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강아지를 너무 믿는 거 아냐?]
자얀이 빈정거렸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 정도로 송여환이란 사람이 주는 애정은 단단했다.
“나 자신보다 믿어.”
나는 자신 있다는 투로 말하며 그 옆에 주저앉았다.
[너무 자신만만한데? 그러다 강아지가 새까맣게 잊어버리면 쪽팔려서 어쩌려고 그래?]
“꼭 그러길 바라는 것처럼 얘기하네? 안타깝게도 그 녀석은 날-”
놀려 대는 녀석의 말을 받아치던 중이었다. 쿵, 하며 심장께가 아프더니 모든 감각이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발과 손끝이 저릿하며 불에 덴 듯 몸이 뜨거워진다.
“윽!”
나는 몸을 웅크리며 신음을 뱉었다. 불안정한 파장. 이 감각……. 알고 있다.
‘젠장, 왜 하필……!’
익숙하다 못해 저주스러운 이 느낌은, 폭주였다. 정확히는 풀어내지 못한 힘의 찌꺼기가 쌓여 몸 안을 뒤집어 놓는…… 하, X발. 그동안 송여환이 옆에 있었기에 깜빡 잊고 그만 방심하고 말았다.
“하아, 윽…….”
[아하, 드디어 뒈지는 거야? 혹시 병이라도 생긴 건 아니지? 밀폐된 곳인데 전염은 안 된다?]
“닥, 쳐, 씹…….”
나는 고개를 숙인 채 허억허억 숨을 몰아쉬었다. 어떡해야 하지? 머리가 하얘졌다. 당장 진정시킬 수 있는 송여환도 없는데. 그렇다고 내버려 뒀다 제대로 폭주해 버리면 그건 또 그거대로 위험하다.
‘저 녀석…… 재생도 못 할 정도로 힘이 없는 상태인데.’
“씹…….”
어쩔 수 없다. 이건 의지 싸움이다. 짜악! 짝! 짜악! 나는 이를 악문 채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 뺨을 후려갈겼다. 정신 빼지 마. 단단히 붙들고 있어, 낙유성.
[와오, 드디어 미쳤나?]
내 자학을 보던 녀석이 박수를 짝짝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X발, 저 새끼가 진짜.
“하아, 윽…… 야, 떨, 어져, 있어…….”
[음? 뭐야……. 혹시, 도련님 지금…….]
한껏 놀려 대던 녀석이 뒤늦게 내 기의 흐름이 뒤틀려 있다는 걸 알아챘는지 얼굴을 딱딱히 굳혔다.
[이런 빌어먹을, 야! 여기서 폭주하면 안 돼. 해도 나가서, 나 없는 곳에서 해!]
알고 있거든? 안 그래도 누구 때문에 이 악물고 참고 있는데. 고맙다고 하지는 못할망정. 나는 도끼눈을 뜨고 녀석을 노려보다 다시금 온몸을 휘감아 오는 열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송여환이 보고 싶었다. 그가 필요했다. 그 녀석이 있었으면 좋겠다. 송여환 특유의 카페라테 같은 달큼한 냄새와 높은 체온이 그리웠다. 다정히 내 이름을 부르면서, 그 커다란 손으로 허리와 등을 나긋하게 매만져 주며, 고생했다고 보드라운 입맞춤을 해 주는…….
‘너무 보고 싶어.’
‘유성이 형, 너무 좋아.’
나를 제 품에 꽉 가두어 놓고 이곳저곳 입술을 지분거리던 송여환. 흥분에 젖어, 열에 달뜬 채 나를 보는 그 눈동자가 너무 좋았다.
“하아…… 환…….”
단단한 가슴팍과 두꺼운 팔뚝.
“여, 윽…….”
조금만 만져 줘도 발긋하게 변하는 뺨과 귓불.
“여환아, 송여…… 환.”
너무나 사랑스러운, 나의 애인.
“송여환, 나, 읏…… 좀, 어떻, 게…….”
