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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임 온 잇-53화 (5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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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차는 근처의 한정식집으로 달리고 있었다. 말이 근처지, 첩첩산중에 위치해 있던 캠프에서 구불구불한 길을 벗어나 도로다운 도로까지 나오는 데만 삼십 분, 거기서 사오십 분은 더 달려야 유명한 한정식집이 나온다고 했다.

메마른 겨울의 논밭이 펼쳐진 시골길을 지나는 동안, 유현은 대본 리딩 전 짧게 받은 사전 교육에서 들은 설명을 기억해 냈다. 센터에서 주요 기능을 하는 건물만 남기고 전부 없앤 뒤 지형적으로 적당한 곳에 작게 축소시켜 설치해 놓은 게 사설 가이딩 기관이라던.

"있잖아요."

"응."

"센터는 사설 가이딩 기관보다 더 외진 곳에 있다던데 진짜예요?"

"위치상 그렇긴 한데, 센터가 캠프보다는 훨씬 나아요. 작은 도시에 버금가는 크기라, 없는 게 없거든요. 캠프는 주변에 산밖에 없으니 심심하죠."

센터 얘기만 나오면 미묘하게 전문적인 톤으로 바뀌는 게 신기해 유현은 웃음기를 달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진짜 팀장님 같네요."

"응?"

"저분들이 왜 아직까지 팀장님이라고 부르는지 알 거 같아요."

"저분들이 누구예요?"

"아까 기관원 분들이요."

태화는 진심으로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캠프 직원들이 날 팀장님으로 부른다고요?"

"네. 잘 아는 거 같던데요?"

의아했다. 태화는 유현이 말하는 직원들이 누군지 알았다. 그들을 몇 년간 봐왔지만, 비교적 최근에 들어온 신입을 제외하면 대부분 태화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건조한 태도였다. 친한 척을 했다니. 심지어 그들이 자신을 팀장님이라고 지칭하는 것조차 들어본 경험이 전무했다.

"이상하네요."

가만히 고민해 보던 태화는, 전방에 예약해둔 한식당이 보이자 깊게 파고드는 것을 관두고 노민의 영향으로 알게 모르게 편해진 모양이라고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어느새 식당 주차장이었다. 기회를 엿보던 유현이 내리기 전에 "있잖아요." 하며 입을 열었다.

"또 뭐가 있어요."

"나 그때 물어본 거요."

"물어본 게 하도 많아서 뭘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좋아하는 가이드 없었냐고 물어봤던 거요. 나 대답 못 들었어요."

태화가 안전벨트 걷어내면서 대수롭지 않게 "난 답했는데." 하고 먼저 차에서 내렸다.

"뭐라고 했는데요?"

"……."

"네? 그때 뭐라고 답했는데요?"

유현이 태화의 뒤에 졸졸 따라붙으며 물었다. 태화가 멈춰 서서 호기심 가득한 까만 눈동자를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왜요?"

"그쪽이 아까 거기에 누구랑 같이 가는 건 처음이라고 그랬잖아요."

"그쪽?"

"형. 태화 형님께서."

유현이 착실히 고쳐서 말하자, 태화는 안전벨트를 풀면서부터 겨우 유지하던 무표정을 무너뜨리고 웃었다.

"왜요, 처음 맞는데."

"아니라던데? 팀장님일 적에 같이 오던 분이 있다던데?"

"누가 그래요? 같이 있었던 직원이?"

"네!"

"그분은 날 잘 모를 텐데."

"아니, 그분은 그러니까 전달만 한 거죠. 오래 일하던 분들이 그랬대요."

"그럴 리가."

"그럼 그 직원분이 거짓말을 했다는 거예요?"

유현은 본인이 집요하게 구는 걸 의식도 못 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말해줄까 하던 태화가 좀 더 두고 보자는 심정으로, 흥미를 숨기고 일부러 심드렁히 대꾸했다.

"글쎄, 그 사람들은 내가 팀장일 때 나를 본 적이―"

"쉿!"

그때 뭔가 발견한 유현은 갑자기 태화의 말을 막으며 제 뒤로 끌어당겼다. 물론 태화가 쉽게 끌려가지 않아 유현이 휘청이기만 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기둥도 나무도 없이 주차하기에만 용이한 공터였다. 가옥 주변으로 자그만 꽃나무들과 작달막한 반송 따위로 조성해둔 조경이 아무리 끝내준다 한들, 아랫지대의 넓디넓은 주차장과는 상관없었다. 숨을 곳이 없어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다 못한 태화가 물었다.

