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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퇴마비록-96화 (96/166)

96화

“짜식들이, 종 쳤는데 안 앉아?”

와글거리던 쉬는 시간을 끝내는 종이 울리자마자, 학생들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들어온 수학교사가 출석부로 교탁을 두드렸다. 수학이자 영서네 반의 담임인 이 선생은 아직도 쉬는 시간의 열기가 식지 않은 남학생들을 휘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개학한지 얼마 안 됐다고 아직도 방학 때처럼 놀기만 하는 놈 있는 거 아니지? 2학기도 금방 지나간다. 이제 금방 중간고사랑 기말고사 보면 또 추워지고, 겨울 끝나면 너희 다 수험생 되는 거라고. 슬슬 정신 차리자?”

“네에-”

약간 볼멘소리로 학생들이 대답하자, 담임은 고개를 끄덕이며 몇 마디의 훈계이자 잔소리를 더 한 뒤, 출석부를 펴지도 않고 자신의 반 학생들을 둘러보며 빈자리가 없는지 확인했다. 학생들은 그것이 으레 담임으로서 하는, 다른 과목 교사들처럼 일일이 출석부를 확인하지 않고 출석을 체크하는 것인 줄로만 알고 각자 부산스레 수학 교재와 노트를 꺼내기 바빴다.

“에- 그러니까, 오늘은 수업 시작하기 전에, 아까 아침 조회 때 못한 얘기를 먼저 하고 수업 시작하겠다. 오늘부터 우리 반에 전학생이 왔다.”

전학생? 영서는 지루하게 돌리던 샤프를 멈추고 고개를 들어 담임을 바라보았다. 꼭 반 년 전에 전학을 온 영서가 있는 반에, 또 전학생이 온다니? 다른 학생들도 의아하긴 마찬가지인지 웅성거림이 커지고 있었다. 개중에 말도 많고 장난기도 많은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선생님, 2학년 2학기인데도 전학생이 옵니까?”

“뭐, 흔히 있는 일은 아니어도 올 수는 있지. 그쪽에서도 급하게 전학이 정해진 거라, 원래 전학 수속은 방학 중에 밟고 2학기 개학 날에 같이 등교하는 게 원칙이지만…”

담임은 출석부를 열어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번호는 전학생이니까 맨 마지막으로 하고, 자리도 마침 하나가 남으니까 거기 앉으면 되겠네.”

“선생님, 여기 승훈이 자리인데요.”

“강승훈이 이 새끼는 또 어디 갔어? 양호실?”

“네.”

“하- 이 새끼, 또 꾀병 부리고 가서 아직도 안 왔구만. 반장, 가서 강승훈이 좀 데려와라.”

반장은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뒷문으로 나갔다. 강승훈. 영서는 전학 온 지 반년이 넘었음에도, 그 애와 이렇다 할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키가 크고 체격이 단단한, 유도를 오래 했다던 전형적인 운동부 학생, 정도의 이미지였다. 말수도 적고 고등학생치고 험상궂은 인상에 일진이라는 소문도 돌았지만, 아직까지 학교 내에서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양아치 짓을 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 물론 정말로 그런 행위가 적발된다면 운동부에서 제명되는 건 시간문제일 터다. 영서는 지난번에 자리를 바꾸기 전에, 자신의 뒷자리가 강승훈의 자리였고, 항상 수업 시간마다 엎드려 있는 그 애가 프린트 물을 받지 않아 직접 몸을 돌려 어깨를 건드린 후 프린트를 건네던 기억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승훈은 퉁명스러운 얼굴로 종이를 받아 책상에 대충 쑤셔 넣었을 뿐이었다.

친구들을 괴롭히지는 않지만 그런 승훈의 주변에는 항상 질이 나쁜 무리가 모여들었고, 딱히 그가 반응하거나 받아주지 않더라도 항상 두세 명의 학생들이 낄낄거리고 장난을 치며 그의 자리에 모여 있곤 했다. 승훈도 엎드려서 잘 때를 빼고는 그들과 말을 주고받았고, 밀어내거나 자리를 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반마다 한 명씩은 있는, 그런 종류의 학생이었다.

승훈의 짝은 괜히 승훈이 자리를 비운 사이, 웬 전학생이 승훈의 자리를 차지하면 어쩌나 싶어 담임에게 이의를 제기했지만 간단히 묵살되었다. 강승훈은 나중에 새 책상 하나 갖다가 쓰라고 해. 정 그러면 전학생이 지금만 앉고 나중에 새 자리 만들어 줄 테니까. 담임의 말에 짝은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고, 영서는 자신과 똑같은 전학생이 또 온다는 사실에 호기심 반, 긴장 반으로 앞문을 살펴보았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 교실 앞문을 노크했다.

“네, 들어오세요.”

담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교실의 미닫이문이 열리고, 빳빳한 새 교복을 입은 한 소년이 불쑥 들어섰다. 그 얼굴을 보자마자 영서는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어, 그래. 들어와라. 자, 이번 학기에 전학 온 우주민이라고 한다. 모르는 거 있으면 애들한테 물어보고, 너희도 잘 해주고.”

주민이다!!!

