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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랑비처럼 잔잔히 스미는 연진 (1) (3/15)

3. 가랑비처럼 잔잔히 스미는 연진 (1)

찬을 보낸 운서는 서전궁으로 향했다. 현비의 처소인 서전궁은 홍안궁과 가까이 붙어 있었다.

서전궁은 호수와 이어져 있어 날이 좋은 날에는 뱃놀이를 하거나, 호숫가에서 시를 지으며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운서가 들어가자 오늘도 은혜와 선오가 함께 있었다. 나란히 앉아 차를 마시는 그녀들의 곁에는 현비의 부친인 예부상서 온 대인도 있었다. 예부상서는 운서를 보더니 반색하며 그를 맞았다.

“이게 누군가? 윤 내관이 아닌가!”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대인, 현비마마, 덕비마마, 내관 윤운서가 인사드립니다.”

“어서 오게나.”

예부상서 못지않게 운서를 반겨준 은혜와 선오는 언제나처럼 그에게 자신들의 곁에 앉아 차를 마시자고 권했다. 그러나 운서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황제가 서전궁에서 저녁 수라를 들고 간다는 간단한 용건만 전달하고 갈 예정이었다. 아직 장서각의 정리도 끝나지 않았고, 연진이 정무를 마치고 오면 그를 채근해서 이곳으로 보내야 해서 여유롭게 수다를 떨 시간이 없었다.

“마마, 죄송하게도 폐하께서 시키신 일이 있어, 이만 돌아가야 하옵니다. 오늘은 현비마마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윤 내관, 폐하의 일인가?”

은혜가 그녀의 성격대로 느긋하고 편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예. 오늘 폐하께서 저녁 수라는 서전궁에서 드시겠다고 전하라 하셨….”

“뭐라? 윤 내관, 그게 정말인가?!”

아직 운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예부상서가 벌떡 일어나서 그의 작은 손을 맞잡았다.

“아, 예. 그러하옵니다. 대인.”

“윤 내관, 직접 알려주러 와서 고맙네. 폐하께서 드릴 수라니 각별하게 신경 쓰도록 하겠네.”

“…….”

운서는 은혜를 빤히 봤다. 사실 신경만 쓰지 마시고 제발 오늘은 꼭 폐하를 붙드셔야 한다고 구구절절 애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덕비와 예부상서가 함께 있는 곳에서 은혜를 붙잡고 제발 폐하를 덮쳐달라고 애걸할 수는 없었다.

그때, 은혜는 자신을 빤히 보는 운서의 시선에서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알아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노력해보겠네.”

“예, 마마.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부디 오늘 밤은 폐하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십시오.”

마지막까지 연진을 붙잡아달라고 거듭 강조를 하고 운서는 그대로 종종거리며 물러났다. 운서가 막 서전궁을 나가려는 때였다. 현비의 부친인 예부상서가 헐레벌떡 따라오며 그를 불렀다.

“이보게, 윤 내관!”

“부르셨습니까? 대인.”

운서는 그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폐하께서 서전궁을 찾아주신다니, 보나 마나 윤 내관이 권했겠지?”

“아, 그게….”

운서는 대답을 쉽게 하지 못했다. 예부상서가 운서의 손을 또 힘껏 잡았다. 그는 심지어 운서의 작은 손을 꽉 잡고 비비기까지 했다.

“고맙네, 윤 내관. 전에 폐하께서 홍안궁을 먼저 찾으셔서 조금 섭섭했었는데, 내 딸도 이리 빠짐없이 챙겨주어 정말 고맙네.”

“제가 어찌 두 마마를 모시는 일에 차등을 두겠습니까?”

운서는 웃으면서 허리를 굽혔다. 운서는 현비와 덕비 중 누구라도 먼저 연진을 덮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운서에게 후궁전을 가리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 말에 예부상서는 싱글벙글 웃으며 품에서 비단 주머니를 꺼내 운서의 손에 쥐여주었다. 비단 주머니에는 금 백 냥이 들어 있었다.

“자네가 있어서 내가 참 든든하네.”

“아이고, 대인. 소인에게 이런 걸 주지 않으셔도 폐하께서는 앞으로도 서전궁을 자주 찾으실 겁니다.”

“그간 폐하를 모시느라 윤 내관이 힘든 걸 내가 다 아니 이러지 않나. 이걸로 피로라도 좀 풀게나.”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온 대인, 부디 마마께 오늘 밤에 폐하를 절대로 놓아주시지 말라고 해주십시오.”

“알겠네. 내 마마께 그리 전하지. 그런데 폐하께서 순순히 서전궁에서 밤을 보내시겠나? 그러지 말고 자네가 좀 어떻게 해보면 안 되겠나?”

예부상서는 운서의 손을 잡은 그대로 엄지로 부드러운 손등을 비비적거리며 간절하게 부탁했다. 애지중지 키운 고명딸이 후궁으로 들어왔는데, 황제는 냉대만 하니 이대로 아이도 낳지 못하고 서전궁에서 늙게 생긴 것이다.

후궁이 권력을 잡지 못하면 아이라도 있어야 했다. 아이가 없는 후궁은 제대로 대접도 받지 못할 게 뻔하고 황제의 사후에 사가로 내쳐질 텐데, 그때 혼자 외롭게 늙게 할 순 없었다.

또 현비가 아들을 낳으면 그 아이가 황제가 될 수도 있으니, 예부상서도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인, 저야말로 침상에 폐하의 손발이라도 묶어놓고 싶지요. 그러나 대인께서도 알다시피 아무리 저라도 그런 짓을 했다가는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미안하네, 윤 내관. 딸자식이 점점 나이가 차니 불안해서 그러네.”

예부상서는 자신의 소매에서 다시 비단 주머니를 하나 더 꺼내 운서의 손에 조용히 건네주었다. 기다란 속눈썹을 얌전히 내리깐 운서가 살짝 웃고는 그의 손을 잡았다.

“제가 대인의 마음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어쩔 수 없지요. 오늘은 직접 서전궁의 문이라도 잠그고 지키고 있겠습니다. 대인의 정성에 제가 뭔들 못 하겠습니까.”

“고맙네, 고마워.”

예부상서와 운서는 서로 힘내자며 손을 꼭 잡았다.

비단 주머니를 받고 서전궁을 나서던 운서는 이대로 연진을 내버려 두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제 아침의 일도 그렇고.

‘넣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해서 가르쳐 드렸거늘, 실습까지 해놓고는 왜 안 넣으시는 거냐고!’

운서는 왜 넣어야 할 구멍에는 안 넣고 제 구멍이나 만지냐고 연진에게 따지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황제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인 운서는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연진과 현비의 합궁을 성사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받은 돈값은 해야지 않나.’

운서는 태후의 궁으로 부지런히 발길을 옮겼다.

작은 엉덩이를 살랑살랑, 총총거리며 영현궁으로 들어간 운서가 동그란 탁자에서 차를 마시는 태후에게 얌전히 인사를 올렸다.

“태후마마, 내관 윤운서가 마마를 봬옵니다.”

“그래, 잘 왔다. 운서야, 마침 다과를 먹을 참이니 너도 앉아라.”

태후는 고 내관에게 다과를 내오라고 하고 운서에게는 맞은편 의자에 앉으라고 권했다. 다른 내관이라면 감히 선황제의 황후이자 현 황제의 모친인 태후와 한 탁자에 앉지 못하겠지만 운서는 달랐다.

운서는 궁에 입궁한 날부터 태후가 특별하게 보살핀 아이였다. 황제를 모시는 내관들의 수장인 유덕에게 운서의 의부가 되라고 명한 것도 태후였다.

어린 내관들이 처음으로 입궁을 하게 되면 황궁에서 잔뼈가 굵은 다른 내관들이 의부가 되었다. 의부 아래에서 가르침을 받으며 궁인으로 자라는 것이다.

또 그들의 의부가 어떤 지위의 내관인지에 따라 아이의 출세 여부도 판가름 나기 마련이었다.

운서는 입궁할 때부터 다른 내관들과 달랐지만, 황제를 모시는 태감을 의부로 두게 된 것은 특혜일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태후가 자식처럼 돌보고 예뻐한 아이였다.

“태후마마, 오늘은 마마께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태후의 곁에 냉큼 앉은 운서는 마음이 급해서 권하는 차도 마시지 않고 그녀를 재촉했다.

“먼저 숨이나 돌리고 말하거라. 날도 좋은데 뭐가 그리 급한 것이냐.”

“마마, 황손을 위한 일이니 당연히 급하지 않습니까.”

“황손이라고?”

황손이라는 말에 태후의 눈과 귀가 번뜩했다.

“폐하께서 오늘 저녁 수라는 서전궁에서 드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래, 잘되었구나. 요즘 들어 후궁전에 자주 걸음을 하시다니. 드디어 정신을 차리신 모양이지.”

“예, 마마.”

“정신을 차리긴! 보나 마나 네가 연진이를 채근해서 얻어낸 거겠지. 그 녀석이 제 발로 후궁전에 갈 리가 없지 않더냐.”

태후는 아들이 둘만 있었어도 자신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거라고 한숨을 쉬었다. 연진이 아이를 만들지 못하면 다른 아들에게서 손주를 보면 그만이고, 친조카를 후계자로 세워도 되는 일이었다.

“차라리 진짜 고자였으면 마음 편하게 포기라도 하지.”

“마마.”

“잠깐, 그건 안 되지. 연진이에게 아들이 없으면 그 귀비의 손자들이 황위에 오를 게 아니더냐! 황실의 대가 끊기더라도 그 꼴은 못 보겠다!”

귀비는 선황제가 살아 있을 때 태후를 가장 괴롭게 한 후궁이었다. 선황제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후궁이기도 했고, 그녀가 선황제를 홀려서 독차지하는 바람에 자신이 자식을 하나밖에 낳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귀비와 아옹다옹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태후는 그녀의 자식이나 손주들을 절대 황궁에 들일 수 없다고 거듭 다짐했다.

태후가 황후를 따로 들이지 않고 후계자를 낳는 후궁을 황후로 올리겠다고 한 것도 이유가 있었다. 황제의 사랑을 받는 후궁이 황후가 되어야 황궁의 질서가 잡히고 모두가 평안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품계도 낮은 후궁이 황제의 총애를 빌미로 나대는 꼴은 못 보겠다는 것이다.

“태후마마, 폐하께서는 곧 아들을 낳으실 겁니다.”

“…그래, 그래야지. 운서야, 그나마 네가 있어서 황상이 덕비와 현비에게 걸음을 하는구나. 고 내관, 가서 비녀를 넣어두는 함을 가져오너라.”

“예.”

고 내관이 태후의 비녀함 중에서 적당한 것을 가져오자 태후는 보석이 달린 화려한 비녀 몇 개를 꺼내 운서에게 주었다.

“마마, 소인은 이런 걸 바라고 온 것이 아닙니다.”

“나도 안다. 네가 황상을 위하는 마음을 내가 모를까. 다만, 네가 날마다 내게 황손을 보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기특해서 그런다. 후궁전의 것들은 와서 아부나 할 줄 알지 제대로 하는 것들이 하나도 없지 뭐냐.”

태후의 칭찬에 활짝 웃은 운서는 그녀가 건넨 비녀들을 조심스럽게 챙겼다.

“감사합니다. 마마께서 주신 건 나중에 요긴하게 쓰겠습니다.”

“그래, 네가 은퇴해서 느지막하게라도 식구를 들이려면 재산이 있어야지.”

내관직을 은퇴하면 아내와 양자를 들여 도란도란 살고 싶다는 운서의 희망을 잘 아는 태후는 아끼는 아이의 손을 잡고 토닥였다.

“헤헤.”

“그래, 부탁이 무어냐?”

“오늘 폐하께서 서전궁으로 납시시면 전각의 문과 창문에 모조리 못질을 해주십시오.”

“뭐라? 못질을 해달라니! 그게 무슨 뜻이냐?”

“마마, 강제로라도 두 분을 한방에 모셔야 폐하께서 현비마마와 밤을 보내시지 않겠습니까.”

이대로 두면 오늘도 연진은 서전궁에서 저녁만 먹고 나올 게 분명했다. 그러니 강제로 가두라는 뜻이었다.

“오호라, 그래, 그렇구나!”

태후는 운서의 새로운 계책에 무릎을 쳤다. 매번 후궁전에 끌고 가도 차만 마시고 나오거나 수라상만 받고 나오던 황제 때문에 골치가 아팠는데, 운서의 말대로 문에 못질을 하면 날이 샐 때까지 나오지 못할 터.

“역시 너밖에 없구나! 네 말대로 하마.”

운서의 기발한 생각에 감탄한 태후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아무리 합궁을 종용해도 말을 듣지 않았던 연진은 오늘이야말로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태후는 운서의 손을 잡고 보들보들한 손등을 쓰다듬으면서 낮은 웃음을 흘렸다.

