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임 온 잇-32화 (3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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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센터는 며칠 전 사회에 불만을 품은 개인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며, 용의자로 추정되는 몇 명의 거주지를 추려서 은밀히 건네주었다. 수사를 담당하는 형사팀에서는 정보력과 수사력이 압도적인 센터의 도움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고, 그들이 지시한 대로 용의자들을 차례로 조사하자 김의환이 체포되었다.

뭐라고 보고를 해야 할까. 공범이 있는 것 같다고? 그렇다면 아예 새로 수사 방향을 잡아야 했다. 이 씨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카페 테러 사건은 엄중하게 다뤄져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센터에서 유례없이 대대적으로 언론에 입장을 공표했다. 아마도 우신 그룹 명예 회장의 막내 손자 때문이리라. 센터장의 아들과 결혼을 할 예정이라는.

우신 측에서도 시끄럽게 일을 키우는 것은 원하지 않았지만 범인과 그 범행 동기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했고, 강한 처벌을 원한다고 전해 왔다.

"미치겠네…."

눈을 뜬 이 씨가 손을 모아 코를 가두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찌 됐건, 김의환은 틀림없이 범인이었다. 알리바이가 확인되지 않은 유일한 용의자였다. 집에 들이닥친 형사들을 보고도 올 것이 왔다는 양 저항 없이 순순했던 태도나 입을 열지 않았을지언정 범행을 부정하지도 않았던 것을 보면….

그때 이 씨의 눈에 소리 없이 열리는 취조실 문이 들어왔다. 한껏 신경이 예민해진 이 씨가 누구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날카롭게 소리쳤다.

"아무도 들이지 말랬잖아! 뭐야?"

"특수능력인재관리센터에서 나왔습니다."

당연히 눈치 없는 후배일 거라고 생각했던 이 씨는 낯선 목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체격이 대단한 두 남성을 대동한, 호리호리한 체격에 똑단발의 여성은 차분하게 제 소속을 밝혔다. 센터? 센터가 여긴 왜…. 이 씨의 시선이 방황했다.

기관원의 등장과 본인의 여러 근황을 연관 지어 보다, 문득 김의환을 바라보았다. 김의환은 낭패라는 듯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고 있었다.

이 씨는 설마 하는 마음에 물었다.

"김의환 씨 때문에 오신 겁니까?"

"예. 인도해 가겠습니다."

"형사님!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수사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겁니다. 저 이대로 보내시면 안 됩니다!"

이 씨는 우렁찬 성량에 깜짝 놀라 어깨를 움찔거렸다. 비협조적이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김의환은 몸을 흔들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 움직임이 묘하게 어색해 자세히 살펴보자, 멋지게 정장을 차려입은 두 남자는 김의환의 양어깨를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그 행색이 번지르르해 기관원이라기보다 여배우와 사랑에 빠지는 경호원을 연기하는 배우들 같았다.

"난 못 가! 놔, 이 새끼들아!"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지 김의환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두 남자의 손에서 벗어 났으나 금세 취조실 벽에 떠밀려 제압당했다. 남자들 중 하나가 김의환의 뒤통수를 잡아 벽에 처박았다. 머리가 박살 난 게 아닌지 의심이 되는 커다란 둔탁음이 들렸다. 그러는 동안 나머지 하나가 등 뒤로 두 팔을 모아 수갑을 채웠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놔, 이 개새끼들아! 나 이제 그만 둔다고, 안 한다고. 시바알, 아아아악―!"

감정을 지우고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할 때와 달리 악을 쓰니 기껏해야 대학생쯤으로 보였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 씨가 센터에서 나온 사람들을 말려 보려고 "이봐요들. 그래도 엄연히 여긴," 하고 입을 떼자마자, 여자가 조용히 뒤로 다가와 이 씨의 어깨에 가까운 팔뚝을 손으로 붙들었다. 마치 통제하려는 듯한 손길이었다. 웬만해선 그런 식으로 제지를 받아 볼 일이 없는 그라, 적잖이 자존심이 상했다.

