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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퇴마비록-11화 (11/166)

11화

영서는 척 봐도 복잡해 보이는 18번을 보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걸 어쩐다….

“안녕, 얘들아~”

“어, 주해강!”

“안녕, 해강아.”

그때, 자습실의 문이 열리며 그가 나타났다.

해사하게 웃는 얼굴과 누가 봐도 한 번쯤은 돌아볼 만큼 잘생긴 얼굴의 소년. 살짝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은 투블럭으로 짧게 다듬어져 있었고, 원래는 꽤 흰 편인 깔끔한 피부는 운동을 좋아하는지 항상 살짝 그을려 보였다. 활짝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가지런한 치열과 옴폭하게 파인 보조개는 안 그래도 잘생긴 얼굴에 더한 매력을 주고 있었다. 또래보다 큰 키와 넓은 어깨, 단단해 보이는 덩치는 또래 학생들에 비해 그저 흔했던 교복을 더 멋스럽게 보이게 했다. 외모뿐만이 아니라 해강은 항상 밝은 매력이 넘치는 학생이었다. 왠지 주변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은 저 웃음과 담백하고도 특출난 유머, 게다가 축구도 잘하지, 듣기로는 공부도 꽤 잘하는 모양이었다. 한 번 보면 모두가 호감을 갖고 대할만한 인간.

뭐 저런 사기캐 같은 놈이 다 있지. 영서는 주해강이 들어서자마자 밝아지는 여학생들의 표정에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 걔 페북을 염탐하니 마니 하고 있었으면서.

“권영서.”

“…어, 어엉?! 나?!”

“그래, 너. 학원 수업 끝났는데, 여기서 뭐해? 한참 찾았잖아.”

해강은 이리저리 자신에게 아는 체를 하는 학생들에게 인사를 하며 자습실을 가로질러 영서의 책상 앞에 섰다. 영서는 의아했다. 이 자식 뭔데 갑자기 날… 아는 척하지? 너… 나 아냐?

“나, 나는 왜?”

목소리는 왜 떨리는 거야, 권영서!!! 좀 더 담담한 말투로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려 했지만, 이상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해강의 눈과 눈이 마주치자, 영서는 목이 꽉 막힌 듯한 기분이었다. 해강은 보조개가 파이도록 예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나랑 데이트하자.”

영서는 그 순간, 아무래도 주해강이라는 애는 축구를 너무 많이 해서 정신이 어떻게 되었구나, 하고 멍청하게 그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뒤에서 숙덕거리는 여학생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지, 해강은 다짜고짜 영서의 가방을 들고는 책상 안에 있는 책과 필통들을 우루루 밀어 넣고 자신의 한쪽 어깨에 영서의 가방을 걸쳤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야?!

“나랑 데이트하자!”

씩 밝게 웃은 해강의 얼굴에, 영서는 그대로 혀를 깨물고 졸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

“역시 파란색이 낫나? 아니면 핑크?”

“….”

“너는 이 안경 잘 어울린다, 봐!”

해강이 활짝 웃는 얼굴로 영서에게 우스꽝스러운 코주부 안경을 씌워주었다. 콧수염이 달린 괴상망측한 안경을 멍하니 쓴 채 영서는, 자신이 왜 이곳에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황당해서 얼이 나간 와중에도, 해강이 달마시안 무늬의 강아지 귀가 달린 머리띠를 쓰고서는 영서를 돌아보며 활짝 웃는 것에 영서는 왠지 복잡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만… 그만 잘생기란 말이야. 쟤는 어쩜 저런 이상한 소품들을 써도 다 잘 어울리는지.

1시간 전.

“데… 뭐?”

“데이트!”

진짜 못 들어서 다시 물어봤겠냐! 영서는 울컥 치미는 짜증을 간신히 삼켰다. 난데없이 뭐야, 이 자식은? 분명 아는 사이도 아닌 데다, 학교에서도 몇 번 얼굴을 마주친 게 다였다. 심지어 반도 다르다고! 자신의 이름을 아는 것도 의아한데, 갑작스럽게 얼빠진 소리를 하는 해강의 잘생긴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봐야 하는 것도 짜증 났다.

“야, 들었어? 주해강이랑 쟤….”

“뭐야? 쟤 남중고에 전학 왔다던 걔 아냐? 그 교통사고 크게 났다던….”

이미 자습실에 있던 여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개중에 어떤 애는 휴대폰으로 사진 촬영까지 하며 킥킥대고 있었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기분 나쁘다고! 영서는 인상을 확 찡그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해강의 어깨에 걸쳐진 자신의 가방끈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기세 좋게 잡아챈 영서와 달리, 해강은 웃는 얼굴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너, 나 알아? 다짜고짜 남 공부하는 건 왜 방해해?”

“아, 혹시 날 모르나? 난 주해강이야, 1반이고. 너 2반에 전학 왔던 권영서 맞지?”

