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28.
"어……."
잘못 걸었나. 유현은 눈썹을 모으고 눈을 깜빡이다 수신 버튼을 움직였다. 끊어질까 싶어 기다려 봤지만 "여보세요?" 하며 저를 찾는 인사말이 들려왔다. 서둘러 귀에 댔다.
"잘못 거신 건가 했어요."
-"이 시간에? 설마요."
"그래서,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자고 있었어요?"
"아뇨. 자고 있진 않았는데…. 무슨 일 있으세요?"
-"무슨 일은 없고."
없고? 없고, 뭐. 유현은 귀에서 떨어트리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밝아진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래 봐야 보이는 건 수신 화면이었고, 상대의 상태를 가늠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없는데 왜 전화하셨어요?"
유현이 의심스럽게 묻자 너머에서 낮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 내가 한 말 때문에 그래요?"
어제 무슨 말을….
-"정말 매일 전화할 줄은 몰랐거든요. 난 그날 고유현 씨 탓하러 간 건 아니었는데."
유현은 소리 없이 하, 탄성을 터트렸다. 어제 전화를 끊기 전에 시비인지 감탄인지 분간이 안 가던 그 말.
"너무 늦었어요. 이만 자러 갑시다. 기절하기 직전이에요."
-"그래요."
"왜 웃으시죠?"
-"고유현 씨가 의외로 성실하단 생각이 들어서."
'의외로'라는 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 만큼 유현은 몹시 피곤하고 예민한 상태였고 슬며시 삐딱해지는 사고를 고쳐 잡을 힘도 없었다.
"그럼 하지 마요?"
-"난 좋단 의미로 한 얘기였는데."
"매일 전화할 줄은 몰랐지만 내심 좋았다, 뭐 이 정도로 해석해드리면 될까요?"
-"완벽하네요."
"그럼 내일은 좀 불성실해야겠네요. 너무 완벽하면 인간미가 없으니까."
-"왜요, 내가 놀려서?"
"이거 봐, 이거 봐! 놀린 거 맞다니까!"
-삐졌어요?
"삐지긴 누가요."
삐진 건 아니었고 빈정이 상한 것은 맞았다. 그러나 잊었다. 한 삼십 초쯤 뒤에.
애초에 마음에 오래 담아둘 만큼 기분이 상한 것도 아니었다. 그와 가야 할 길은 멀었고, 해야 할 일은 많았으니까. 그깟 사소한 농지거리쯤이야.
어쨌거나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해 낸 유현은 "신경도 안 쓰고 있었거든요?" 하고 쏘아붙였다.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니까 더 서운해지려고 하네."
"……?"
-"매일 오던 게 안 오니까 내가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그게 왠지 약오르고 서운해서, 잠 깨우고 괴롭히려고 전화 한번 걸어 봤어요."
"…혹시 한잔했어요?"
-"주정꾼 취급을 하네요."
그럼 제정신인 사람처럼 말을 하시든가요. 유현이 불쑥 떠오른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삼켰다. 며칠 연달아 전화통화 좀 했다고 이렇게 편해지다니 조만간 말실수 크게 한번 하지 싶었다.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오늘 촬영이 많이 딜레이 됐나 봐요. 어젠 일찍 끝날 거 같다고 좋아했던 거 같은데."
"예상치 못하게 비가 내려서요."
-"곤란했겠네요."
"네, 곤란했죠. 야외 촬영이어서. 철수하고 내일 찍자, 예보엔 비 소식 없었으니까 갤 때까지 기다려보자, 아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자, 그렇게 질질 끄는 동안 비가 내렸다 그쳤다 했거든요."
쉴 새 없이 촬영팀을 돌리고 있는데도 촬영장은 왜인지 날로 더 바빠졌다.
1월에 잡힌 편성 스케줄에 맞추려면 일정이 빠듯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지난 경험에 비추어 보아 후반부 촬영이 고될 수도 있겠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때깔이 좋아도 제작비 때문에 엄두를 못 내는 해외 로케이션을 투자자 쪽에서 먼저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촬영할 짬이 안 나 걷어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저 의아했다. 첫방까지 4달이라면 그 정도는 아닐 텐데.
드라마의 특수성을 이해하게 된 건 스케줄에 쫓기는 드라마들이 더러 그러하듯이 촬영팀을 A, B팀 두 개로 나누었지만 그로도 도저히 해결이 안 되겠다며 C팀까지 만들어 돌리는 지경이 된 이후였다.
가만 보니 촬영지 섭외의 어려움이 가장 컸다. 실제 센터와 최대한 비슷한 장소를 물색하는 것도 일, 촉박하게 촬영 허가를 받아내는 것도 일. 실질적으로 준비 기간이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던 제작부는 죽을 맛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백 감독은 스탭들의 아우성은 무시한 채 의심스러울 정도로 야외 촬영을 빡빡한 일정으로 뽑아내고 있었다.
