의 일에 집중했다. 전부터 계속 당부해 두고 싶던 게 몇 가지 있었는데, 마침 한데 다 모여 있으니 지금이 딱이지 싶었다.

강문이 저에게 시선이 모이는 것을 느끼며 식탁 의자 등받이에 팔을 기대고 거꾸로 앉았다. 휘건 역시 옆자리 의자를 끌어 비슷한 자세로 자리했다.

“우리 이제 진짜 곧 데뷔하잖아.”

데뷔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참 설레었다. 어떻게 될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에서 피어나는 막연한 기대감이 멤버들을 감쌌다. 초롱초롱 빛을 내며 반짝이는 눈동자들이 예뻤다.

“그 전에 당부하고 싶은 게 좀 있는데.”

“뭔데?”

호재가 시찬에게 올라와 앉으라고 옆으로 몸을 조금 옮기며 물었다.

“일단 첫 번째. 욕설 금지.”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시찬이 뭐 그런 걸 걱정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물론 어린아이도 다 알 정도로 당연한 얘기지만,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

“우린 지금 평소 친구한테 말하듯 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어. 지금부터 말버릇을 고쳐 놓아야 나중에 현장에서 실수하는 일이 없을 거야.”

“아…… 하긴.”

사람은 누구나 긴장하면 평소에 하던 습관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놀라면 욕이 튀어나오는 사람은 똑같이 방송에서도 그럴 테고, 너무 좋을 때 욕을 하는 사람 역시 방송에서 저도 모르게 그럴 가능성이 컸다.

비속어라는 게 듣기에 상스러운 말들도 당연히 포함되겠지만, 평소 자연스럽게 쓰이는 말들도 조심해야 한다. 가령 ‘존나’라거나 ‘개’라든지 하는 것들.

“특히 율이. 말투는 뭐…… 좀 천천히 고쳐도 되지만 너무 과몰입하는 건 안 돼.”

“노력해 볼게……. 근데 쉽지는 않아.”

“또 묻는 말 외에는 대답하지 않기. 더 말하고 싶어도 딱 거기서 그만둬.”

“왜? 많이 하면 좋은 거 아니야?”

콕 집어서 얘기한 탓에 시무룩해 있던 차율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호재 역시 그 이유가 궁금한지 몸을 살짝 틀었다.

“우린 아직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익숙하지 않아. 긴장 때문에 자칫 잘못해서 말실수라도 하면, 평생 꼬리표로 따라다닐 거야.”

강문은 한 번의 말실수로 이미지를 나락까지 떨어트린 연예인을 숱하게 봐왔다. 그들 중 대부분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다 사고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가장 큰 상처를 받는 건 언제나 그들을 사랑하던 팬들이었다.

당연히 평소의 행동거지나 사상부터 잘 다듬어둬야 하겠지만, 그게 부족하면 적어도 티가 나지 않게 조심이라도 하자는 거다. 연예인으로서의 환상이 깨지는 순간 모든 게 돌이킬 수 없어질 테니까.

“신인의 귀여운 실수로 봐줄 수 있는 수준이라면 해프닝으로 끝나겠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강문이 말끝을 흐리며 소파에 나란히 앉은 세 사람을 주욱 훑었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세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끄덕였다. 그게 꼭 말 잘 듣는 유치원생 같아서 강문은 저도 모르게 픽 웃었다.

저렇게 덩치 큰 유치원생들이라니, 징그러울 만도 한데 마냥 귀여웠다.

“그리고 시찬이는 형이랑 같이 운동하자.”

갑자기 저를 향하는 말에 시찬이 질색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뭐? 싫…….”

“체중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야. 스케줄 소화하려면 우리 다 운동해야 돼.”

강문이 짐짓 단호한 표정으로 시찬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역시 땀 흘리는 건 딱 질색이라 평소에 숨쉬기 운동만 겨우 하는 타입이지만, 그래도 필요한 건 어쩔 수 없다.

“데뷔하고 인지도가 올라갈수록 스케줄도 점점 빡빡해질 텐데, 체력이 없으면 그거 절대 못 버텨.”

처음에야 방송 몇 개와 지방 스케줄이 전부라 버틸 수 있겠지만, 인기를 얻을수록 점점 힘에 부치게 될 것이다. 여기저기 아프고 고장 나기 전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일이 년 하고 그만둘 거 아니잖아? 자기 건강은 자기가 스스로 챙겨야 살아남을 수 있어. 뭐든 다 체력이 기본이 돼야 따라오는 거야.”

체력이 떨어지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그러면 태도가 성의 없어질 수밖에 없다. 태도 논란은 신인 아이돌에겐 치명적이다.

“……알겠어. 대신 혼자는 안 할 거야. 진짜 같이해 줘야 돼.”

마지못해 뚱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시찬의 등을 호재가 다독였다. 나도 도와줄게, 하는 낮은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역시 멤버 간 사이가 좋으니 보기에도 흐뭇해 또 할아버지 미소가 절로 나왔다.

“마지막으로…….”

사실 이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이야기지만 덧붙이면 좋을 것 같다. 가끔 이런 걸로도 주목받는 신인이 꼭 한 명씩은 있으니까.

“그럴듯하고 특이한 특기나 취미 하나쯤 준비해두면 좋을 거야.”

“왜?”

차율이 팔을 뻗어 기지개를 쭉 켜며 물었다. 강문은 이해를 돕기 위해 옆에 있는 휘건의 한쪽 어깨에 손을 척 올렸다. 휘건이 갑자기 닿아 온 손에 흠칫하며 고개를 돌려 강문을 바라보았다.

“율이 너. 얘 취미가 음악 감상이라고 하면 그냥 그렇구나 싶겠지?”

“어…… 그렇겠지?”

“근데 막 취미가 ‘마당에 있는 잡초 뽑기’ 이런 거 라고 생각해 봐. 궁금하지 않아?”

차율의 눈동자가 한 바퀴 데굴 굴렀다. 머릿속으로 여가 시간에 마당의 잡초를 열심히 뽑고 있는 휘건을 상상하는 모양이었다.

“와, 존…… 아니. 진짜 궁금하다. 형, 도대체 잡초를 왜 뽑는 것이오? 전생에 원수라도 졌소?”

“안 뽑거든?”

엉뚱하게 돌아오는 질문에 휘건의 눈썹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휘었다. 뭐 그런 걸 예로 드냐며 나무라는 눈빛이 강문에게 닿았다. 강문은 휘건을 마주 보며 그저 히히 웃었다.

밀짚모자를 쓰고, 흘러내린 땀으로 반짝이며 열심히 잡초를 뽑는 휘건이라니. 아무거나 막 던져 본 거지만, 그것도 나름 매력적일 것 같았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