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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5화 (5/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5화

휘건이 자리를 뜨고 나서야 다시 비로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강문은 문이 닫힘과 동시에 침대 위로 풀썩 쓰러져 누웠다. 나름 유익한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얻어 낸 정보가 많아 정리가 좀 필요했다.

처음엔 뭐 얼마나 엉망이기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나, 내가 제대로 성공시킬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신인 그룹이 망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으니까. 스타성이 없을 수도, 멤버 간 균형이 맞지 않을 수도, 실력이 너무 없거나 비주얼 평균값이 지나치게 떨어져서 일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멤버들을 보며 판단한 바로는, 절대 그냥 망해 버릴 급은 아니라는 거다. 이름 없는 작은 회사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연습생들치고는 비주얼 평균도 괜찮고, 성격도 모난 데 없이 무난했다. 개성 있는 각자의 이미지도 붙여놓으니 의외로 조합이 좋았다. 사극 말투도 처음엔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잘 이용하면 관심을 끌기 충분하다.

그러니 딱 하나만 고치면 되는 거였다. 거지 같은 회사의 거지 같은 기획력. 양아치 같은 어울리지도 않는 이상한 컨셉은 그냥 없었던 셈 치고, 장점만 무난히 포장해 내 놓으면 적어도 한 순간에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박휘건이라는 치트키가 있으니 대박 신인까지도 노려볼 만하다.

“근데 이미 다 정해진 걸 어떻게 바꾸지…….”

머릿속에 개선 방향이 있다고는 하나, 연습생의 신분으로 이미 정해진 것들을 전부 엎는 게 쉬울 리 없다. 보아하니 녹음도 어느 정도 한 모양인데, 회사 입장에서도 이미 만들어 놓은 걸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건 큰 모험이었다.

프로듀서도 아니고, 데뷔를 앞둔 일개 연습생에게 발언권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건방지다고 찍히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에이씨, 몰라. 잠이나 자자.”

강문은 옆으로 돌아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어쩐지 속이 좀 울렁거리는 것 같아 손바닥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을 감았다. 피곤했던 탓인지 눈을 감기 무섭게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 * *

띠리링♬

<나는야 아침 요정>

좋은 아침입니다! 멤버들에게 사랑이 가득 담긴 아침밥을 차려주세요.

(경고 : 퀘스트 거절 시 하루 동안 멤버들의 사기가 떨어집니다.)

[수락] [거절]

“……이건 또 뭐야?”

이른 아침부터 시끄러운 효과음으로 잠을 깨우더니, 이젠 아침 식사까지 차려 주라는 말에 강문의 얼굴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아무리 퀘스트라도 그렇지 진짜 별걸 다 시키는구나. 내 밥도 제때 챙겨 먹기 귀찮아하는 사람인데 누구 밥을 챙겨줘.

당연히 거절 버튼을 누르려는데, 밑에 작게 쓰인 글씨가 영 거슬렸다.

“퀘스트 거절 시 하루 동안 멤버들의 사기가 떨어지…… 아, 진짜!”

이번에도 그냥 닥치고 하라는 거잖아.

강문은 분한 마음에 누운 채로 이불을 퍽퍽 걷어찼다. 버둥거리는 팔다리를 따라 뽀얗게 먼지가 피어올랐다. 커튼이 걷힌 창문 너머로 기세 좋게 내리쬐는 햇살마저 짜증 났다.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무슨 아침밥이야…….”

이래저래 짜증이 나, 누운 상태 그대로 끄응 앓는 소리를 낸 강문이 제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클어트렸다.

혼자 오래 살기는 했지만 주로 밖에서 사 먹거나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지, 직접 요리한 적은 거의 없었다. 가끔 라면을 끓이거나 김치볶음밥, 계란 프라이 정도? 이런 건 요리라고 하기도 참 뭐 했다.

그냥…… 하루 정도는 사기가 좀 떨어져도 괜찮지 않을까?

마음속 갈등을 따라 강문의 손가락이 수락과 거절 사이를 오가며 갈팡질팡했다. 어제 휘건의 경우처럼 영구적인 제한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고작 하루 디버프를 받는 것뿐인데…….

“하아…… 집에 가고 싶다.”

