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주지스님의 장례식 날, 영숙은 울지 않았다.
마르고 가벼운 노인의 몸은 생전의 유언대로 화장되어 한 줌도 되지 않는 재로 남았다. 영숙은 그 재가 담긴 작고 흰 항아리를 품에 안고, 그가 칠십 남짓 살면서 남긴 유산도 물건도 없다는 것을 생각했다. 영숙의 몇 배는 길었던 삶을 산 노인이, 몇 번의 전쟁과 세월의 흐름을 산등성에서 가만히 지켜보며 부처의 가르침을 섬기며 산 노인의 끝이란 이렇게 한 줌의 재뿐인가. 영숙은 열일곱에 가족보다도 더 가까운 이를 잃으면서, 어릴 때 선물로 받은 책을 하수구에 빠트려 못쓰게 되었을 때보다도 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일어나야만 했다. 정혜사의 주인의 자리는, 이렇게 비워져서는 안됐으므로.
작게 마련된 납골당에 항아리를 두고 자리를 정리하고 나오던 영숙의 앞에, 말쑥한 정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여 사장은 주머니에 양손을 꽂은 채, 붓지도 않은 눈으로 자신을 본 척도 않고 지나가는 영숙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또한 별다른 애도의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인간의 일생이란 너무 짧은 기간이었고, 새삼 한 명이 더 죽는다고 해서 크게 감회가 새로울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장례가 한창인 정혜사에 와 영숙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의 예의에 따라주는 것이 도리였기에 검은 양장에 모자를 쓰고 방문했을 뿐이다. 검은 상복에 흰머리핀을 꽂은 영숙이 자신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마당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여 사장도 그녀의 뒤를 따라가면서, 영숙이 자신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야기하길 원한다는 것을 알았다.
“알아낸 거라도 있어?”
“너는 어떻게 된 애가 울지도 않냐?”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꺼져, 여우 새끼야. 안 그래도 바빠.”
“까칠하긴. 알아낸 게 없으면 굳이 여기까지 왔겠냐, 내 일하기도 바쁜데.”
그즈음 그는 국내의 여러 항구를 돌며 사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정확히 묻지 않아 영숙은 몰랐지만, 어차피 짐승 새끼가 일을 벌여봤자 깨끗한 짓이겠느냐 싶어 굳이 묻지는 않았다. 궁금하지도 않았으니까. 그저 그가 부산에서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짚이는 바가 있던 영숙은 그에게 서신을 보낸 것이다. 범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모아달라고.
영숙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 범 때문에 죽은 것이다, 주지스님은.
그 사악한 것 때문에 스님이 돌아가신 것이다. 오로지 그 생각만이 영숙을 휘감았다. 주지스님이 마지막 이야기를 전하고 끝내 영숙의 손을 잡은 채 숨을 거둔 순간에도, 영숙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함께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그대로 앉아있었다. 곧 무영이 들어와 놀란 얼굴로 노인의 시체에서 영숙을 손을 떼어줬을 때서야, 영숙은 어마어마한 슬픔이 들이치는 것을 느꼈다. 빠른 장례식 절차와 유언의 낭독, 화장 절차를 다 지나고 나서야 영숙은 사흘 동안 자신이 잠도 못 자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영숙은 여전히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끝도 없이 힘이 샘솟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직 잠들 수 없었다.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영숙의 결연한 얼굴에 여 사장은 뭔가 못마땅한 듯 눈을 찌푸리고 웃더니, 정장 재킷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접힌 여러 종잇장들이 두툼하게 들어있는 편지봉투였다.
“부산 일대를 돌면서 모은 정보야. 이다음부턴 알아서 해라. 나도 솔직히 영지와 너에게 빚진 것만 아니었으면 이런 끄나풀 같은 짓거리는 안 했을 건데.”
“이거면 충분해.”
영숙은 초연한 얼굴로 편지봉투를 받아 저고리 안에 숨긴 뒤, 등을 꼿꼿하게 세웠다.
