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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퇴마비록-6화 (6/166)

6화

거대하고 둥근 얼굴은 분명 최근 들어 커진 것이 분명했다. 안 그래도 별로 없던 머리카락까지 더 빠진 건지 드러난 두피는 듬성듬성해 보였다. 아직까지 귀기는 심하지 않았지만, 영서의 직감은 저 얼굴을 이 자리에서 성불시켜야 뒤탈이 없을 것이라 외치고 있었다. 손이 닿았으면 한 방이나 다름없는데. 그냥 주먹질 한 번이면 성불할지도… 아쉬운 마음에 영서는 입술을 깨물며 주머니에 넣어둔 돌을 찾으려 교복 바지를 뒤적거렸다.

그 순간, 그 얼굴의 실 같던 눈이 번쩍 뜨였다.

밀가루 반죽에 가로로 칼집을 낸 듯 갈라진 눈이,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하자, 소름이 끼친 나머지 영서의 몸이 살짝 굳어졌다. 벌어진 입은 더 크게 열리며 귀밑까지 쫘아악 찢어졌다. 그 입안에서 꼭 바람이 소용돌이치기라도 하듯 바람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바람, 아니, 저 얼굴의 입은 지금…

빨아들이고 있었다.

학교에 떠다니는, 영서의 눈에는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영혼과 인간의 찌꺼기들을.

학교는 수많은 학생들이 일시에 모이고 일시에 빠져나가는 공간이다.

물론 학교 내에서나 근처에서 죽어 지박령으로 붙잡혀버린 귀신들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주변에서 흘러들어온 정체 모를-보통 그런 것들은 모양도 귀기도 희미해서 영서가 별 신경은 쓰지 않았다-잡귀들도 가득했다. 귀신은 보통 모습이 분명할수록 의식도 있고 전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했다. 지금 영서의 팔을 잡고 있는 이 여자아이처럼 말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 학교 자체가 하나의 터주신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단순한 장소나 영령들이 모이는 집합적 공간이 아니라, 이 학교 전체가 마치…

살아있다고 느껴지곤 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영서는 스스로도 조소를 내뱉었다. 학교가 살아있다니. 분명 전학 오던 첫날 이상한 기운을 느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뒤로 별다른 사고가 일어나거나 하진 않았다. 적어도 ‘귀신’에 의해서는 말이다. 축구부의 주장이 이번 주에 크게 넘어져 무릎이 깨지는 바람에 축구부가 전국 대회에 나가지 못하게 되거나, 과학 선생님의 수업 재료용 식물들이 자꾸만 말라죽는 것, 그리고 또는 화장실에 자꾸 누수가 생겨 수도꼭지에서 물이 흐른다든가 하는 것들이, 영서가 손을 댈 수 있을 분야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이나 그로 인한 모든 감정의 앙금들은, 그 감정을 느낀 인간의 곁에서 비눗방울처럼 뭉게뭉게 떨어져 나와 허공을 떠돈다. 보통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에서도 흐릿하게 떠다니는 감정의 앙금들을 보긴 했다. 그런 것들은 일종의 사념체와도 같아서, 인간이 많이 모이는 곳에 남곤 하는 인간의 ‘찌꺼기’였다. 그러나 ‘학교’라는 공간 때문에 생긴 감정이어서인지, 단순히 이곳에 오랫동안 갇힌 감정이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유독 이 학교 안에는 그런 것들이 많이 보였다.

그러나 영서는 귀찮은 건 딱 질색인 18세의 대한건아였다.

그 말은 즉, 위험해 보이는 귀신이 아니라면 전혀 관심도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차피 사람을 해칠 위험이 없는 존재들을 일부러 성불시킬 이유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괜히 휘말렸다가 귀찮은 게 따라붙으면 그것도 신경 쓰인단 말이지…. 역시 그때 미리미리 제거해둘 걸 그랬나. 너무 많이 먹고 있는데, 저거.

“야, 야! 지금이야, 저 입이 열렸을 때 빨리 쏴!”

여자아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까부터 뒤지던 주머니에는 분명 돌이 두어 개쯤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차오른 당황감에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30분 전쯤 여자아이를 따라 투덜거리며 올라오던 옥상 계단에서, 뭔가 가볍게 통통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었다. 그때 돌이 몇 개 떨어진 듯했다. 이런 씨…!

“잠깐만, 나 돌 다 떨어졌어.”

“뭐?!”

영서는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타일로 반들반들하게 발라진 옥상에는 돌 비스름한 것도 없었다. 얼굴의 입이 짜아악 벌어지면서 자신의 얼굴보다 크게 벌어지고 있었다. 입안은 끝도 없는 어둠뿐이었다. 저 안에, 돌을 던지면 된다고? 기에 눌려 영서의 뒤에서 옴짝달싹도 못하는 여자아이를 두고 영서는 시선을 돌리다가,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축구를 하는 1반 축구부가 눈에 들어왔다.

“야, 거기! 이리로 공 좀 차!”

“야, 너 미쳤어? 갑자기 왜 그래?”