희미한 정신에 숨을 헐떡이며 매달리자 평소와 달리 거친 손길로 내 뺨을 잡아 온다. 이대로 입을 맞추며 나를 진정시켜 주었으면 했다. 나는 절박한 손길로 녀석을…….
‘녀석……?’
정신이 뿌연 안개로 뒤덮인 와중에도 무언가의 위화감을 느꼈다.
‘뭔가 이상한데. 뭔가가, 그게…… 뭐지?’
생각, 을, 해야 하는데……. 호흡이 막히자 정신이 다시 붕 떴다. 콜록! 콜록! 살기 위해 헉헉대던 순간, 송여환이 내 입술을 거침없이 머금었다. 진정하라는 듯 부족한 숨을 불어 넣어 주는 거 같더니 곧 섬세함이라고는 일절 찾아볼 수 없이 입안을 탐하기 시작했다.
버석하게 마른 입술끼리 비벼지며 두툼하고 미끄덩거리는 살덩이가 내 안에서 마구잡이로 움직여 댔다.
“컥……!”
이런 녀석이 아닌데, 왜……. 턱 아래로 침이 흐를 때까지 고문 같은 키스로 압박하는 녀석에 나는 고개를 비틀어 대며 괴로움을 표출했다. 그럼에도 입맞춤은 끝나지 않았다. 질척이는 소리가 너무나 생생히 들려왔다.
“으, 브…… 읍!”
파하, 가까스로 떼어 낸 입술 사이로 미친 듯이 기침을 쏟아 냈다. 강한 에너지가 흘러들어 오는 게 느껴졌다. 덕분에 어느 정도 균열이 갔던 기의 흐름이 진정된 것 같은데……. 나는 급히 숨을 들이켜며 몇 번이고 눈을 깜빡거렸다.
“하아, 콜록, 하…….”
호흡이 정상으로 되돌아오며 머리가 점점 맑아진다. 그렇게 아주 작은 여유가 생기자 굳었던 머리로 문득 하나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곳에 송여환이 있을 리가 없는데……?’
머릿속에 벼락이 내리쳤다. 나는 본능적으로 눈앞의 녀석을 밀치며 남은 정신머리를 깨웠다. 그러자 보이는 건, 한쪽 눈가를 찡그리고 있는 자얀이었다.
“하, 이, X발……?”
어이없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욕설을 뱉었다.
[허. 미리 말하지만 매달려 온 건 너다?]
자얀이 코웃음을 치며 말한 내용이 충격이었다. 내, 가…… 매달렸다고 저 새끼한테?
[덮쳐 온 건 도련님이면서 왜 날 변태 새끼처럼 보는 거야?]
“……씹.”
나는 인상을 찡그린 채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 아직도 입술의 감촉이 남아 있었다. 젠장, 징그러워. 닦는 손길이 점차 거칠어지자 자얀이 어이가 없다는 듯 삐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하! 벌레 취급이야? 사람 기분 X같이 만드는 건 참 잘해, 우리 도련님은.]
빈정거리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물론 정신이 흐려져 사람을 착각한 내 잘못이 제일 크다지만 저 녀석은 맨정신 아니었냐고!
“왜 안 피해! 제정신이 아닌 거 알면 네가-!”
[내가 왜? 마침 심심했는데.]
자얀의 대꾸에 몸에서 힘이 주욱 빠졌다. 맞아. 저런 놈이었지. 상식인을 기대했던 내가 병신이다. 나는 바닥으로 침을 뱉곤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벌어진 일 가지고 잘잘못 따져 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순간 송여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며 가슴 한쪽이 아릿해졌지만 애써 지워 냈다. 오해해선 안 된다. 이건 바…… 람 같은 게 아니니까. 내가 제정신으로 저 녀석과 뭘 어떻게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그저 폭주를 진정시키기 위한 본능적인…….
‘지랄하네. 여환이 보면 사실대로 말하고 사과해야겠다.’