울지 않는 영숙을 두고 많은 이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싸늘한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선대의 뜻을 받들어 그의 제자인 영숙에게 다음 절의 주지 자리를 내어주는 것에 찬성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뒤에서 쑥덕거리기 바빴다. 영숙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절 따위는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었다. 정혜사를 물려받기로 한 것은 단지 그녀의 스승과 한 약속 때문이었다.
집도 절도 없이 전국을 떠돌며 업보를 풀기 위해 노력했던 그녀의 할머니.
그리고 집안에서도 멸시받던 영숙을 기꺼이 거둬 제자로 받아주고, 자신이 죽은 후 절을 이어받을 후계자로 삼아준 그녀의 스승.
두 사람은 어린 영숙에게 온전히 자신의 몸을 지낼,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거리낌 없이 펼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들의 마음 씀씀이를 알았기에 영숙은 울지 않고 의연하게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영숙에게 남겨진 한 가지 유품.
그 거울.
‘영숙아, 이 거울을, 부디 꼭 지켜다오. 너의 조상, 너의 할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이제 이 거울의 주인은 너다.’
마지막으로 스승이 한 말이 떠올랐다. 그 거울. 아득히 먼 옛날, 그때는 기록되지도 않았을 어떤 한 여인이 신과의 내기에서 이기고 받아낸 물건. 그 여인의 이름은 후손인 영숙도 알지 못했다. 아마 할머니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그녀도, 그녀의 할머니, 그녀의 할머니도 또 그녀의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았을 테니. 영숙은 방으로 돌아와 낡은 상자를 열어 거울을 마주했다. 영롱한 빛을 뿜는 아름다운 거울 속에, 푸석한 얼굴의 소녀가 무표정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염라의 거울. 업경대.
모든 죽은 자들의 과거와, 산 자들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보물寶物.
그때의 영숙은 몰랐다. 그 거울로 인해, 그리고 자신의 어깨에 지워진 유산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앞으로 그것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자신의 대에서 끝나지 않고, 나아가 자신의 손자의 운명까지 뒤바뀌었다는 것을, 그때의 영숙은 알 수 없었다.
“나와라, 범. 숨지 말고 모습을 드러내라.”
모두가 잠든 축시, 영숙은 소리 없이 일어나 잠옷 위에 겉옷을 걸쳤다.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이 공기마저 얼어붙는 듯 차가운 밤이었다. 영숙은 촛불도 들지 않은 채 칠흑같이 어두운 복도를 걸어 뒷마당에 내려섰다. 복도에 난 문을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코 고는 소리, 잠든 이들의 고른 숨소리, 동자승의 잠꼬대 소리들이 속닥거리고 있었다. 영숙의 품 안에는 낮 동안 종이가 다 헤지도록 몇 번이나 읽었던 종이들이 들어있었다. 여 사장이 건네줬던 그 편지 봉투 안에 말이다. 장산범, 주로 장산 근처에서 목격되었고, 어린이나 노인을 가리지 않고 홀려 잡아먹는다. 희고 비단 같은 털, 긴 몸과 범같이 괴이한 얼굴, 아름다운 목소리.
아름다운, 목소리.
영숙은 입술을 깨물며 휑뎅그렁한 뒷마당에 홀로 서 있었다. 발과 손가락 사이가 에일 것같이 차가운 바람이 불었지만 영숙은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어서, 어서 나타나. 지금도 날 보고 있는 것을, 누가 모를 줄 알고.
“…얘.”
옥구슬을 은쟁반에 떨어트린 것 같은 목소리는,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영숙은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보았다. 개미가 하품하는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하고 고요한 밤, 그 목소리를 영숙이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잊을 수도 없었다. 반쯤 공기가 섞인 것 같기도, 콧소리가 섞인 것 같기도 한. 바람 같기도, 웃는 것 같기도 한 목소리가.
“…얘. 길을 잃었니?”
영숙으로부터 열 걸음쯤 떨어진 곳에, 거짓말처럼 그 여자가 서 있었다. 흰 소복의 소맷자락으로 입가를 가리며 웃는 얼굴로, 영숙에게 또다시 길을 잃었느냐고 물으며.
