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3)

늦은 밤.

"휴우..."

윤서는 칠이 벗겨진 초라한 철문 앞에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이 가득한 한숨에는 말로는 차마 하지 못하는 윤서의 마음이 짙게 베어 나왔다. 까맣게 타 들어간 속에서 탄내가 묻어 나올 듯 했다. 고된 일로 온 몸이 물에 잠긴 듯 축 늘어졌지만 윤서는 항상 이 문을 열 때는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용기란 용기는 모조리 끌어올려야 했다. 저 안에서 오늘도 어김없을 그 광경은 여지없이 윤서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테니까. 

열쇠를 쥔 윤서의 손이 덜덜 떨렸다.

찰칵.

열쇠를 밀어넣고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억지로 문을 비틀어 열었다. 성큼 들어가지 못하고 한숨을 더 고르다가 막 안으로 한 발자국을 옮길 때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윤서의 이마로 날아들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피한 윤서의 뒤로 녹색 병이 회색벽에 부닥치곤 산산조각이 났다.

"........씨발. 시간이 몇 신데 이제야 기어들어와?? 이 개 같은 새끼가."

술에 취해 드문드문 끊어지는 말투로 상스럽게 흘러나오는 욕설들. 방안을 가득 메운 역겨운 술 냄새와 하루사이 발 디딜 틈도 없이 어질러진 방안, 그리고 엉망으로 널브러진 커다란 남자가 윤서의 눈으로 아프게 박혀 들었다. 

"오늘은 손님이 많아서 영업이 늦게 끝났어요. 많이 기다렸겠다..저녁 전이죠? 세상에 지금 시간이 몇 시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윤서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저 남자가 자신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으리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아서 윤서는 언제부턴가 그 앞에서는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술 사와."

탁하게 긁히는 목소리에 윤서의 팔 위로 소름이 오도도 올랐다. 한 여름에도 싸하게 느껴지는 한기에 드러난 팔을 문지르면서 윤서는 부엌으로 몸을 틀었다.

"정후형. 내가 빨리 밥 차릴게. 잠깐만요. 빈속에 술 마시면 안..."

"닥치고 술이나 사와. 이 새끼야. 안 들려? 술 사오라고. 술!!!"

울화가 치민 듯 가누지 못하는 몸을 휘청 이면서 일어서는 정후를 윤서가 반사적으로 붙잡았다. 정후의 몸이 윤서쪽으로 크게 기울더니 이내 거칠게 윤서의 손을 뿌리쳤다. 마치 더러운 것이라도 묻은 양, 정후는 윤서에게 닿은 곳을 거칠게 털어냈다. 그 모습을 보는 윤서의 눈동자가 촉촉이 젖어가고 꼭 다문 입술에 하얗게 힘이 들어갔다. 

왜 이렇게 됐을까? 어째서??

아무리 물어도, 그 누구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사실은 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윤서, 자신뿐일지도 몰랐다.

윤서의 손이 떨어지자 마자 다시 휘청거리는 정후에게 손을 채 내밀기도 전에 술에 취해 막무가내인 정후의 손이 윤서에게로 날아들었다. 퍽 하는 둔탁음과 함께 머리 옆 부분을 강하게 얻어맞은 윤서가 방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윤서의 모습을 보면서 초점 없던 정후의 눈에 벌겋게 핏발이 섰다. 마치 짐승의 그것과도 같은 눈빛으로 정후는 거친 고함을 지르면서 윤서를 발로 차기 시작했다. 발끝으로 느껴지는 앙상한 윤서의 몸이,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움찔거리는 윤서의 반응이, 정후를 더 막다른 곳으로 몰고 갔다.

"이 개새끼. 내가 누구 때문에 이 지경이 됐는데!! 이 씨발..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너 때문에!!"

"욱...욱...욱....욱....쿨럭...."

정후의 발길질에는 인정이 없었다. 사정없이, 가리지 않고 온몸을 두들기는 그 통증에 윤서는 멀어지려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고통에 겨워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시도쯤은 해볼 미약한 저항도 없었다. 윤서는 정후의 발을 붙잡는 대신 자신의 몸을 더 동그랗게 말았다. 발길질에 맞춰 정후가 내뱉는 '너 때문에' 라는 말이 윤서에게는 무자비한 폭행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숨조차 내쉬지 않고 한참동안 매를 맞고 있던 윤서가 뜸해진 발길질에 조심스럽게 정후를 올려다 봤다.

덥수룩한 수염에 야윈 볼, 퀭하게 변해버린 눈과 여유 없는 몸짓. 세상 밑바닥에 깔려있는 패배자와도 같은 모습.

윤서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구석구석 한곳이라도 예전의 그의 모습을 찾으려고 정신없이 눈을 굴렸다. 

아니야...이런 모습이 아니야. 이런 모습이 아니야!! 찾아봐. 찾아보면 있을 거야. 변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 예전과 같은 모습…내가…망치기 전에…그의 모습….한군데는 남아 있을 거야…

매를 맞으면서도 나오지 않았던 울음이 먹먹하게 가슴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한정후라는 남자는. 그는 지금과 같은 폐인의 모습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 누구보다도 빛나던 사람이었다. 단정한 모습에 단호한 목소리가 멋있던 사람, 자신의 가치를 잘 아는 사람만이 가지는 자신감을 가진 정말 근사한 남자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인정 받던 그 한정후와....지금 제 눈앞에 있는 사내가 동일 인물이라니...윤서는 입술을 더 꽉 깨물고 울음을 삼켰다.

제 탓이다. 다름 아닌..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려던 저 남자의 날개를 어깨 죽지부터 뜯어내서 메마른 땅으로 곤두박질 치게 만든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윤서 자신이었다.

알아...나 때문이야...내가 망쳤어..당신을.... 내가 망친 거야...내가 망쳐버린 거야.

어쩔 수 없는 회한으로 진하게 물들었던 눈을 꼭 감았다. 그럼에도 지금 정후의 모습은 감은 눈 안쪽에 매달려 윤서를 쫓아 왔다.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간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힘에 부 친 듯 정후는 거칠게 숨을 몰아 쉬더니 이내 방바닥으로 풀썩 주저 앉았다. 색이 바랜 벽지가 발린 벽에 등을 기대고 정후는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다는 듯. 그 앞에 윤서가 벌레처럼 꿈틀 거리고 있었음에도 정후의 감은 두 눈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윤서는 절로 비명이 터져 나오는 통증을 참으면서 겨우 몸을 일으켰다. 말라붙기 무섭게 또 터지고 마는 입술에서 흐르는 피를 훔쳐 닦으며 윤서는 방 옆에 딸려있는 작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보온기능이 고장 난 고물밥통에서 미지근하게 식어버린 밥을 퍼 담고 아침에 끓여놓은 국을 데우기 위해 버너 위에 올렸다. 마른 밑반찬들을 꺼내 접시에 담고 작은 상에 차려 방안으로 들어갔다. 정후는 여전히 그 자세 그대로 미동도 없었다. 

윤서는 정후를 부르기 전에 다시 용기란 용기는 모조리 끌어올려야 했다. 마른침을 삼키는 윤서의 목울대가 크게 오르내렸다..

"정후형..밥 먹어요."

"................"

"정후형..."

윤서는 벽을 대고 말하는 듯한 기분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꼭 감고 있는 눈이, 대답하지 않는 입이, 움직이지 않는 정후가 하고자 하는 말이 윤서는 절절하게 느껴졌다. 온 몸으로 불행하다고, 미쳐버릴 것만 같다고 외치는 저 남자에게 다가설 수도 그렇다고 멀어질 수 도 없는 자신의 처지가 윤서는 서글플 뿐이었다.

"...........술 사와."

지난 3년간,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부터 시작된 정후의 말. 지겹도록 들었다. 술..술...술.... 오직 술만 찾는 정후의 옆에서 바삭바삭 말라가는 윤서의 심장이 이제는 파삭하고 바스라 질것만 같았다. 윤서는 찢기는 고통에 체념과도 같이 조용히 웃었다.

"정후형.."

윤서의 애타는 부름에도 대답 없이 딱딱한 돌처럼 굳어버린 저 남자. ….예전에는 환하게 웃어줬었는데, 다정한 손길로 안아줬었는데, 나직한 목소리로 영원의 맹세를 했었는데….지난날의 정후가 윤서의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저 사람이 좋아서 미쳤었다. 아니 미쳤었다는 틀린 말이다. 여전히 미쳐있다. 그래서 윤서는 아직도 희망을 품고 있었다. 아주 깊숙한 곳에서 도저히 꺼지지 않는 실낱같은 희망 한줄기. 

.........................행복하고 싶어요...저 사람이랑....

윤서는 간절한 염원에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서둘러 훔쳐냈다.

"식사부터 해요. 그럼 사올게.."

정후가 속이 녹아 버릴 만큼 술을 마셔서라도, 잊고 싶은 현실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서글픈 일이지만 그래도 그 술에 취한 정후 마저 잃을 수는 없었으니까. 아파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 

윤서는 힘 없이 늘어트리고 있는 정후의 손에다 억지로 숟가락을 쥐어주었다. 그리고 바로 정후는 그 수저를 벽으로 거칠게 집어 던졌다.

움찔

정후의 행동에 두려움을 들킨 윤서의 눈이 갖혀 버린 쥐처럼 파들거렸다. 정후의 한 쪽 입가가 비죽이 올라갔다. 

"...정..정후형.."

윤서는 떨리는 손을 들어 정후에게 가져갔다. 윤서의 손이 채 닿기도 전에 정후는 사정없이 윤서를 후려쳤다. 윤서가 쓰러지든 말든, 윤서의 입가로 다시 피가 흐르든 말든, 정후는 제 속의 휘몰아치는 분기를 참지 못하고 방안에 얼마 없는 집기들을 내동댕이 치기 시작했다. 우당탕탕 하는 소음과 물건들이 깨지는 소음들이 한동안 방안을 가득 메웠다. 더 후려칠 것이 없나 번들거리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정후의 눈에 소박하게 차려진 밥상이 보였다. 정후는 망설이지 않고 밥상을 윤서에게로 뒤엎었다.

"......으읏..."

뜨거운 국이 윤서의 엎드린 등위로 쏟아졌다. 얇은 옷감은 윤서를 전혀 보호해 주지 못했다. 악 소리도 나오지 않을 만큼의 격통에 윤서는 두 주먹을 꽉 쥐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온 몸을 움찔거리며 떨고 있는 윤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후는 투박한 손길로 윤서의 주머니를 뒤졌다. 헐빈한 지갑 안에 들어있는 몇 장의 만원짜리를 꺼내 들고 포식한 짐승처럼 야비한 미소를 지었다.   