"왜 그래요?"

"저기요. 아는 사람이에요."

유현이 보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출구 쪽에 남녀 한 쌍이 서 있었다. 지금은 자기들끼리 바빠 이쪽을 보고 있지 않지만 지금처럼 유현이 수상스럽게 굴어 주의를 끈다면 알아볼 수도 있는 거리였다.

"누군데요?"

"입 엄청 가벼운 애들이요."

"저긴 출구예요. 우린 어차피 다른 쪽으로 들어갈 거니까 그냥 가죠."

"그래도 입구랑 출구가 가깝잖아요."

지대를 높게 만들어 그 위에 가옥을 올린 형태로 불규칙적으로 깎은 바위가 깔린 돌계단을 밟고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다. 안내 데스크가 있는 쪽이 입구, 계산대가 있는 쪽이 출구였다. 입출구가 분리되어 손님이 많아도 혼잡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손님이 없어 한산하니 더더욱 들키기 쉬웠다.

곁눈질로 어떻게 봤는지, 유현은 출구로 나오던 손님들 중 남자가 고개를 돌리자 그에 맞춰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러는 게 더 시선을 끈다는 걸 모르는 건지….

속으로 혀를 찬 태화는 어떤 얼굴인지 보려고 출구 쪽을 쳐다보았지만, 유현이 서둘러 그를 제지했다.

"거긴 왜 봐요!"

"……."

양손에 얼굴이 잡힌 태화는 그 손을 밀어내지도 않고 홀로 열심히 부산스러운 유현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봤으면 어떡하죠?"

"봤어도…."

"봤어도 뭐요."

"우리 둘이 뭘 상상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아니지 않나? 일단 둘 다 남자니까요."

"어? 그러네…."

그제야 구부정하게 굽히고 있던 허리와 어깨를 펴고 선 유현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더니 아무렇지 않은 척 입구 쪽 계단을 씩씩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거의 계단을 다 올랐던 유현은 입구 쪽에서 또 뭔가를 발견한 듯 다시 다람쥐처럼 계단을 빠르게 밟아 내려온다.

"어디 가요?"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왜 그렇게 걱정해요. 매니저한테 하려고 했던 것처럼 친한 형이라고 하면 되잖아요."

유현이 뭐라고 하려는데 계단 위쪽에서 반송 너머로 사람이 서성거리는 것이 보였다. 내려가려는 유현을 붙잡아 제 앞에 세웠다.

"나무에 가려져서 안 보여요."

"내려오면요?"

"누군데 그래요?"

"쟤도 아이돌인데, 자기 형이 연예부 기자라서 이런 소식 저런 소식 잘 퍼다 나르기로 유명해요. 실제로 기사화해서 난리 난 적도 있어요. 그 윤이랑 썬 사귄다는 거, 그것도 쟤가 자기 형한테 떠들어서 터진 거라더라고요."

유현은 태화가 당긴 그 자세 그대로 얼어서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가십에 공포가 크기 때문인지, 유현은 제가 어떤 자세로 얼마나 가까이 서 있는지 자각이 없어 보였다. 둘은 같은 계단에 서 있는 상태였고 유현이 말할 때마다 태화의 목이 숨결로 간지러웠다.

"아까 나한테 궁금하다고 했던 게 뭐였죠?"

"네?"

"좋아하던 가이드 없었냐든가?"

"……."

"아니면, 아까 거기에 같이 간 게 누구였냐고?"

불현듯 조성된 기묘한 긴장을 감지한 유현은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태화는 유현을 보지 않고 아마도 사람이 서 있는 듯한 위쪽을 바라보며 담백하게 물었다.

"저 사람은 왜 피하려고 하지?"

"……."

"우리가 친한 형동생 사이로 안 보일까 봐 걱정돼서 그래요?"

소리는 속삭임처럼 낮았다. 햇살을 받아 투명한 눈동자를 홀린 듯 바라보던 유현은, 태화가 돌연 시선을 내리깔자 숨을 참았다. 가까워지는 눈동자에 유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아 내렸다.

"……."

잠깐. 이 사람이랑 지금 내가 무슨 짓을.