그러나 그녀의 쪽 찢어진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길을 잃었니, 하고 물었는데도, 그 말을 할 때 그것의 입술을 움직이지 않았고, 가려진 소매 사이로 시뻘건 혀가 날름거리는 것이 보였다.
이제 여덟 걸음쯤, 떨어진 곳에 그것이 있었다.
“얘.”
일곱 걸음.
“길을 잃었니?”
다섯 걸음.
영숙이 빙긋 웃은 것은, 그것이 막 손을 뻗어 영숙의 목을 잡으려던 순간이었다.
고운 여인의 왼쪽 배에, 살과 털이 타들어가는 소리와 귀를 찢는 비명이 한밤중의 정혜사를 온통 뒤흔들었다. 사람의 것도, 짐승의 것도 아닌 듯한 비명소리가 악다구니를 쓰는 것에 잠든 이들이 모두 깨어났고, 저마다 방의 불을 밝히며 문을 열고 서로의 생사를 확인했다. 비명의 근원지는 뒷마당이었다. 발 빠른 동자승 중 하나가 뒷마당으로 뛰어갔다가, 도리어 소리를 지르며 다시 큰 스님들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왜 이러느냐, 무얼 본 게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그래?!”
“으아아아악!!! 저, 저기, 저기!! 영숙이 누님이, 저기에!!!”
“뭐라고?”
무영과 다른 스님 여럿이 옷을 걸쳐 입고 맨발로 뒷마당으로 뛰어갔을 때, 이미 모든 일은 끝나있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2미터 정도의 큼직하고 흐릿한 허수아비 같은 게 서 있었다. 아니, 허수아비가 아니라 큰 갈대 같았다. 다시 눈을 비비고 쳐다보자, 영숙의 앞에서 그 희끄무레한 것은 힘없이 스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소리도 나지 않고, 그 끔찍한 비명을 지른 것에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았다는 것처럼. 인형 탈을 쓴 사람 같기도, 짐승 같기도 한 그것은 배에 불에 그슬린 자상이 나 있었다. 영숙은 담담한 얼굴로 그 앞에 서서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먼저 그녀에게 다가간 것은 무영이었다. 가까스로 영숙에게 다가가니, 영숙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렇게 떠는 와중에도 왼손에 쥔 것은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팔에 힘을 주고 있었다. 무영이 영숙의 팔을 살며시 잡자 그제야 힘이 빠져나갔고, 그녀의 손에 들린 칼을 무영은 조심스럽게 빼냈다.
칼은 분명 이가 다 빠져 문드러진, 사람에게 상처도 하나 못 낼 것 같이 낡은 고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칼에는, 마치 붕대로 칭칭 감기라도 하듯 노란 종이와 붉은 먹으로 꽁꽁 동여매져 있었다. 아마 영숙이 그랬던 듯, 수십 장은 되는 부적 종이였다. 아직 부적 쓰는 법은 배우지도 못했는데, 무영은 의아한 얼굴로 칼의 날과 자루를 들여다보고, 그것들을 감싸고 있는 부적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무영은 순간 돋는 소름에 칼을 떨어트릴 뻔했다.
생전의 선대가 쓰는 것과 똑같은 서체의 글씨가, 마구 휘갈겨 적혀있었다. 검은 글씨로, 또 군데군데는 붉은 글씨로. 게다가 먹의 냄새도 이상했다. 무영이 알기로 영숙은 부적 쓰는 법은 물론, 이렇게 어려운 주술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었다.
“…스승님 말이 맞았어요.”
영숙이 중얼거렸다. 무영이 땅에 떨어진 그것에게 시선을 주었을 때는 이미 그것은 모래처럼 부서져 흩어지고 있었다.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어요. 제 능력으로는 아직 이 정도까지밖에…”
영숙은 말끝을 흐렸다. 찬 볼의 흐르는 눈물방울을 보면서, 무영은 말로 못 다할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저 자신의 부모와도 같던 스승을 잃은, 어린 소녀의 등을 토닥여 주며 위로해 주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