***

그날 저녁 운서는 연진을 채근하여 일찌감치 그를 서전궁으로 들여보냈다. 평소에는 가기 싫다고 하던 연진도 오늘은 순순히 서전궁 안으로 들었다.

운서는 연진과 은혜가 다정하게 수라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주안상을 내가도록 했다. 그리고 주안상이 들어가자마자 주변에 매복해 있던 사례감의 내관들을 불렀다.

“태후마마의 명령이다. 어서 이 전각의 모든 문과 창에 못질을 시작해라!”

운서의 명령에 서전궁의 모든 내관이 달라붙어서 황제와 현비가 함께 있는 전각에 못질을 하기 시작했다.

탕탕탕.

마침 주안상을 받은 황제가 현비와 함께 술 한잔을 마시기도 전이었다. 갑자기 망치질 소리가 나는 바람에 놀란 연진은 두리번거렸다. 망치 소리는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것도 문과 창문에서.

“현비, 이게 무슨 소란입니까? 갑자기 이 밤에 서전궁을 고치기라도 하는 겁니까?”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은혜도 당황한 얼굴로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연진은 운서를 불렀다. 그러나 계속 못질 소리만 나고 대답은 없었다.

연진은 벌떡 일어나서 문으로 갔다.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 너무 수상했던 것이다. 황제는 평소처럼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은 덜컹거리기만 할 뿐, 이미 못질이 되어 단단히 잠겨 열리지 않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순간 연진은 반란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불안함에 문을 더 세게 흔들었다. 그러나 역시 열리지 않았다. 연진은 문을 다시 힘껏 흔들었다. 장인이 하나하나 조각해서 만들어진 장식들이 부서질 정도로 문이 덜컹거렸다.

“밖에 누가 있느냐?! 태감은….”

태감은 오늘 자신을 수행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운서가 자진해서 따라왔었다.

“운서야! 운서는 밖에 있느냐?”

“폐하, 내관 윤운서, 여기에 있습니다. 소인을 부르셨습니까?”

“아, 그래! 네가 있었구나. 운서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문이 잠겼다. 어서 열어라.”

평소와 똑같은 운서의 목소리를 듣고 반란이 일어난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한 연진은 일단 안심했다. 만약에 반란이 난 것이라면 운서가 가장 먼저 호들갑스럽게 달려와서 살려달라고 이 문을 뜯었을 것이다.

“폐하, 송구하게도 문을 열어드릴 수 없사옵니다. 문만이 아니라 창에도 모두 못질을 하였으니, 오늘 밤에는 이곳에서 절대 나오실 수 없습니다. 오늘은 서전궁에서 현비마마와 함께 침수 드옵소서.”

“뭐라고?! 문에 못질을 했다니, 네놈이 감히 서국의 군주인 짐을 가두는 것이냐?”

“오늘 밤은 서전궁의 모든 전각에 못질을 해서라도 폐하를 현궁으로 돌려보내지 말라는 태후마마의 지엄하신 명이 있었습니다. 폐하, 태후마마의 뜻을 어기실 겁니까?”

문가에 바짝 붙은 운서는 일부러 큰 목소리로 태후마마의 뜻이라고 강조해서 말했다. 그러나 연진의 귀에는 중간중간 키득거리는 운서의 웃음소리가 아주 잘 들렸다.

“어마마마가 아니라 네놈의 생각이겠지! 네놈이 어마마마를 부추긴 게 아니냐?”

“설마요. 폐하, 소인이 어찌 이런 망극한 일을 꾸몄겠사옵니까.”

운서는 연진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귀를 팠다.

“어마마마께서는 계략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분이다. 황궁에서 이런 간악한 술수를 생각할 수 있는 건 바로 네놈밖에 없지 않더냐! 윤운서, 당장 문을 열지 않으면 내일 네놈의 볼기짝을 때려주겠다.”

“…저는 그저 태후마마의 명령을 수행할 뿐입니다. 간악한 술수라니 너무하십니다.”

문밖에 있는 운서는 또 소매로 눈가를 찍으며 일부러 훌쩍거리는 소리를 냈다.

“당장 이 문을 열어라!”

“폐하, 오늘은 제발 이곳에서 침수 드십시오. 태후마마께서 오죽하면 이런 명령을 내리셨겠습니까. 마마의 말씀을 어긴다면 불효가 아닙니까.”

“…으으.”

불효라는 한마디에 연진이 입을 다물었다. 황제로 즉위한 이후로 후계 때문에 많은 불효를 저지르고 있던 것이다. 연진이 가만히 있자 그 틈에 운서는 문에 딱 달라붙어서 속삭였다.

“제발 고집은 그만 부리시고 현비마마와 합궁하십시오. 폐하께서 황손만 낳으시면 태후마마의 근심도 사라지고 저도 두 발을 쭉 뻗고 잘 수 있습니다.”

“…좋아. 오늘은 여기서 자지. 하지만 내일 문이 열리고 나면 네놈을 가만두지 않겠다.”

“아이고, 무섭네요. 폐하.”

으르렁거리는 황제를 두고도 운서는 태연했다. 연진이 자신을 벌하지 못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태후라는 든든한 뒷배까지 있었다.

그런 운서를 두고 연진은 두고 보자고 이를 북북 갈았다. 반면 운서는 연진이 화를 내도 샐쭉하게 웃을 뿐 문을 열지 않았다.

***

다음 날, 전각의 문이 열리자마자 씩씩거리며 나온 연진이 운서를 찾았지만, 그는 이미 영현궁으로 도망치고 없었다. 연진은 자신을 가둔 운서의 간악함이 괘씸해서 의복도 갈아입지 않고 바로 영현궁으로 쫓아갔다.

연진이 태후의 침소가 있는 명성각으로 들어가자 역시, 운서가 태후의 뒤에 숨어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윤운서, 네 이놈! 당장 이리 오지 못할까!”

연진은 운서의 볼기짝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벌을 주겠다고 사흘 굶은 늑대처럼 으르렁거렸다. 황제의 눈에 선 핏발을 확인한 운서는 파들거리며 태후에게 매달렸다.

“히익! 태후마마, 살려주십시오.”

“황상, 진정하세요. 어제 일은 이 어미가 시킨 겁니다.”

화려하고 풍성한 치마 뒤로 운서를 숨겨준 태후가 아들을 말렸지만, 연진의 화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어마마마. 제가 아는 어마마마는 술수라고는 조금도 모르는 분입니다. 아바마마가 살아계실 때도 강직한 성품 때문에 항상 귀비에게 당하기만 하셨지요. 그런 어마마마께서 일을 꾸몄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제의 일처럼 황당한 일을 꾸밀 사람은 황궁에서 저 간악한 놈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화가 났어도 만인의 군주께서 그 무슨 험악한 말씀입니까?”

태후가 연진을 다시 말리자 운서도 나섰다.

“폐하, 그동안 제가 어찌 폐하를 키웠는데…, 폐하 때문에 키도 덜 자란 저에게 간악하다니요. 너무하십니다. 저는 그저 서국의 후계를 든든히 하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태후마마께 하루빨리 황손을 보여 드리려는 충정에서….”

연진이 무서워서 바들거리는 와중에도 할 말은 다 하는 운서였다. 내관의 일이었긴 하지만 입도 맞추고 이런저런 일도 한 사이에 간악하다는 말은 좀 상처였다. 하지만 서운함을 내색할 수 없는 운서는 여전히 태후의 치맛자락에 숨어 있었다. 운서는 연신 소매로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하며 무섭다고 엄살을 떨었다.

“…….”

연진은 태감이 가져왔던 상소를 떠올렸다. 운서를 비방하는 상소였지만 사실 거짓은 없었다. 태후를 뒷배로 제 머리 꼭대기에 올라서 자신을 휘두르려 하는 것도 그렇고.

황제를 가두는 것도 반역에 속하는 대역죄였다. 어제의 일이 알려지게 되면 운서를 벌하라는 상소가 빗발칠 것이었다. 게다가 운서를 이대로 두면 또 태후의 뒤에 숨어서 무슨 짓을 꾸밀지 몰라 연진은 그냥 실력 행사를 하기로 했다.

“밖에 있는 금의위는 들라.”

연진이 금의위를 부르자 푸른색 옷을 입은 건장한 내관들이 태후의 전각으로 들어왔다. 금의위를 보자 운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런 운서를 확인한 태후가 얼른 연진을 말렸다.

“황상! 이게 무슨 짓입니까?”

“너희는 황제를 기만한 내관 윤운서를 잡아라. 그리고 저놈을 태형 스무 대의 형벌에 처한다.”

“존명.”

푸른 옷의 건장한 금의위들이 우르르 몰려와 태후의 뒤에 숨은 운서를 잡았다. 운서는 싫다고 발버둥 쳤다.

“폐하, 폐하.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황상, 태형 스무 대라니요? 가뜩이나 몸이 약한 아이인데 매질은 심합니다. 어제 일은 모두 이 어미가 시킨 일이라 하지 않습니까?”

“어마마마, 아무리 모후의 명이 있었다 할지라도 저놈은 서국의 군주를 가둔 죄인입니다. 그간 운서의 오만방자한 행태를 고발하는 상소가 계속 올라왔었습니다. 그래도 소자의 소꿉동무라 봐주었는데, 점점 저놈의 행실이 기고만장하니 이번에야말로 주인에게 기어오르는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겠습니다.”

“아니, 그래도….”

태후는 운서가 저 작은 몸으로 태형 스무 대를 어찌 견디냐고 다시 연진을 말렸다. 그러나 연진은 강경했다.

운서는 바로 금의위들에게 질질 끌려갔다. 가면서 연진을 향해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지만 소용없었다.

현궁으로 끌려간 운서는 바로 형틀에 묶였다. 운서는 형틀에 묶여 훌쩍훌쩍 울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덕이 형틀에 있는 운서를 보더니 바로 연진의 앞에 엎드렸다.

“폐하, 무슨 일이시옵니까?”

“태감은 들어라. 오늘 짐이 저놈의 오만방자함을 벌하려고 하니 태감도 똑똑히 보고 있으시오.”

“아니, 폐하 그래도….”

유덕은 안절부절못하며 엎드려서 모두 자기가 부덕한 죄라고 용서를 청했다. 그런데도 연진은 운서를 벌하려는 뜻을 꺾지 않았다.

“폐하, 윤 내관은 소인의 의붓아들이 아닙니까. 소인이 저 아이를 잘못 가르친 죄이니, 차라리 저를 벌하시옵소서.”

“태감은 저놈과 함께 형틀에 묶이기 싫으면 입을 다물게. 어제의 일을 그대가 모르진 않았을 테니.”

연진이 자신을 가두는 일에 너도 동조하지 않았냐는 눈길을 보냈다. 그에 유덕은 바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유덕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을 때, 구석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고 내관의 얼굴은 시시각각 사색이 되고 있었다.

고 내관은 태후가 어서 따라가 보라고 해서 급히 현궁으로 달려온 참이었다. 태후도 그도 설마 황제가 애지중지하는 운서에게 진짜로 형벌을 내리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운서를 형틀에 묶은 걸 봐서는 아무래도 진심인 모양이었다.

연진이 유덕에게 고함을 치는 것만 봐도 분위기가 아주 살벌했다.

‘마마께서 태형을 스무 대나 맞으면 운서는 죽을 거라고 말리라고 하셨는데.’

고 내관은 태감이 나섰음에도 황제를 말리지 못했는데 자신이 무슨 수로 운서를 구하겠냐고 한탄했다. 고 내관은 얼굴이 퍼렇게 질려서 달달 떨고만 있었다.

“네놈이 감히 서국의 황제를 농락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폐하! 소인이 잘못했사옵니다. 다시는 폐하를 기만하지 않을 테니, 부디 이 죄인을 용서하여주십시오.”

“너의 잘못은 그것만이 아니거늘.”

연진은 금의위에게 ‘그것’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것은 운서의 비리를 고발한 상소였다. 연진이 그 상소를 읽기 시작했다.

“여기에 적힌 대로 내관 윤운서는 황궁의 어려운 궁인들에게 사사로이 돈을 빌려주고 고리를 받은 것은 물론, 후궁들의 인척들에게 뇌물을 받고 또한 태후마마를 이용해 황제를 기만하는 등의 심각한 죄를 저질렀다.”

상소를 읽는 내내 태감의 얼굴은 핼쑥해지고 운서는 눈물을 뚝뚝 떨궜다. 전에는 고리를 받아도 눈감아주더니 이제는 그것을 빌미로 벌을 주려 하고 있었다.

“당장 형을 시행하라!”

황제의 명령에 금의위들이 널찍한 매를 들었다.

***

유난히 정무를 일찍 마친 연진이 현궁으로 돌아오자 태선각에는 영현궁의 내관과 여관들이 와 있었다. 그들은 황제를 보고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연진은 아침에 태감으로부터 운서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서둘러 일을 마치고 돌아온 참이었다.

“폐하를 뵈옵니다.”

