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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퇴마비록-36화 (36/166)

36화

“선생님, 선생님!!”

주민이 강 선생, 그러니까 주희의 주치의인 강현서의 오피스로 뛰어 들어온 것은 강 선생이 막 출근한 후였다. 정확히 말하면 당직실에서 안경을 쓰고 가운을 입고 나온 것이 전부지만. 그녀는 우스갯소리로 항상 문 하나만 열면 출근이라며 출근길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 좋다고 너스레를 떨곤 했다. 강 선생은 부스스한 긴 머리를 하나로 묶다가 노크도 없이 쳐들어온 주민을 흘긋 건너다보며 마저 머리를 묶었다.

“주민아, 그렇게 노크도 없이 맘대로 내 공간에 들어오면 뭐라고 했지?”

“그, 그렇지만 선생님! 저희 누나가!!”

“주희? 주희는 이따 저녁에 검사실로 옮겨서 검사하기로 했잖아. 맞아, 동의서는 썼지? 어차피 형식적인 절차래도, 어머님께 말씀드리고 나서…”

“누나가 움직였어요!”

머리를 매만지던 강 선생의 손이 움찔, 하고 멈췄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다시 허공에서 스르륵 내려와 가운 양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천천히, 제대로 말해봐.”

“누나가… 제가, 누나 손을 잡고 있었는데, 누나 손이, 누나가!”

“…가봐야겠구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허둥지둥 설명하는 주민의 얼굴에, 강 선생의 눈이 가늘어지며 빠른 걸음으로 그를 지나쳐갔다.

그럴 리가, 주희가… 주희가 움직였다니.

강 선생은 혼란스러워지는 기분을 차분하게 내리누르며 되새겼다. 기적인가? 아니면 단순히 주민의 착각일까? 언니에게는 뭐라고 말해야 하지? 주희가 만약 깨어난다면… 깨어난다면? 그 애는 예전처럼, 어렸을 때처럼 살 수 있는 걸까? 깨어나는 건 둘째 치더라도, 그 애의 몸은 지난 3년 동안 거의 성장을 멈춘 거나 다름없었다. 안 그래도 작고 마른 몸은 3년 전 뇌사 상태에 빠지면서 성장이 멈췄고, 주기적으로 검사를 위해 짧게 밀던 머리도 그대로 둔 지 꽤 되었다. 주희의 상태는, 주희가 마지막으로 눈을 감기 전과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지금 눈을 뜬다면, 과연 그 애의 몸이 버틸 수는 있는 걸까. 강 선생은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가면서 뒤따라오는 주민의 얼굴을 흘깃 돌아보았다. 이 애는, 버틸 수 있을까. 누나가 지금 깨어난다 해도, 그게 주희의 몸에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언니는… 뭐라고 할까. 그렇게 바라던 딸이 의식을 되찾는다면, 그렇게 미친 듯이 일에 매달리며 자신의 건강까지 갉아먹는 짓을 그만둘까. 아니면 주희의 눈이 마주한 더한 현실에, 더욱더 일에 매달리며 남매를 키우려고 혼자 애를 쓰겠지. 어느 쪽이든지, 강 선생은 이 일에 대해 제 3자나 다름없었다. 강 선생은 남매의 엄마이자 자신의 오랜 친구인 유미경에 대해 생각했다.

‘언니, 언니도 알잖아. 주희는… 틀렸어.’

‘….’

‘이제 안 돼. 의사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주희의 주치의이기 이전에 언니의 친구로서 하는 말이야. 그리고 주희랑 주민이를 위해서도…’

‘현서야, 난 괜찮아. 아직까지는 버틸 수 있어.’

‘언니!’

‘내 친구이기 이전에, 우리 주희… 주치의로서, 생각해 줘. 돈이든 뭐든 병원에서 필요한 건 다 내가 댈 수 있으니까. 제발…’

‘…뇌사 상태에 빠지면, 신체의 대부분의 기능이 정지해. 심장이 아직 뛰어도, 숨을 아직 쉬어도… 그냥, 저건… 기계로 어떻게든 주희의 몸을 억지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고.’

‘상관없어.’

그때 언니가 뭐라고 했었지. 강 선생은 미간을 작게 찌푸렸다. 자신이 무슨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러나 미경 언니가 어떤 얼굴을 했었는지는, 1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눈에 떠올랐다.

‘난 포기할 수 없어. 주희 그 애가…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언니.’

‘…너는 애를 안 낳았지. 그래서 아마 모를 거야. 이해가 안 되겠지. 나도 모르겠어. 왜 이 짓을 몇 년째 부여잡고 포기도 못하고 있는지, 언제까지 희망도 보이지 않는 일에 돈과 시간을 붓고, 주민이에게 신경도 못 쓰면서 이러고 사는지.’

그때 그녀는, 울지 않았다. 울지 않았지만, 강 선생은 그녀가 분명 우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주희가 살고 싶어 하면, 나는 그 애를 살리기 위해 무슨 짓이든지 할 수밖에 없어.’

분명 웃는 얼굴로, 무언가를 참아내는 듯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난 주희의 엄마니까.’

강 선생은 굳건한 얼굴로 병실 문을 열었다.

***

혜리는 당황한 얼굴로 차분히 주변을 살폈다. 분명 내가 움직인 건 아냐. 방금 전까지 혜리는 멀리서나마 영서를 발견해, 그를 부르며 달려갔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영서는 갑자기 머리를 감싸 쥐더니 쓰러졌고, 당황한 혜리는 쓰러진 영서의 상체를 일으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영서의 모습에 혜리는 다급하게 일직차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 순간 뒷목을 스치는 예리한 서늘함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 웬 아이가… 서 있었다.