입술에 닿을 듯한 느낌이 들자마자 유현은 정신을 차리고 태화를 밀쳐냈다. 조금도 밀려나지 않은 채로 여전히 가까웠다. 유현은 한 번 더 퍽 소리가 밀쳐내고 어느새 제 허리를 감고 있는 팔을 있는 힘껏 떼어내 허공에 내던졌다.

"……."

아직 그 기자 형을 뒀다던 아이돌이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을 본 태화가 팔을 뻗었다. 무리하게 두 계단씩 오르려는 어깨를 뒤에서 붙들자, 유현이 지레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애, 애인이 이런 거 안 좋아해!"

"……."

"아, 아니, 아, 안 좋아해요…."

그러고는 유현이 눈 둘 데를 찾지 못하고 숨만 거칠게 몰아쉬었다.

애인이 이 꼴을 좋아할 리가. 하지만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일까. 새빨갛게 얼굴을 물들이고 어쩔 줄 모르는 유현을 보면서 태화 다소 뻔뻔스럽게 생각했다.

무해한 미소를 머금은 태화는 유현에게 계단 위를 눈짓하며 작게 언질을 주었다.

"애인이 안 좋아해도, 여기서 좀 기다려야 할 거 같은데. 아까부터 우리 쪽 보고 있거든."

***

주연 배우 세 명은 커다란 패딩을 입고 커피차 앞에 모여서 떠들고 있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주연 셋이 한 컷에 담기는 씬이 많아 촬영 스케줄이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셋은 의외로 쿵짝이 잘 맞아 쉬는 시간에도 각자의 차로 흩어지지 않고 한곳에 모여서 한담을 나누거나 작품 이야기를 실컷 떠들곤 했다.

"유현이 살이 많이 빠졌는데?"

"그치. 오빠가 봐도 그렇지? 내가 저번 주에 티저 영상 보고 고개를 딱 들었는데, 그때 유현이가 내 앞에 서 있었거든? 근데 얘가 살이 너무 빠져 있는 거야."

영준이 말하자 민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맞장구를 쳤다.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던 유현이 가볍게 웃으면서 부정했다.

"에이, 누나. 그 정돈 아니에요."

"아니긴? 한정운, 너 다이어트 그만해. 너 그러면 오유리도 같이 살 빼야 돼."

"안 그래도 저번 주에 찍은 초반 회차 영상은 못 쓰겠다면서 감독님이 유현이한테 엄청 짜증 내셨다? 오 분 전의 한정운이랑 오 분 후의 한정운이 다른데 어떡할 거냐고."

"웃기긴 하겠다. 화면 바뀌면 갑자기 막 줄어 있고."

"근데 볼 때마다 감독님은 푸짐해지셔."

"감독님 스트레스 받아서 10킬로 찌셨대요."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배우 착취하는 감독으로 찍히기 싫다고 배우 전원 제작발표회까지 살 5킬로씩 찌워 오래잖아. 완전 웃겨."

사실 살이 빠진 건 유현뿐만이 아니었다. 과격한 액션과 빽빽한 스케줄 때문에 촬영을 시작한 9월에 비하면 영준이나 민아나 반쪽이 되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다른 배우들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메이킹 피디는 셋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촬영장 분위기가 좋다고 자주 감탄하곤 했는데, 민아는 엊그제 우스갯소리로 답했다. 고난 속에 사랑이 피는 거니까요. 거의 매일 보니까 사이가 좋을 수밖에 없어요.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게 고난으로 느껴질 정도로 촬영 스케줄이 너무나도 강행군이었다.

"아. 근데, 아까 봤어?"

"뭘요?"

"경호원들. 왜, 안전 때문에 배치했다던."

"아아, 그분들 아직 못 봤어요. 왜요?"

몇 주 전부터 촬영 현장에 투입된 경호 인력들을 말했다. 지난 한 달 동안, 촬영장 섭외에 혼선이 있어 몇 번 실제 능력자와 마찰이 생긴 적이 있었다. 소품 차의 화재 사고나 스턴트 배우들의 부상과 묶여 연이은 안전사고로 대대적으로 기사화가 되면서, 제작사 측에서 급히 경호 인력을 고용해 배치한 상태였다.

민아가 진지한 얼굴로 목소리를 깔고서 말했다.

"멋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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