“그대들이 이곳에 무슨 일인가? 혹시 어마마마께서 날 찾아오신 건가?”

“폐하, 태후마마께서 태선각에 오신 건 맞습니다. 그런데 폐하를 알현하러 오신 게 아니라 윤 내관의 상태를 살피러 찾아오신 겁니다.”

“…알았다.”

연진은 내관과 여관들을 헤집고 운서의 거처로 성큼성큼 다가가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문이 열리고 고 내관과 태의가 나왔다.

“폐하를 뵈옵니다.”

“고 내관과 태의도 들었군. 그래, 운서의 상태는 좀… 어떤가?”

“그게… 윤 내관의 피부가 약한 터라 엉덩이에 물집이 잡히고 진물이 나왔습니다. 약을 바르고 탕약을 처방했으니 며칠 후에는 걸을 수 있을 겁니다.”

태의는 심각한 표정으로 상태가 좋지 않다고 고했다.

“뭐라?! 며, 며칠 후에나 걷을 수 있다니? 아니, 태형을 고작 열 대 정도 맞았을 뿐인데 그 정도로 심한가?”

“…폐하, 태형은 비교적 가벼운 형벌이나 윤 내관이 워낙 체구가 작고 체질이 약한 구석이 있어서 건장한 금의위들의 매질이 몹시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태의는 그뿐이 아니라 자칫 내장이 상할 수도 있었다고 고했다. 그에 연진의 얼굴이 한겨울의 폭설처럼 창백해졌다. 태형을 당할 때 운서가 크게 울긴 했지만 걸음도 걷지 못할 정도로 몸이 상했을 줄은 몰랐었다.

연진의 머릿속이 창백해진 얼굴만큼 새하얗게 변해서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 탓에 손이 절로 덜덜 떨렸다. 태의가 연진을 향해 괜찮냐고 물었다.

“폐하,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아니다. 나는 괜찮으니, 태의는 매일 와서 운서의 몸을 살피거라.”

“예, 폐하.”

태의가 물러나자마자 연진은 정신없이 운서의 방문을 열었다. 작지만 안락하고 화려하게 꾸며진 방에는 연진이 운서를 위해 장인을 시켜 만든 침상이 있었다.

그 침상엔 운서가 엎드려서 훌쩍거리고 있고, 그 옆에서 태후는 그의 손을 잡고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연진은 정말 고통스러워하는 운서의 눈물에 가슴이 뜨끔했다.

“어마마마 오셨습니까.”

“…….”

태후는 연진이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지만 돌아보지도 않았고 아들의 부름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 폐하 오셨습니까?”

대신 운서가 비틀거리며 침상에서 일어났다. 연진은 하루아침에 핼쑥해져서 병자가 된 운서를 보고 죄책감에 고개를 떨궜다.

“운서야, 일어날 것 없다. 황상이 뭘 잘했다고 인사를 받누.”

“어마마마!”

“마마, 전 괜찮습니다. 폐하, 저는 괜찮으니 마음 쓰지 마십시오. 전부 소인이 잘못한 일이 아닙니까.”

운서는 또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전처럼 가짜 눈물이 아니라 진짜 닭똥 같은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

파리한 안색으로 눈물을 떨구는 운서를 보니 연진의 가슴이 아까보다 더 쓰렸다. 아니, 쓰린 것보다 가슴이 아린다는 게 더 정확했다.

연진은 운서에게 벌을 내린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운서를 아끼긴 해도 황제인 제 뜻을 거스르는 건 용서할 수 없었다. 게다가 계략을 꾸미고 모후를 부추기며 자신을 좌지우지하려 한 것은 더 용서할 수 없었다.

운서를 벌주지 않고 어제의 일을 그대로 넘겼다면 내관에게 휘둘리는 나약한 황제라는 비웃음을 샀을 것이다.

그런데 운서의 눈물을 보니 자신이 지나친 벌을 준 것 같아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내관이 된 운서는 태의의 말대로 몸이 그다지 튼튼하지 않았다. 그런데 부실한 몸으로 태형까지 당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황상, 저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내 그리 말을 했거늘 기어이 이 아이에게 태형을 내리시다니. 어떻게 운서를 그리 잔인하게 대하십니까? 운서가 그간 저와 폐하께 어떻게 했는데요! 아무래도 운서는 이곳에 둘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영현궁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운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심한 벌을 주냔 말입니다. 돈을 빌려주면 고리를 받을 수도 있고, 대신들에게 뇌물을 받는 내관이 운서뿐입니까?! 이 아이의 말을 들으니 그들이 억지로 쥐여줬다는데요.”

그제야 태후는 연진을 돌아봤다.

“내관들이 뇌물을 받는 건 하루 이틀의 일도 아닌 터. 황상이 이 아이에게 벌을 내린 건 하루빨리 후궁과 합궁하라는 이 어미의 잔소리를 막으려는 게 아닙니까?”

“…….”

“내가 황상의 꿍꿍이를 모르는 바가 아니니, 운서는 내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이곳에 두면 또 어미의 기를 꺾는다는 핑계로 이 아이에게 매질을 할지 모르니까요.”

할 말을 마친 태후는 밖에서 대기 중인 내관들을 불렀다. 그녀가 부리는 내관 중에서 젊고 튼튼한 이에게 운서를 업으라고 했다.

“어마마마, 운서는….”

“여러 말 마세요. 애초에 운서는 제 마음에 들어서 입궁시킨 아이입니다. 아무리 황상께서 이 아이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고 해도 제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절대로 황궁에 들이지 않았을 겁니다.”

냉랭한 기운을 내뿜은 태후는 그대로 나가려다가 다시 돌아섰다.

“황궁에서 이 어미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운서가 유일하단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제가 살뜰히 보살필 겁니다. 운서를 다시 데려가려거든 황손을 낳으세요. 그럼 돌려 드리지요.”

“…….”

연진이 아무 대답도 못 하는 사이 운서가 다른 내관에게 업혔다. 전이라면 연진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을 운서가 오늘은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연진은 운서가 태후와 함께 태선각을 떠나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

운서는 며칠 동안 영현궁에서 두문불출하며 상처를 치료했다. 태의가 매일 영현궁을 드나들며 운서를 돌보고 태후도 수시로 운서를 들여다봤다.

연진은 매일 영현궁으로 문안 인사를 오면서 운서를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태후가 냉정하게 거절했다. 몸과 마음의 상처 때문에 당분간 요양을 해야 하니 가만히 두라는 것이었다.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운서를 만나지 못한 연진은 어쩔 수 없이 현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가마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연진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내가 너무 심했던 것인가?’

운서에게 벌을 내린 건 이런저런 트집을 잡기 좋아하는 무리가 난리를 치기 전에 미리 그들의 입을 막고자 함이었다. 더불어 후궁과 합궁을 종용하는 모후의 기도 꺾고 싶긴 했었다.

게다가 스무 대를 때릴 것을 열 대로 감해주었고 금의위들도 살살 때렸다고 했다. 금의위들이 최선을 다해 살살 때리느라 고생했다고 했는데, 그런데도 물집이 잡히고 진물이 나올 정도라면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심했던 것 같았다.

“역시 내가 심했지.”

운서가 영현궁으로 업혀 가던 날 상처 입은 눈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쓰렸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살짝 벌만 준 건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만약에 운서가 그 일로 상처를 받아서 이대로 영현궁에 남겠다고 하면? 하긴 전날에는 입맞춤을 하고 몸을 더듬더니 그다음 날에 매를 때리면 아무리 오래된 사이라도 상처를 받을 것이다.

“…운서가 영영 안 돌아오겠다면 어쩌지?”

“폐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운서는 금방 돌아올 겁니다.”

“…그렇겠지.”

곁에 있던 태감이 연진을 위로했으나 사실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운서가 돌아올 마음이 있었다면 자신이 영현궁으로 갔을 때 얼굴이라도 비췄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몰래 자신을 불러서 태후의 화가 누그러지면 현궁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놈은 자신이 왔다는 걸 알아도 얼굴 한 번 내밀지 않고 외면했다.

‘괘씸한 놈! 그간 쌓은 정이 있는데 엉덩이 좀 때렸다고 내 얼굴도 보지 않고.’

괘씸하다고 욕을 했지만 운서가 없던 며칠 동안 연진의 가슴 한쪽은 뻥 뚫린 것처럼 허전했다. 허전한 것만이 아니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평소의 연진은 정무가 끝나면 늘 조금이라도 빨리 태선각으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태선각에서 운서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늦어도 왜 이제 오시냐고 타박을 받는 것도 좋고, 침소에서 운서가 제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걸 보는 것도 좋았다. 운서에게 수라나 의복 시중을 받는 것도 언제나 즐거웠다. 심지어 그의 잔소리도 짹짹거리는 참새의 귀여운 지저귐 같았다.

지금까지 운서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 외롭지 않고 즐거웠는데, 이제 그가 없는 것이다. 연진은 운서가 없는 썰렁한 전각으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농을 할 사람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툭 터놓고 말할 사람도 없었다.

‘아무래도 운서를 데려와야겠는데, 어마마마께서 계속 막으시니.’

운서의 몸 상태를 물으면 아직 좋지 않다고만 말씀하시고 얼굴이라도 보고 가겠다면 역정을 내셨다. 심지어 오늘은 문안 인사도 올 필요 없다고 하신 것이다.

태선각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운서가 없다는 생각만으로 연진은 마음이 불안하기까지 했다. 연진은 멀찍이 현궁이 보이자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 그는 침소로 돌아가 봐야 편히 쉬지도 못할 것 같아 가마를 멈추게 하고 유덕을 불렀다.

“태감.”

“부르셨습니까? 폐하.”

“…아침은 현궁에서 먹고 싶지 않구나.”

“그럼 어디로 모실까요?”

연진은 손가락만 까닥거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영현궁으로 돌아가서 운서를 데려오고 싶었지만, 태후가 허락할 리 없었다.

그때 유덕이 허리를 깊게 숙이며 눈빛을 빛냈다.

“…….”

“폐하, 홍안궁은 어떻겠습니까? 덕비마마라면 폐하의 심정을 잘 헤아려주실 겁니다.”

연진이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이 태감이 재빨리 홍안궁으로 가기를 권했다. 유덕은 눈동자를 굴리며 계속 연진의 눈치를 살폈다. 평소라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펄쩍 뛸 연진이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 맞다. 덕비라면 상심한 날 위로해주겠지. 태감, 오늘은 홍안궁으로 가서 먹겠다.”

“예, 폐하. 분부 받잡겠습니다.”

유덕은 내관들에게 어서 가마를 홍안궁으로 돌리라고 했다. 가마가 방향을 바꾸고 홍안궁으로 향하는 도중 유덕은 계속 연진을 힐끔거렸다. 황제가 마음을 바꾸진 않을지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그는 가마를 짊어진 이들에게 어서 서두르라고 채근했다.

그 시각 영현궁에서는 고 내관이 쉬고 있는 태후에게 헐레벌떡 달려갔다.

“마마! 마마, 태후마마!”

“고 내관, 왜 그리 호들갑이냐? 자네도 나이가 들어서 관절이 좋지 않으니 뛰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 마마. 지금은 제 관절보다…. 아니, 그보다 드디어 입질이 왔습니다.”

고 내관은 헐떡거리며 허리를 숙였다.

“입질이라니?”

“마마, 기뻐하십시오. 폐하께서… 폐하께서, 드디어 홍안궁으로 자진해서 납시셨답니다.”

“뭐라? 그게 참말이더냐?”

놀란 태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연진이 제 발로 홍안궁으로 갔다니, 아들을 혼인시킨 이후로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러하옵니다. 태후마마, 감축드립니다.”

“오, 이런 세상에! 드디어 황상이 정신을 차렸구나. 이럴 때가 아니지. 운서, 어서 운서에게 가자.”

“마마, 제가 불러오겠습니다.”

“아니다. 내가 직접 가겠다.”

태후가 긴 옷자락을 끌고 빠르게 복도를 걸었다. 그녀는 내관과 여관들을 우르르 몰고 운서가 치료를 받으며 머무는 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발걸음은 봄바람처럼 가벼웠다.

“운서야! 드디어 황상이 제 발로 홍안궁으로 들어갔다는구나!”

태후가 문을 벌컥 열자 동그란 탁자에 퍼질러 앉은 운서가 망과를 꾸역꾸역 먹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서역에서 ‘망고’라고 불리는 망과는 더운 지방에서 진상된 것으로 운서가 아주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며칠을 영현궁에서 뒹굴뒹굴하며 먹고 자는 일만 했던 운서의 얼굴은 포동포동하게 살이 올라 있었다. 혈색도 병자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좋았다.

“태, 태후마마 오셨습니까.”

입가에 망과즙을 묻히고 있는 운서가 냉큼 일어나서 무릎을 꿇었다.

“운서야, 어서 일어나거라. 아주 기쁜 소식이 있단다.”

“그게 무엇입니까?”