너를 모를 리가 없잖아. 영서는 가까스로 튀어나오려는 대답을 꾹 참고 해강을 노려보았고, 해강은 눈을 가늘게 휘며 웃었다. 그러고는 큰 키를 숙여 영서에게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 영서 말고는 아무도 들을 수 없을 정도의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있지, 내가 너한테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데, 여기서는 좀 곤란해서.”

“뭐…?”

영서는 눈을 크게 치켜떴다. 나한테 묻고 싶은 거라니, 왠지 영서의 예민한 촉이 서늘하게 등 뒤를 훑고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설마, 그날 옥상에서 뭔가를 본 건가? 아니면 다른 때에?

내가…. 귀신을 보는 걸 눈치챘나?

영서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해강의 손을 덥석 잡았다.

꽤나 적극적인 반응이라는 듯 해강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씨익 웃었다. 그러나 영서는 지금, 이판사판이었다.

“그래! 그, 해, 해강아! 아하하!! 아이스크림 좋아하니?!”

그런 영서를 보며 해강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영서의 어깨에 힘 있게 어깨동무를 하자, 영서는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역시 내 팔자는 순탄히 흘러가질 않는구나.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왠지 모르게 축 처진 어깨를 한 영서와, 배로 신난 어깨의 해강의 뒷모습을 보며, 남겨진 여학생들은 얼빠진 얼굴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영서는 당연히, 주해강이 자신의 약점을 빌미로 협박을 한다던가, 아니면 다른 모종의 이유로 자신을 괴롭히려고 데리고 나온 건 줄 알았다.

아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말 그런 분위기였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도 종종 그런 녀석들이 아무에게나 웃는 얼굴로 시비를 걸고 삥을 뜯곤 했으므로. 물론 영서는 조용히 다니는 타입의 학생이었기에, 양아치 사이에서는 범생이로 찍힌 건지 딱히 크게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주해강 같은 타입의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영서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대체 나이는 동갑인데, 이 자식은 뭘 먹고 이렇게 키도 크고 잘 자란 건지! 영서는 자신도 그렇게 작은 키는 아니라고 위안하며 살아왔건만, 누가 봐도 훤칠한 키에 고등학생이라고 믿기 힘든 피지컬, 게다가 시종일관 환한 얼굴과 매력적인 웃음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그를 눈여겨보기에 충분했다. 왠지 옆에 서서 다니니 더 비교되는 기분에 자연히 영서는 위축되는 것 같았지만, 일부러 더 어깨를 펴고 당당히 걸으려 애썼다. 내가 꿀릴 게 뭐가 있어! 그래! 잘못한 거 하나도 없잖아, 권영서!

해강에게 이끌려 도착한 곳은, 시내 한가운데에 위치한 상점거리였다. 항상 젊은 인파들로 북적거리고 주말에는 온갖 버스킹 공연과 간이 무대까지 이루어지는, 그야말로 젊음의 거리.

영서 또래의 학생들도 자주 노는 곳이긴 했지만, 교복까지 입은 채로 남고생 단둘이 다닐만한 곳은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해강의 발이 향한 곳은 바로….

“어서 오세요~ 부스 안에 들어가서 사진 찍어 주시고, 사진은 앞에서 보정 후 받아 가시면 됩니다!”

바로, 스티커 사진 가게였다.

화려하게 꾸며진 가게의 내부와 반짝거리는 거울들, 의미 모를 일본어가 쓰인 기계와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들이 붙어있는 칠판, 뽀샤시한 필터를 씌운 여자들의 셀카가 붙은 기계들이 인상적이었다. 여, 여기는…. 벙찐 얼굴로 내부를 둘러보는 영서를 돌아보며 해강이 재촉했다.

“영서야, 뭐해? 얼른 와.”

“그… 주해강. 여, 여기는, 왜?”

“그야, 데이트하자고 했잖아? 이런 거 처음이라 하나 찍어보고 싶었는데, 왠지 친구랑은 쑥스럽기도 하고. 혼자는 재미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걸 왜 나랑 찍냐고!!!!!

“하하, 그… 여자 친구랑 찍으면 되지 않을까…?”

“나 여자 친구 없는데?”

네 얼굴에 없는 게 더 이상하다고 이 자식아!!!!

지금 당장 저기 길거리에 나가서 저랑 사진 찍으실 분~ 하면 적어도 열 명은 넘게 손들 거라고!!!

하지만 영서는 속으로만 절규를 할 뿐,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저 생글생글 웃는 얼굴에 대고 매몰차게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하하, 그거… 신기하네. 왠지 너라면 있을 것 같았는데, 여자 친구.”

“응? 내가?”

“응, 뭐, 인기도 많잖아, 너? 나도 전학 오자마자 알 정도로 유명하고, 학원에서도 그렇고….”

해강은 입을 꾹 다문 채 눈을 크게 뜨고 영서를 내려다보았다. 뭔가 주제넘은 말을 했나, 내가? 영서는 시선을 회피하며 바로 옆에 있던 부스로 쏙 들어갔다.

여, 여기에라도 숨고 싶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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