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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2화 (2/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2화

다리에 힘이 풀린 강문은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누웠다. 혹시나 하고 이번엔 팔뚝을 꼬집어 보았지만, 역시나 아픔은 선명했다.

“하…… 이게 말이 되냐고.”

하늘을 보고 누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온 한숨을 밀어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니 잔뜩 긴장한 탓인지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문 앞엔 여전히 반투명한 화면이 떠 있었고, 자신과 화면을 제외한 모든 것이 흑백이었다. 무언가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이 기묘한 대치상황이 계속 이어질 것 같았다.

아무리 좋아하는 게임이라고 한들 그 속에 들어가고 싶은 건 아니었다. 물론 저와 같은 이름으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부러웠던 적은 있지만, 그뿐이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 조각으로 살아가는 것보다야 당연히 현실이 훨씬 나았다.

어쩌다 이런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보던 상황에 덜렁 놓이게 된 걸까. 딱히 죄를 짓고 산 기억도 없는데.

“…….”

현실을 부정하고, 속으로 화도 내보고, 믿지도 않던 신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기를 수십 분. 어떻게 하면 이 거지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하던 강문의 시선이 다시 문 앞의 선택 창으로 향했다.

그룹의 미래가 당신의 손에 달렸습니다. 해당 컨셉을 유지하겠습니까?

[Yes] [No]

게임 속 주인공의 첫 그룹인 W.A.IN은 구시대적인 양아치 컨셉으로 데뷔해 첫 앨범을 거하게 말아먹었다. 물론 컨셉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그룹의 색과 어울리지 않았고, 하필 그 즈음 터진 학교 폭력 관련 이슈를 소속사가 서툴게 대응하며 이어진 결과였다. 자세히 서술되지는 않지만 짐작하건대, 멤버들 중 하나의 루머가 시발점이 된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나온 두 번째 앨범마저 사장의 촌스러운 취향 때문에 음방조차 서지 못하고 행사만 겨우 뺑뺑이 돌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는 나름 디테일한 설정까지 있었다. 해체 통보를 받던 날 주인공은 빗길을 우산도 없이 걸으며 하염없이 울었다고 했다.

하지만 게임은 그 이후 주인공이 우연한 기회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는 것부터 시작된다. 즉, 짤막한 회상이나 캐릭터의 대사로 그런 과거가 있었다는 배경지식만 던져 줄 뿐 게임에 직접적인 영향은 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럼…… 아직 게임이 시작되기 전인 거네?”

몸을 일으켜 세운 강문의 눈이 반짝 빛났다. 막막하기만 했던 머릿속에 한 줄기 희망이 스쳤다.

이대로 흐름에 맡긴다면 W.A.IN은 어울리지 않는 컨셉과 미비한 대응으로 해체를 향해 갈 테고, 그럼 주인공이 서바이벌에 출연하며 게임이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게임이 시작되어 어영부영 녹아들어 버리면 탈출의 기회가 영영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서비스 종료라도 되지 않는 이상.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게임이 시작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W.A.IN이 절대 해체되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씨발, 까짓것 뭐 어렵겠어?”

아이돌 그거 한번 해 보지 뭐.

습관적으로 엉덩이를 털고 일어선 강문이 코로 숨을 크게 내쉬며 척척 걸음을 옮겼다. 해야 할 일이 명확해지니 오히려 머릿속이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굴욕적인 데뷔가 되지 않도록 첫 단추부터 잘 끼우기 위해서는 우선 이 컨셉부터 갈아치워야 했다. 물론 잘 소화한다면 충분히 매력적이겠지만, 과거 게임을 통해 파악한 이 회사는 그 정도의 역량을 가지지 못했다. 심지어 강문은 게임 설정 상 W.A.IN의 데뷔 이후 학교 폭력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것을 알고 있다. 저런 위험한데다 어울리지도 않는 컨셉보다는 멤버들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무난하고 깔끔한 컨셉으로 가는 게 더 나았다.

방문 앞에 선 강문의 손가락이 한 치의 고민도 가지지 않고 [NO] 라고 적힌 버튼을 눌렀다. 뾰로롱 하는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선택 창이 사라지며 방안에 다시 색채가 돌아왔다.

히든 퀘스트 오픈! W.A.IN의 해체를 막으세요!

번쩍번쩍한 효과가 입혀진 글씨가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철컥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문은 서둘러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았다. 아무리 돌려도 움직이지 않던 조금 전과는 달리 너무나도 쉽게 돌아가며 문이 열렸다.

드디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활짝 웃으며 문을 밀어 여는데, 문밖에 있던 어떤 남자가 저를 발견하고는 젓가락을 내팽개치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입에는 조금 전까지 욱여넣고 있던 라면이 가득했다.

머리를 주황빛으로 물들인 그는 아직 젖살이 덜 빠진 앳된 얼굴에, 강문보다는 키가 조금 작아 보였다. 둥글둥글 갓 태어난 똥강아지를 떠오르게 하는 선한 눈매에는 타고난 것 같은 애교가 가득 매달려 있었다. 척 봐도 팀의 막내였다.

“헝! 개안아?”

남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강문의 몸 곳곳을 살폈다. 그러면서도 라면을 씹고 있어 발음은 다 뭉개지는 주제에 표정은 제법 심각했다. 남자를 찬찬히 살피다 입안에 들은 걸 봐 버린 강문이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그를 가볍게 밀어냈다.