태후는 운서에게 손을 내밀었다. 운서가 제 손을 잡고 일어나자 아담한 손을 토닥였다.

“드디어 황상이 제 발로 홍안궁에 들었다는구나. 네 계획대로 되었다.”

“정말인 겁니까?”

“그래, 그렇다더구나.”

“태후마마, 드디어 뜻을 이루셨군요! 감축드립니다.”

운서는 좋아서 작은 발을 동동 굴렀다. 태형을 당했던 날 운서는 엎드려서 훌쩍거리는 와중에 또 계략을 짰었다. 그간 연진이 후궁전에 가지 않은 건 자신이 매일 놀아주고 이것저것, 그러니까 입맞춤 같은 걸 자꾸만 허락한 탓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잠시 떨어져 있고 싶어진 것이다.

운서는 바로 태후에게 서신을 보냈다. 자신이 몸이 안 좋은 걸 핑계 삼아 얼마간 영현궁에 있으면 마음이 적적한 연진이 후궁전에 찾아갈 거라는 계산이었다.

“역시 나한테는 네가 보약이구나. 네 덕에 곧 황손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두 손을 꼭 마주 잡은 태후와 운서는 색색의 옷을 입은 황녀와 황자 열두 명이 황궁을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지금까지 연진이 후궁전에서 밤을 보냈던 적이 없다는 걸 상기했다. 강제로 가뒀어도 아무 일도 없지 않았던가.

“…하지만 태후마마, 폐하를 만만히 보시면 안 됩니다. 홍안궁으로 납시신 건 분명 좋은 일이나 중요한 건 덕비마마와 함께 밤을 보내셔야죠. 전에도 저와 약조하시고는….”

그날 운서는 몸까지 바쳐서 황제를 보필했는데 연진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었다. 그날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억울한 운서가 태후에게 마음 약해지시면 안 된다고 주청했다.

“그래, 그렇구나. 연진이가 만만하진 않지.”

“아무래도 제가 이곳에 며칠 더 머물러야겠습니다.”

“그러려무나.”

태후는 기분이 좋아 뭐든지 네 뜻대로 하라면서 싱글벙글했다. 그녀는 운서의 손을 꼭 잡고 토닥였다.

“운서야, 몸은 이제 괜찮은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아프긴 했지만 애초에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요.”

운서의 엉덩이가 시뻘겋게 부어오른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진물이 나오고 며칠 걷지 못할 거라는 태의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운서가 영현궁으로 가기 위해 태후에게 거짓말을 해주십사 속살거렸고, 태의는 태후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었다.

“고 내관, 운서에게 망과를 더 가져다주어라. 오늘 저녁으로는 돼지 통구이를 해주고. 태형을 당한 후로 운서의 얼굴이 아주 핼쑥하구나.”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운서의 얼굴을 힐긋 본 고 내관은 저 아이의 얼굴이 핼쑥하기는커녕 너무 잘 먹어서 기름기가 줄줄 흐른다고 고하고 싶었으나 입을 다물었다. 겨우 태후의 기분이 좋아졌는데, 이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

정무를 마친 황제는 오늘도 홍안궁에 들렀다. 태선각으로 돌아가 봐야 운서가 없으니 심심했기 때문이었다. 연진은 낮은 의자에 턱을 괴고 앉아서 선오가 따라주는 차를 마셨다.

홍안궁은 덕비처럼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차를 따르는 선오의 표정도 평온했다. 날은 맑고, 차는 향기로웠다. 밖에는 꽃이 만개했는데, 연진의 기분은 여전히 우중충하기만 했다.

“덕비,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대의 말대로 이제 어마마마의 기분이 좀 풀리셨을까?”

“폐하께서 며칠 동안 계속 홍안궁으로 걸음을 하셨으니 그럴 거라 생각되옵니다.”

“그럼 왜 운서를 돌려주시지 않는 거지?”

“그야 폐하께서 저와 합궁을 하지 않으셨으니까요.”

선오가 붉게 칠한 입술로 살짝 웃었다. 승상의 손녀인 덕비는 현숙하기로 이름이 높지만, 색기가 은은하게 묻어나는 외모를 지닌 미인이기도 했다. 선오가 황제를 향해 입꼬리를 끌어 올려 요염하게 웃었다. 그런데 후궁의 매혹적인 모습에 끌리기는커녕 연진의 기분은 더욱더 가라앉기만 했다.

“어마마마는 예전부터 내게 화를 낼 일이 있을 때마다 운서를 빼앗으셨지.”

“윤 내관을 영현궁으로 데려가면 폐하께서 바로 잘못했다고 하시니 이번에도 그리하신 게 아닙니까.”

“…….”

“폐하, 오늘은 주무시고 가시지요. 그러면 태후마마께서 윤 내관을 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대는 내가 여기서 자고 가면 좋겠소?”

“글쎄요.”

선오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대의 웃음을 보니 술이 당기는군.”

“그럼 주안상을 내오라고 하겠습니다. 폐하, 이 자리에 은혜도 불러주시지요. 오랜만에 셋이서 악기라도 연주하면 어떨까요?”

“그거 좋지. 현비의 비파 소리는 서국에서 제일이니까.”

“폐하의 비파 소리도 제법이십니다.”

“고맙군.”

“폐하, 윤 내관도 폐하의 비파 연주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오늘은 날도 좋으니 윤 내관을 불러서 연주라도 해주시지요. 그러면 폐하의 정성에 현궁으로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영현궁으로 가도 그놈이 얼굴도 내밀지 않고, 현궁 쪽은 쳐다보지도 않으니…. 역시 내가 잘못한 건가?”

“폐하, 폐하께서는 잘못이 없으십니다. 서국의 군주로서 해야 할 일을 하셨을 뿐인걸요.”

선오는 연진이 아무리 운서를 아낀다고 하지만 잘못을 저질렀을 때 벌주지 않으면 궁 안의 질서를 바로 세울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연진도 그 말에 동의했다.

“그렇지. 그대의 말이 맞소. 나는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그럼 어마마마께서 너무 고집을 부리시는 건가?”

“그것도 아닙니다. 태후마마께서는 윤 내관을 아끼는 마음에서 편을 드셨을 뿐인데, 황실의 어른께서 내관을 아끼는 게 무슨 흠이겠습니까. 잘못이 있다면 상소를 올려 폐하와 태후마마의 성심을 어지럽힌 사람이지요.”

선오의 말은, 내관은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청탁을 받은 것도 아니고, 백성을 해하는 비리를 저지른 것도 아니니, 그깟 뇌물을 받은 건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러니 내관이 작은 뇌물을 받은 것을 편들어 준 태후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러나 운서가 황제를 기만한 건 사실이니, 벌을 준 연진의 잘못도 아니었다.

“아, 그렇군.”

“그 사람을 잡아서 황궁을 소란하게 한 벌을 내리십시오.”

“그래! 그러면 되겠군. 덕비, 나는 그대처럼 어진 사람은 여태껏 보지 못했소. 승상께서 그대가 그대의 오라비들보다 생각이 깊다고 했는데, 그대가 사내였다면 국정에서 요직을 맡겼을 것이오.”

선오는 연진에게 필요한 조언만, 그것도 그의 마음을 읽는 것처럼 옳은 말만 해주었다.

“과찬이십니다.”

“과찬이라니. 내가 모자라 그대를 황후로 만들어주지 못해 미안할 뿐이오.”

연진은 자신의 부덕함을 미안해하며 선오의 고운 손을 잡았다. 부드럽고 따스한 손을 잡은 두 사람은 호의로 가득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황제와 후궁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도 한 사람은 좌불안석이었다.

그 사람은 황제와 덕비의 말을 엿듣던 여관 무하였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무하는 주안상을 차리는 건 다른 여관들에게 미루고 황제와 덕비의 대화를 엿들으면서 덜덜 떨고 있었다. 운서를 비방하는 상소를 쓴 사람이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무하는 가깝게 지내던 형부의 관리를 꾀어 익명으로 상소를 올렸다. 대가로 그에게 적당히 뇌물도 주고 자신의 주인이 황후가 되면 출세시켜주겠다고 약속도 한 것이다.

미운 놈을 혼내주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저지른 일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더 큰 벌을 받게 생겨버렸다.

***

황제가 며칠 홍안궁에 출입하는 동안 운서는 여전히 영현궁에서 할 일 없이 뒹굴뒹굴 놀고 있었다. 운서는 태후가 챙겨준 화과자를 먹으면서 궁인들에게 한창 인기라는 통속 소설을 읽고 있었다.

“영현궁의 궁인들은 이런 걸 읽는구나.”

꽤 야한 소설에 얼굴을 살짝 붉힌 운서였지만 서책을 놓지 못하고 연신 눈으로 훑었다.

한참 글을 읽던 운서는 깜빡깜빡 졸기 시작했다. 그가 잠에 빠져들기 직전, 갑자기 누군가가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고 말았다. 운서는 창문으로 쪼르르 가서 자신을 부른 사람을 확인했다.

‘폐하?! 아니, 이 시간에 여긴 어인 일이십니까?’

‘내가 못 올 곳을 왔느냐?’

‘그런 게 아니라….’

지금은 한밤중이었다. 연진이 행차도 알리지 않고 몰래 자신에게 와서 놀란 운서였다. 그는 연진이 기어이 자신을 데리러 왔다고 생각했다. 연진은 커다란 몸과 기다린 다리를 이용해서 창을 넘었다.

‘폐하, 그렇지 않아도 현궁으로 돌아가려고 했었습니다.’

‘흐음, 그러냐.’

연진은 운서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기다란 팔을 뻗었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운서의 작은 몸을 확 끌어당겨서 입술부터 댔다.

‘……!’

연진에게 끌어안긴 운서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버둥거렸다. 하지만 연진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침상으로 끌려갔다. 침상에 눕혀지자마자 운서의 바지를 빠른 손놀림으로 벗겨낸 연진이 그에게 다시 입맞춤하는 것과 동시에 아랫구멍을 지분거렸다.

‘운서야, 운서야.’

연진이 운서의 작은 입술을 핥으면서 음문에 손가락을 꽂고 돌렸다. 기다랗고 굵은 손가락 두 개가 빙글빙글 돌면서 점막을 어루만졌다.

‘아앗, 폐하. 또… 제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가만히 있거라. 아니 다리를 더 벌려라. 네 음문을 자세히 보고 싶구나.’

연진은 빨리 다리나 벌리라고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운서의 속살을 깊고 얕게 쑤시고 이리저리 뒤적거리듯 움직였다.

‘으응, 폐하, 손가락이 너무 굵어서…, 앗. 아, 안 됩니다.’

헐떡거리는 운서가 연진의 손가락을 제 점막으로 조이면서 말했다. 그러나 연진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안쪽으로 더 파고들어서 빙글빙글 돌아갔다. 속살이 굵은 손가락 때문에 이리저리 휘저어졌다.

‘하앙, 앙. 제발요….’

깊은 곳과 전립선이 훑어지는 자극에 운서가 허리를 떨며 자지러졌다.

‘운서야, 다리를 벌려 음문을 보이면 네가 가장 원하는 것을 주마.’

‘…제가 원하는 거라고요?’

‘그래. 이것 말이다.’

연진이 제 바지를 풀고 발기한 것을 꺼냈다. 우람하고 울퉁불퉁한 성기는 운서를 향해서 완전히 발기해 있었다. 음액이 흘러나오는 귀두는 여전히 커다랬고, 기둥의 핏줄이 운서를 향해 꿈틀거렸다.

‘헉!’

운서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연진은 그런 운서를 보며 낮은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운서의 눈앞에서 제 육봉을 커다란 손으로 훑었다.

‘이걸 네놈의 아랫구멍에 꽂아주길 바라지?’

그가 핏줄이 성성한 기둥을 쓰다듬을 때마다 분비액이 투둑투둑 떨어졌다. 그것은 반쯤 발기한 운서의 양물에 떨어졌다. 운서는 그것만으로 속살을 조이며 헐떡거렸다.

운서의 눈이 연진의 커다란 성기는 물론, 훤칠한 몸과 단정하고 잘생긴 얼굴을 찬찬히 훑었다. 침을 꿀꺽 삼킨 운서는 천천히 다리를 벌렸다. 그가 다리를 벌리자 엉덩이까지 벌어져서 연진의 손가락이 꽂힌 밑구멍이 드러났다.

‘하아… 폐하.’

‘역시 넌 이걸 원하는구나. 곧 깊게 넣어주마.’

‘폐하!’

운서는 어서 넣어달라는 듯 발갛게 달아오른 음문을 계속 움찔거렸다.

“헉!”

침상에서 졸고 있던 운서가 “헉.” 소리와 함께 벌떡 일어났다. 통속 소설을 읽고 있었는데 그새 졸았는지 그만 꿈까지 꾸고 말았다.

“아이고, 내가 미쳤지. 그런 망측한 꿈을 다 꾸고!”