퍽.

거치적 거리는 윤서를 발로 차서 치워버리고 정후는 거침없이 집을 나갔다. 쾅 닫히는 문 소리에 윤서의 동그랗게 말린 몸이 또 움찔한다. 숨도 쉬지 않고 한참을 그렇게 있던 윤서는 정후가 완전히 나갔다는 것을 느끼고, 그제서야 아까부터 참았던 울음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윽…윽…. “

행복하고 싶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윤서의 바람은 그거 하나밖에 없었다…… 행복하고 싶어요. ………….언제나 행복은 윤서 저 너머에 있었다. 출생과 동시에 버려졌다. 고아원에서의 생활은 그저 무조건 부족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장난감도, 공책도…그리고 사랑도. 그렇다고 뭔가 거창한 행복을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남들과 같은 행복. 모두들 누리는 그런 행복을 가져보고 싶었다.  

“알아…그래도 잘못했다는 거……알아요….”

윤서는 단지 정후랑 행복하고 싶었다. 정후라면 행복해질 것 같았다. 안아주는 두 팔이 너무 든든해서. 쿵쾅거리는 가슴이 너무나 뜨거워서, 가끔 보여주는 웃음이 햇살과도 닮아서, 윤서는 정후와 반드시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야?….아니에요? 당신이랑 나….행복해질 수 없는 거야?……내가 너무 뻔뻔한 건가? 그런거에요? 그런거겠다…크크크….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데…그쵸? 그래도…행복하고 싶어요..난 아직도…당신이랑 행복해지는 꿈을 꿔….그래서… 아직은…….못 보내겠어…..아직은…”

정후는 3일째 들어오지 않았다. 

윤서는 3시간만에 설거지통에 박다시피 구부린 허리를 펼 수 있었다. 너덜해진 고무장갑을 벗고 물기 가득한 바닥에 철푸덕 내려앉았다. 정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는 뻔했다. 술을 마시거나…아니면 노름을 하거나. 세상 사는 게 전혀 재미없어진 사람들이 하는 그런 것들. 윤서는 답답한 가슴에 또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바닥이 꺼지겠니?”

“아…현정 누님.”

“뭐해 거기서? 축축 하잖아. 앉을 려면 의자에나 앉지.”

“어차피 젖어서 괜찮아요. 뭐 필요한 거 있어요?”

“읏차.”

현정은 의자를 끌고 와서 윤서 바로 앞에 내려놓고는 다리를 쫙 벌리고 앉았다. 옆이 트인 치마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허벅지 안쪽이 보였다. 윤서가 자동적으로 발개진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현정이 귀엽다는 듯이 쿡쿡대며 웃었다.

“누님. 못됐어.”

“어머. 그걸 이제 알았니? 고개는 왜 돌린데? 왜? 어디가 보여?”

“누님!!”

“하하하”

발끈하는 윤서의 얼굴에 현정을 웃으면서도 가슴 한쪽이 싸했다. 곱상한 얼굴 위에 아무 표정도 없이 있을 때의 윤서가 얼마나 덧없어 보이는지, 금방이라도 공기중으로 스며 사라질 것 같은 윤서에게서 이런 인간 같은 표정을 끌어낼 때 마다 현정은 괜히 안도감이 들었다.

“왜 또 피죽도 못 얻어먹은 얼굴이야? 저녁 안 먹었어? 내 이놈의 매니져 새끼를!! 너 밥 때 챙기라고 내가 그렇게 지랄했는데도!! 가만 있어봐. 죽이고 올게.”

“누님!! 왜 엄한 매니져 형한테 그래. 내가 밥 생각이 없어서 안 먹는다고 그랬어요. 설거지 거리도 많이 남아있고.”

“그 설거지 안 하면 안돼? 니가 꼭 한다고 해서 시키기는 하는데 말야. 영 기분 거지 같아.”

현정의 걱정 스런 눈빛에 윤서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무조건 적인 호의를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익숙지 않은 현정의 이런 모습에는 당황스럽기도 하고…또 가슴이 뭉클거리기도 한다. 사실은 잃을까 겁이 나서 함부로 받기도 망설여질 만큼 좋다.

“그럼 뭐해요? 나가서 술 팔까?”

“누가 너보고 술 팔래!!”

“것도 아님 뭐해요? 나 누님한테 공돈은 안 받아.”

“쇠심줄 보다 더해. 생긴 건 훅 불면 날아가게 생겨 처 먹었으면서!!” 

“헤헤…”

“나도 배고파. 밥이나 처먹자. 주방장한테 암거나 만들어 달래서 사장실로 와.”

현정이 좋아하는 오므라이스를 들고 사장실 문을 노크했다. 진한 화장을 지우고 야한 옷 대신 청바지에 티 하나를 받쳐 입은 현정은 아까 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서른 중반의 나이임에도 이십대의 청초함을 간직하고 있는 현정은 이쪽세계와 꼭 맞듯이 어울리기도, 또 위화감이 느껴 질만큼 이질적이기도 했다.

“왜? 새삼 반했냐? 아주 눈을 못 떼네.”

“………….화장 안 한게 더 예뻐요. 누님은.”

“뭐 내가 뭔들 안 예쁘겠냐 만은. 그러고 왜 서있어? 앉아.”

“오므라이스에요. 배고프다며? 어서 먹어요.”

“먼저 먹고 있어봐.”

윤서는 내키지 않는 듯 미적미적 숟가락을 들어 한입을 넣고는 조심스럽게 우물우물 씹었다. 밥맛이 없기도 했지만 찢어진 입 안쪽 살들과 터진 입술이 다 낫질 않아서 음식을 먹는 거 자체가 고역이었다. 삼킨 밥알이 동글동글 굴러다니며 상처를 건드려서 윤서의 이마가 깊게 찌푸려졌다.

“젠장!! 야!! 빨리 아무 죽이나 끓여와.”

윤서의 우물거리는 모양을 보고 있던 현정이 크게 욕설을 내 뱉으며 주방에 전화를 걸었다. 내지르듯이 말을 마치고는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강한 충격에 전화기가 요동을 쳤다.

“씨발. 입 벌려봐. 안까지 찢어졌어?”

“괜찮아요.”

“내 앞에서 괜찮다는 말 한번만 더해. 아예 말도 못하도록 아가리를 꼬매 줄 테니까.”

현정이 윤서의 턱을 받쳐 올려서 꽉 누르자 윤서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조금 벌렸다. 그 안으로 검붉게 변해서 엉킨 살들과 새로이 터져서 흘러 나오는 붉은 피가 보였다. 엉망인 상처들에 현정은 기가 질렸다. 아니 그 상처가 아니라….그럼에도 아무런 내색하지 않는 윤서에게 현정은 화가 나다 못해…오히려 슬퍼졌다.

“그 새끼가 이래 놨어?”

“…………………”

“하긴 물을 필요도 없지. 병원 가자. 정말 꿰메야 겠다.”

“누님..나 진짜 괜..”

“입 닥치고 일어나!!”

윤서는 동그란 눈으로 눈치만 살피고는 일어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 모습에 별 참을성 없는 현정이 폭발했다.

“이 씨발!! 네 놈이 멍청하고 등신 같은 거지. 누굴 탓해. 어? 왜 같은 거 달린 사내새끼끼리 붙어먹어도 그것도 뒤 박아주는 남편이라고 맞고 사는 거야? 어? 아주 열부 나섰어요. 요즘은 어디 외국에서 돈 내고 사온 마누라들도 맞고는 안 살아!! 그 새끼가 도대체 너한테 뭘 해주는데? 어? 그 새끼가 돈을 벌어와? 그 새끼가 자상하길 해? 그 새끼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널 이렇게 패는데? 어? 왜 볼품없는 그 개새끼한테 사람취급도 못 받으면서 너!! 왜 그 새끼 붙잡고 이렇게 질척거리고 있냐? 응?”

“누님…숨 넘어가겠다. 숨 쉬어요. 숨.”

“이 새끼가 지금 누굴 놀리나!!”

현정은 정말 화가 났는지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윤서는 현정의 시선을 피하면서 송송이 물방울이 맺힌 잔을 들고서 천천히 물을 마셨다. 태연한 윤서의 행동에 분통이 터진 현정이 윤서에게서 거칠게 물잔을 뺏어서는 탁자 위로 쾅 소리가 나도록 내려 놨다. 잔 안에 든 물이 넘쳐 유리 위가 흥건해 졌다.

“나와. 그 새끼랑 끝내. 지금도 노름판에서 노름질 하고 있다고 연락 왔다. 네 몸 망쳐가며 거둘 가치 없는 새끼야. 그만하고 끝내.”

현정과 윤서는 눈싸움을 하는 것처럼 한참을 서로를 쳐다봤다. 윤서의 눈꼬리가 눈물을 담고 곱게 휘었다. 

“……….누님…형은요…사실은 엄청 대단한 사람이에요. 똑똑하고…잘난 사람이야. 누님도 그때의 형을 봤다면…이렇게 말 못해…그 사람이 나한테 잘못 걸린거에요…나한테 더럽게 잘못 걸려서 인생을 망친 거야…사실은 엄청 엄청 대단한 사람이에요.”

“대단한 인들이 다 얼어 죽었나 보네.”

“형은…나한테 이래도 돼….나한테 이럴 자격 있어요. 난 더한 짓을 했는데…형의 인생을 송두리째 뽑아 버렸는데…몇 대 맞는 것쯤이야…아무것도 아니지.”

“…………”

윤서의 눈이 과거의 기억들을 헤집으며 허공에서 천천히 초점을 잃어갔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기억. 지금도 지나치게 또렷해서 마치 손에 잡힐 듯 선명한 그날. 

빛나던 한정후.

반짝 반짝 빛이 나던 한정후.

눈이 부셔서 똑바로 바라볼 수 도 없었던 그때의 한정후.

대한민국 최고학부의 수석졸업생. 최연소 사법고시 수석에 우수한 성적으로 사법연수원 수료 후 파격적인 대우로 대한민국 제일의 로펌에 스카우트. 한정후의 이력은 언제나 최고로 점철되어 있었다. 단 한번도 추락해본 적 없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가 바로 한정후였다. 그런 한정후에게 약점이란 것이 있다면 하나는 그가 고아출신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게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정후가 얻게 된 양부모는 탄탄한 재력과 영향력으로 그의 든든한 뒷배경이 되어주었고, 그가 게이라는 것은 그가 허락한 윤서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다.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개구쟁이처럼 웃던 한정후에게는 사실상 어떠한 약점도 존재하지 않았다.  

“결혼해요?”