“조용히 좀 해 봐! 야!! 안 들려?! 공 이리로 차라고!”

영서는 별안간 눈을 빛내더니 옥상 난간 쪽으로 달려갔다. 상체를 난간 밖으로 굽히며 크게 목청을 내지르자, 옥상 위의 영서가 보였는지 운동장에서 공을 차던 아이들이 하던 것을 멈추고 옥상을 올려다보았다. 영서의 머리 위쯤에서 둥둥 떠다니는 얼굴의 귀기가 느껴졌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영서가 가까이 다가가자, 별안간 귀기가 커진 것이다. 이거… 안되겠는데. 시간이 없어, 얼른 저 입이 열렸을 때 해치워야 해. 이걸 이대로 놓치면…

“권영서, 받아!”

밑에 선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듯싶더니, 그 중간에 서 있던 어떤 키가 큰 남학생이 옆의 친구가 들고 있던 공을 뺏어 들었다. 멀리서 제대로 보일 리 없는 영서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는 똑같이 소리를 질렀다. 영서는 그 애가 누군지 알았다. 저 애는…

팡-

내부의 공기가 터지기라도 할 듯한 소리를 내며, 축구공은 높이 떠올라 옥상까지 닿았다. 힘없이 다시 떨어지려고 하는 순간 영서가 양 팔을 뻗어 난간 밖으로 공을 잡았다.

“나이스!”

나이스고 나발이고! 즐거운 목소리로 소리치며 손을 흔드는 남학생의 말에 화답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영서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공을 받자마자 고개를 들고 난간에서 몇 발자국 멀어지자, 조금만 늦었으면 바로 영서의 고개를 삼키기라도 할 법한 거리에 얼굴이 입을 벌리고 다가오고 있었다. 뭐지? 이 자식, 단순한 잡귀가 아닌 건가? 인간인 자신을 ‘삼키기 위해’ 다가온 얼굴을 깨닫자마자 영서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단순히 영령이나 잡귀 같은 것도 아니고… 나를 삼키려고?

“뭐 하는 거야, 빨리 이리 와!”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울듯이 소리쳤다. 분명 저 애가 나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며 이리로 데려왔지. 뭐였더라? 저 얼굴이…뭔가를…삼켰다고…

“이봐, 너!”

얼굴의 아귀 같은 입을 간신히 피한 영서가 소리쳤다.

“이거 처리하면, 네 이름 알려줘!”

“뭐?”

여자아이가 얼빠진 듯 되물었다.

“이름?”

“그래, 네 이름!”

다시 얼굴이 입을 벌리며 영서에게 다가왔다. 아니, 벌어진 암흑 같은 입안으로, 공기와 주변의 것들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붙잡을 것이 없었다. 이대로는 끌려가고 만다!

“내, 내 이름은…”

혼란스러워하는 여자아이를 놔둔 채 영서는 이를 악물고 몸을 낮추자마자 축구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공이 바닥에서 가볍게 튕겨 오르자마자, 영서는 있는 힘껏 발을 뒤로 빼고는 공으로 발을 내질렀다.

팡-

다시 한번 공이 터질 듯한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 블랙홀같이 벌어진 입이 빨아들이는 속도가 바람이 일 정도로 빨라졌다. 인력을 이기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은 영서가 고개를 들자, 얼굴의 입안으로 정확히 날아가 박힌 축구공이 보였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엄청난 굉음이 귀를 울렸다. 얼굴의 눈이 허옇게 까뒤집히며 비명을 질렀다. 목구멍에 박힌 축구공에는 넘실대는 영서의 영기가 어려 있었다. 그걸 목에 직방으로 꽂아줬으니, 아무렴 손가락만한 돌보다야 낫지 싶었다.

“이, 이게…”

얼굴은 잔뜩 부풀어 오른 풍선에 바늘을 댄 것처럼 한순간에 펑, 터져버렸다. 아니, 사라졌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여자아이는 어리둥절하고도 희게 질린 표정으로 터진 얼굴이 가루로 흩날려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약속, 지켰지?”

영서는 투덜대며 바지를 툭툭 털고는 일어났다. 발치에 뭔가 떨어져 있어, 얼굴이 퇴마 되면서 뭔가를 남기고 갔나 싶어 주워들었다.

‘유 혜 리’

작고 네모난 것은 바로 명찰이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명찰을 들고 앞뒤로 살펴보자, 별안간 작은 손이 명찰을 휙 채갔다.

“내 거야.”

여자아이, 아니 유혜리가 착잡한 얼굴로 명찰을 꼭 쥐고 있었다. 이름이, 유혜리였구나. 혜리는 입술을 깨문 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빨개진 눈을 하고 입을 꼭 깨무는 혜리를 보며, 영서는 죽은 사람도 이렇게 슬픈 얼굴을 하면 사람과 똑같아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혜리는 울음소리 대신 긴 한숨을 토해내며, 자신의 명찰을 쥔 양손을 가슴에 대고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울고 싶어도, 이미 눈물이 마른 지는 3년도 더 지난 일.

분명 혜리는 울지 않았지만, 영서는 왠지 혜리가 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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