운서는 제 얼굴을 찰싹찰싹 때리며 미쳤다고 중얼거렸다. 연진이 아무리 서국의 황제라도 제가 키우다시피 했는데, 그런 아이와 이런저런 일을 하는 발칙한 꿈을 꾸다니. 황제의 시중을 드는 내관으로서도 적절치 못한 일이었다.

자책하는 운서의 얼굴은 음란한 꿈 때문에 이미 붉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아니, 이런저런 일은 벌써 했지.”

운서는 연진의 커다란 양물을 입에 담고 한껏 빨았던 일을 떠올리며 멍해졌다. 연진의 목욕 시중을 들 때마다 직접 닦아주며 틈틈이 보긴 했었지만 자신을 향해 발기한 것은 참 굉장했었다.

‘폐하께서 체구가 크시니 그것도 참….’

만약 삽입까지 한다면 제 엉덩이가 완전히 벌어져서 아플 것 같았다. 다시 얼굴을 붉힌 운서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핥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제 뺨을 또 때렸다.

“내가 정말 미쳤구나. 폐하께서 후궁마마들과 매일 합궁을 하셔도 모자랄 판국인데 다른 마음을 품으려 하다니.”

아까 야한 글을 읽었기 때문인지 운서의 머릿속은 온통 연진과 침상에서 뒹굴었던 생각으로 가득했다. 여전히 얼굴이 불그죽죽한 운서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품에 넣었던 서신 하나를 꺼냈다.

서신은 오늘 아침에 받은 것으로 찬이 보내온 것이었다. 찬은 정갈한 글자로 며칠 내로 황궁에 도착할 거라고 알렸다. 심지어 보고 싶다고 쓰기까지 했다.

“뭐야, 서신이 왜 이렇게 달큰하냐. 이 서신을 보낸 놈이 그 차갑던 놈이 맞아?”

침상에서 내려온 운서는 서신에서 눈을 떼지 않고 탁자에 놓인 화과자를 크게 베어 물었다. 운서는 작은 뺨을 우물거리며 서신을 다시 읽어 내렸다. 자신을 좋아한다더니 그 말이 진심인지 하는 짓이 아주 기특했다.

“찬은 날 이리 좋아해 주는데, 난 다른 사내를 두고 몹쓸 생각이나 하고 있고. 민망하고 죄스러워서 그를 볼 낯이 없겠구나.”

연진을 두고 야한 생각을 한 것은 물론, 찬과 밤을 보내놓고 연진과 그런 짓도 해버리지 않았던가.

“아니지! 폐하와의 일은 내관으로서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황제가 벗으라면 벗는 게 내 일이거늘.”

운서는 계속 그 밤의 일을 그저 황제와 내관의 일일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연진과 입을 맞추거나 몸을 비비거나 하는 일에 의미를 두면 자신만 괴롭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연진과의 일은 내관으로서의 일이고 연애는 사생활이라고 간주하자 운서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잠깐, 며칠 내로 찬이 온다면 나도 이제 슬슬 현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계속 영현궁에 있으면 찬이 돌아와도 반겨줄 수 없었다. 게다가 찬과 다시 좋은 시간도 보내야 하는데, 밤에 몰래 그의 처소로 갈 수도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이제 슬슬 현궁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아침에 현궁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 운서는 먹던 과자를 정리하고 침상으로 올라갔다. 침구 안으로 쏙 들어간 운서가 막 잠이 들려는 찰나였다. 창문에서 톡톡거리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밖에서 창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누구지?”

운서는 혹시 찬이 벌써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화과자 부스러기를 입가에 묻힌 그대로 창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런데 창문을 두드린 사람은 찬이 아니라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서 있었다.

“…폐하?!”

“그래, 나다.”

창밖에는 연진이 비파를 들고 서 있었다. 마치 아까의 꿈처럼.

“아니, 이 야심한 시간에 이곳에 폐하께서 왜…? 게다가 혼자 오신 겁니까?”

운서는 주위를 살폈지만 다른 내관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비파를 들고 있는 연진은 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조금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내관들은 영현궁 밖에 있고 이곳에는 나 혼자 들어왔다. 시끌벅적하게 행차하면 어마마마께서 또 날 내쫓을 게 아니냐. 그보다 운서야, 잠시 나오지 않겠느냐?”

“…알겠습니다.”

운서는 의자를 가져와서 창을 넘어갔다. 연진이 그런 운서의 몸을 안아서 땅으로 살며시 내려주고 작은 손을 잡아끌었다.

“이리 와라.”

“폐하,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잔말 말고 따라오너라.”

연진은 운서를 거의 강제로 질질 끌며 영현궁의 넓은 정원으로 갔다. 정원의 한쪽에는 호수가 있고, 호수 위에는 세 층으로 된 정자가 있었는데, 그 주위에는 꽃들이 만발했다.

운서의 작은 손을 잡은 연진은 정자로 향했다. 등불이 켜진 긴 다리를 운서와 함께 건너는 연진은 이제야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꽃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정자에 다다른 연진이 태후가 즐겨 앉는 의자에 앉았다.

“밤이라 그런지 조용한 호수가 더 운치 있게 느껴지는구나. 꽃향기도 아주 좋고.”

“밤이라 꽃들이 전부 잠을 자는데 향기가 다 무엇입니까.”

“분위기 깨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라.”

등나무로 만든 의자에 앉은 연진이 제 옆자리를 가리켰다. 운서는 입을 삐죽거리면서도 순순히 그의 옆에 앉았다. 비파를 가져온 걸 보니 오랜만에 연주를 들려줄 생각인 것 같았다.

“폐하, 이 밤에 비파는 왜 가져오신 겁니까?”

“네 기분을 풀어주려고 그런다.”

연진은 다른 말은 하지 않고 바로 비파 연주를 시작했다. 연진의 커다란 두 손이 유려하게 움직이며 현을 튕겼다. 그가 손가락을 한 번, 또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운서는 오랜만에 듣는 연진의 비파 소리에 두 손으로 턱을 괴고 가만히 연주를 감상했다.

연진이 연주하는 곡은 ‘뱃놀이’라는 곡으로 사랑하는 이를 앞에 두고 고백하지 못하는 남자가 뱃놀이를 통해 아름다운 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이 곡은 연진이 비파를 배울 때 처음으로 연습한 곡이었다.

하늘이 어두워질수록 달은 밝아지고, 점점 빨라지는 곡조에 맞춰 바람이 불어왔다. 살랑거리는 바람은 깊은 잠에 빠진 꽃을 흔들어 깨우고 정자 주위를 감싼 등불을 흔들고 어딘가에 모여 있던 반딧불이까지 데려왔다.

정자 주변에 반딧불이들이 날아다니고 한밤에 깨어난 꽃들이 다디단 향기를 내뿜었다. 사랑스러운 반딧불을 보며 연주를 듣는 운서의 얼굴은 발그레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연진은 운서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봤다. 강직한 눈과 순수한 눈동자가 마주치고 시선이 섞였다.

“폐하….”

“운서야.”

연진과 운서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때 태후의 침소가 있는 명성각의 3층에서 누군가가 그런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저 아이는 이 밤에 왜 저기서 비파 연주를 하는 게냐?”

태후였다. 비파 소리에 잠이 깬 태후는 연진을 못마땅하게 내려다보고, 그 곁에서 고 내관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고 내관의 눈에는 황제와 운서가 사랑싸움을 하고 이제야 화해를 한 알콩달콩한 연인처럼 보인 것이다. 전에도 황제가 운서에게 집착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는데, 오늘 보니 제 생각이 맞는 듯했다.

“…그게, 아무래도 운서를 데리러 오신 듯합니다.”

차마 연진이 운서에게 연애 감정을 품었다고 말할 수 없는 고 내관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밤인데도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홍안궁에 들었으면 거기서 주무실 일이지 이 밤에 영현궁까지 오실 이유는 뭔지. 운서는 내일 데려가도 될 텐데.”

후궁전에 들었으면 거기서 침수 들어야지, 후궁들과 기분 좋게 술까지 마셨다면서 황제가 이 밤에 운서를 데려가겠다고 영현궁까지 걸음 한 이유를 도통 알 수 없었다.

태후는 아무리 귀한 아들이라도 황제만 아니었으면 당장 내려가서 등짝을 후려치고 싶었다.

“황제께서 운서의 마음을 얻으려고 아주 애를 쓰시는구나. 고 내관, 누가 보면 운서가 후궁인 줄 알겠네. 안 그런가? 선황제께서 내가 막 입궁했을 때도 저리하셨거늘.”

“그, 그러니까….”

고 내관은 땀을 뻘뻘 흘렸다. 그가 대답하지 못하고 허둥거렸지만, 태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오랜만에 먼저 간 남편이 조금은 그립다면서 한숨을 쉬고, 다시 연진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운서에게 벌을 내릴 때부터 이럴 줄 알았다고 혀를 찰 뿐이었다.

“고 내관, 나는 이만 자야겠으니 황상께서 연주를 다시 하시려거든 시끄러우니 현궁에 가서 하시라고 전하거라.”

“예, 마마. 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태후를 향해 허리를 숙인 고 내관은 침소의 문을 닫고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는 난간에 매달려 두 눈을 부릅뜨고 황제와 운서가 있는 곳을 확인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 내관은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기 전에 어서 떨어뜨려 놔야겠다고 허둥지둥 계단을 내려갔다.

***

“운서야.”

비파 연주를 멈춘 연진이 나직한 목소리로 운서를 불렀다. 짙은 갈색 눈동자가 운서의 맑은 이마부터 작고 동그란 콧날과 진주처럼 빛나는 눈동자 그리고 사랑스러운 입술을 차례로 훑었다.

그런데 연진의 시선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운서의 작은 입술을 진득한 눈길로 더듬었다. 호수를 밝게 물들이는 달빛 때문인지 운서의 하얀 얼굴이 유독 고와 보였다.

“…운서야.”

연진은 아까보다 더 낮고 다급한 목소리로 운서를 불렀다. 그는 운서의 반들반들한 입술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가 점점 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는 운서의 입술이 탐스러웠다. 핥으면 복숭아 맛이 날 것 같아 연진은 바로 입술을 붙였다.

“에구머니나! 폐하, 또 왜 이러십니까?”

운서는 또 화들짝 놀라서 얼른 의자에서 일어나 연진에게서 한 걸음 떨어졌다.

“네 입술이 맛있어 보여서 그런다. 반들반들하니 오늘따라 곱기도 하고 핥으니 달짝지근하기도 하구나.”

“…‘반들반들’이라고요? 아, 아까 화과자를 먹어서….”

운서는 제 입술이 반들반들하고 달짝지근한 건 좀 전까지 화과자를 먹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소매로 입술을 쓱쓱 닦았다. 그런데도 연진의 눈에는 운서의 입술이 아직 반들거리고 탐스러워 보였다.

“그래도 맛있어 보인다.”

“히익!”

운서가 놀라서 물러서자 연진이 바로 따라붙었다.

“운서야, 이리 와봐라. 아직도 단맛이 나는지 입술 한 번만 더 핥아보자.”

“폐하! 이러시면 안 된다고 거듭 말씀드리지….”

이러면 안 된다고 운서가 계속 뒷걸음질하는데, 연진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와서 운서의 가는 손목을 잡았다. 그가 몸을 숙여 운서의 입술을 찾는 순간, 계단을 헐레벌떡 내려온 고 내관이 연진을 불렀다. 그는 헉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폐, 폐하 오시었습니까?”

“아니! 고 내관님! 여긴 어떻게?”

운서는 제 입술을 노리는 음흉한 황제를 밀어내고 고 내관을 향해 허둥지둥 머리를 숙였다.

“고 내관, 잠은 안 자고 야심한 시각에 여기서 뭘 하는 건가? 무릎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설마 저 계단을 다 내려온 건가?”

“…….”

야심한 시간에 뭘 하고 있었냐니? 고 내관은 그거야말로 제가 묻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영현궁의 궁인들이 다 볼 수 있는 정자에서 황제가 소꿉동무를 붙잡고 입술 한번 붙여보려고 안달하다니. 선황께서 아시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실 일이었다.

‘아직 후계자도 없는 폐하께서 남색이라니. 천 년을 이어온 사직이 무너지는 순간이구나.’

황제가 나랏일은 생각하지 않고 남색이라니. 제정신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보잘것없는 내관이 감히 서국의 천자에게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는 수 없이 태후의 이름을 팔기로 한 고 내관은 흠흠 기침을 했다.

“태후마마께서….”

“어마마마께서?”

“예, 태후마마께서 시끄럽다고 하시며 다시 비파를 연주하실 거라면 현궁으로 돌아가시라고 하셨습니다.”

“아, 그런가? 내가 어마마마의 잠을 깨웠군. 실은 오늘 내가 홍안궁에서 현비와 비파를 연주했는데, 그간 연습을 게을리해서 실력이 아주 형편없지 뭔가. 그래서 현비에게 사사 받던 중에 오늘따라 연주가 잘 되기에 운서에게 들려주려고 왔네. 겸사겸사 이 아이도 데려가고.”