“응”

“결혼..진짜 해요?”

물기 가득한 윤서의 목소리. 무너질 것만 같은 가슴을 겨우 지탱하면서, 그래도 확인해야 하기에 한마디 한마디가 지독히도 아픈 윤서의 물음.

……………결혼해요?……나를 두고? 나는 형밖에 없는데…형은….그게 되요?

윤서는 차마 정후를 마주 보지 못하고 손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내 나이쯤의 남자들은 다들 결혼해. 알잖아?”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정후의 대답에 윤서는 머리가 새하얗게 비어졌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 걸까? 담담한 그의 말에, 윤서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 일이…마치 아무일 아니라는 듯한 그에게 도대체 어떻게 말했어야 했을까? 나를 버리지 말라고? 결혼해도 찾아 달라고? 나는 당신밖에 없다고? 그러니 제발 결혼하지 말아달라고? 

윤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답 없이 눈물만 그렁그렁한 윤서를 보고 정후는 여유롭게 웃었다.

“변하는 건 없어. 뭐 조금 더 조심은 해야겠지만 말이야.”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주는 자상한 손길에도 윤서는 안심이 되질 않았다. 

이 빛나는 남자는 앞으로 그와 윤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여유롭고 나른한 표정의 정후는 그 없이는 살지 못할 윤서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있었다. 

그는 결혼을 할 것이고, 지인들 앞에서 당당히 드러낼 수 있는 아내와, 그를 꼭 닮은 아이들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천천히 혹은 서둘러 윤서를 잘라버릴 것이다. 결혼을 한 정후가 윤서와의 관계를 계속할 리가 없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옛말의 가르침을 명석한 그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자신은 버림 받을 것이고…오지 않는 정후를 기다리다 점점 늙어갈 것이고…혼자 쓸쓸히 죽어갈 것이다. 

그렇게 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살기 위해 지금까지 견뎌온 것이 아니다. 윤서는 정후와 함께 늙어가고 싶었다. 언제나 함께하면서 곁에서 힘이 되어주고, 서로를 위로하고, 다정히 웃으며 손을 잡고 인생이라는 길을 걷고 싶었다. 8살 고아원에서 처음 만나 지금껏 함께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그때의 윤서는 자신이 있었다. 정윤서가 그러하듯 한정후도 정윤서의 곁에서만 행복할 수 있다는 자신.. 그저 보이기 위한 억지결혼이 행복할 리가 없었다. 정후를 그런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수는 없다. 정후가 가식 없이 웃을 수 있는 공간도, 아무 경계 없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도, 단 하나, 바로 자신의 곁이었다. 이 세상에서 한정후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정윤서가 유일했다.  

눈물을 닦은 윤서의 눈이 단호하게 빛이 났다.

그가 선을 본 아가씨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란 아름다운 여인으로 정후와 그림같이 어울렸다. 그녀에게 그저 잘 아는 동생이라고 소개된 윤서는, 그날 목이 꽉 잠기도록 울어야 했다. 10년을 함께 자라고, 3년 동안 살을 섞은 자신이 그녀 앞에서는 그저 잘 아는 동생이어야 한다는 사실에 몸서리 치도록 절망했다. 정후는 그녀에게 윤서에게처럼 다정히 웃어주었고, 윤서의 예상처럼 점점 멀어져 갔다.

매일같이 보던 날들이 이틀..사흘..일주일…한달이 되도록 볼 수가 없었고, 참지 못한 윤서가 용기를 내어 하는 전화도 그에게는 잘 연결되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미칠 것만 같았다. 초초하게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혹시라도 연락이 올까 하루종일 전화기 앞에서 서성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울리지 않는 전화기가 혹여 고장이 났을까 새것으로 바꾸고, 1분에 한번씩 휴대폰의 배터리를 확인했다. 

미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했다. 정후는 윤서에게 있어서는 태양과도 같았다. 태양을 보지 못하면 말라 비틀어지는 식물처럼 윤서는 하루하루 생기를 잃어갔다. 

그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윤서가 차마 못할 결심을 한 그날…

정후를 잃고서는 살 자신이 없었던 윤서는 더 이상 두려울 것도 망설일 것도 없었다. 

윤서 인생에 최대의 도박. 전부 다 가지느냐, 아니면 모두 잃느냐…

“안아줘요…나 못 참겠어. 안아줘요.”

“윤서야.”

정후가 문을 열어주자 마자 옷을 벗으며 달려들었다. 처절한 몸짓으로 무작정 알몸을 정후에게 밀치며 온 몸을 비볐다.

“오늘은 피곤해. 다음에 연락할게.”

“오늘. 지금. 이 자리에서 안아줘요. 그럼 형 더 이상 귀찮게 안 할게요. 먼저 연락하지도 않고 얌전히 기다릴게. 그러니까 지금 안아줘요.”

서로의 몸에 길들여져 있던 정후는 오래 윤서의 유혹을 거절할 수 없었다. 정후의 팔이 힘주어 자신을 안았을 때 윤서는…됐다..라고 생각했다. 거실바닥으로 쓰러져 정신없이 혀를 맞대고 성급한 손이 여기저기를 더듬었다. 오랜만의 관계라 정후도 윤서의 몸에 흠뻑 취해있었다. 깊은 삽입과 거친 움직임, 막 절정을 향해 가던 그때.

“………..정후씨!!!!!!!!!”

“……정후야???”

그의 아름다운 약혼녀와, 그의 든든한 배경인 양부모가 더 이상 커질 수 없이 놀란 눈동자를 하고 짐승처럼 엉켜있는 정후와 윤서를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놀람이 사라진 눈동자가 진한 경멸의 색으로 물들어 가기 까지는 찰나의 시간만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문을 안 잠궜어요.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도록. 일부러 안 잠궜어요. 누구라도 들어와서 좀 보라고. 이 남자는 내 것이니까 제발 아무나 좀 보라고.”

“윤서야…너..”

“…….사실은 형의 약혼녀가 올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어쩌다 지나는 이야기를 들었거든…그래서 그녀가 올지도 모른다고…그래서 그날 간 거야. 사실은 그녀가 봤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어요.. 그래서 창부처럼 형을 유혹했고, 들키지 않을 거라 했던 형의 가장 큰 약점을 형이 가장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다 까발린거야. 나 엄청나죠?”

식어버린 오므라이스를 쿡쿡 찌르면서 윤서는 소리없이 웃었다. 입가만 올라간 그 미소를 보면서 현정은 윤서가 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핏빛보다 더 자욱한 통곡을 소리도 없이 뱉어내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형은 다 잃었어요. 몽땅. 그쪽 세계 참 무섭더라구요. 어찌나 소문들이 빠르게 퍼지던지. 파양되고 파혼하고 회사에서도 짤리고. 크크…그래서 내가 가졌어요. 내 소원대로 내가 다 가졌어요…그런데…그런데…”

……………그런데..왜 행복하지 않을까요?

윤서의 미소가 더 진해졌다. 현정은 그런 윤서의 얼굴을 더는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윤서는 소파 위에 발을 올리고 무릎을 끌어당겨 안아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윤서의 가느다란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내가 잘못한 거 알아요. 엄청난 짓을 저질렀다는 것도 알아요. 그래서…행복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아요…그런데도…행복하고 싶어서…자꾸 포기가 안돼요. 나 정말 미쳤나봐.”

“윤서야.”

“나 맞아도 싸죠? 큭큭 그러니까 누님, 우리 형 욕하지 말아요.”

현정은 아무 말 없이 윤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병신같이 얻어터진다고 욕만했지, 미련하게 그지 같은 새끼 때문에 몸 망친다고 화만 냈지, 이런 사정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까지 해서라도 가지고 싶은 사랑…현정은 그런 감정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잘못했네…”

“……응…”

물장사 수년, 인생 막장까지 두루 거쳐본 현정이라서 그녀는 그저 윤서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남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죄책은 윤서가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일 것이다. 

잘잘못을 판단하는 것은 당사자의 몫. 

“그래도…윤서야…잘 생각해. 니가 어쩌고 싶은지.”

“………………….”

현정의 멋없는 위로에 윤서의 눈에서 기어이 눈물 한 방울이 흘러 나왔다. 

예전에도 지금에도 윤서가 원하는 건 단 하나였다.

…………..정후형이랑 행복하게 해주세요… 

어쩌면 이제는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

“윤서야!!”

“뭔데 노크도 없이 지랄이야?”

벌컥 열린 문에서 웨이터 영길이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윤서의 눈물을 숨겨주듯 현정이 윤서 앞을 막아서서는 영길에게 쓴소리로 면박을 줬다. 

“죄송합니다. 급해서. 헉헉.. 윤서야, 너 잠깐 나와봐야 겠는데…”

“이 녀석은 왜? 남은 설거지는 사람 불러 써.”

“그게 아니라요. 아…그그…성칠파 두목이…”

“……….어디에요???”

성칠파 두목이라는 말에 윤서의 몸이 소파에서 벌떡 튀어 올랐다. 자꾸 엉키는 발을 애써 진정시키며 현정이 채 붙잡기도 전에 윤서는 이미 문밖으로 뛰어나가고 있었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어지럽게 반짝이는 큰길을 지나 지나는 사람 없는 한적한 공터까지 숨이 턱에 닿도록 뛰었다. 티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었다. 머리칼에서 떨어진 땀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아..하아…하아……”

“왔어? 이쁜이?”

윤서는 한 쪽 팔을 들어 땀을 훔쳐냈다. 찐득한 소금기가 몹시도 불쾌했다. 맑아진 시야에 도로 눈 감고 싶은 현실이 펼쳐졌다. 피떡이 된 채 쓰러져 있는 정후…윤서는 소리 없는 비명을 삼키면서 엎어질 듯이 정후에게로 다가갔다.

“어이? 이럼 섭하지. 나는 안보여?”

“이거 놔!!”

정후를 바로 지척에 두고 검은 문신이 가득한 두꺼운 팔에 저지 당했다. 윤서의 반항을 가소롭다는 듯이 제압하면서 성칠은 윤서의 팔을 꺾어 제 품에 가뒀다.

“우리 사이에 다정한 인사는 나눠야 되지 않겠어? 응?”

“어떻게 한거야?? 정후형 어떻게 한거냐고!! 손대지 않기로 했잖아!! 건드리지 않기로 했잖아!! 나랑 약속했잖아!!!!

“아아…그랬지.”

“그런데 왜 이래? 니 눈엔 이게 안 건드린거야? 비열한 개자…악!!”

성칠이 팔에 힘을 주자 윤서의 팔이 기이한 각도를 그리며 꺾어졌다.