아이?

한 중학생…정도 되려나?

여자앤지 남자앤지도 구분이 되지 않는, 마르고 작은 체구에 짧은 머리칼을 가진 흰 얼굴을 보는 순간, 혜리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너구나.

영서에게 이런 짓을 한 놈이.

안개 너머로 보이던 그 애의 시선이 혜리의 눈과 가만히 마주쳐왔다. 메마른 눈이 슬며시 웃는다는 기분이 든 순간, 그와 동시에 영서가 사라졌다. 분명 이 두 손에 일으켜 안고 있었는데. 사방은 마치 누군가 일제히 조명의 스위치라도 내린 듯, 순식간에 어두컴컴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혜리는 비어버린 두 손을 겁에 질린 얼굴로 내려다봤다.

“아, 정말-!!!!”

이래선 다시 원점이나 다름없잖아!! 혜리는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억울함에 소리쳤다. 게다가 여긴 뭐냐고! 이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움직일 수도 없는데… 정신을 집중해 영서의 혼의 흔적을 찾아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혜리는 절망했다.

“차사님, 들려요? 차사님!”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혜리는 그 막연한 고요함에, 덜컥 겁이 났다. 그러고 보니, 나 이 안에서 평생 못 나가는 건 아니겠지? 영서를 찾는 게 내 일이긴 하지만… 만약 영서를 못 찾고, 이대로 계속 헤매기만 한다면…? 가능성이 제로인 이야기는 아니었다. 혜리는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난 아무 능력도 없는데, 여기 이렇게 들여보내서 뭘 어쩔 셈이냐고, 이 저승사자 놈은!!!

“아저씨!!!! 아씨 진짜, 들리면 대답해요!!”

‘그렇게 소리 안 질러도 들린다, 짜식아.’

“아, 다행이다… 아저씨, 저 이제 어떻게 해요? 영서를 다시 찾으러 가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보여요.”

‘아저씨가 아니라 차사님이라고 부르랬더니, 어허 이놈이 또.’

“쪼잔하게 굴지 좀 말고 얼른 플랜 비라도 알려줘요!”

…쪼, 쪼잔?!

남자의 미간에 빠직, 하고 혈관이 섰다.

‘더 이상 영서를 찾아갈 필요는 없으니 안심해라.’

“그게 무슨 소리예요?! 영서를 버리겠다는 거예요?!”

‘임마,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 아마 그 놈은 잔재주로 네 눈을 가렸을 뿐, 영서를 데리고 어딘가로 도망친다거나 하진 못했을 거다. 여태껏 벌인 일이나, 지금 네가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 그 정도로 힘을 썼으면, 지금쯤은 아마 힘이 빠졌겠지.’

“그럼…?”

‘어쨌거나 영혼은 영혼이다. 한낱 귀신 주제에 도술 같은 걸 부릴 수도 없고, 다 소모적인 싸움일 뿐이지. 영서가 아직까지 무사한 것만 확인하면 됐다. 어차피 본체는 지금 내 손아귀에 있어. 여차하면 성불시킨다.’

“영서를 못 찾은 상태로 강제로 성불시키면, 영서까지 휘말리게 되잖아요!”

‘이대로 계속 숨바꼭질이나 하면서 시간을 끄는 게 더 그놈의 계획에 가까운 짓이야. 시간을 끌수록 영서의 혼은 점점 육체에서 멀어지게 돼. 그전에 어떻게든 조치를 취하는 게 맞아.’

“그럼 어떡해요, 저는? 이제…”

‘섣불리 움직이는 것도 위험할 수 있어.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캄캄하다고 했지? 그 녀석이 무슨 술수를 부렸는지는 몰라도, 어차피 영서의 근처에 남아있는 게 낫겠군.’

남자는 팔짱을 낀 손을 풀어 턱을 긁었다. 너무 늦기 전에 유혜리를 빼와야 탈이 없을 텐데. 그렇지만 영서를 되찾기 전에 나오게 하는 것도 위험부담이 크다. 영서를 찾기 위해 이쪽에서 영혼을 보내고 있다는 걸 그놈이 알아채면, 영서를 데리고 꽁꽁 숨어 영서 몸의 귀문鬼門을 닫아버릴지도 몰라. 이를 어쩐다…

“…어? 잠깐….”

‘무슨 일이야?’

“저기, 어린애가 있어요.”

‘그 녀석 아냐?’

“아, 아니에요. 이번엔 진짜 어린애인데. 초등학생 정도? 그리고 아까 그 녀석하고는 느낌이 달라요. 생긴 건 되게 닮았는데…”

‘닮았다고?’

남자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아까 전까지 이곳에 있던 그 동생이라던 놈인가? 하지만 그놈은 살아있는데…

“아마… 이 귀신의 생전 기억…같은 건가 봐요. 영서가 보던 게 이런 걸까요? 정신을 잃은 이유도 저 애랑 연관이 있나…?”

‘기억이라… 더 보이는 건?’

“저 애… 태권도 도복을 입고 있어요. 그리고…”

‘그리고?’

“…엄청 못생기게 울고 있어요. 콧물까지 흘리면서.”

‘….’

“….”

남자는 유혜리에게 영서를 구출하는 일을 계속 맡겨도 되는지, 한참 동안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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