고 내관은 다시 변명처럼 길게 말하는 연진 때문에 속으로 신음만 흘렸다. 말인즉슨, 운서를 데려가겠다고 이 밤에 영현궁까지 왔다는 것이다. 그것도 행차도 알리지 않고 몰래.

“아, 그러십니까.”

“그렇다네. 고 내관, 내일 어마마마께 죄송하다고 전해 드리게나. 그럼 나는 이만 운서를 데리고 돌아가겠네.”

“…예.”

고 내관은 운서는 두고 가시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감히 황제에게 명령할 수 없었다. 그는 연진이 운서의 작은 몸을 달랑 들어서 옆구리에 끼고 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운서는 연진에게 얌전히 매달려 있었다. 연진이 그를 내려다보니 딴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 아무 말 없이 딸려 오는 운서에 연진은 정원을 가로지르던 걸음을 멈췄다.

“운서야, 네가 순순히 따라오다니 무슨 속셈이냐?”

“속셈이라니요? 저도 이제 슬슬 현궁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정말이냐?”

연진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운서의 눈치를 살폈다. 아까까지는 운서가 사랑스러워서 입맞춤하지 못해 안달했지만, 꿍꿍이를 꾸미듯 골똘히 생각에 잠긴 운서는 달갑지 않았다.

“예, 그러니 이것 좀 잠시 놔주십시오. 잠시 머물던 곳에서 가져올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

“놓아주시면 금방 알게 되실 겁니다. 얼른 가져올 테니 기다리세요.”

연진이 운서를 놓아주자 그는 작은 발로 뽈뽈,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얼른 전각으로 들어갔다. 연진은 팔짱을 끼고 운서가 들어간 문을 뚫어지라 지켜보고 있었다.

만약에 백을 셀 때까지 운서가 나오지 않으면 도망쳤다는 것으로 간주하고 직접 들어가서 잡을 생각이었다.

‘잡으면 이번엔 내 손으로 직접 저 요망한 놈의 엉덩이를 때려줘야지. 아프지 않게 살살.’

연진은 아주 살살, 토닥토닥 때리겠다고 생각하며 기분 좋게 씨익 웃었다. 그래도 운서는 아프다고 죽는다고 엄살을 떨 것이었다. 몽글몽글하고 통통한 엉덩이를 때리는 상상을 해버린 연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운서의 엉덩이는 보나 마나 뽀얗고, 작고, 탱글탱글할 것이다. 그런 곳을 제 손으로 찰싹찰싹 때리는 행동이 선정적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제 손으로 매를 맞으면서 운서가 앙앙거리며 야하게 울면? 아니, 저번처럼 운서의 엉덩이 속을 손가락으로 만졌을 때처럼 헐떡거리면?

“……!”

운서가 제 앞에서 하얀 엉덩이를 까고 앙앙거리는 모습을 잠시 상상한 것만으로 연진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미쳤구나. 운서의 엉덩이를 때리는 상상을 하면서 흥분을 하다니. 운서가 귀엽긴 하지만…. 으음.’

연진은 낮은 신음을 흘렸다.

생각해보면 자신은 운서와 입맞춤하는 걸 좋아했다. 운서만 보면 만지고 싶고 입 맞추고 싶은 마음과 그의 벗은 엉덩이를 떠올리고 흥분하는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연진의 머리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연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는 운서는 비단 보자기에 싸인 상자 하나를 품에 소중히 안고 달려왔다.

“흠, 그게 무어냐?”

“태후마마께서 소인께 내려주신 하사품이옵니다.”

운서는 이것만은 연진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상자를 꼭 안았다.

“네놈이 애지중지 들고 있는 걸 보니, 보나 마나 돈이 들었겠지. 안 뺏는다, 안 뺏어!”

“헤헤, 감사합니다. 폐하, 제가 이제 궁에서 돈놀이를 관두고 고리를 받지 않겠다고 하자 태후마마께서 상으로 주신 것입니다.”

운서가 상자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내가 네놈에게 녹봉을 안 주는 것도 아니고, 먹을 것이며 비단옷에 용돈까지 따로 챙겨주는데, 웬 돈을 그리 밝히는 것이냐?”

“폐하, 저의 꿈이 있다면 일찍 은퇴해서 단란한 가족을 갖는 게 소원입니다.”

“…뭐?!”

“저 같은 내관이 가족을 꾸리려면 무엇보다 돈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돈이 아니면 누가 저처럼 아랫도리가 허전한 내관에게 시집을 오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니 한 푼이라도 부지런히 모아야죠.”

세상에서 돈이 최고라며 상자를 쓰다듬은 운서는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어서 현궁으로 돌아가자고 덧붙였다.

“…….”

잠시 말없이 운서의 말을 듣던 연진은 그대로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운서는 그런 그를 종종거리며 따라갔다.

영현궁 밖으로 나가자 황제의 어가가 대기하고 있었다. 튼튼한 나무로 만들어진 황제의 가마는 지붕이 있고 그 아래로 얇은 천이 드리워져 있었다.

가마 주위로 내관들과 금의위들이 엎드려서 황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진이 가마 위로 올라갔다. 뒤이어 상자를 끌어안은 운서가 가마 옆으로 가자 연진이 그의 팔을 잡았다.

“운서야, 내 다리 위로 올라오너라. 함께 가마를 타고 가자.”

“무, 무슨 망극한 말씀이십니까?! 천한 제가 어찌 폐하의 무릎에… 무릎에 앉다니요! 하늘이 노하여 경을 칠 일입니다.”

운서는 벼락 맞을 일이라며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역사상 황제에게 총애를 받던 내관은 많았으나 주인의 무릎에 앉은 종은 없었다. 아무리 천하를 호령하는 천자라 해도 나라의 지엄한 법도는 깰 수 없는 법이었다.

“그러지 말고 이리 오너라. 지금은 밤이라 보는 이도 없고, 이자들은 입을 다물 것이다.”

그래도 연진은 고집을 부렸다.

“폐하….”

“어서! 황명을 어길 생각이냐?”

“이 일을 태후마마께서 아시면 아무리 제가 예쁨을 받는다고 해도 봐주시지 않을 겁니다. 바로 태형 50대를 내리실 거라고요.”

운서는 태형 50대를 맞으면 바로 죽을 거라고 엄살을 떨었다. 그러나 연진은 운서의 팔을 놓아주지 않았다.

“내관 윤운서는 짐의 명령을 따라라!”

엄한 목소리로 황명을 따르라는 말에 운서는 가마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부디 다른 이들이 보지 않기를 바라면서.

운서가 파리한 얼굴로 가마에 오르자 연진이 그를 제 무릎 위로 올렸다.

“폐하!”

“가만히 있어라.”

연진이 어가를 출발시켰다. 얇은 천이 드리워진 가마 안에서 운서는 연진에게 안겨 있었다.

“엉덩이는 괜찮으냐?”

허리를 감싸고 있던 연진의 손이 어느새 운서의 엉덩이 주변을 배회했다. 운서는 그의 손을 의식하며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는 괜찮습니다.”

“…내가 미안하구나. 너를 벌한 일로 덕비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운서의 허리에서 슬금슬금 내려온 연진의 손이 운서의 엉덩이를 살살 더듬었다. 운서는 연진의 손을 잡고 제 엉덩이에서 떼어냈으나 그의 손은 다시 달라붙었다.

운서는 다시 연진의 손을 떼어내려고 했으나 커다란 손은 고집스럽게 그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렸다.

“제가 잘못한 일이 아닙니까. 폐하의 총애를 빌미로 고리를 받아 폐하의 체면을 구기고 법을 어겼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지요.”

“그래도 내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넘어가던 일이 아니냐. 너그럽지 못한 처사였다. 네가 서운해서 어마마마를 따라간 것도 이해한다.”

“폐하, 아끼는 신하라고 해서 잘못을 감싸주고 그냥 넘어가면 백성들의 원성을 살 겁니다. 군주가 사사로운 정 때문에 신하들의 잘못에 너그러워지는 건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이 아닙니까.”

“알았다. 그래도 너의 마음을 상하게 했으니 잘못한 게 맞는 것 같구나.”

“제가 뭐라고…. 폐하, 그럼 제 엉덩이에서 손이라도 좀 떼시지요!”

“아직 아픈 곳은 없는지 살펴보는 게 아니냐.”

“벌써 다 나았다니까요!”

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짜증을 냈다. 그래도 연진은 뭐가 좋은지 실실 웃기만 했다. 마치 뼈다귀를 얻은 강아지 같아서 운서도 웃음이 나왔다.

망극한 생각이지만 운서는 연진이 본가에서 키우는 강아지처럼 귀여워 보였다. 강아지는 벌써 성견이 되어 몸이 집채만큼 커졌는데도 자신만 보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쫓아다니는 것이 완전히 연진과 판박이였다.

운서가 다른 생각에 빠진 중에도 연진의 엉큼한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아픈 곳이 없는지 살피는 것치고는 엉덩이를 만지는 연진의 손길은 너무 노골적이었다. 연진은 두 손으로 운서의 양쪽 엉덩이를 꽉 움켜쥐고 주물럭거리더니 뺨에 입까지 맞췄다.

“운서야, 약이라도 발라주랴? 내가 잘못했으니, 친히 네 엉덩이를 살펴서 약을 발라주마.”

좁은 가마 위라서 도망칠 수도 없는 운서가 연진을 한껏 째려봤지만, 그는 즐겁게 작은 엉덩이를 주물럭주물럭 만지기만 했다. 운서는 포기했는지 그냥 은자가 든 상자만 끌어안고 있었다.

그런 운서를 빤히 보던 연진은 만지고 있는 작은 엉덩이에 입을 맞추고 싶어졌다. 왠지 다리 사이도 자꾸만 벌떡거려서 괜히 운서의 뺨만 입술로 지분거렸다.

“운서야, 은퇴할 생각은 말고 그냥 내 곁에 있어라. 네가 좋아하는 돈도 주고 대궐 같은 집도 주마.”

“싫습니다. 늙어서는 손주들 재롱을 보는 재미로 살아야지요. 가뜩이나 내관은 사생활도 거의 없는데, 그때까지 폐하께 엉덩이가 주물러지긴 싫습니다.”

“하하하, 넌 늙어서도 귀여울 것 같은데….”

“…….”

운서는 계속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는 황제의 손길에 입을 딱 다물고 고개를 팩 돌렸다.

연진은 그런 운서가 귀여운지 아니면 순순히 자신을 따라나선 게 기특해서인지 말랑한 뺨에 입술을 가져갔다. 연진이 쪽 하고 입을 맞추자 운서의 눈가가 미미하게 붉어졌다.

“운서야.”

운서의 이름을 가만히 부른 연진이 다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자 운서는 그를 힐긋 노려봤다. 그래도 운서는 입맞춤을 거절하진 않았다.

“폐하, 한 번만입니다.”

운서가 못을 박자 연진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연진은 운서의 몸을 바짝 끌어다가 안고는 천천히 입을 맞췄다. 촉촉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입술이 맞닿았다.

입술을 한 번 뗀 연진이 다시 깊게 입술을 눌렀다. 그는 작게 떨리는 운서의 입술을 핥고 혀를 넣었다. 연진은 운서의 작은 혀를 핥고 입안을 훑으며 가느다란 허리를 단단히 잡고 가슴을 더듬었다.

마침 가마는 현궁에 도착하여 황제의 침소가 있는 태선각에서 멈췄다. 연진은 제 무릎 위에 올린 운서를 그대로 안고 전각으로 들어갔다.

운서는 두 볼을 부풀리고 계속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입맞춤만 하겠다면서 제 엉덩이는 물론 가슴까지 실컷 주물럭거린 것이다.

“왜, 또 심통을 부리느냐? 내가 뭘 잘못한 거냐?”

“…이제 내려주십시오.”

“알았다.”

연진이 그를 내려주자마자 운서는 허리를 숙여 밤이 늦었으니 이만 물러가겠다면서 빠른 걸음으로 제 처소로 쏙 들어갔다. 그것을 보고 피식 웃은 연진이 운서를 따라갔다.

“기껏 태선각으로 돌아와서 내관이 황제의 시중도 들지 않고 나보다 먼저 자겠다는 것이냐?”

“오늘은 폐하의 시중을 들고 싶지 않으니 다른 내관을 부르시지요.”

“뭐라?!”

“폐하께서 절 희롱거리로 여기시니, 몸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커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폐하를 성심으로 모셨었는데 저잣거리의 흉악한 사내들처럼 구시지 않습니까. 모든 건 제가 폐하를 잘못 보필한 탓이니 오늘은 밤새 자지 않고 반성하렵니다.”