“이쁜이. 안 본 사이에 입이 험해졌네. 그럼 쓰나.”

“……….아악…”

“어이..난 동네 양아치 새끼가 아니라 내가 한말은 지켜. 그때는 안 건드렸잖아. 안그래? 하지만 새로운 이해관계가 생겼을 때는 또 말이 다르지. 엉?”

“…………….”

“네 잘난 형님이 또 내 돈을 끌어다 쓰고는 오리발이시네. 그러니 어째? 손 좀 봐드렸지.”

“………….놔…”

고통에 새하얗게 질린 채 독기서린 시선은 거두지 않는 윤서를 보며 성칠은 긴 혀를 내밀어 마른 입술을 축축이 쓸었다. 남녀 가리지 않는 취향이지만 항상 두려움에 발발 떠는 시선만 보다가 이런 앙칼진 고양이 같은 독기라니. 거기다 싫다는 놈 깔아뭉개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것이 다른 놈의 것이라면 더욱 더. 성칠이 작은 새를 놓아주듯 툭 하고 윤서를 앞으로 내밀었다. 윤서의 몸이 한번 크게 휘청하고는 정후에게로 뛰어갔다. 

“형!! 형!! 정신차려봐…형!! 형!! 형!!”

윤서의 가슴이 천갈래로 찢어지고 있었다. 성한 곳 없는 정후를 보면서…정말 이런 취급 받고 살 사람이 아닌데…윤서 제 욕심이 이 사람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고 생각하니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아파서 죽을 것만 같았다. 윤서가 움직이지 않는 정후의 가슴팍으로 얼굴을 묻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미 벌어지고 만 일을… 아직도…아직도 바라고 있는건가…울음도 나오지 않는 통곡. 윤서의 가슴 속 상처가 새빨갛게 입을 벌리고 피를 토해냈다.

“눈물 겹긴 한데 말이야. 이제 그만 하고 일어나지? 그 새끼 아예 황천길 보내고 싶지 않으면 이 상황을 해결해 줘야 할 것 아냐?”

“……………”

“이 씹새끼가 귀가 먹었나?”

“………….뭘 원해?”

제 말은 무시하는 윤서를 차버리려고 했던 발이 멈췄다. 성칠은 비열하게 웃으며 거뭇거뭇하게 난 수염을 매만졌다.

“알면서 묻기는…처음 있는 일도 아니잖아? 안 그래?”

도박에서 정후가 빌린 돈은 어차피 다시 성칠의 주머니로 들어왔다. 하우스에서 돈을 빌려주고 다시 그 돈을 따먹는 거. 성칠은 손해 보는 것 없이 큰 인심을 쓰는 양 윤서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멍하니 서있는 윤서의 목덜미에 이를 박았다.

“윽.”

“니 서방 살리고 싶으면 알지?”

“형 데려다 놓고… 기다려.”

비칠거리는 윤서가 정후를 업으려다가 몇 번을 앞으로 고꾸라지는 지는 것을 지긋이 지켜보던 성칠이 손가락을 탁 튕겼다. 옆에 서 있던 건장한 사내가 거의 반사적으로 정후를 업어 맵다. 사내의 어깨 위에서 축 늘어진 정후의 손을 잡으며 윤서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걸었다. 어떤 생각을 해야 할 지 몰라서 머리가 멍했다.

“잠시 나가 있어요. 곧 갈 테니까.”

사내가 나가고 윤서는 이불을 펴고 정후를 눕혔다. 약통을 꺼내서 터진 부분을 소독하고 연고를 발랐다. 맞아서 부어 오르거나 멍이 든 부위는 파스를 꺼내 붙였다. 누구 말대로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 제법 익숙했다. 그리고 그 익숙함이 참 미웠다.

“…………정말 왜 그래? 나랑 행복해 주면 안돼?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나랑 행복해 주면 안돼? 난 형이 그저…나와 함께 아침을 맞고…밥을 먹고…이야기를 하고…같이 잠자리에 들기를 바란 것 뿐이야…형도 그랬잖아...나와 그러고 싶다고...그럼 형도 나도 행복해 질 거라 생각했어…아니야? 아니야? 아닌거야? 나랑…행복해 질 수는 없는 거야? 형은…돌아가고 싶어? 그때로…그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성공을 하고…그런 삶이 나보다 더 살고 싶은 거야? 형은 내가 없는 삶이… 더 행복해?” 

말로 하니 더 비참했다. 서서히 윤서는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자신과 살면서 정후는 한번도 웃은 적도 편히 쉰 적도 없었다. 어쩌면 정후에게 윤서는 삶의 아주 작은 일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하게 되었다. 그냥 잠시 어린 날의 기억을 공유한, 그래서 조금 특별하다고 생각한 존재였을 뿐, 그에게 전부는 아니였다고…

“형…형…제발….”

윤서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작은 방에 울렸다. 정후가 덥지 않도록 선풍기를 틀어주고 배에 얇은 이불을 덮어주고는 조용히 집을 나섰다. 기다리고 있던 성칠의 부하가 피고 있던 담배를 발로 비벼 껐다. 어서 가자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앞장서는 사내를 따라서 윤서는 한발 한발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재촉했다.

사내는 모텔 방 문 앞까지 윤서를 안내하고는 노크를 한 뒤 옆으로 비껴 섰다. 문이 열리고 가운 차림의 성칠이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윤서에게 손짓을 했다. 저절로 한 걸음이 물러서졌다. 정후가 아닌 타인에게 몸을 허락하는 건 정말 죽는 것 보다 싫었다. 아무 감정 없이 내둘러 지는 대로 굴러 지는, 마치 자신이 너무나도 싸구려가 된 느낌. 윤서는 예전에도 느꼈던 환멸감에 오싹 몸서리 쳐졌다.

“안 들어오고 뭐해? 내가 직접 맞아주길 바라는 거야?”

재밌 다는 듯 느물거리는 목소리. 윤서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성칠에게로 걸어갔다. 싫어도…해야만 하는 일.

“빨리 하고 끝내.”

“글쎄…그건 너 하기 달렸지.”

윤서는 감흥 없는 손짓으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여름이라 벗을 옷도 몇 개 없었다. 드러나는 윤서의 마른 몸에 성칠의 눈이 잔인하게 빛났다. 갈빗대가 적나라 하게 드러나는 얇은 몸은 분명 사내의 몸이긴 했지만 이상스레 정복욕을 자극했다. 성칠이 막 사각팬티를 벗는 윤서의 손을 우악스레 잡아채서 침대로 던졌다.

순간 두려움에 몸을 일으켜 침대 밖으로 빠져 나가려는 윤서의 몸을 잡아 누르고 다리를 넓게 벌렸다. 공포에 흔들리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비열하게 미소지은 성칠은 마구 다리를 바둥거리는 윤서의 행동을 즐기며 잔인하게 파고 들었다.

“아아악!!”

고통에 겨운 비명소리가 터졌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 윤서의 몸이 한번 튕기듯 튀어 오르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밑이 찢어 졌는지 엉덩이 부분이 축축했다. 성칠은 깊숙이 삽입한 성기를 다시 귀두 부분까지 뺐다가 다시 거칠게 집어 넣었다. 윤서의 몸이 다시 파득거렸다. 윤서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두 손을 들어 감쌌다.

“헉..헉..빡빡…한데? 서방이 잘 안해 줘?”

“…으윽….으윽….”  

성칠이 앞 뒤로 움직일 때마다 윤서의 몸이 따라 흔들렸다. 성칠의 손에 잡혀 넓게 버러진 다리는 부들부들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무토막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린 윤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성칠은 삽입한 상태에서 윤서의 몸을 뒤로 뒤집었다. 찢어진 항문에 가해진 마찰에 윤서의 입에서는 또 날카로운 신음성이 흘러 나왔다.

“팔에 힘주고 버텨. 안 그럼 밤은 끝나지 않을 테니까.”

짐승의 교미자세로 엎드린 윤서는 수치심에 울지 않으려 입술을 꽉 깨물었다. 높게 든 엉덩이 사이로 성칠의 성기가 빠른 속도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자꾸 힘이 풀리려는 팔에 정신을 집중하면서 윤서는 어서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수없이 기도했다.

벌…벌이라고 생각하면…이것도 괜찮아. 형…내가 형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면…이것도 정말 괜찮아…형…내가 이렇게 아프면…우리 조금 행복해 질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 아프게 벌 다 받고 나면…형 나한테도 조금씩 웃어줄래…그럴 수 있는 거라면…정말 그렇게 되는 거라면…이것도 괜찮아…나 견딜 수 있어.

“집중하지?”

윤서의 속마음을 읽었을까 못마땅하다 듯 윤서의 엉덩이를 세게 갈긴 성칠이 더 깊숙이 파고 들었다. 윤서의 허리를 잡은 채 강하게 튕겨올리자 윤서의 팔이 기어코 옆으로 힘 없이 꺾였다. 윤서가 앞으로 고꾸라지자 삽입된 성칠의 성기가 반사적으로 뽑혔다. 그리고 그 마찰에 절정에 다다른 성철이 반 투명한 정액을 윤서의 몸 위로 토해냈다. 피와 분비물로 더럽혀진 윤서가 침대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재미없네. 이래서 빛 갚겠어? 네가 잘 못하면…네 형이 큰 화를 당한다는 거 잊었나?”

“………….”

“일어나서 핥아, 입으로 봉사해.”

성칠은 인정없이 널브러진 윤서를 일으켜 세웠다. 침대 끝에 걸터 앉아서 다리를 벌리고, 막 사정을 끝내고 축 늘어진 성기를 윤서의 면전에다 들이 밀었다. 윤서의 딱딱하게 굳은 표정에 성칠은 또다시 성욕에 치밀고 올랐다. 형이라고 부르는 놈을 볼 때는 언제나 촉촉이 젖은 눈으로 서글프게 미소 지으면서, 자신을 볼 때면 돌처럼 굳어지는 윤서를 괴롭히는 것이 즐거웠다. 만약 저 눈이 쾌락에 젖어 번들거리면 어떨까? 아니면 아까처럼 공포에 젖어 바들거려도 좋겠지. 손 안에 작은 벌레를 굴리 듯 윤서는 성칠에게 아주 흥미 있는 유흥거리였다.

윤서가 무릎을 꿇고 성칠의 성기에 입을 가져다 댔다. 비릿한 피와 정액의 향에 우욱 하고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윤서의 입에 들어가자 성칠의 분신은 급속도로 커졌다. 목구멍을 꽉 메우는 이물질에 윤서의 숨이 할딱거리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성칠은 윤서의 뒷머리를 잡고 허리를 앞뒤로 튕겼다. 점점 세게. 성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윤서는 힘을 빼고 성칠이 움직이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입 안에서 성기가 움직일 때 마다 찢어진 살들이 너덜거리는 게 느껴졌다. 피가 목 안으로 쿨렁쿨렁 넘어갔다. 머리를 새하얗게 만드는 격한 고통 속에서도 윤서의 바람은 하나 뿐이었다. 