어디서 경찰 몸에 함부로 손을 대! 이 씨는 야멸차게 뿌리쳐 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녹록잖은 힘이었다. 상대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손을 털어내고 일어나기는커녕 살짝 몸을 트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이 씨와 눈이 마주치자 여자는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펴 입술 위에 붙였다. 이 정도 소란이면 매직미러 뒤에서 살펴보고 있던 동료들이 뛰어 들어올 만도 했는데 여전히 취조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당신들이 센터에서 나왔다고 해도, 아무 일이나 다 해도 되는 건 아닙니다. 알 만한 분들이니 아시겠지만 모든 공무엔 절차라는 게 있고…."

"에스퍼입니다."

"예?"

"김의환 말입니다. 센터 무단이탈 에스퍼예요."

에스퍼 요원…? 저 여자의 말대로 김의환의 정체가 에스퍼였다면 생각보다 더 심각한 사건이었다. 복무 중인 군인이 탈영해서 일반인들을 향해 총을 난사한 것과 비슷했다. 빈 화면에서 까맣게 깜빡거리는 커서에 두던 시선이 천천히 김의환을 향했다.

"김의환이 변호사를 선임하면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게 될 겁니다. 조사를 해보셨으니 아시겠지만, 경찰이 범행 도구로 주장하는 폭탄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

"김의환이 또 체포된다면 그 죄목은 살인이 될 테고, 그렇게 되면 이 형사님도 책임을 피하실 수 없을 겁니다."

여자는 김의환이 같은 범행을 저지를 거라 확신하는 투였다.

"다 잡은 범인을 그냥 내달라 이겁니까? 우리한텐 이런 거 하나하나 다 실적입니다. 적어도 이관한다는 서류라도 가지고 오셔야 저도 업무 처리를 하고…."

"김의환이 다시 물의를 일으키면 형사님은 좌천이나 파면 수순을 밟으시게 될 겁니다. 일부러 놓친 에스퍼 하나 때문에 커리어가 끝장나기를 바라신다면, 부디 형사님 뜻대로."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남의 뜻대로 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강경한 눈이었다. 이 씨는 직업 특성상 이런 눈을 한 사람을 많이 알고 있었다.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지독한 거머리들. 공문 하나면 끝날 일인데 막무가내로 쳐들어와 협박을 하고 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센터에서 정식으로 인도해 가는 것이 아니다.

그 사이 김의환은 무슨 짓을 당한 건지 정신을 잃고 의자에 축 늘어져 있었다. 설령 저 사람들이 센터에서 나온 사람들이 아니라 해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 씨는 쉽게 항복했다.

"…알겠습니다."

여자가 "데리고 나가." 하고 낮게 지시하자, 두 남자는 살짝 묵례하고 의식이 없는 몸을 업어서 데리고 나갔다.

인간이 아닌 것처럼 내내 표정 없이 상황을 지휘하던 여자는 부하들과 김의환이 취조실을 나간 후에야 표정이란 것을 띄웠다. 이 씨의 팔을 잡은 손을 풀고 은은한 미소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군더더기 없이 인사를 건넨 여자는 취조실을 벗어났다. 혼자 남겨진 이 씨는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저릿한 팔뚝을 연신 쓸어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 형사인 최 경장이 우당탕 발소리를 내며 뛰어 들어왔다.

"괜찮으십니까?"

"뭐냐, 방금 저놈들. 신분 확인은 제대로 했냐? 센터에서 온 거 맞냐고!"

이 씨가 추궁하는 목소리에는 드물게 노여움이 묻어나, 최 씨는 얼른 문가에서 기웃거리는 같은 팀원들에게 눈치를 줘 쫓아 보냈다.

"그게요. 뭐라고 한 마디 해보기도 전에 멋대로 들어가 버렸다구요. 저놈들 여기 들어오자마자 취조실 카메라는 전부 먹통 돼서 안 보이고, 요기 요 거울도 뿌예져서 안 보이고, 선배님 전화는 안 받으시고, 문은 안 열리고!"

"문이 안 열려?"

"예! 안 열렸다니까요?"

문 두드리는 소리 하나도 나지 않던 취조실 문을 떠올리며 형사는 괜스레 팔뚝을 슥슥 문질렀다.