후궁들에게는 세상 점잖은 황제가 자신 앞에만 있으면 유곽에 놀러 온 사내들처럼 짓궂은 행동을 했다. 운서는 연진의 행동을 내버려 두면 나중에 고생하는 건 저일 테니 지금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운서는 벽장으로 쓰는 쪽방에 상자를 고이 두고 두꺼운 서책을 꺼냈다. 그 책은 궁인들의 수칙이 적힌 것으로 모든 궁인이 입궁할 때 달달 외워야 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에 연진이 잘못을 할 때마다 운서는 태감에게 혼이 났었다. 그때마다 운서가 받은 벌이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저 서책을 밤새 소리 내어 읽는 것이었다.

운서가 책을 읽을 때마다 어린 연진은 안절부절못하며 잠도 자지 못했었다.

“…내가 잘못했다. 널 희롱거리로 생각하다니, 그건 절대 아니다.”

“그래도 소인의 잘못입니다. 제가 주제도 모르고 만인지상인 천자와 너무 친근하게 어울린 탓이니, 오늘은 저의 천한 본분을 다시 깨닫고자 스스로에게 벌을 줄 것입니다.”

“운서야.”

“저는 여기서 책을 읽겠으니 폐하께서는 어서 침수 드시지요.”

“그게 아니라, 희롱거리가 아니라 널 볼 때마다 만지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어서….”

“……!”

“손이 절로 다가가고 네 입술에 입 맞추고 싶고, 또 네 가느다란 목덜미에 입도 비벼보고 싶고 전처럼 널 벗겨서….”

“으아악! 절대, 절대 안 됩니다!”

차가운 바닥에서 책을 읽으려던 운서가 펄쩍 뛰며 창문이 있는 쪽으로 물러났다.

“폐하, 기어이 절 죽이시려는 겁니까? 아무리 제가 폐하의 시종이라지만 후계자도 없는 분이 남색이라니. 절 황실의 대가 끊기게 만든 대역 죄인으로 만드실 거냐고요?”

“그럼 나도 더는 후궁전에 가지 않겠다.”

“네?! 이게 떼를 쓴다고 될 일입니까?”

“후궁들을 봐도 하나도 즐겁지 않은데 억지로 갈 이유가 없지. 아니면 운서, 네가 날 즐겁게 해준다면 또 모를까.”

연진의 어깃장에 운서는 입을 딱 벌렸다. 저게 대를 이을 의무가 있는 황제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이던가!

“아, 진짜! 폐하, 황자님이나 좀 낳고 이런 말씀을 하시든가요! 이러니 저잣거리에 폐하가 고자라는 소문이 퍼진 게 아닙니까.”

“넌 내가 애나 만드는 사람처럼 보이냐?”

“…….”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 운서는 황제고 뭐고 연진을 그냥 노골적으로 째려봤다.

“운서야, 다시 입 맞춰도 되겠냐?”

“허락하면 매일 홍안궁이나 서전궁으로 가시는 겁니다. 저번처럼 약속을 어기시면 전 짐을 싸서 영현궁으로 영영 가버릴 겁니다.”

“약속하마.”

“…알겠습니다.”

연진이 약속하자 운서는 씁쓸한 얼굴로 답했다. 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연진은 냉큼 운서에게 제 입술을 붙였다. 그는 운서의 작은 턱을 들어 올리고 입술을 빨았다.

연진은 운서의 작은 몸을 가볍게 들어서 침상 위에 앉혔다. 운서가 얌전히 있자 연진이 얼굴의 각도를 바꿔서 입술을 더 깊게 겹치고 여린 목덜미를 살살 쓰다듬기 시작했다.

운서는 연진의 뜨거운 혀에 숨을 헐떡거리며 단단한 팔에 매달렸다.

운서의 작은 혀를 빨고 입안을 핥은 연진이 혀를 떼자 전처럼 타액이 길게 늘어졌다. 연진은 타액의 실타래를 따라서 운서의 촉촉한 입술을 한 번 더 빨았다.

“흐읏….”

운서의 얼굴이 금세 달아올랐다. 가뜩이나 불그스름하고 야시시했던 눈꼬리가 색정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타액에 젖은 입술이며 작은 얼굴도 무척 색스러웠다. 운서의 발간 눈꼬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연진의 뜨거운 입술이 가는 목덜미를 입술로 훑었다.

연진은 쪽쪽 입 맞추면서 내관복의 매듭에 손을 대고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연진의 입술이 목에 닿을 때마다 운서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흣, 아읏.”

내관복의 매듭을 푼 연진의 손이 옷 안으로 들어가 가슴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는 손끝에 걸리는 유두를 매만졌다. 예민한 젖꼭지가 단단한 손끝으로 톡톡 건드려지는 것만으로 뾰족하게 일어섰다.

“아앗, 폐하.”

“이제 엉덩이 좀 보자.”

연진이 운서의 작은 몸을 손쉽게 뒤로 돌리고는 그의 바지를 또 순식간에 벗겨내었다. 눈 깜박할 사이에 벗겨진 아랫도리에 운서가 파닥거리며 창피하다고 훌쩍거렸다.

운서는 연진이 여자를 밝히는 사내였다면 벌써 여기저기에서 황손들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들었을 거라고 다시 씁쓸해했다. 그동안 연진은 운서의 하얀 엉덩이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진물이 나고 심하게 다쳤다고 했는데, 다행히 상처가 남진 않았구나. 다행이다.”

연진은 몇 번이나 다행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운서의 봉긋한 엉덩이에 뽀뽀를 했다. 쪽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춰서 운서의 얼굴을 더 붉게 만들고도 봉긋한 엉덩이에서 쉽게 입술을 떼지 못했다.

“아읏, 태의께서 정성으로 절 돌봐주셔서…, 폐하! 이제 좀 그만하십시오.”

“나 때문에 네가 곤욕을 치렀지 않았더냐. 그러니 이 정도는 해야지.”

연진은 운서의 작은 엉덩이에 빠짐없이 입을 맞췄다. 말랑말랑한 엉덩잇살을 살짝 핥기도 하고 쪽쪽 입을 맞추고 가볍게 물기까지 했다.

연진의 혀는 허벅지까지 내려와서 부드러운 살을 핥고는 다시 엉덩이로 올라가서 볼록한 곳을 삭삭 핥으면서 허리로 올라갔다. 또 그의 커다란 손은 운서의 가슴으로 파고들어서 아까까지 달게 빨았던 유두를 조물조물 만졌다.

“항, 아읏… 폐하. 자꾸 이러시면 안 되는데….”

운서는 여린 몸을 바르르 떨며 안 된다고 했지만, 그의 발긋한 눈가는 이미 색스럽게 물들어 있었다.

“가만히 있어봐라. 네 살결이 참 보드라워서 그런지 입 맞추고 만지면 기분이 좋구나.”

뜨거운 입술은 벌써 운서의 등을 훑고 있었다. 항항, 신음하는 운서도 기분이 좋아서 발끝을 살짝 떠는 순간, 연진이 그의 몸을 다시 돌려 눕히고는 가슴을 빨기 시작했다.

엉덩이처럼 봉긋해진 곳에 타액을 묻히면서 츱츱 빨자 운서는 또 여린 몸을 바르르 떨었다. 기분이 좋은 운서는 저도 모르게 다른 쪽 가슴살을 살짝 잡아서 연진에게 내밀었다. 그곳도 빨아달라는 것이었다.

연진은 운서의 유혹대로 다른 젖꼭지도 냉큼 물고 쭉쭉 빨아주었다. 젖꽃판까지 입에 넣고 빨자 운서의 허리가 들썩거렸다.

“항, 폐하!”

“운서야, 기분이 좋아 보이는구나. 내 입맞춤이 마음에 들더냐?”

“…기분이 좋다니요? 아닌데요! 폐하를 보필하는 게 제 일이라 참고 있었을 뿐입니다!”

젖은 입을 달싹거리며 나른한 표정을 지은 운서는 일이라서 하는 것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에 운서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연진이 피식 웃었다. 자신의 타액으로 온몸이 젖었으면서 일이라고 선을 딱 긋는 것이 귀엽고도 요망했다.

“방금 일이라고 했냐?”

연진은 그런 운서가 더 귀여워서 그의 유두에 다시 가볍게 입 맞췄다. 반들반들하게 젖은 봉긋한 돌기에 입을 맞출 때마다 작은 가슴이 들썩였다.

“핫, 아읏… 그럼요. 폐하의 내밀한 부분까지 시중을 드는 건 제 일이기도 하지만, 내관인 제가 폐하와 사사로운 마음으로 이럴 순 없지 않습니까.”

“…그럼 특별 수당이라도 줘야겠구나.”

“정말이십니까?”

“금 50냥과 함께 진상품인 비단을 몇 필 주마.”

“아니, 그 귀한 것을….”

운서의 얼굴에 홍조가 역력했다. 금과 진상품인 비단이라는 말에 그 어느 때보다 흥분한 것이었다.

“그러니 전처럼 네 입으로 해줄 수 있겠느냐?”

“…이, 입이라시면?”

“그래. 내 남근을 너의 이 귀여운 입과 혀로 다시 빨아주었으면 좋겠구나.”

연진은 욕정을 담은 눈으로 운서를 내려다봤다. 그는 곧 운서의 얇고 작은 입술을 천천히 빨았다. 커다란 손으로 가슴까지 더듬으면서. 그러는 중에도 운서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 바람에 운서의 얼굴이 완전히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운서는 붉은색이 섞인 눈동자에 심장이 찔리는 것 같았다. 연진의 눈이 당장에라도 자신을 발가벗겨서 범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긴장으로 허리가 바짝 조여진 운서는 얼른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여기서 말리면 조금 후에는 연진의 아래에서 홀딱 벗겨진 채로 다리를 한껏 벌리고 앙앙거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건 좀. 폐하의 것이 워낙 커서 입이며 턱도 아프고 별로 좋지도 않았습니다.”

“좋지 않았다니? 며칠 전에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 남근을 덥석 문 건 너였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빨아 먹지 않았더냐! 애초에 내 것을 잡고 장난감처럼 주무른 것도 네놈이 아니냐.”

“무, 무슨 말씀입니까?!”

“네가 원하면 내 남근은 언제든지 빨게 해주마.”

연진은 운서의 작은 턱을 잡고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보드라운 입술에 몇 번이나 뽀뽀를 반복했다. 연진은 운서와 떨어져 있는 동안 탐욕스럽게 제 남근을 탐했던 음란한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그때를 잊지 못하는 연진이 운서를 다시 재촉했다. 어서 이 작고 달콤한 입술로 제 것을 빨아달라고.

“정말 아니냐? 속으로 입맛을 다시고 있는 건 아니고?”

“…아, 아니라니까요!”

왠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운서는 또 얼굴을 화라락 붉히며 절대 아니라고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운서는 제 남근을 빨아달라는 연진에게 싫다고 하진 않았다.

흐트러진 의복을 추스를 생각도 하지 않은 운서가 연진을 슬쩍 흘겨봤다. 그의 몸은 연진의 타액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연진은 운서가 제 침을 온몸에 바르고 움직이는 것만으로 아랫도리가 벌떡벌떡 일어서고 빠듯하게 아플 지경이었다.

연진은 욕정에 침을 삼켰다. 그는 제 심장이며 성기가 터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운서가 그의 다리 사이로 몸을 구부렸다.

“운서야, 제발 빨리….”

“오늘만입니다.”

연진의 바지 앞섶을 푼 운서는 벌써 발기한 것을 보고 입술을 살짝 떨었다. 정말 흉기처럼 뜨거운 기운을 내뿜고 기세등등하게 서 있었다.

운서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연진의 사타구니로 얼굴을 가져가서 뜨거운 것을 입에 살짝 물었다.

“으읏.”

연진의 신음과 함께 운서가 굵고 핏줄이 성성한 육봉을 핥기 시작했다. 혀를 대고 할짝 핥자 커다란 것이 움찔움찔 떨렸다. 운서는 제 애무에 반응하는 살 몽둥이가 귀여워서 전처럼 젖기 시작한 귀두에 입맞춤을 했다.

쪽쪽 소리를 내며 입술을 눌렀다. 살짝살짝 입 맞추는 와중에도 분비액을 흘리는 선단 구멍도 핥았다. 연진의 분비액을 받아먹은 운서는 진득한 액이 묻은 혀로 제 입술을 핥고는 귀두를 삼키기 시작했다.

“으읏, 운서야.”

“폐하, 기분 좋으십니까?”

운서가 묻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연진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운서는 좋아하는 연진이 귀여워서 눈꼬리를 얄팍하게 뜨고는 슬쩍 웃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연진을 귀여워한다는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내관이 황제를 귀여워한다니, 말이 안 되지!’

운서는 연진이 자신에게 이런 일을 바라는 것도 한때라고 생각했다. 후궁들과 합궁을 하고 아이를 가지면 아무리 황제라도 사사롭게는 가장이 되는 것이었다. 그에 대한 행복도 느끼고 책임감을 가질 테니 서서히 자신을 멀리할 거라고.