“흐응…으음…흡…”

성칠이 윤서의 입안으로 다시 정액을 배출했다. 입을 뗀 윤서가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우웩!!! 우웩…..웩..웩!! 웩!!! 우웩!!”

피와 함께 얼마 먹지도 않았던 오므라이스 까지 모두 다 게워냈다. 속이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아니 쥐어짜져서는 내장까지 모두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흐으윽…흑…흑…”

설움까지 올라왔는지 윤서는 내려가는 변기 물 소리에 울음소리를 감췄다. 얼마나 더 고통스러워야 행복해 질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지금도 너무 힘들고 아픈데 얼마큼 더 해야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래도…하면서 붙잡고 있는 희망이 점점 달아나는 것만 같았다.

물을 틀어 엉망이 된 얼굴을 씻고 더러워진 몸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씻어냈다. 몇 번을 닦아도 여전히 스물거리는 감촉이 느껴져서 계속 계속 비누칠을 해야 했다.

“끝났다고 한 적 없는데?”

“더는 못해. 어차피 갚을 이유 없는 돈이잖아. 다 네 주머니에 처 박혔을 테니까.”

“훗. 누가 그래? 갚을 이유 없다고? 이 바닥에서 돈 빌리고 안 갚는 게 어떤 의민지 몰라?”

“그러니까 닥치고 대 줬잖아. 니가 원한 거 아니었어? 갚을 능력 없다는 거 알면서 형한테 돈을 빌려주고 도박하게 한 거. 돈이 아니라 내 몸이 목적인 거 아니야?”

“아아. 오늘 같아서는 그냥 네 형 장기가 더 나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형 건들 지마. 너 같은 새끼가 함부로 손 댈 그런 사람 아니야. 건들 지마. 한번 만 더 형 건드렸다가는…내 목숨 걸고. 너. 죽여 버릴거야.”

싸늘한 독기가 윤서에게서 풍겨나왔다. 시원하게 틀린 에어컨 때문이 아니라 성칠은 윤서의 기에 진심으로 서늘해졌다. 허투로 한 번 해보는 빈말이 아니었다. 진심에 진심을 담은. 당장이라도 베일 것 같은 살기에 성칠은 정말 즐거워졌다. 

“도대체 뭐냐? 너한테 그 새끼.”

“알 거 없어.”

“진심으로 흥미가 생기려고 하네.”

“…………..”

“너…내 이거 할래?”

성칠이 새끼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충동적으로 말을 내 뱉고는 성칠도 놀랬다. 하지만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근래에 윤서만큼 자극적이고 흥미를 유발하는 존재는 만나보지 못했으니까.

“그 새끼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뭐 내 깔이 되면 다정하게 대해주지.”

“…………….”

윤서는 대답 없이 성칠에게서 등을 돌리고 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이 새끼가!!”

획 잡혀서 뒤돌아 본 윤서의 눈동자는 고요한 호수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태풍도 휘젓지 못할 만큼 고요하게. 유리알 처럼 맑은 두 눈이 성칠을 가득 담고 있었지만, 그 안은 더할 나위 없이 공허했다. 윤서의 어깨를 강하게 잡은 성칠의 팔에서 힘이 스르륵 풀렸다.

“내가…다른 누구의 옆도 괜찮았다면…내가…너한테…이런 짓까지 감내 했을 것 같아?”

“……………”

“난 그 사람밖에 없어. 그 사람 아니면…아무도 아니야.”

금방까지도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살아 움직이는 걸 본 것처럼 성칠은 멍했다. 한방 맞은 것 같은 성칠을 두고 윤서는 방문을 닫았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자 서둘러 움직였더니 또 밑의 상처가 터진 모양이었다. 바지를 타고 내리는 핏줄기를 느끼면서도 윤서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돌아온 집은 나갔을 때와 똑같았다. 정후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윤서가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잠든 정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스윽…흘러나온 머리도 올려줬다. 예전에는 참 가까웠는데…언제나 손만 뻗으면 서로를 만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잠든 정후가 아니면 손 닿을 수도 없게 됐다. 윤서는 이불 밖으로 나온 정후의 손에 깍지를 꼈다. 그리고 마지막 한 톨의 힘까지 다 써버린 것처럼 옆으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입안이 바짝 바짝 말라서 마른 침이라도 모아 삼켜 봤지만 정신이 번쩍 들만큼 목안이 아팠다. 윤서는 감은 눈을 힘겹게 뜨면서 무의식 중으로 옆자리를 살폈다. 팔이 뻗치는 곳까지 최대한 더듬어 봐도 으레 있어야 할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형??”

아찔한 격통을 참으면서 일어나 주위를 살폈지만 정후는 어디에도 없었다. 시계를 보니 막 정오를 넘기고 있었다. 벽에 걸린 달력을 보니 둘째 주 월요일. 정후가 아침부터 밤 늦게 까지 돌아오지 않는 날 이다. 

“열이 나나?”

이마를 짚어보니 꽤 뜨거웠다. 고개를 잘레잘레 흔드니 잔상들이 길게 따라붙으며 띵 하고 골이 울렸다. 어제부터 제대로 먹은 게 없다는 생각에 윤서는 부엌으로 들어가 식은 밥을 그릇에 퍼 담았다. 쉬어버린 김치와 대충의 밑반찬을 꺼내서 상에 올리고 찬물을 밥에 말았다. 아무 생각 없이 한 숟갈을 떠서 입안에 넣는데 울컥 설움이 솟았다. 입안 상처를 헤집고 돌아다니는 밥알들을 씹지도 못하고 삼키는데 부어 오른 편도가 찢어질 듯 아팠다. 그래도 윤서는 꾸역꾸역 남은 밥들을 입안에 퍼 넣었다.

“너!! 꼴이 그게 뭐야?”

하루 사이 해쓱해진 윤서를 보고 현정의 목소리가 잔뜩 높아졌다. 걱정이 내면 외려 화를 내는 현정의 버릇에 윤서는 그저 쓰게 미소 지을 뿐 이었다. 그릇들을 씻는 손이 오늘따라 지나치게 굼떴다. 자꾸 오르는 열에 시야마저 뿌옇게 흐려져서 윤서는 눈을 계속 비볐다. 가만히 서있는데도 휘청거리는 듯한 윤서의 모습에 현정이 가까이 다가왔다. 막 현정의 손이 윤서에게 닿을 때 윤서가 젖은 바닥으로 픽 쓰러졌다.

“윤서야!! 윤서야!!! 야!!! 너 뭐해? 당장 업어!!”

핏기 하나 없이 쓰러진 윤서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무게감이 없었다. 병원에 옮긴 윤서의 병명은 항문열상과 빈혈, 그리고 영양부족. 온몸에 자잘하게 퍼져있는 타박상의 흔적에 의사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감추지 못했다. 링겔을 맞으면서 잠든 윤서를 보다가 현정은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 도박 빚을 갚느라 성칠파 두목과 관계를 가졌다는 말은 예전에도 들은 기억이 났다. 윤서의 입에서 직접 전해들은 건 아니지만 이 바닥에서, 특히 술집 마담을 하고 있으면 이런 소문은 앉아서도 그냥 귀에 꽂혀 든다. 알면서도 모른 척 한건 윤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 였다. 

“그 새끼는 모르지? 알면서도… 너 이렇게 되는 거 알면서도 노름질 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그런 건 아니겠지? 너 이렇게 되라고 부러 미친 짓 하고 다니는 건 아닐 거야…”

말로 내뱉고 나니 설마…정말 그런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서의 몸에 퍼져있던 멍들은 옅은 푸른색과 노르스름한 색이 섞여 있었다. 생기고 꽤 시일이 지난 멍이었다. 그런 흔적을 만든 사람은 성칠이 아닌 그 형이란 사람일 게 뻔했다. 

윤서가 이곳으로 온지도 3년이 넘었다. 3년동안 구타의 흔적이 사라진 적이 없었다. 그토록 용서가 안되면…그냥 떠나던가, 아니면…좀 더 사람꼴로 살게 하던가…이게 뭐야…이 아이가 이렇게 아픈데 연락도 되지 않는다. 아마 또 아무데서나 술을 마시거나 노름을 하겠지. 현정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 

윤서와 같이 주방일을 보는 아이를 불러 병실을 맡기고 현정은 택시를 타고 이력서에 적힌 윤서의 집 앞으로 갔다. 차도 들어 가지 못하는 작은 골목길을 한 참 지나서 허름한 철문이 보였다. 몇 번 두드려 보아도 반응이 없다. 현정은 계단 앞에 주저 앉았다. 여기까지 왜 온 건지, 와서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머리 속이 어지러웠다. 무턱대고 오긴 했지만…과연 현정 자신이 끼어도 되는 일인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얼마나 한참을 앉아 있었을까…더는 기다릴 수 없어 막 일어날 때쯤 제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서는 비척대며 걸어오는 한 사내가 보였다. 저 남자가…윤서가 평생 지고 갈 죄값이라…자신을 발견하고는 흐리멍텅한 눈에 애써 초점을 맞추려는 정후를 보고 현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어따 대고 반말이야?”

한쪽 다리를 건들 거리면서 현정은 정후 코 앞까지 다가갔다.

“뭐야?”

“어따 대고 반말이냐고! 내가 당신보다 나이 더 많거든.”

“미친…”

현정의 대꾸에 정후가 비틀거리며 현정을 미쳤다. 현정은 밀쳐지는 대신 오히려 정후를 밀어 바닥으로 넘어뜨렸다. 콰당 하고 엉덩방아를 찍은 정후가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져서는 땅에 처 박혔다.

“윤서 어디 있는 줄 알아?”

“그 새끼가 어딨는지 왜 나한테 물어!!”

“당신 사람 아니야? 윤서?”

“그딴 새끼 몰라.”

“야!!”

현정이 무릎을 굽히고 앉아 정후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그래도…그녀도 윤서가 잘 못했다는 거 안다. 자기 인생을 시궁창속에 처박았으니 증오스럽겠지, 용서 안되겠지. 안다. 안다고! 그래도 그래도…사람 마음은 혼자서는 흐를 수가 없다. 윤서가 그토록 흐를 때까지, 그토록 깊고 아득해질 때까지, 여기 이 남자도 아무 책임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이 남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윤서 혼자 그토록 사랑이 깊어져, 해선 안될 짓까지 했을까. 그건 아닐거야...그럴 수 없지. 그러니까 당신도 공범이야.

