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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7화 (7/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7화

“근데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해?"

“아니야, 아무것도.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어? 그래, 뭐…….”

차율의 눈썹이 미심쩍은 듯 올라갔지만 강문은 차율에게 괜찮다는 듯 웃어 보이며 휴대폰을 들고 일어섰다. 가방이 아니라 주머니에 지갑을 넣어 두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안무 연습실 밖으로 나온 강문은 괜히 찔리는 마음에 주변을 작게 두리번거리며 처음 들어왔던 유리문 쪽으로 향했다. 당연히 그의 목적지는 화장실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붙잡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비상계단으로 가는 문을 활짝 열었다.

“……가자.”

각오를 다지며 작게 중얼거리고 발을 내디디자 천장에 달린 센서 등이 환하게 불을 밝혔다. 뚜벅뚜벅 빨라지는 발소리가 좁은 계단을 울렸다. 1층에 도달했을 때는 제법 숨이 찼지만, 쉴 틈 없이 건물 밖으로 나섰다.

“헉…… 허억…….”

일단 나오기는 했는데, 이 세계가 자신이 살던 현실 세계와 지리가 같을 거라곤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버스나 지하철은 있을 테니 최대한 큰길을 따라 걸었다. 숙소 방향과 반대로 걷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왕 하는 거 미니맵이라도 좀 뜨면 좋을 텐데.

머릿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익숙한 효과음과 함께 눈앞에 상태 창이 나타났다.

미니맵 시스템을 발견하였습니다. 오른손 검지로 왼손 엄지 첫째 마디를 두 번 톡톡 두드리면 켜고 끌 수 있습니다.

[확인]

“후……. 친절하다고 해야 하는 건지, 참.”

확인 버튼을 누른 강문은 숨을 몰아쉬며 통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길 옆쪽으로 비켜섰다. 그리고는 괜한 마음에 지나가는 사람은 없는지 주위를 살핀 뒤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오른손 검지로 왼손 엄지 첫째 마디를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회색빛으로 변한 사물들의 움직임이 멈추며 미니맵이라고 하기엔 좀 큰 지도가 펼쳐졌다.

빨간 동그라미로 반짝반짝 빛나는 현재 위치에서 그대로 조금만 더 걸으면 지하철역이 있었다. 익숙한 지명인 것을 보니 다행히 현실 세계와 지리가 같은 모양이었다.

다시 왼손 엄지를 톡톡 두드려 지도를 닫은 강문이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차분하게 주소록에서 차율을 찾아 메시지를 남겼다.

[미안. 컨셉이 너무 충격적이라 절대 못 하겠어. 컨셉 바뀌기 전까지는 나 찾지 마.]

주인공, 그러니까 강문은 그룹의 데뷔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멤버였다. 그러니 그들에게 제대로 된 생각이 박혀 있다면, 그리고 하루아침에 기억을 잃어 혼란스러울 강문에게 측은함을 느끼고 있다면, 절대 그냥 내버려 둘 리 없다.

건방지다고 쫓겨나지는 않을까 밤새 고민한 것은 사실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어쨌든 자신은 지금 주인공이고, 주인공이 사라지는 게임은 없다. 일부러 누군가인 척하지 않고 제 성격대로 질러 버려도 상관없다는 말이다.

주인공인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튀든 게임은 진행될 것이다. 스토리가 기가 막힌 방향으로 꼬여 버릴지라도, 어쨌든 엔딩은 오는 법이다. 말로 설득하는 것보다 충격요법이 낫다고 판단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나답게 하자고. 나답게.”

이미 정해진 컨셉이 싫다고 가출하는 연습생은 아마 전무후무하겠지. 하지만 이 또한 데뷔 후엔 관심을 끌 수 있는 좋은 에피소드다. 데뷔하기 전에 이런 행동까지 한 적이 있다, 하고. 골 때리는 아이돌이라고 SNS에서 밈 화 된다면 더 금상첨화일 것이다.

전원을 끈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은 강문이 발걸음을 옮겼다.

* * *

“뭐?”

소파 앞 바닥에 앉아 스트레칭을 하던 휘건은 수화기 너머 차율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반문했다.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귀를 의심하는 표정이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 진짜라니까! 스크린 샷 보냈으니까 빨리 보기나 해. Scheiße…….

휘건은 휴대폰을 귀에서 떼고 차율이 보낸 사진을 확인했다. 제법 단호한 어투로 쓰인 메시지는 차율이 설명했던 것과 똑같았다.

[미안. 컨셉이 너무 충격적이라 절대 못하겠어. 컨셉 바뀌기 전까지는 나 찾지 마.]

얘가…… 진짜 돌아 버린 건가?

휘건이 알고 있는 강문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무시하거나 차라리 회피해 버리지, 절대 이런 돌발적인 행동을 할 인물이 아니었다. 혐오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할지언정 행동이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자꾸 다른 방향으로 튀는 게 영 이상했다. 사람의 성격이 그렇게까지 기억에 의존적이라니, 동의할 수 없었다.

“금방 갈게. 기다려.”

- 어찌하면 좋소? 성수 형한테 얘기해야 하나?