"근데요, 선배님. 들으셨어요? 김의환, 에스퍼라던데요."

"참나. 그건 또 말해주고 가디?"

"그게 아니라 뒤늦게 하나가 도착해서 설명해주더라고요. 그 사람 아니었으면 답답해 죽을 뻔했습니다. 취조실 문은 닫혀서 열리지도 않지, 선배님도 감감무소식이고.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 알 길이 있어야 말이죠."

"그래서, 뭐라고 설명하던?"

"아, 예. 들어보니까, 방금 저놈이 에스퍼인데…. 그 왜, 기억 나십니까. 마약은 눈속임이고, 알고 보니 인신매매단이어서 발칵 뒤집어진 사건 있잖습니까."

"그게 왜."

드물게 센터와 지독하게 엮인 사건이었다. 그 사건을 말하자면, 3월 하순경에 일어난 펜트하우스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펜트하우스 사건. 이 나라에 존재하는 변호사란 변호사는 다 왔나 싶게 대규모의 변호인단이 경찰서를 들락거리게 했던 사건이었다. 다들 일관된 진술로 평소 우울증을 앓던 파티 일원이 불법으로 소지한 총기로 자살한 것으로 한 달 만에 종결되었는데, 센터는 몇 달이 지나서 펜트하우스 사건의 사망자가 에스퍼인 듯싶으니 재수사를 하겠다고 대뜸 공문을 보내왔다. 그것이 강력3팀 실적 수탈의 시초였다.

센터의 때 지난 개입에 형사팀이 발칵 뒤집혔다. 당연한 일이었다. 원칙적으로 일반 형사 사건은 철저히 경찰의 영역이라 그 공문은 제법 논란이 되었고, 그 사건을 수사했던 담당팀은 말도 안 된다며 항의했지만,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해 본 결과 센터에 등록된 적이 있다는 말로 깔끔하게 항의를 물리쳤다.

에스퍼가 연관되어 있는 것이 확인된 곧장 그 일의 성질은 달라졌고, 단 몇 시간 만에 경찰의 권한 밖의 일이 되었다. 그리고 수사는 그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가 뇌물을 받고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정황이 포착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경찰은 그때까지도 안일하게 비리 검사 두엇을 처단하면 해결될 간단한 일로 치부했다.

무서울 것 없는 센터 요원들이 그날 파티에 참석한 몇을 소환해 족치더니, 사망자는 파티를 연 주최와 전혀 관련이 없음을 밝혀냈고, 피해자는 매음을 목적으로 보내진 것이며 살해당한 것이라는 진술까지도 확보했다.

그리고 연쇄적으로 파티에서 취급했던 마약의 판매책이 드러나면서 사달이 났다. 펜트하우스 살인사건은 살해범 하나 잡는다고 끝날 사건이 아니었다. 마약의 판매책이 강력3팀이 좇던 바로 그 조직의 아래 도급이었던 것이다.

"3팀에서 거점 알고 있다고 합동 작전하자고 제안했을 때, 센터에서 대놓고 무시해서 난리났었던 현장 기억하시죠?"

강력3팀이 수년간 대단히 헛물을 켰음이 판명 난 바로 그 현장. 이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서 김의환이 급습 요원이었다는데, 글쎄 그 현장에서 가이드가 휘말려 죽었다나 봐요."

다년간 형사직에 종사하면서 특수능력자의 생리를 웬만큼은 꿰고 있는 이 씨가 그게 말이 되냐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에스퍼가 제 가이드의 안전에 몹시 민감하다는 것은 특수능력자가 아닌 이 씨도 알고 있었다. 에스퍼가 외부에 떼어 놓은 목숨으로 불린다는 가이드. 가이드가 죽거나 다치면 에스퍼도 무사하지 못했다.

"현장에서 가이드를 잃은 놈이면 벌써 미치거나 폭주해서 죽었어야 되는 거 아니냐?"

"아닌 게 아니라, 맛이 좀 갔대요. 최고 정예 요원 중에 하나였는데, 규정이고 뭐고 다 무시하고 도망쳐 나왔다는 거죠. 한 마디로 탈영, 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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