한참을 고민하던 강문은 결국 거절하지 못하고 수락 버튼을 눌렀다. 데뷔를 목전에 두고 리더가 기억을 잃어 당황스러운 마당에, 사기까지 꺾여 버리면 분위기가 말이 아닐 것 같아서였다.

양팔을 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한번 켜고는 침대에서 내려와 부엌으로 향했다. 다들 방문을 꼭꼭 닫고 조용한 걸 보니 아직 잠들어 있는 듯했다.

거실 옆에 작게 붙어 있는 부엌에는 남자애들이 여럿 모여 사는 집답지 않게 식기나 조리도구가 제법 잘 갖추어져 있었다. 일을 도와주는 분이 따로 오는 건가 싶었지만 집이 썩 깨끗하지는 않은 꼴을 보니 또 그건 아닌 것 같다.

“어디 보자……. 흐음.”

부엌 크기에 비해 과하게 큰 양문형 냉장고를 열자 강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남은 배달 음식이나 묵은 반찬 따위가 지저분하게 쌓여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요리 잘하는 애가 있나 보네.”

넷 중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강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아이돌들이 출연하는 요리 경연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또래 남자애들이 그렇듯 우당탕거리며 정신없는 가운데, 능숙하게 탁탁탁 도마를 두드리는 정갈한 칼질 소리.

평소 요리를 즐겨 한다거나 멤버들에게 요리해 주는 걸 좋아한다고 하면서 가정적인 이미지도 챙길 수 있고, 자신만의 적당한 레시피나 조합이 있으면 SNS에서 실시간 트렌드도 노려볼 수 있는 만능 스킬. 요리를 좋아하는 멤버가 있다는 건 굉장히 큰 강점이었다.

이왕이면 안 그럴 것 같은 멤버가 좋은데.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시찬이나, 무뚝뚝하고 고지식해 보이는 호재도 좋고. 아니면 장난기 넘쳐 보이는 차율도 괜찮을 것이다. 사실 예민한 도련님 같은 휘건이 제일 매력적이긴 할 텐데.

“뭐, 아무튼. 난 못하니까 이거나 해야지.”

강문은 문 쪽에 열을 맞춰 놓여 있던 달걀 세 알을 집어 들고 냉장고를 닫았다. 씻어서 건조해 둔 적당한 크기의 그릇에 달걀을 풀고, 프라이팬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약불로 팬을 달궜다.

프라이팬이 달궈지는 동안 식탁 위에 있던 ‘한 끼 버터 토스트’라고 적힌 반투명한 봉투에서 식빵 네 장을 꺼내고, 싱크대 상판 위에 있는 토스터 겸 그릴에 아래위로 두 장씩 넣었다. ‘토스트’로 선택하고 버튼을 누르자 타이머가 알아서 돌아갔다.

“오, 이거 좋은데?”

역시 사람은 문명의 힘을 좀 빌려야 해. 알아서 구워지기 시작하는 식빵을 보며 감탄하던 강문이 다시 가스레인지 앞에 섰다.

손바닥으로 열이 올랐는지 체크하고, 식용유를 두른 다음 미리 풀어 두었던 계란물을 부었다. 소금과 후추를 톡톡 뿌리고 젓가락으로 저어주니 금세 스크램블드에그가 완성되었다. 부엌이 금세 맛있는 냄새로 가득 찼다.

접시에 잘 옮겨 담아 식탁 위에 두니 ‘띠링’하며 타이머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냉장고에서 꺼낸 딸기잼과 숟가락을 들고 토스터기를 열었다.

“아! 아뜨뜨…… 존나 뜨겁네.”

뜨거워진 손끝을 후후 불고는 잘 구워진 식빵을 꺼내 접시 위에 쌓아 올렸다. 어느새 텅 비어있던 식탁에 간단하지만 먹음직스러운 아침 식사가 차려졌다. 귀찮아 미칠 것 같았던 것 치고는 꽤 성공적이었다.

“흠……. 근데 왜 이렇게 묘하게 익숙하냐.”

물건들이 전부 직관적으로 놓여 있다고는 하나, 처음 발을 들인 낯선 공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이 알아서 척척 움직였다. 영혼은 빙의된 자신으로 바뀌었어도 몸은 주인공의 행동을 기억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나는야 아침 요정> 퀘스트 성공!

보상 : 사기 +20 (멤버 전원, 24시간)

“20이면 많이 오르는 건가?”