“일단 다 씹고 말해. 지저분하게…….”

“아. 미앙.”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 남자가 열심히 오물거리더니 입안의 것들을 꿀꺽 삼켜 넘겼다. 동그란 눈이 데굴 구르며 얼굴을 훑자 강문은 저도 모르게 몸을 살짝 뒤로 물렀다.

“괜찮아? 얼마나 피곤했으면 깨워도 일어나지도 못해?”

“어…… 내가?”

강문은 저도 모르게 조금 멍청한 말투로 되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보란 듯 한숨을 푹푹 내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남자가 조금 전까지 앉아 있던 탁자 위에 있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형 오늘 하루 종일 잔 거 알아? 돌아가면서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서 죽은 줄 알았잖아.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일단 매니저 형한테 형 일어났다고 말해야겠다.”

걱정한 사람치고는 너무 잘 먹고 있던데.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고 꿀꺽 말을 삼켜 내고는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대는 남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게임 개발자보다도 더 게임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강문의 데이터 어느 곳에도 이 남자는 없었다.

정황상 W.A.IN의 멤버 중 하나이긴 할 텐데, 도통 아는 게 없으니 답답했다.

“저기, 미안한데.”

남자가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보았다. 강문은 가능한 한 최대한, 난처함을 가득 담은 얼굴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마침 한참동안 시체처럼 잠들어 있다 겨우 일어난 모양이니, 타이밍도 좋았다.

“너…… 누구더라?”

남자의 입이 천천히 벌어지더니 이내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휴대폰 너머에서 상대방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 게 어렴풋이 들려 왔다. 남자는 꼭 나라가 망하기라도 한 듯한 얼굴이었다.

결국 횡설수설하다 울음을 터트려 버린 그를 강문이 최선을 다해서 달래 주었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소파 귀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남자의 어깨가 훌쩍거림에 맞춰 들썩였다. 기껏해야 기억상실증이니 뭐니 하며 호들갑을 떨어 대는 것 정도를 상상했지, 이렇게 감정적인 반응을 예상한 건 아니라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허어엉…… 우리 형 어떡해……. 으헝…….”

“그만 좀 울고…….”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의미 없이 등을 다독이고 있는데, 도어락 소리와 함께 누군가 헐레벌떡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강문은 말하지 않아도 그가 매니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시찬, 너 그게 무슨 말…… 야! 너 또 몰래 라면 먹었지!”

소파 앞 탁자 위에는 조금 전 시찬이 먹던 라면이 불어 터진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매니저가 라면을 향해 삿대질을 하자 홱 고개를 들어 올린 시찬이 소리를 빼액 질렀다.

“지금 라면이 뭐가 중요해! 우리 형이 바보가 됐는데! 흐어어어…….”

“바보라니, 그건 좀.”

기억 좀 잃어버렸다고 바보는 심하잖아.

달리 할 말이 없어 허허 웃고만 있으니 매니저가 “으이구, 핑계는” 하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도 역시 미심쩍음과 걱정이 미묘하게 섞여 있었다.

“깡문. 진짜야?”

짧은 문장 속에 담긴 의미를 금세 파악한 강문이 입술을 삐죽이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매니저가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데뷔를 코앞에 두고 리더가 기억을 잃었다니, 얼마나 청천벽력 같을까. 매니저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대표님한테도 얘기했어?”

매니저의 물음에 시찬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잠깐 고민하던 매니저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스피커폰 모드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자 신호가 몇 번 가기도 전에 누군가 받았다.

“왜 이렇게 빨리 받아? 또 연습 안 하고 놀고 있었지?”

- 이거 워치거든? 빨리 받아도 난리야.

“됐으니까 빨리 정리하고 숙소로 와. 급해. 애들 거기 다 있지?”

- 방금 호재도 오기는 했는데, 왜?

“일단…… 오면 설명해 줄게.”

급격하게 피곤에 절어버린 눈동자가 강문에게 향했다. 강문은 여전히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현관문이 벌컥 열리더니 호들갑 섞인 목소리가 불쑥 밀려 들어왔다

“무슨 일이오! 누가 또 퇴출당해 먼 길을 떠나는 것이오?”

“그 말투는 고칠 생각이 없지?”

매니저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반쯤 포기한 표정으로 핀잔을 주자 가장 먼저 들어온 남자가 머쓱하게 웃으며 신발을 벗었다. 짧은 대화 속에서 데뷔 멤버가 퇴출된 전적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강문이 속으로 끄응 앓았다.

도대체 전에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저 이상한 사극 말투는 또 뭐고.

어쩌면 생각보다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어 조금 아찔해진 머리를 가볍게 털었다. 갈 길이 벌써부터 구만리 같았다.

“무슨 일인데 그래?”

시끄러운 소음 속을 비집고 툭 밀려들어 온 듣기 좋은 편안한 저음에 강문의 눈이 움찔 떨렸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강문은 줄줄이 소시지처럼 들어오는 멤버들 사이에서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냈다.

씨발, 이건 무조건 된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강문은 어둠 속에서 기적적으로 개안한 느낌으로 조용히 쾌재를 불렀다.

얼굴이 재산인 아이돌 시장에서 W.A.IN은 이미 억만장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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