"사내새끼 맞아? 그렇게 망가져 있으면 좀 더 살 만 하니? 너 때문에 윤서가 무슨 일까지 하고 다니는 지 알아"

".......내가 알아야 하나?"

차가운...지독히도 냉정한 정후의 대답 위로 현정은 병원에 있을 파리한 얼굴 하나가 떠올라서 가슴이 시렸다. 윤서야...너 이런데도 아직...행복을 꿈꾸냐? 이 자식과?

“당신 때문에 윤서 너덜너덜 해져선 병원에 있어. 당신 때문에…너덜너덜 해졌다고.”

“그땐 새끼 모른 댔지!!! 그 새끼가 너덜너덜 해지든…”

“나중에 제정신 들어 후회할 말 하지마!! 당신 조금이라도 제 정신 들어서...됐다. 내가 그쪽이랑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하나병원이야. 일반병실 505호. 술 처마시고 노름할 시간 있으면 한번 들여다 봐. 그 녀석 그것만으로도 아마..."

.................행복하겠지. 부연 얼굴 위로 말갛게 웃음 짓겠지. 

윤서야. 근데 그게...정말 행복일까? 

현정은 허탈해 졌다. 마음이 야금야금 사람을 갉아먹는 거, 다 갉아 먹어버린 후 텅 비어버린 빈 껍데기로 내던져 버리는 거, 이미 정후도 너덜너덜해 져 있었다. 현정은 얽힌 실타래 처럼 베베 꼬여버린 윤서와 정후의 관계를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더 보고 있으면 살면서 잊어야 했던 몹쓸 기억들이 하나 둘 수면 위로 떠오를 것만 같았다.

"과거야 어쨌든 이 순간, 지금의 현실은 당신이 만든 거야. 똑똑히 기억해.”

현정은 정후의 멱살을 놔주고는 무릎을 탈탈 털고 일어섰다. 정후의 눈 안쪽 깊숙한 곳에서 언뜻 스치고 지나간 아픔이 현정을 더 닦달할 수 없게 만들었다.

“씨발. 뭐 이래.”

괜히 세상에게 험한 욕 지껄여 주면서 현정은 팔 안쪽 소매로 슬쩍 눈물을 훔쳤다.

정후는 결국 퇴원하는 날까지 오지 않았다. 

기다리지 않아요..올 리가 없어요…라고 쓰게 웃었던 윤서는 현정이 퇴원수속을 밟는 동안 화장실에서 오래도록 나오지 않았다.

“괜찮냐? 왜 벌써 나와. 며칠 더 쉬라니까.”

“이제 말짱해요! 봐봐.”

“보긴 뭘 봐. 어이. 어디가?”

현정에게 인사를 한 후 부엌으로 향하는 윤서를 현정이 손짓으로 불렀다.

“가긴 어딜 가요? 설거지 해야지.”

“잘됐다. 너 따라와.”

현정이 윤서를 데리고 사장실로 들어갔다. 어리둥절한 윤서를 소파에 앉히고 노란 서류철 한더미를 탁자위로 쏟아 부었다.

“뭐에요? 이게?”

“보면 몰라. 계산서들이지. 너 오늘부터 이거 정리해.”

“무슨 소리야. 나 이런 거 못해요.”

“어쭈? 요것 봐라. 사장이 까라면 까는거지. 종업원 주제에 말이 많아. 오늘부터 너 사장실에서 이거 보는 거다. 계산 틀리면 짤릴 줄 알아. 정신 똑바로 챙겨.”

현정이 윤서의 머리를 마구 헝클고는 자기 머리에서 나왔지만 아주 멋진 생각이라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윤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현정의 배려에 코끝이 아쌀했다.

하루종일 숫자만 들여다 봤더니 머릿 속이 뱅뱅 돌았다. 설거지 할 때 보다는 훨씬 개운한 몸을 이끌고 집 열쇠를 찾아 들었다. 오랜만에 정후를 보는 것이라 윤서는 속절없이 또 가슴이 뛰었다. 두려움인지 설레임인지, 이제는 알 수가 없었지만. 

“형?”

깜깜한 공간에 스위치를 켜니 형광등이 깜박거리며 빛을 냈다. 여지 없는 광경들. 여전히 술에 취해 널브러져 있는 정후와, 어지러운 방안. 윤서는 스위치를 다시 내렸다. 현실이 변했을 리가 없다.

촛불에 불을 밝히고 윤서는 어질러진 방안을 치우기 시작했다. 바닥을 굴러다니는 무수한 술병들을 모아다가 밖에다 내놓고, 여러 얼룩들로 엉망인 방을 깨끗한 걸레로 빡빡 닦았다. 얼추 정리가 다 되자 세탁해서 넣어 놓은 마른 수건을 꺼내 차가운 물에 적신 후 물기를 꼭 짜냈다. 그리고 정후의 드러난 피부위를 문질러 닦았다. 술에 취한 정후는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방안을 치우면 깨끗해 지는 것처럼, 이렇게 닦으면 더러운 것들이 묻어 나오는 것처럼…형….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손가락 사이 사이도 닦고, 팔을 올려 겨드랑이 사이도 닦고, 정후의 체온이 윤서의 손끝에 번졌다.

“나 안보고 싶었어요? 나…하나도 안보고 싶었어? 나는…형이 보고 싶어서 몰래 울었는데…”

마지막으로 발끝까지 깨끗하게 닦았다.

“형이 술…안 마셨으면 좋겠어요. 노름도 안 했으면 좋겠어. 나를 보고 예전처럼 웃어 줬으면 좋겠어. 나를…사랑해줬으… 에이. 이것까지는 안 바란다.”

혼자 킥킥 웃었다. 정후가 깨어 있으면 절대 할 수 없는 그런 말들. 웃음 뒤 끝엔 또 물기가 매달려 있었다.

윤서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현정의 심부름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정후, 덥수룩하던 수염을 깨끗이 면도하고, 옷도 구김 없이 단정히 입었다. 머리도 헝클어지지 않았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지도 않는다. 윤서는 홀린 듯 정후를 쫓아가고 있었다. 한 낮의 태양을 당당히 맞으며 걷는 정후를 본 게 얼마 만인지. 머릿속을 가득 메운 기대 때문에 윤서는 숨 쉬기도 곤란했다. 

정후가 들어 간 곳은 시내 조금 옆에 위치한 대학교 도서관. 정후는 익숙한 듯이 자리를 잡고 서고에서 책을 꺼냈다. 두꺼운 책을 한 손으로 들고 비스듬히 서서 책을 넘기는 정후의 모습에서 윤서는 예전 정후의 모습 한 자락을 꺼내 볼 수 있었다. 

윤서의 눈이 계속해서 정후를 쫓았다.

책 한장 한장 뚫어져라 응시하는 정후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이 났다. 무섭도록 집중한 모습. 예전에도 저랬다. 정후가 책을 읽는 동안은 시간도 멈춘 듯 했었다. 

“형..책 그만 보면 안 되요? 아우..나 왔는데. 응? 책 그만 봐요..”

“………….”

“형!!”

크게 소리를 빽 지르고 서야 받을 수 있었던 그의 관심.

“……..아.. 미안. 못 들었어. 뭐라고 그랬어?”

그리고 미안한 듯 웃던 그의 모습.

거침없이 책을 뽑아 들고서 책상에 앉은 정후의 머리 위로 햇살이 한줄기 비춰 들었다. 반짝 반짝. 정후가 빛이 났다. 반짝 반짝.

“형…”

닿지 앉는 윤서의 목소리가 조용히 공기중으로 흩어졌다. 

“정후형!!”

갑자기 정후를 부르는 목소리에 윤서의 목이 한 웅큼 들어갔다. 혹시 들킬 새라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셋과 여자 한명이 정후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언제 왔어요? 우리가 조금 늦었죠?”

“금방 왔어. 앉아.”

여자애가 사온 음료수를 마시면 정후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자신만만한 손짓과 함께 모두를 끌어드리는 흡입력 강한 그의 말투. 대학생들과 격렬하게 토론을 벌이고 있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하고, 또 너무나도 낯설었다.

부정할 수 없는 건…한정후가 빛이 난다는 것이다.

윤서의 눈이 도서관 벽에 걸려있는 달력에 맺혔다. 둘째 주 월요일. 항상 정후가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날이었다.

행복해 보였다. 정후가.

빽빽한 법서를 보는 정후는, 어린 학생들과 의견을 나누는 정후는,

수염을 깎은 정후는, 옷을 단정히 입은 정후는, 술에 취하지 않은 그는,

태양 아래 한정후는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정후가 웃었다.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크고 호탕하게. 옆에 앉은 남학생의 머리를 헝클면서 어깨를 툭툭 치는 정후는 무척이나 즐거워보였다.

언젠가부터 늘 보여줬던 패배자 같은 모습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늘 보여줬던 삶에 지친 낙오자의 모습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빛을 잃었던 그 모습이 아니다.

정후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우욱….우욱….우웁….우욱……”

윤서는 입을 꼭 막고 몸을 반으로 접었다. 

무슨 짓을 한 건가…내가 저 사람에게. 무슨 짓을. 내가…감히 그에게 무슨 짓을 한건야…저렇게 빛이 나는 사람인데…저렇게 빛나야 하는 사람인데. 얼마나 열심히 꿈을 이룬 사람인데…얼마나 힘겹게 그곳까지 올라간 사람인데…내가…내가…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지?

잘못했다 잘못했다 말을 하면서도 정작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정후에게서 빼앗은 것이 무엇인지를 한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내가….형한테…무슨 짓을 한 거에요?…어억….으윽…웁웁..웁…”

뚝뚝 떨어지는 방울 방울 마다 정후가 맺혔다.

한 방울엔 원하던 학부에 합격했다고 좋아하던 정후가,

한 방울엔 양부모님이 생겼다고 기뻐하던 정후가.

한 방울엔 마음이 맞는 친구가 생겼다고 설레여 하던 정후가.

한 방울에 공부가 힘들어 살짝 지친 정후가

또 한 방울엔 코피를 흘려가면서 밤을 새던 정후가…

또 떨어진 눈물에는 시험에 합격하고 윤서를 안고 몰래 흐느끼던 정후가…

폭포수처럼 흐르는 눈물 속에서 자신이 망쳐버린 정후의 모든 것이 보였다.

정말…모두 망쳐버린 거다. 자신이. 정후가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부숴버렸다. 모두 빼앗았다.