영서는 반가운 마음에 엉덩이가 들썩거릴 정도였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입을 가렸지만, 이미 실실 터져 나오는 웃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그것도 익숙한 교복을 입고 교실 앞에 서 있는 주민을 보는 게 퍽 어색했지만, 그만큼 영서는 반갑고 좋았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잔뜩 생겨났지만 조금 참기로 하고, 영서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주민에게 눈짓을 했다. 주민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은은하고 차분하게 웃는 얼굴로, 조금은 긴장하고 머쓱한 표정으로 교탁 옆에 서 있었다.

“자기소개 간단하게 할까?”

“안녕, 난 우주민이라고 해. 이번 학기에 전학 왔고, 이쪽 동네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모르는 게 많아. 다들 잘 부탁한다.”

낯익은 교복을 입고 교탁 앞에 선 주민의 목소리는 또랑또랑하고 맑았다. 수줍게 웃고는 있지만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자신을 쳐다보는 반 학생들의 눈을 하나하나 쳐다보며 주민은 짧고 간단하게 인사를 했다. 분명 얼마 전에도 봤던 주민이지만 이상하게 그 사이에 조금 더 안색이 밝고, 진정된 모습이었다. 또래 남학생들에게서는 쉬이 볼 수 없는 차분함과 부드러운 음색에 반 학생들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이곳저곳에서 호기심과 장난기 어린 질문이 튀어나왔다.

“야, 어디 살아? xx동? aa동?”

“공부 잘하게 생겼네. 반장보다 잘 하는 거 아냐?”

“여자애같이 생겼는데? 얼굴 존나 하얘.”

“짜식들이, 조용히 안 해?”

출석부로 교탁을 쾅쾅 친 담임이, 어색하게 웃고 있는 주민에게 턱짓을 하며 자리를 알려주었다.

“자리는 저기 뒤에 빈자리 가서 앉으면 된다. 아, 주민이는 교재를 아직 못 받았구나. 선생님이 교무실 좀 다녀올 테니까, 너희들은 다 조용히 자습하고 있어. 부반장, 떠드는 사람 있으면 이름 적어놔.”

주민이 가방을 멘 채 담임이 가리킨 자리로 가자, 그는 다시 학생들에게 엄포를 놓은 뒤 교실 문을 나섰다. 주민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담임이 복도 너머로 사라지자마자 학생들의 질문과 호기심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름이 뭐라고? 우주민? 성이 우 씨야?”

“야, 너 누나나 여동생 없어?”

“새끼가, 처음 온 애한테 뭘 그런 걸 묻냐?”

“어느 학교 다니다 왔어?”

앞자리 뒷자리 할 것 없이, 묘하게 부루퉁한 얼굴을 한 승훈의 짝을 제외하고 주민의 자리 주변에 앉은 학생들은 모두 왁자지껄해졌다. 부반장이 조용히 하라며 몇 번이나 소리를 질렀지만 개의치 않는 듯했다. 영서의 자리는 문과 가까운. 뒤에서 두 번째에 교실의 오른쪽이었는데, 주민의 자리이자 승훈의 자리는 창문과 가까운 뒤쪽이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영서는 왠지 아는 척을 할 타이밍을 놓친 게 아쉬워 주민 쪽을 흘금거리다가, 어차피 쉬는 시간에 인사하면 되겠지, 하고는 다시 무심한 척 숙제로 시선을 내렸다. 주민은 해사하게 웃으며 주변 학생들의 질문에 적당히 대답을 하고 있었다. 이전에 알던, 어딘가 유약하고 메마른 웃음을 짓던 주민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인상이 달라져 있었다. 밝아져서 나쁠 게 뭐가 있담. 영서는 왠지 이상한 기분에도 스스로 합리화를 하며 수학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자마자 영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민의 자리에 아까처럼 많은 아이들이 몰려서 웅성대면 어쩌나, 그 인파를 헤치고 파고들 자신이 없어 걱정했지만 다행히 주변 학생들은 이미 익숙해졌는지 주민은 담담한 얼굴로 앉아 수학 교재를 정리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주민의 자리로 빠르게 다가가 어깨를 툭 건드리자, 주민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야, 우주민! 너 왜 연락도 없이! 어쩌다 오게 된 거야? 우리 학교 온다고 말하지 그랬어?”

영서의 말에 주변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서로 아는 사이냐며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승훈의 짝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영서와 주민을 번갈아 보았다. 현 전학생과 전 전학생이 사실은 친구였다니, 앞쪽에 앉아 있던 남학생들 몇몇도 영서 쪽을 쳐다보았다. 주민은 잠시 눈을 깜빡이며 영서를 올려다보다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 안녕. 나는 우주민이라고 해. 너는?”

…뭐라고?

“야, 왜 그래? 장난치지 마. 나 영서잖아, 잠 덜 깼냐?”

“아… 영서? 그래, 영서야. 그런데 우리 어디서 본 적이 있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영서는 뜨악한 표정으로 말문이 막혀 주민을 내려다보았고, 주민은 정말 의아하다는 얼굴로 그런 영서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꾸며냈다거나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은 정말로 영서를 처음 본 사람처럼 대하고 있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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