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임 온 잇-30화 (3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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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필요성을 못 느껴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쪽 몸무게 같은 건 알 필요가 없을 거 같아가지고…. 그런 건 아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요?"

태화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더니 풀어져 있던 몸을 고쳐 앉으며 중요한 얘기를 꺼낼 것처럼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고유현 씨가 감을 못 잡는 거 같으니, 팁을 하나 줄게요."

"무슨 팁이요?"

"나는 고유현 씨에 관련된 것들은 모두 내가 직접 보거나 들었거나 겪은 적이 있다고 상상해요. 이를테면, 몸무게? 고유현 씨가 활동기엔 조금 더 가볍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건 인터뷰 몇 개만 찾아봐도 알 수 있는 건조한 정보지만, 그 정보가 내게로 오면 내 애인이 작품 활동에 들어가면 안아 올리기 쉬워진다 정도로 기억되는 거죠."

"…안아 올린다고요? 나를? 왜?"

"잠 욕심이 많아서 머리만 대면 거기가 침대라, 아무 곳에서나 뻗어 있는 고유현 씨를 침대에 종종 옮겨준다는 이야기가 추가되는 거죠."

애인이니까. 그렇게 깔끔할 수가 없는 대답이었다. 그렇다면 저 남자는 모든 정보를 그런 식으로 디테일까지 살려서 기억한단 말인가. 유현은 작게 입이 벌어졌다. 약간 소름도 돋았다.

"팁이 아닌가요?"

"아, 아뇨. 좋은 팁이네요."

"표정이 아닌 거 같은데?"

"아니, 제가 그동안은 좀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서요."

이 남자 상당히 진심이었다. 그동안 저더러 애인이라며 이런저런 소리를 들먹이는 게 단순히 놀리려는 의도인 줄 알았는데 진심이었던 것이다. 결혼하기 싫은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위장 연애에 정성을 쏟을 정도면 정말로 결혼이 싫은 것이다. 돈에 관심 없고 드라마에는 더 관심이 없어서 드라마 제작 따위에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될 저 남자가 굳이 저 하나를 끌어들이자고 짠 이 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마침 말 꺼내기 좋은 타이밍 같아, 유현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저, 말이 나와서 말인데요."

"무슨 말?"

"왜 하필 저한테 그런 제안을 하셨어요? 전 그쪽한테 실수로 술 쏟고 도망친 것밖에 없는데."

그동안엔 좀처럼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 처음 몇 주는 제게 유리한 계약이 어그러질까 유현이 조심스러웠고, 이후엔 도통 바빠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었고, 최근에는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으면서도 전화로 할 얘긴 아니다 싶었던 것이다.

저야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니 눈앞에 내밀어진 손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지만, 이 남자에게 반드시 자신이어야 할 만한 이유가 뭐였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미스테리였다.

"요즘 우리 촬영장에 괴담이 하나 돌거든요. 우리 드라마에 마가 낀 거 같다고. 누군 다치고, 누군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그랬어요. 만들어져서는 안 되는 드라마라고 누가 그러더라구요. 그 이윤 저도 잘 모르겠지만."

"네."

"근데 그쪽도 그거 조금은 알고 있었을 거 아니에요. 아무리 돈이 남아돌아도 그 정도 규모의 투자를 땅에 침 뱉듯이 아무렇게나 하지 않았을 테니까. 만들어지면 안 되는 드라마에 투자하기로 한 거, 저랑 계약하려고 그런 거라고 했잖아요. 왜 하필 저였어요?"

태화가 고민하며 다시 턱을 괴었다.

"별로 말해주고 싶지 않은데."

"왜요?"

"고유현 씨가 도망갈까 봐서요."

"제가 어떻게 도망을 가겠어요. 이미 계약서도 다 쓴 마당에."

"내가 첫눈에 반했다고 해도?"

유현은 웃어버리거나 화제를 돌릴 타이밍을 놓친 채로 의미가 모호한 남자의 시선을 받아냈다.

"…농담이죠?"

"……."

"……."

"내가―"

본인이 원하는 만큼 응시하던 태화의 입술이 이윽고 열리는 찰나였다.

쾅―!

난데없는 굉음에 유현은 반사적으로 목을 움츠렸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급하게 시선을 들어 올렸다. 맞은편에서 저처럼 마찬가지로 얼어 있을 줄 알았던 태화는 언제 이동했는지 코앞에 다가와 머뭇거리는 유현을 한 손으로 일으켜 세웠다.

"자, 잠깐만요."

"일단 여기서 나가죠."