보통은 수치를 100을 기준으로 잡으니, 5분의 1이면 썩 괜찮았다. 적어도 이른 아침부터 고생한 보람이 있을 만큼은 되었다.

“흐아암……. 어찌 이리 빨리 기침하였소?”

부엌에서 뚝딱거리는 소리에 깬 모양인지 차율이 늘어지게 하품하며 방에서 나왔다. 저 놈의 사극 말투는 하루 만에 익숙해지기엔 좀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오! 맛있는 냄새!”

그 뒤를 같은 방을 쓰는 시찬이 눈을 비비며 따라붙었다. 눈을 감은 채로 킁킁거리던 시찬이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는 신이 나서 달려왔다.

“형이 한 거야?”

“뭐…… 별건 아니야.”

“혀엉…… 몸도 안 좋은데…….”

“아니, 몸은 멀쩡하거든?”

감동받은 듯 눈을 반짝이는 시찬에 강문이 머쓱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고작 빵이랑 계란 좀 구웠을 뿐인데 반응이 너무 좋아 민망했다.

“다들 일찍 일어났네?”

“형, 이거 봐! 문이 형이 아침 차려 줬어.”

머리를 털며 나오는 휘건을 향해 시찬이 얼른 오라며 손짓했다. 휘건 역시 조금 놀란 눈치로 식탁과 강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미친. 자다 일어난 것도 존잘.

이미 필터가 한 꺼풀 씌워진 강문의 눈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이제 막 일어나 꾀죄죄한 휘건의 얼굴마저 빛나는 것처럼 보이다니. 식탁으로 다가오는 걸음이 런웨이보다 더 성스러웠다.

“뭐야. 왜 그렇게 쳐다봐?”

“아…… 아니. 호재는?”

“냅둬. 걘 밥보다 잠이야.”

강문이 살짝 열린 방문 틈을 보며 묻자 휘건이 의자에 앉으며 대충 대답했다. 강문은 그렇구나, 하고 대답하며 토스터에 추가로 넣어 두었던 식빵 네 장을 더 꺼냈다. 빛나는 휘건의 얼굴을 보고 나니 식빵을 만지는 손가락보다 얼굴이 더 화끈거렸다.

“성수 형이 오늘 몇 시에 보자고 그랬지?”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어제 어깨가 축 늘어져서 돌아간 매니저의 이름이 최성수였다. 대표님께 말씀 드릴 테니 다 같이 면담 한번 하자고 말하는 얼굴엔 그늘이 가득했다.

“점심 먹고 1시쯤.”

“그럼 그때까지 놀아도 돼?”

“놀긴 뭘 놀아? 연습해야지.”

“밥 먹고 바로 움직이면 배 아픈데.”

“하여튼, 이시찬. 핑계는.”

“어차피 아플 거, 라면 하나만 먹을까?”

휘건이 시찬의 이마에 딱 하고 딱밤을 때리자 차율과 함께 종알거리던 시찬이 휘건을 흘겨보았다.

“그럴 시간 있으면 깡문한테 춤이나 가르쳐 줘. 다 까먹었을 텐데.”

“아, 맞다.”

금세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인 시찬이 식빵에 잼을 바르다 말고 강문을 향해 씨익 웃었다.

“형, 걱정하지 마! 형은 뭐든 잘하니까, 하루 이틀이면 금방 다시 외울 거야.”

그 말에 강문은 식빵 끄트머리에 스크램블드에그를 올리던 동작 그대로 움직이는 것도, 대답도 잊고 눈만 끔뻑거렸다. 이렇게 무조건적인 신뢰와 호의는 처음이라 얼떨떨한 탓이었다.

“넌 뭐 다 흘리면서 먹냐, 칠칠맞게. 일부러 그러는 거야?”

옆에 있던 휘건이 쯧, 하고 가볍게 혀를 차며 맨손으로 강문의 입가를 슬슬 닦아 주었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화들짝 놀란 강문이 입을 가리자 휘건이 멋쩍은 듯 큼큼 헛기침을 했다.

“……으응. 고마워.”

손가락이 닿았던 자리가 이상하게 화끈거려 손톱으로 슬슬 긁었다. 이렇게 스스럼없이 친한데 사이가 나빴다니, 다시 생각해도 좀 의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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