입장 바꿔 만약 그 녀석이 똑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화를 참을 자신이 없다. 그러니 나도 솔직히 자수하는 게 맞았다.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리자 자얀이 비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보면 잔 줄 알겠네. 어차피 괴로워할 거, 시간도 남아도는데 한판 할까? 복상사로 죽는 게 배곯아 죽는 것보다 낫거든.]
“……닥쳐.”
그래도 일단 손을 먼저 뻗은 쪽은 나였으니 자얀에게도 사과해야겠다고 결심한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미친놈. 나는 마른세수를 하곤 자얀을 쳐다봤다. 그런데…… 복구되지 않았던 그의 한쪽 눈이 어느샌가 멀쩡히 돌아와 있었다.
[나도 네 덕 좀 봤어. 몸이 휴식 좀 취했다고 그런 건지…… 도련님이랑 침 좀 섞었다고 힘이 조금 차오르는 거 같던데? 으응, 만족감? 가이드도 아닌데 신기하네. 알 수 없는 단내도 조금 나는 거 같았고……?]
“지랄, 땀 냄새겠지.”
[아냐. 그 냄새에 홀려서 나도 네 혓바닥 빨아 준 거야.]
헛소리는. 나는 놈이 희롱하는 소리를 전부 무시하며 송여환에게 어떤 식으로 사과해야 할지 생각했다. 무릎을 꿇을까? 아니면 전투의 후유증으로 머리가 어떻게 되었던 거 같다고 둘러댈까?
[이봐.]
……용서해 주겠지?
[야.]
이 새끼한테 끌린 게 아니라 너인 줄 알았다고 얘기하면 좀 나으려나?
[도- 련- 님!]
아니면 씹, 그냥 진짜 입 다물고 있어? 근데 이 새끼가 송여환한테 전부 불어 버리면…….
[내 말 안 들려?]
아, 젠장……. 차라리 백산이랑 치고받고 싸울 때가 나았지. 이런 건 젬병이란 말이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클어뜨렸다. 바로 그때.
[낙유성.]
휙, 내 뺨을 한 손으로 잡아 들어 올리는 손길이 있었으니. 물빛 눈동자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분명 웃고는 있지만, 굉장히 불쾌하다는 티를 팍팍 풍겨 대고 있는 다른 차원의 이방인이 불만이 많다는 투로 말을 뱉었다.
[적당히 무시해.]
나한테 뭐라고 했었나? 나는 잠시 멍청한 표정으로 녀석을 쳐다보다 뺨을 잡은 손을 떼어 내려 고개를 비틀었다. 그러자 자얀이 알아서 손을 물리곤 씩 미소 짓는다.
[저번에 했던 말 기억하나?]
“뭘.”
[나한테 아리아 말고 다른 사람이 생길 거라 했잖아.]
내가 그런 말도 했어? 많이 유해졌었네……? 지금은 생기든 말든 알아서 해라, 상태인 데다 잘 기억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굳이 따지고 들고 싶지 않았기에 침묵을 선택했다.
그러자 저 제정신 아닌 녀석이 ‘짜잔! 사실 백산은 죽지 않았습니다!’보다 더욱 충격적이고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내뱉었다.
[그게 너라면 어떨까?]
……뭐?
[흐음, 생각해 보면 그나마 제일 나은 거 같아. 같은 능력자고, 여러모로 쓸 만할 거 같거든. 또 몸도 튼튼하니 이런저런 스트레스 풀기에도 좋아 보이고.]
뭐라는 거야, X발.
“돌았냐? 뇌도 다쳤는데 거기까진 재생이 안 된 모양이지?”
나는 헛소리 말라며 녀석에게 화를 냈다.
[부끄러워하지 마. 아아, 강아지 때문이야? 괜찮아. 그럼 강아지도 껴서 놀지 뭐. 걘 어느 쪽을 좋아해? 빠는 거? 아니면…….]
말끝을 흐리던 놈이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훑었다.
[박는 쪽?]
가이드 없는 세계의 이물질 에스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