한 번 촬영지가 정해지면 감독이나 조감독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촬영을 해내려고 했다. 오늘도 바로 감독의 그 빡빡한 고집 때문에 늦어진 경우였다. 보통 현장에 비가 많이 내리면 조명 때문에라도 촬영을 연기할 수밖에 없는데 쇠심줄 같은 고집으로 버티더니 끝끝내 우천 아래 촬영을 마친 것이다.
-"늦게라도 찍긴 찍은 모양이네요?"
"노을 질 즈음에 거짓말처럼 날이 잠깐 갰거든요. 불행 중 다행으로 엔지 없이 한 번 만에 끝났고요."
-"엔지가 없었는데도 귀가가 늦은 걸 보면 많이 어려운 촬영이었나 봐요."
"아뇨. 늦은 건 퇴근 길에서요. 무서울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는데, 시야 확보는 어렵지 도로는 미끄럽지… 오늘따라 차도 많았고, 앞쪽에선 사고가 났는지 도로에 잠시 갇혀 있기도 했고요. 평소보다 훨씬 더 걸렸어요. 오피스텔에 들어온 게 한, 열 시쯤?"
언제 재개될지 모르고 기약 없이 하는 대기에다, 심장 벌렁거리는 차 사고까지 겪고 나니 실질적인 촬영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평소보다 더 지치는 하루였다. 단지 돌이켜 보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피곤해졌다. 연이은 촬영에 오늘은 유현이 멋모르고 비를 반가워했다지만 내일부터는 제발 비가 내리지 않기를 바랐다. 구름이 끼는 밤에는 집으로 돌아와 물 떠놓고 기도라도 할 생각이었다.
덜 마른 머리칼을 손으로 털면서 멍하게 눈을 꿈뻑이던 유현은 문득 꽤 오래 서로 말이 없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여보세요? 자요?"
-"…듣고 있어요."
"졸리면 자러 가요. 졸린 사람 앉혀놓고 할 재밌는 얘긴 더 없어요."
말을 뱉어놓고 보니 졸린 사람은 제 쪽이었다. 유현은 소리를 죽여 작게 하품했다.
-"그건 아니고, 물어도 될지 잠깐 고민했어요."
"뭔데요? 물어보세요."
-"도착을 열 시에 했으면 사이에 시간이 뜨길래."
새로운 화제로 넘어갈 낌새가 보였다. 슬슬 통화가 마무리되려나 했는데 반대편의 목소리가 너무 말짱했다. 이 시간에도 저토록 정신이 말짱할 수 있는 건 백수의 특권이지. 유현은 아무것에도 쫓기지 않는 태화를 잠깐 부러워하며 입을 열었다.
"아, 그게 청소하느라요."
-"그 밤에?"
"네. 집에 물난리가 나서요."
-"물난리라니?"
"오늘 비 왔잖아요. 아침에 출근하면서 창문을 열어 놓고 갔나 봐요."
-"저런."
"요새 정신을 반쯤 빼놓고 사는 거 같아요. 하도 오랜만에 바빠서 그런가."
건너편에서 작게 웃는 것이 들렸다. 유현은 남자의 고약한 유머 코드에 속으로 혀를 찼다. 가끔 이렇게 자조하듯 뱉는 말에 경직되어 있는 줄도 몰랐던 분위기가 쉽게 풀리곤 했다.
-"닫아줄 사람이 없었나 보네요."
"네, 오늘 청소 업체 방문일이 아니거든요."
-"그럼 퇴근하자마자 그 물난리부터 청소해야 했겠네요."
"맞아요. 오자마자 젖은 러그부터 소파 밑에서 끄집어내선 세탁기에 집어넣고 잡지 신문지 모아다 버리고…. 청소에 요령이 없어서 한 시간 넘게 걸렸어요. 말 그대로 난리였거든요. 겨우 끝마치고 땀 빼려고 간만에 반신욕하고 나오니까 이 시간이지 뭐예요. 내일 오후 촬영이라 망정이지. 오전 촬영이었으면 치울 생각도 못 했을 거예요."
유현은 바깥에 비가 오는지 보려고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창가로 향했다. 커튼을 걷자 다행히도 비가 멎어 있었다. 창문을 열고 젖은 밤공기를 들이켰다.
"그쪽은 뭐 하면서 지내요? 난 내 얘기 일주일 넘게 지겹도록 떠든 것 같은데."
-"놀랍도록 아무것도 안 해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그럼 온종일 자다가 깨다가 그러는 거예요?"
샤워가운을 파고드는 찬기에 유현은 어깨를 움츠리며 물었다.
-"나한테 있어선 자는 일도 능동 행위라."
"…하긴 시간이 남아돌면 자는 것도 일이죠. 저도 몇 달 전에 집에만 있을 땐 잠이 안 와서 혼났…."