태화의 손에 잡힌 날갯죽지 부분이 아려와 유현이 몸을 비틀자 더 세게 움켜잡았다.

"밖이 저 지경인데 어딜…."

유현이 움직이지 않겠다고 제자리서 버티니 아예 제 옆구리에 끼워 붙여 걸었다. 그 와중에도 몇 안 되는 손님들이 소리를 지르며 매장을 뛰쳐나갔고 도어벨이 미친 듯이 울렸다.

유현과 태화가 차지한 구석의 좌석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가 없는 곳이었다. 공간을 분리시키기 위해 설치한 인테리어 목적의 가벽 탓이었다. 화분을 놓아둘 선반 용도로 가벽을 네모나게 뚫어놓은 덕에 출입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이 보이기는 하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무서워만 하는 유현을 끌고 태화는 주변을 살피며 낮은 자세로 걸어 나갔다. 그들 근처에 있던 손님들도 상체를 낮추고 뒤를 따랐다.

유현은 어쩌다 함께 돌발 상황을 겪고 있을 뿐인,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진한 동지애를 느꼈다. 그쪽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지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다 일행 중 한 여자가 눈썹을 이마로 추켜올리며 눈꺼풀을 연신 깜빡거린다. 유현을 알아본 것 같았다. 유현은 뚫어져라 쳐다보는 여자에게 머리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 고개를 돌린다.

가벽을 막 지나는 순간이었다. 엉망이 된 매장을 보던 유현은 태화의 기행에 돌연 눈을 키웠다. 허리까지 오는 자그만 나무가 심겨 있는 화분을 한 손으로 집어 들어 던진 것이었다. 화분은 빠르게 날아오던 무언가와 부딪혀 깨지면서 허공에 박살이 났다. 눈으로 보고도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현상이었다. 화분은 깨지고 흙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보기 좋은 나무도 어딘가로 처박혔다.

한 손으로 화분을 던진 거야…? 유현은 얼이 빠졌다.

두 사람의 뒤를 따르던 손님들은 소리를 지르며 다시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유현도 돌아서 들어가려 했지만 태화는 그런 유현을 알아챈 듯 들어가지 못하게 팔목을 잡아 앞으로 척척 걸어 나갔다. 질질 끌려가던 유현이 정신을 차리고는 목소리를 죽이며 다급하게 붙잡았다.

"어디 가게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 줄 알고 나가요? 우리 그냥 여기 있어요. 없는 척하고 있으면 없나 보다 하고 가겠죠!"

"괜찮아요."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인다고요! 죽고 싶어요?"

"사람들을 다치게 하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가게 꼴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아무도 안 죽었잖아요. 죽일 생각이 있었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이고도 남았어요."

유현은 입을 다물었다. 이 남자는 뭘 알고 이러는 건가? 여유를 잃지 않고 죽음 운운하는 말에도 위화감이 없는 것을 보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는 듯했지만, 난장판 사이에서 과한 자신감은 여전히 못 미더웠다. 고집스럽게 앞으로 나아가는 태화의 팔을 잡아끌며 속삭였다.

"어디 가냐고요!"

"나가야 해요. 이 안에 있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더 여기 있어야죠! 나가다가 다치면 어떡해요?"

"고유현 씨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아무 전조도 없이 터지고 뒤집어지는 건 자기 의지가 아닐 확률이 높아요. 그럴 땐 현장에서 빨리 벗어나는 게 가장 중요해요."

"내 말은 벗어나다가 다칠지도 모르니까 우리… 저, 저기에!"

한껏 미간을 좁히고 태화를 만류하던 유현은 뒤늦게 날아오는 소파를 발견하고는 검지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화장실로 통하는 복도에서 사진 찍을 때나 쓰이는 소파였다. 인테리어를 위해 곁다리로 두는 것이라 크기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공중을 날아다니기에는 몹시 무거워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소파가 마치 손수건이라도 되는 듯 팔랑거리며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사고가 나는 순간은 이렇게 다들 멍청히도 몸이 굳는구나…. 유현은 아래로 푹 꺼지듯 주저앉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충격이 느껴지지 않았다. 유현은 슬그머니 눈을 떴다. 도망치지도 않았는지 가만히 서 있는 길고 곧은 다리가 보였다. 급히 올려다보자 아래를 보고 있던 태화와 눈이 마주쳤다. 몇 초간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가게 바깥에서 경찰차가 오는지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유현은 안도감에 다리에 힘이 풀려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쿵 넘어졌다. 그리고 그에 맞춰 뒤늦게 소파가 위쪽에서 나동그라진다.