“나..나…나…형한테….내가….무슨..무슨…짓을…”

나는 잃을 게 형밖에 없어서…형도 그런 줄 알았어…나 무슨 착각을 한 걸까? 형은 이렇게 가진 게 많았는데…이렇게…많았는데…잃어선 안 되는 것들이었는데…가지고서 형이 너무나도 기뻐하던 소중한 것이었는데…이걸…이걸..모두..모두 내가….부순거야…세상에…형…형…

윤서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도서관을 빠져 나왔다. 어디든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궜다. 바닥에 엎어져 숨도 쉬지 못하고 울었다. 

“무슨 짓을 한 거야..너…너…대체..대체…”

윤서의 주먹이 화장실 타일 바닥을 내리쳤다. 손을 타고 올라오는 아찔한 감각이 오히려 숨을 쉬게 해주는 것 같았다. 한번 더. 한번 더. 윤서는 바닥을 내리치며 엉엉 울음을 내뱉았다. 

“미안해..형…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형..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

윤서의 주먹에서 피가 베어 나오기 시작했다. 윤서는 아픈 줄도 몰랐다. 정후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잘못했지만 미안하지는 않았다. 윤서의 마음 깊은 곳엔 정후를 불행에서 끄집어 냈다는 미친 자만이 자라고 있었기에, 언젠가 정후도 자신과 행복해 질테고…그럼 오히려 잘 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미친 생각. 그래서 윤서는 미안하지는 않았다. 

“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누구보다 행복하길 바란 사람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깊숙이 밀어넣은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을 빼앗은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의 꿈을 빼앗은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와 친구,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빼앗은 사람은 바로…윤서 자신이었다.

술을 마셨다. 정후가 풍기는 술 냄새에 지쳐 술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윤서였지만 오늘은 술을 마시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안주도 없이 소주를 마시면서 왜 정후가 그토록 술만 찾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어이?”

들이 붓다시피 하는 윤서의 팔을 누군가 잡았다. 게슴츠레 하게 앞을 보니 성칠이 인상을 쓰고 서 있었다.

“놔.”

“뭐 하는 짓거리냐?”

“놔!!”

거칠게 뿌리치는 손에 빈 술병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와장창 하는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조리 집중됐다.

“뭘 봐. 씨발. 눈깔아.”

성칠이 욕설을 내뱉자 포장마차에 있던 사람들이 주섬주섬 자리를 떴다. 포장마차의 주인도 혹 성칠이 행패를 부릴까 조심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 와중에도 윤서는 술을 마시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 새끼가. 죽을 라고 환장을 했나? 야!!”

“내버려두고 니 갈 길 가. 왜? 형이 또 너한테 도박 빚 졌어?”

“……….너 손이 왜 이래?”

잡힌 윤서의 손은 살이 짓무르고 으깨진 채 피에 엉겨 붙어 엉망이었다.

“꺼져.”

“야!!”

“내버려 둬….제발…그냥 좀 가…날 ㅈ…우욱….”

술을 마셔도 잊혀지지 않았다. 더 마시면 혹시 지워질까 속이 울렁거릴 만큼 마셨음에도 전혀 나아지지가 않았다. 정후도…이랬을까. 아무리 마셔도 고통이 사라지지 않아서 더 괴로웠을까. 윤서는 미칠 것만 같았다. 

“완전히 돌았군.”

“……미안해…형….미안해…미안해….”

정신을 놓으면 수도꼭지처럼 줄줄…미안하다는 말만 새어 나왔다. 

“일어나. 데려다 주지.”

성칠은 자신이 왜 윤서에게 친절을 베풀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답지 않게 망가지는 윤서의 모습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것도 그 형이라는 새끼 때문인가? 성칠은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일어나라고!!”

“…………….”

“왜 지랄이냐? 네 서방이 여전히 말을 안 듣냐? 바람이라도 펴? 버림이라도 받았냐? 주워 줘?”

성칠은 일부러 윤서를 살살 긁었다. 이렇게 신경을 건드리다 보면 언제나처럼 독기 가득한 눈으로 저를 쳐다볼 줄 알았다. 하지만 처연하게 자신을 올려다 보는 윤서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자 성칠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윤서는 성칠을 두고 일어나서, 술값을 치르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뒤에 남겨진 성칠이 멍하게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윤서를 거칠게 잡아챘다.

“씨발. 이게 이쁘다 이쁘다 하니까 누굴 물로 보나. 죽을래?”

“………..죽여 줄래?”

이미 죽어버린 것과 같은 윤서의 말투와 표정.

“…뭐?”

“놔.”

성칠은 이번에도 굳어서는 손을 뿌리치고 가는 윤서를 그저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온 몸의 수분이 다 빠져 나간 것처럼 윤서는 집에 도착하자 마자 방바닥으로 쓰러졌다. 얼마나 울었는지…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미안해..형….미안해요…미안해요…..”

아직도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옆으로 누운 윤서의 코를 타고 눈물이 귓속으로 떨어졌다.

새벽 1시가 다 되도록 정후는 들어오지 않았다. 둘째 주 월요일 밤의 정후는 언제나보다 더 많은 술을 마시고 돌아왔다. 이제야 윤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꺾여버린 날개가 아파서…정후는 더 많이 술을 마시고, 더 정신 없이 취해야 했으리라.

쾅쾅쾅.

문을 세차게 두들기는 소리에 윤서가 벌떡 일어나 잠금쇠를 풀었다. 문이 열리자 마자 푹 고꾸라지는 몸을 받으면서, 윤서는 또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인사불성이 된 정후를 눕히고, 또 듬성듬성 나기 시작한 검은 수염을 보고서, 구겨진 옷자락에, 윤서는 끝 모르는 무저갱 속에 빠진 것처럼 절실히 통감했다. 

윤서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침 늦도록 일어나지 않는 정후를 보면서 윤서는 출근 준비를 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참으로 못났다. 잔뜩 부은 눈에 생기 없는 얼굴. 무기력하고 가진 것 하나 없이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초라한 어린애가 한명, 윤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행복해 질 거라고 생각했어? 형을 망가뜨려 놓고도… 형 대신해서 돈을 벌고, 형이 때리는 대로 맞고 참으면? 형 위한다고 몸을 팔면…네 죄가 옅어질 거라고 생각했어? 넌 이만큼 힘드니까 언젠가는 행복해 질지도 모른다고?…그거야 말로 이기적이 생각이지…안 그래?’

보기 싫게 일그러진 흉측한 얼굴로 거울 속 어린애가 잔인하게 속삭였다.

정후가 일어나면 먹을 수 있도록 상을 차려 놓고 윤서는 집을 나왔다. 큰길로 이어진 골목 끝에 검은 중형차 한대가 서 있었다. 슬쩍 보고 지나치려는데, 왠지 낯이 익은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정윤서씨?”

사내를 알아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윤서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남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윤서에게로 다가왔다.

“제가 누군지 알겠습니까?”

“…….네.”

“선배는 잘 계십니까?”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윤서의 고개가 땅으로 떨어졌다. 남자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남자의 입에서 나온 연기가 뿌옇게 하늘로 날아갔다.

“로펌에서 나와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습니다. 그곳에 선배를 모시고 싶습니다.”

‘…………...”

“일전에 선배를 한번 뵙고 말씀 드렸는데, 안 된다 고만 하시더군요. 그래서 선배님 설득을 정윤서씨에게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윤서의 고개가 발딱 들렸다. 저도 모르게 남자의 양복을 움켜쥐었다.

“형한테…가자고 말했어요? 그런데 형이 안 간다고 했어요?”

왜? 왜? 돌아갈 수 있었는데…안 갔어?

형…왜 안 갔어?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했잖아…매일 술을 마시고, 매일 고통스러워 하면서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했잖아. 

책을 보면서 너무도 즐겁게 웃었잖아. 사람들과 토론을 하면서 그렇게 행복해 했잖아..다시 기회가 생겼는데…왜 안 갔어? 왜 간다고 하지 않았어?

윤서는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 때처럼 머리가 엉켰다.

남자는 윤서의 손을 탁 털어냈다. 그리고 아무 감정이 섞이지 않은 무감한 눈동자로 윤서를 스윽 하고 훑었다.

“네. 어떤 이윤지는 모르겠지만 갈 수 없다고 하더군요. 선배의 자존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더는 선배가 이런 진창에서 헤매고 있는 꼴 두고 볼 수 가 없습니다. 선배를 이 진창으로 끌어들인 사람이 정윤서씨니, 되돌려 놓는 것도 정윤서씨가 하십시오.”

되돌려 놓는다….정후를?

보낸다…형을?

영영….볼 수 없게 된다….그를?

“원..원재씨..형..돌아가면..돌아갈 수 있어요? 원래 자리로…형 돌아갈 수 있어요?”

“한정후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당연하다는 원재의 말에 윤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한정후다. 태양처럼 빛이 나서 함부로 볼 수 도 없었던 한정후. 

내가 사랑하고 사랑해서 결국 미쳐버렸던 한정후.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낼 수 있단다...그럼 당연히 보내야지…그 사람을 더는 이곳에 둘 수가 없으니까…망가진 형을 보는 게…이제 정말 힘이 들 테니까. 못 봤으면 모르되, 그렇게 환하게 웃는 그 사람을 다시 봤는데…내가 더 어떻게 욕심을 부려..이미…봤는데… 벌써 알아버렸는데…

윤서는 손안에 원재의 명함을 가슴에 꼭 품었다.

“밥 먹어요. 형.”

정성껏 한 상 가득 차렸다. 정후가 좋아하는 것들. 그동안 사정에 쫓겨 쉽사리 만들지 못했던 여러 음식들을 잔뜩 만들고서 윤서는 정후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빨리 앉아요. 뭐해?”

그날의 일이 없었다면 어쩌면 지금도 지속되고 있을지 모르는 그때처럼, 윤서는 오랜만에 재잘거리며 정후를 맞았다. 절박하리 만큼 애를 쓰고 있는 윤서를 알았을까, 굳은 표정으로 한동안 서 있던 정후도 아무 말 없이 상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윤서는 정후가 좋아하는 굴비를 뚝 발라내서 밥 위에 올렸다. 어서 먹으라는 듯 생글거리는 윤서의 표정에 정후가 못 이긴 척 밥을 입안으로 집어 넣었다. 이번에는 버섯잡채를 돌돌 말에 정후의 입에 가져갔다. 팔이 아프게 한참을 있자 정후가 마지 못해 입을 벌렸다.

“우리 이렇게 밥 같이 먹는 거 엄청 오랜만이죠? 헤헤.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 형이랑 같이 먹으니까 더 맛있는 거 같아. 그쵸?”

“…………”

묵묵부답.