손을 뻗어 문을 닫으려던 유현은 말을 멈추고 눈을 찌푸렸다. 조금 떨어진 반대편 오피스텔 건물, 불 꺼진 공실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본 것 같았다.
일순 오싹해졌다. 황급히 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에서도 그런 부산스러움을 느꼈는지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반대편 건물은 비어 있는 것처럼 보였고, 설령 그 공간에 누군가 있다고 해도 유현이 커튼을 걷는 시기를 맞혔을 리도 없었다. 우연히 시기가 맞아떨어졌다 쳐도 누가 사는지도 모를 집에 다짜고짜 플래시를 터트릴 리가 없었다.
-"고유현 씨? 듣고 있어요?"
그런데도 찜찜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마침 이런 의혹을 받아 마땅한 인물이 하나 번개처럼 스쳤다.
"저기… 최종익 말이에요."
-"갑자기 최종익이요?"
"갑작스러운 건 아는데, 혹시 어떻게…."
-"어떻게 처리했냐고요?"
"처리… 라는 표현은 좀 과격하고요. 뭐, 근황이 어떻게 되는지 아시는가 궁금해서…."
남자가 약속한 것들 중에는 그런 것이 분명 있었다. 최종익이 얼씬도 못 하게 함은 물론이고 간접적인 피해도 없게 하겠다는. 우연히 번호를 알아낸 사생팬들의 연락이야 간간이 오고 있지만, 모르는 번호로 협박 문자가 오거나 전화가 오는 일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새삼 의문이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지.
-"최종익은 왜요?"
"그냥, 정말로 그냥. 갑자기 궁금해져서요."
최종익의 근황을 모르는 건 아닌지 "으음," 하고 애를 태우다가, 유현이 답 듣기를 포기할 즈음에야 느긋이 대답을 내놓았다.
-"한국에 없어요. 본인은 귀국을 희망하는 거 같긴 한데 당분간은 돌아오긴 쉽지 않을 거 같고."
"그쪽이 해외로 보냈다는 거예요? 어떻게?"
-"여우가 왕 노릇 한다고 호랑이한테 귀띔해 줬죠."
"무슨 말이에요, 그게?"
-"검찰에서 덮은 걸 다른 쪽에다 찔렀다는 얘기예요."
검찰에서 덮었다는 게 정확히 뭘 뜻하는 건지, 또 다른 쪽은 어딜 말하는 건지 제가 알아봐야 좋을 게 없을 듯해 유현은 입을 다물었다. 초봄부터 시달린 게 있는 터라 사법 권력을 가진 집단에 약간의 유감이 있기도 했다.
태화의 말을 들으니 유현은 자세한 내막보단 제 안위가 염려되었다. 당장은 수를 써서 최종익을 멀리 보내놨다 해도 영영 타국에 가둬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성질머리에 언젠가 다시 돌아와 제게 앙심을 품고 해코지를 할 수도 있었다. 남의 손을 빌려 덮어두긴 했지만 언제까지나 그 손을 빌릴 수 없다는 게 문제인데….
-"무슨 한숨을 그렇게 쉬어요?"
"걱정이 돼서요."
-"설마 최종익이?"
"미쳤어요?"
너머에서 통화 내내 잦게 들려왔던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걱정되는 건지는 조만간 만나서 구체적으로 들어보도록 하죠. 시간이 늦었으니 가서 쉬는 게 좋겠어요. 더 잡아두기 미안할 만큼 피곤한 목소리라."
"목소리가 피곤…. 아, 혹시 나 하품하는 거 들었어요? 작게 한다고 한 건데."
이제 숨길 필요도 없어 크게 하품을 하자 또 한 번 숨소리 같은 가벼운 웃음이 넘어왔다. 무심결에 따라 웃던 유현은 습관적으로 푸석한 머리칼을 헤집다가 손에 닿는 물기가 없어 통화하는 동안에 다 머리가 마른 것을 알았다.
별거 아닌 통화가 또 이만큼이나 길어졌구나. 통화 시간에 첫날보다는 덜 놀라게 된 유현은 천천히 침실을 향해 거실화를 슥슥 끌었다.
"그럼 저 자러 갑니다. 잘 자요."
-즐거웠어요. 푹 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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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벌써 마갤 생겼네?
왜 이렇게 빨리 생김?
└원래 다 몇달 전부터 생기긴 하는데 좀 빨리 생김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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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기사 보고 왔어요
최.민/아 배우 팬인데 거기에 물어봐도 아무도 몰라서요ㅠㅠ
에스퍼가 뭔가요?ㅠㅠ
└이능력자 말하는 거임요 구글에 검색 ㄱㄱ 글고 님 배우는 에스퍼 아니고 가이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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틧이고 커뮤고 목격담들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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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명 있음 니하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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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가 ㅈㄴ 신선해서 괜히 기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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