“나 도착할 때까지 일단 가만히 있어.”

- 하…… Alles klar1). 빨리 당도해주시오.

전화를 끊은 휘건이 한숨을 크게 내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강문이 기억을 잃은 게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길 줄은 미처 몰랐다.

망나니처럼 날뛰는 강문이라니. 꿈에서도 본 적 없었다. 아침까지 손수 차려 주기에 나름 멀쩡한 줄 알았는데. 역시 돌아 버린 게 분명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역시 다 연기였던 건가.

휘건의 한쪽 입꼬리가 비죽 솟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제자리를 찾았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애써 꿀꺽 삼켰다.

진짜 기억을 잃은 건지, 아니면 내가 꼴 보기 싫어서 잃은 척만 하는 건지 어디 한번 해보자고.

부득 짧게 이를 갈고 일어선 휘건이 휴대폰만 챙겨 들고 현관으로 나섰다. 거의 뛰다시피 걸어 연습실에 도착하니 어느새 내려온 성수가 차율의 어깨를 붙잡고 닦달하고 있었다.

“확실해? 이거 진짜 깡문이 보낸 거 맞아?”

“억울하오! 내가 그런 거짓말을 왜 해!”

“어제는 기억상실증에, 오늘은 가출에…… 환장하겠네, 진짜.”

이미 차율에게 상황을 전부 전해 들은 듯 성수가 짜증스레 머리를 털었다. 하나만 있어도 골치 아플 일들이 더블로 쌓이니 머리가 아플 만도 했다.

휘건은 성수와 차율에게 간단한 눈인사만 하고 소파에 털썩 앉았다. 왼쪽 팔걸이 구석엔 강문이 놓고 간 가방이 그대로 있었다. 그 안에서 삐죽 튀어나온 악보 한 장이 제 주인 대신 휘건을 반겼다.

“뮤비고 뭐고 다 완성했는데 무슨 수로 컨셉을 바꿔. 대표님한테는 뭐라고 말해? 너네 진짜 나 모가지 날아가는 거 보고 싶어서 이러냐? 데뷔 안 하고 싶어?”

“우린 아무것도 안 했…….”

“쓰읍! 너도 잘한 거 하나도 없어! 그걸 왜 그냥 보고만 있었어?”

성수의 호통에 차율이 입술을 오리처럼 내밀고 삐죽거렸다. 갑자기 도망갈 줄 누가 알았냐고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얘가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지랄이야, 씨발. 데뷔 코앞에 두고…….”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헉.”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대표가 문 사이로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잔뜩 긴장한 차율과 성수가 얼음이 된 상태로 눈동자만 또르륵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휘건은 비스듬히 기대 있던 상체를 곧게 세우고 일어나 꾸벅 인사했다.

“문이는 좀 어때? 어제보다 괜찮은가?”

“아, 그게…….”

완전히 안으로 들어온 ST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주상태를 보며 성수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차율은 차마 다가올 상황을 맨눈으로 보지 못하겠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포옥 가려버렸다.

“음? 분위기 왜 이렇지?”

묘하게 굳어 버린 공기를 인지한 대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수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짧고 굵은 한숨을 토해내자 대표는 편하게 말해 보라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 그……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또? 하루 만에?”

성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표정이었다. 아이들을 관리하는 건 전적으로 제 몫이니,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다 제 탓으로 돌아가리라 예견한 탓이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침통한 성수의 얼굴을 본 대표가 에휴, 하고 나직하게 한숨을 내뱉고는 휘건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휘건은 대표가 앉기 편하도록 반대쪽으로 자리를 조금 옮겼다.

“이번엔 또 뭔데?”

그 목소리는 삽시간에 피곤이 섞여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성수가 손톱을 뜯으며 머뭇거렸다.

“컨셉 안 바꿔 주면 안 돌아오겠대요.”

조용히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서 흘깃거리던 휘건이 대신 입을 열었다. 입술만 꾹꾹 물고 있던 성수가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만 24시간도 지나기 전에 벌어진 이 모든 일들에 벌써부터 수염이 푸릇하게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뭐? 누가?”

눈이 휘둥그레진 대표가 몸을 돌려 옆에 앉은 휘건을 쳐다보았다.

“강문이요.”

“……문이가?”

휘건은 대답 대신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저 역시 어처구니없었다.

데뷔는커녕 연습생이 되는 것만 해도 하늘에 별 따기인데, 컨셉이 싫다고 가출이라니.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무식하다고 해야 할지,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아리송했다.

“가출했다고, 지금? 컨셉 때문에?”

대표 역시 자기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냐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성수는 다가올 호통에 대비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풉. 푸하하!”

하지만 호통 소리가 아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커다란 웃음소리가 넓은 연습실을 가득 채우다 못해 쩌렁쩌렁 울려 댔다.

질끈 감았던 눈을 뜬 성수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린 차율과 눈을 마주쳤다. 휘건 역시 제 옆에서 무릎을 치면서까지 웃고 있는 대표를 얼빠진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강문에 이어 그 역시 미쳐 버린 건 아닌지 제법 진지하게 고민 되었다.

1) 영어 Okay / All right과 같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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