괜찮았다. 이렇게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게 어디야. 이제…다시 없을 텐데.

“형…술..이제 너무 많이 마시지 말아요. 나 한번 먹어보니까…아우..속도 쓰리고…신물도 올라오..”

“뭐 하자는 거야?”

정후가 탁 소리 나게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윤서는 움찔거렸지만 정후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술..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고요. 속 버려…그리고…”

상을 거칠게 밀어버리고 정후는 벌떡 일어섰다.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듯 윤서의 호주머니를 뒤져 지폐 몇장을 꺼내서는 휑 하니 나가버렸다.

“…말은 지독스레 안 들어…마시지 말라니까…….바보….조용히 있을걸..”

너무 빨리 끝나버린 마지막 만찬이 아쉬워서 손 끝이 저렸다. 

윤서는 자조 섞인 독백을 마치고 서둘러 상을 치웠다. 집 구석구석 깨끗하게 닦다가 힘이 빠져 걸레질을 멈췄다. 

여기서…3년이 조금 넘게 정후와 살았다. 함께 웃지도, 함께 밥을 먹지도, 함께 손을 잡고 길을 거닐지도 않았지만, 여기서 정후와….살았다. 눈을 뜨면 정후가 보였다. 함께 숨을 쉬고, 같은 공간에 있었다. 

이젠…끝이지만.

원재를 만난 후 며칠동안 정말 많이 생각해 봤다. 어째서 정후가 원재의 제안을 거절했는지.

오랜 생각 끝에 윤서는 답을 찾은 것도 같았다.

아무리 술에 취해도 꼭 돌아오는 정후의 모습에서,

자신을 패고 때린 후 더 많은 술을 마시던 정후의 모습에서,

집을 청소하면서 찾은 새 타박상 연고에서…

윤서는 알 것도 같았다. 그렇게 견뎌서라도 윤서 자신의 곁에 있어준 정후를.

용서할 수는 없지만, 용서가 되지도 않지만,

그래도 자신을 버릴 수 없었던 정후의 마음을.

이 감옥 같은 곳에서 견디기 위해 망가졌던 정후를.

망가져도 망가져도 떠나지 않았던 정후를.

둘째 주 월요일마다 무엇을 하는지 말하지 않은 정후를…원재를 따라 떠나지 않은 정후를…윤서는 겨우 겨우 알 것 같았다.

정말 어리석었다. 그런 정후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윤서의 얼굴이 회한으로 가득 일그러졌다. 눈뜬 장님과도 같았다. 자신의 가슴 속 휘몰아치는 감정에만 정신이 팔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용서를 빌었으면 됐을까? 바보 같이 혼자 자기 연민에 빠져 내가 만든 고통 속에서 허우적 거리지 말고 차라리 용서를 빌었으면 형도…나도..조금은 건져 졌을까?

내가 도박빚을 갚는다고 다른 사람에게 다리를 벌리는 대신, 형에게 그러지 말아달라고 소리쳤으면 조금 더 나았을까? 

윤서는 피식 하고 실소했다.

벌을 다 받으면 행복해 질 거라고 생각한 어리석음이란…그런 행복이 어딨어…

혼자 불쌍한 척, 슬픈 척, 고통스러운 척, 오히려 피해자인 척,

정후를 더 몰아 붙였던 자신의 모습에 윤서는 정말 구역질이 났다.

“형…진짜…미안.”

윤서는 일어나서 짐을 챙겼다. 가져갈 건 몇 개 되지 않았다. 하나 하나 챙길 때마다 저미듯 가슴이 아파서, 몇 없는 짐을 챙기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장롱 속에 가방을 숨겨놓고 또 넋을 놓고 앉아 있다가 어느새 잠이 든 모양이다. 정후가 들어오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옆에 눕는 정후의 체온에 또 울컥 휘저어진 가슴을 꼭 눌렀다.

이제…이 사람을 보내야 한다.

이젠…다시는 손을 뻗어 만질 수...없다.

이젠…이 사람이 나를 보고서… 다정히 웃어 줄 거란 기대조차 하지 못한다.

이젠…이 사람과…행복해 질 수 없다…

이젠……..

이젠…………

또 술에 취해 잠든 정후를 윤서는 눈에 새겼다. 흩어진 머리칼, 훤칠한 이마, 감은 눈, 잘빠진 코, 꽉 다물린 입술. 

진작 이랬어야 하는데. 가슴을 휘젓는 후회.

윤서는 준비한 편지지를 꺼냈다. 얼굴을 보고, 직접 말할 용기는 없었다. 얼굴을 보면 떠나보낼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다리를 붙잡고 질질 매달리며 애걸할 지도 모른다. 

펜을 들었다.

뭐라고 써야 할지 막막했다. 

그 오랜 세월 함께하면서…형제 같았던 10년, 뜨겁게 사랑했던 3년, 그리고 그에게는 지옥 같았을 3년, 헤어짐을 생각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

한 순간도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보내야 했다. 정후가 행복해 질 수 있는 곳으로.

자신의 이기심에 꽁꽁 묶어서 어디에도 가지 못한 큰 새를 다시 세상으로 돌려 보내야 했다.

정후 형...정후 형..

정후 형...

정ㅎ

윤서의 상체가 종이 위로 무너졌다. 무슨 말을 써야 지금 이 마음을 글로 옮길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 가 없었다. 두드려 맞은 것처럼 먹먹한 가슴의 통증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걸까...윤서는 그저 정후의 이름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흘러나온 눈물에 써놓은 정후의 이름이 부옇게 번져갔다.

윤서는 다시 펜을 꼭 잡았다. 마지막이다. 제대로 정리해줘야 했다. 정후가 훨훨, 원하는 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도록, 그 곳에서 다시 반짝반짝 빛이 날 수 있도록...그리고 행복해 질 수 있도록.

미안해요. 형.

정말 미안해요.

형을 내가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정말이야. 불행하게 만들려고 그런 게 아니에요.

내가..어리석었어요. 

얼마나 형이 힘들었을까…

내가 미쳤었어. 그래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어요.

괴롭게 해서 미안해요, 아프게 해서 미안해요.

형 자신을 미워하게 만들어서 미안해요.

진작 놔주지 못해서, 내 욕심으로 붙잡고 있어서...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리고...

사랑해서...미안해요.

터져 나오는 울음에 윤서는 주먹으로 입을 꼭 막았다. 숨이 막혀 죽을만큼 아팠다.

미안해야 하는 제 사랑이 너무 아파서, 미안한 사랑이 너무 불쌍해서, 그럼에도 그게 어쩌지 못할 사랑이라서, 윤서의 눈에서는 서러운 눈물이 큰 비 처럼 쏟아졌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윤서는 서둘러 마지막 말을 적었다. 그리고 누가 붙잡을 새라 벌떡 일어나 짐을 챙겼다.

겨우 가방 하나, 별로 든 것 없는 가방이 지난 추억과 오랜 기억으로 한 짐 가득, 팔이 저릴 만큼 무거웠다. 마지막으로 정후의 얼굴을 한번 보고, 또 한번 보고, 손이 제 멋대로 뻗는 것을 간신히 내리 누르면서 윤서는 편지의 마지막 구절을 나직이 읊었다.

"형...그래도...내가 만든 이 이기적인 감옥 속에서... 살아줘서, 나와 함께 살아줘서...고마워요. 이제 가요. 형이 행복해 지는 곳으로……"

그리고 차마 적을 수 없었던 말.

".....형....그래도….기억해 줘요. 잊지 마....나..나…지우지 마요.....너..무..너무..너.너무...사랑..해…아직도…사랑..해요..."

윤서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문을 열고 집을 나왔다. 한 여름의 더운 공기가 밤이 되도 그 열기를 간직한 채 윤서의 전신을 휘감았다.

끊어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질긴 미련들이 윤서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 미련들을 모두 안고 윤서의 발이 질질 땅을 끌었다. 가야한다. 여기서 다시 뒤돌아 갈 수 없었다. 진창같은 이 수렁에서 형을 보내줘야 하니까.

달빛 마저 숨은 밤은 칠흑같이 깜깜했다.

윤서는 눈을 감았다. 정후를 만나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지고 부터, 윤서에게 세상은 언제나 눈을 감고 길을 걷는 것처럼 깜깜하고 무서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윤서의 세상엔 오직 정후라는 태양만이 떠 있을 뿐이었고, 그 안에는 윤서 자신조차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행복할 수 없었던 거라고...24살의 윤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이제 똑바로 마주봐야 했다. 검은 독과도 같았던...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상처 입혔던 못난 자신과 똑바로 마주서고 싸워야 했다. 그리고 가슴 저 깊숙한 곳 어딘가 숨어 있을 정윤서의 자아를 찾아...너무 오래 혼자 둬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한다. 그리고 단단하게 끌어 안을 것이다. 행복은 거기서부터 시작될 테니까. 혼자서도 설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는 몰랐다.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그래도...가야 한다. 아직도...행복해 지고 싶으니까. 정후의 행복을 바라는 만큼이나  진실로…온 마음을 다해 간절히.

윤서의 입가로 울음기가 섞여서 조금 일그러졌지만...비록 눈물에 가려 흐려졌지만, 이제 막 깨어난 어린아이와도 같은 미소가 희미하게 피어 올랐다.

모두 잠든 조용한 밤. 아무도 없이 홀로 걷는 길.

………………깜깜한 밤, 달빛 마저 잠이 든 늦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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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랜만에...뵙습니다.(덜덜..)

역시 오랜만에 글을 올리면...처음 처럼 두렵고 떨립니다ㅠ.ㅠ

(연재란에 팽개쳐 둔 글은 어쩌고 여기서 얼굴을 빼꼼해?...라고 하셔도 할말이..없습니다.하..하..하..절대 잊은 것이아니라는 변명만..쿨럭)

늦은 밤 입니다.

장혜진 님의 1994년 어느 늦은 밤 이라는 노래를 듣고 어쩔 수 없이(?) 또...질렀습니다.

이게 끝이냐? 하시는...분들께..잠시 변을..

계획상 늦은 밤은 1부 입니다. 대부분 윤서의 감정선을 따라서 진행 했습니다..

2부는 1부 이후의 이야기를, 공돌이로서 전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정후의 감정을 따라서 내용이 진행 될 듯 합니다. 후후..정후도 고생 좀 해야지요.(정후 죽어봐.가 모토입니다. 제목은 시린새벽이 될 듯 합니다.<<쓰지도 않은 2부 홍보냐!!)

그리고 3부는 확실치 않지만...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부족한 제 글을 아껴주시고 여전히 믿고 있다 해주시는 님들께..제 온 마음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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