‘그때가 내가 은퇴를 할 때겠지.’

되도록 빨리 출궁하겠다는 운서의 마음은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연진을 어르고 달래서 후궁들과 합궁을 시켜야만 했다. 심지어 연진의 귀두를 입에 무는 이런 짓을 해서라도 말이다.

굵은 기둥을 잡고 문지르던 운서가 츠읍 하고 뜨거운 귀두를 달게 빨았다. 운서의 작은 입이 떨어지자 그의 타액과 함께 연진의 분비액이 섞여서 길게 늘어졌다.

그것을 보고 얼굴이며 목이 얼룩덜룩하게 붉어진 운서는 분배액을 혀로 받아 마시면서 다시 귀두를 츠읍츠읍 빨았다. 커다란 것을 입에 넣었다가 빼고, 다시 넣고 사탕을 빨 듯이 할짝거리는 운서의 입술이 느리게 울퉁불퉁한 기둥으로 내려왔다.

작은 혀가 불뚝거리는 핏줄을 타고 쭉 내려왔다가 고환을 건드리고 다시 올라가서 귀두를 삼켰다.

“하으윽!”

음란한 애무를 서슴없이 하는 운서 때문에 연진은 계속 허리를 부들거렸다. 그의 성기는 운서의 입안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음액을 질질 흘리고 사정없이 단단해졌다.

연진은 제 기둥을 핥던 운서가 귀두를 다시 삼키자 미치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운서는 얼굴을 돌리면서 입안 전체로 제 것을 애무하는 것이 아닌가.

“아아, 제발, 운서야!”

연진이 허리를 들썩거렸다. 이대로 운서의 따뜻한 입안에서 사정하고 싶었다. 탄탄한 허리를 계속 움찔거린 연진은 운서의 목덜미를 살짝 만지다가 그의 가슴을 더듬었다.

얇은 내관복 속으로 손을 넣자 운서의 유두가 볼록하게 솟아 있는 게 느껴졌다. 애무를 잔뜩 당한 돌기는 아직도 탱글탱글하게 부풀어 있었다.

커다란 손이 귀여운 젖꼭지를 더듬더듬 만지자 운서가 바들거리며 연진의 성기에서 입술을 뗐다. 역시 이번에도 운서의 혀와 입술에 연진의 분비액이 덕지덕지 묻고 음란한 액이 길게 늘어져서 성난 성기에까지 이어졌다.

“으응, 폐하… 그렇게 막 움직이시면 가뜩이나 너무 큰데… 제 턱이 아픕니다. 가만히 계십시오.”

운서는 그 상태로 연진을 올려다보며 투덜거렸다. 턱이 아프다면서 젖은 입술을 달싹거리고 여린 몸을 흔들었다. 그런데 그 몸짓이 마치 연진의 단단한 손가락에 제 유두를 문지르는 것처럼 보였다.

“……!”

연진은 욕정에 목이 타는 것 같았다. 운서의 음란한 입술과 얼굴 그리고 가슴의 돌기에도 제 것을 문지르고 싶었다. 연진은 운서의 가슴에서 손을 떼지 않고 통통하게 부푼 돌기의 주변을 문지르며 물었다.

“많이 아프냐?”

“…괜찮습니다.”

“네 입은 워낙 작으니 아플 테지. 그럼 이번에는 여기로 문질러주지 않으련?”

단단한 손끝이 운서의 젖꼭지를 지그시 눌렀다. 운서는 그것만으로 몸을 바르르 떨었다.

“아읏… 폐하, 아까 제 젖꼭지가 폐하의 침으로 번들거릴 정도로 잔뜩 빠셨으면서 모자라신 겁니까?”

“그래, 모자라니 어서 여기로 문질러 다오.”

스스로 음란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운서 때문에 연진은 하반신을 부들거렸다. 연진의 작은 신음과 함께 운서가 비단 이불 위에서 얌전히 무릎을 꿇고 옷의 매듭을 더 풀었다.

이윽고 운서의 여린 어깨와 가슴이 드러났다. 연진의 시선이 운서의 가슴 위에 솟은 유두에 꽂혔다. 가슴을 드러낸 운서는 제 얼굴 앞에서 흉흉하게 열을 내는 것을 작은 손으로 잡아서 자신의 젖꼭지에 대고 문질렀다.

“폐하… 흐읏, 이렇게 하는 게 좋으십니까?”

“좋다. 운서야, 너무… 좋구나.”

연진은 운서가 제 남근을 잡은 것도 좋고 가슴과 젖꼭지에 문질러주는 것도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았다. 사정감을 억누르며 허리를 부들거리는데, 얼굴이며 목덜미에 어깨까지 붉어진 운서가 연진의 물건을 다른 쪽 유두에 대고 문질렀다.

운서의 입술에는 연진의 분비액이 여전히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것이 맑은 타액과 섞여 똑똑 떨어졌다. 운서는 제 입술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통통하게 부푼 유두에 연진의 성기를 문지르기만 했다.

그 음란한 모습에 연진이 거듭 숨을 삼켰다.

“헉! 우, 운서야!”

거친 숨과 함께 운서를 부르는 연진이 그를 어떻게든 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찰나.

“앗, 폐하의 남근에서 분비액이 너무 나옵니다. 잠시만….”

연진의 성기에서 액이 너무 많이 나와 가슴이 흥건해지자 운서가 또 음란한 입술을 달싹거리며 성기를 가슴에서 떼어냈다. 끈적한 액이 젖꼭지에 달라붙어 있다가 길게 늘어졌다.

운서는 굵은 것을 아무렇게나 잡고 음액이 흘러 떨어지는 선단을 다시 핥았다. 핥는 것뿐 아니라 탁한 액을 빨아 먹기까지 했다. 츱, 쫍쫍거리는 음탕한 소리와 함께 빨고 음액을 꿀꺽 삼키고, 귀두에 묻은 것은 할짝거리며 열심히 핥아 먹었다.

“…….”

“이제 됐네요.”

그리고 해맑게 웃으면서 뜨거운 육봉을 다시 제 가슴으로 가져가서 젖은 유두에 연진의 귀두를 가만히 문질렀다. 작고 통통한 돌기가 선단에 스칠 때마다 연진은 더 흥분했다. 그의 성기는 어느 때보다 팽팽하게 발기하고 뜨겁게 달아올랐다.

운서가 한쪽 가슴에 굵은 남근을 잔뜩 문지고 다시 다른 쪽 가슴으로 옮길 때였다. 운서가 제 성기를 내려다보면서 입맛을 다시는 모습에 더는 참기 힘든지 연진이 그만 사정해버리고 말았다.

“아윽!”

낮고 짧은 신음과 함께 연진의 성기에서 진액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전처럼 운서의 얼굴에 뿌려졌다.

***

다음 날 연진은 약속대로 홍안궁으로 향했다. 운서가 대명전에 있는 집무실까지 와서 기다리는 통에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폐하께서 덕비마마와 함께 저녁 수라를 들고 계시다 합니다.”

태선각의 하급 내관인 오 내관은 대명전의 장서를 정리하던 운서에게 연진의 행방에 대해 보고 중이었다.

“그래? 너는 다시 가서 폐하께서 저녁 수라만 드시고 현궁으로 돌아오시는지 확인하고 다시 내게 오너라.”

“예.”

운서는 오 내관에게 폐하께서 저녁 수라만 들고 나오는지 감시하라고 일렀다. 유덕이 지키고 있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이었다.

“참, 오 내관. 오늘 밤의 준비는 잘하고 있겠지?”

“당연하죠. 시키신 대로 모든 것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윤 내관님, 믿고 맡겨 주십시오.”

“물건은 확실하겠지?”

“예. 그것을 판 상인의 말에 의하면 바다 건너에 있는 어느 대국의 후궁이 황제에게 그것을 몰래 쓰다가 들켜서 사막으로 쫓겨났다고 하더군요.”

“…뭐라? 그럼 바로 탄로 났다는 말이냐?”

“그게 아니라 경쟁자인 다른 후궁이 고발하기 전까지 몇 달을 몰랐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무도 모르게 사용할 수 있는 확실한 물건이라고 합니다.”

“호오, 그거 잘됐구나.”

운서와 오 내관은 눈을 마주치며 은밀하게 웃었다. 둘이서 눈빛을 주고받은 후 오 내관이 물러가자 운서는 다시 장서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벌써 며칠이나 내관 세 명이 서책을 정리 중이었는데, 서책들을 모두 빼고 다시 분류하여 정리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운서가 책을 분류하는 중에 또 다른 내관이 그를 찾아왔다.

“윤 내관님, 상의감에서 폐하의 의복이 완성되었다고 알려왔습니다. 상의감에서 윤 내관께서 직접 와서 검수해달라고 하는데요.”

“알았네. 내가 직접 가서 보고 오지. 참, 그동안 오 내관이 날 찾으면 상의감에 갔다고 전하고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게.”

“예.”

운서는 바로 상의감으로 향했다. 연진의 키가 자라 소매나 바짓단이 짧아져 모든 의복을 새로 지을 수밖에 없었다. 황제가 입는 의복인 만큼 격식대로 만들었는지, 치수는 맞는지 확인하러 가는 것이다.

운서가 종종거리며 상의감으로 가는 동안 홍안궁으로 행차한 연진은 선오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붉은색 옷을 입은 선오는 연진에게서 받은 산호와 옥비녀로 머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단아하게 화장을 한 그녀의 귀에서 옥으로 만들어진 귀걸이가 청아한 소리를 내며 달랑거렸다. 덕비의 흰 피부와 옥이 무척 잘 어울렸지만, 연진은 그녀의 외모에 대한 칭찬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아름다운 후궁보다 그녀의 곁에 있는 바둑판에만 줄곧 시선을 주었다. 그런데 시선만 바둑판에 뒀을 뿐, 그는 계속 운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요망한 놈이 어제는 다정하게 자신의 남근을 입으로 빨아주고 유두에도 잔뜩 문질러주더니, 오늘은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홍안궁으로 가길 독촉했다.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

연진은 너무하다고 투덜거렸지만, 운서의 몸을 생각하면 온몸이 쭈뼛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제 타액으로 젖은 몸이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어찌나 야한지. 지금이라도 당장 현궁으로 달려가서 운서의 그 앙큼한 몸을 전부 핥고 싶었다.

“폐하,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선오는 그런 연진에게 저번에 마신 적이 있던 홍차를 대접했다.

“덕비, 홍안궁의 궁인들의 솜씨가 좋아서 저녁을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폐하께서 가리는 음식이 없으셔서 저희 궁인들이 아주 좋아하지요.”

“그거 고맙군요. 그건 그렇고 오늘은 여기서 침수 들어야 하겠는데 괜찮겠소? 운서와 약속을 하는 바람에 오늘은 현궁으로 돌아갈 수가 없으니….”

연진은 운서가 표독스러운 목소리로 어마마마보다 더 잔소리를 퍼부을 거라고 몸을 사렸다. 선오는 황제가 내관을 무서워할 리 없다고 괜한 엄살을 피운다며 즐겁게 웃었다.

연진이 오늘 현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앞으로 운서가 자기 몸을 만지지 못하게 할 것 같아서였다.

“저는 괜찮습니다만, 폐하께서는 괜찮으시겠습니까?”

“덕비가 날 받아준다면 하룻밤 신세 지겠습니다.”

“폐하, 꼭 나그네처럼 말씀하시네요. 여긴 폐하의 궁입니다. 폐하께서 어디에서 침수 드시든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홍안궁이 불편하시거든 다른 전각으로 옮기시지요.”

“지금쯤 운서가 홍안궁에 첩자들을 풀어놓았을 겁니다. 제가 홍안궁이나 서전궁이 아닌 다른 전각으로 가면 난리를 부릴 테니 이곳에 있겠습니다.”

“윤 내관도 열정적이군요. 참, 폐하, 전에 윤 내관을 고발한 사람은 잡으셨습니까?”

고운 손으로 찻잔을 내려놓은 선오는 여관들이 있는 곳을 슬쩍 보고 길쭉한 눈꼬리를 접어 고요하게 웃었다.

“아니, 아직입니다. 하지만 태감이 조사 중이니 곧 잡힐 겁니다.”

“잘 됐군요. 폐하, 밤은 길고 기니 주안상이라도 들이겠습니다.”

선오는 여관인 무하를 불렀다. 무하는 평소와 달리 연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덕비마마, 부르셨습니까?”

“그래. 무하야, 가서 주안상을 내오거라.”

“예, 마마.”

무하가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 물러나려고 할 때였다. 덕비가 다시 그녀를 불렀다.

“참, 무하야. 너도 형부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았니?”

“…예? 가,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시는지?”

“윤 내관을 궁지로 몰아넣은 자가 형부에서 상소를 올렸다는구나. 혹시 그 사람에게 알고 있는 건 없는지 물어봐 주겠니?”

“…예, 예. 그리하겠습니다.”

공손히 대답한 무하는 후다닥 물러났다.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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