가만, 저게 어디 있다가 떨어지는 거야…. 유현은 미간을 좁혔다가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저 소파도 받아낸 거야, 화분 던진 것처럼? 믿기 힘든 광경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태화는 숨을 크게 내쉬고 살짝 인상을 찌푸린다.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려 소파를 구석으로 차 버렸다.

저게 축구공도 아닌데 저렇게 차는 게 가능한, 아니, 애초에 저걸 맞고 멀쩡할 수가 있다고…? 유현은 제가 지금 꿈을 꾸나 싶었다. 촬영에 몰입하면 그런 꿈을 꾸곤 하니까.

이쯤 됐으면 어디선가 컷, 하고 외쳐줄 사람이 나타나야 할 것 같은데, 주변은 사이렌 소리 외에 고요하기만 했다.

시합 직전에 부상 정도를 체크하는 선수처럼 제 어깨를 한번 돌려보던 태화는 좋지 않은 얼굴로 천천히 몸을 돌려 유현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괜찮아요?"

"지금 누가 할 소리를…."

유현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일으켰다. 얼굴이 창백해진 태화가 거리를 성큼성큼 좁혀 왔다.

"다치진 않은 거 같네요. 다행히."

"나 괜찮으니까 거기 서서 얘기해요. 아니, 괜찮다니까 왜 이렇게 가까이 와요?"

"잠시만…."

유현이 뒷걸음질 치는 것보다 조금 더 빨리 태화의 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치 드라마에서 슬로우 모션을 걸듯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느린 움직임이었다.

"……으윽."

장신이란 것도, 무게가 꽤 나간다는 것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체감은 또 달랐다. 유현이 다리에 힘을 주고 겨우 받아내긴 했지만 오래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함께 바닥으로 고꾸라져 무릎이나 엉덩이가 아작 나기 전에 어디에라도 앉혀야 할 것 같았다.

유현은 의식을 잃고 거동이 힘들어진 태화의 옆구리를 요령 있게 파고 들었다. 한쪽 팔을 제 어깨에 두르고 태화의 허리를 꽉 둘러 안자 웬일인지 손바닥에 축축했다.

"이게 뭐지."

음료수 같은 게 묻었나. 유현은 엄지와 검지를 비비적거리다 설마 하는 마음에 쭉 목을 빼고 손끝을 확인했다. 붉은색. 유현의 눈이 크게 뜨였다. 피였다. 고개를 틀어 등 쪽을 확인하자 그의 뒤통수에서부터 흘러내린 피가 등을 축축이 적시고 있었다.

[게시글]

헐 정운 본체 삼성동

테러 당했대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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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본 인별 업뎃

(캡쳐 사진)

https://www.instagram.com/p/dkanfjswnth/?utm_medium=copy_link

└남배 다쳤는데 커피차 인증하는 수준

└기사 뜨기 전에 인증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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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본 있던 곳 생각보다 심각했나 본데

틧에서 보니까 건물 근처에 있던 사람 지진 느꼈대

└어떡하냐.. 아이고

└놀라긴 했는데 다친 건 아니라고 함 카페 손님들도 다 대피해서 다친 사람 한명밖에 없었대

└다 괜찮은 거 아니었음? 다친 사람도 있음?

└기사에는 다 괜찮다고 했는데 어떤 사람 인증하고 말했는데 어떤 남자 피흘리고 쓰러졌대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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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업 때문에 지금 들어왔는데 왜 우리갤 좆창남?

뭐임

└정운본 테러 당한 소식에 신난 어그로 두마리 날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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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분위기

참 좋다

남배 테러 당한 날 여배 커피차 인증

└말귀 못 알아 처먹네 테러 기사 뜨기 전에 올린 거라니까?

└ㅂㅁ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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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피그로 자러 갔는지 조용하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난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본체 거기 없었으면 좋았겠지만

어쨌든 안 다쳤고

공교롭게도 거기 에스퍼가 테러 했던 거여서 우리드 홍보도 됨

업계 패싱 당한다 소문 은근 돌던데 타이밍 좋게 어그로 잘 끌린 듯

└패싱 얘긴 뭔 소리임

└ㅁㄹ 본체들 무시하고 우리드 견제 ㅈㄴ 당한대

└그게 우리드 때문도 아닌데 뭐가 잘됐다는 거임

└ㅈㄴㄱㄷ) 그걸 말로 해야 아냐 본체 논란으로 줄창 까였는데 동정론 생겨서 잘됐다는 거잖아 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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