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위층으로 올라가자 김강민이 기다렸다는 듯 인사를 건네 왔다.
“차 한잔 드릴까요?”
“됐습니다. 그냥 용건만 간단히 하죠.”
“음……. 어떻게 통제해 놓은 문을 찾아 부수고 들어온 건지는 묻지 않겠지만…….”
김강민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끝을 흐리다 이내 꽤 재밌다는 표정으로 다음 말을 이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아까 그 괴물들은 낙유성 에스퍼의 DNA를 이용해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생명체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실패작이긴 한데…… 아까 보니 그 괴물들이 낙유성 에스퍼를 따르더군요.”
“따라?”
“예. 이렇게 말씀드리긴 그렇지만 그것들, 상당히 공격적입니다. 인간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건 둘째치고 어떤 인격도, 지성도, 이능도 없는 그저 숨 쉬는 쓰레기일뿐이죠. 그럼에도 생물의 본능인지 다가오는 사람들을 먹으려 했습니다. 아마, 사냥 같은 게 아닐까 합니다.”
“…….”
“실제로 다친 직원도 몇 있습니다. 그래서 폐기를 할 때는 가까이 가지 않고 한곳에 모아 처리하는 편인데, 아까 낙유성 에스퍼에게 다가가 아무런 공격도 하지 않고 매달리는 걸 보니…… 부모, 라고 인식을 하는 걸까요?”
이 새끼…… 되게 흥미롭단 표정으로 말하잖아. 묘하게 열받았지만 애써 모르는 척 감정을 억눌렀다.
‘낙유성.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내가 열 받을 만한 이유가 전혀 없잖아.’
그래, 없다. 분명 없지만…… 괜스레 다리 쪽이 시렸다. 아까의 그 감각이 잊히지 않았다. 바들거리며 다리에 꽉 매달렸던 못생긴 덩어리들이.
“그런 부분으론 감정이 있다고 봐도 무방한-”
“이봐.”
나는 말을 자르며 그를 불렀다.
“예?”
“아까 같은 일은…… 매일 있는 건가?”
“폐기 말씀하시는 겁니까?”
폐기. 어째선지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폐기, 폐기라……. 맞는 표현이겠지만 뭔가 엿 같네.
“하.”
“낙유성 에스퍼?”
“아니. 아무것도……. 컨디션이 별론데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예? 컨디션 많이 별롭니까? 설마 혹시 폭-”
“폭주 아닙니다.”
그쪽들 귀한 목숨 나 때문에 잃을 일 없으니 그만하시라고. 뒤틀리는 마음을 숨기며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뮹…… 뮹…….’
도무지 아까 그 덩어리들의 감촉이 지워지지 않는다. 눈물 비슷한 것을 달고서 나를 빤히 바라보던 눈동자도 잊히지 않는다. 젠장, 왜 이렇게까지 기분이 더러울까. 불쾌한 감정을 떨쳐 내려 해 봐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본부를 나와 나를 기다리는 송여환을 볼 때까지는 그랬다.
“형!”
나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는 송여환을 보자 울렁였던 마음이 조금 진정됨을 느꼈다. 나는 말없이 녀석에게로 다가갔다.
“음……?”
송여환은 방긋 웃던 얼굴을 천천히 지워 내며 나를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반짝거리는 갈색 눈동자가 요리조리 바쁘게도 움직인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은 건가?
“야-”
“형.”
내 말을 뚝 끊어 낸 송여환이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 있었어?”
뭐야. 어떻게 안 거지? 내 표정이 그렇게 안 좋았나? 송여환의 날카로운 직감에 나는 당황하며 손등으로 뺨을 쓸었다. 그러자 녀석이 눈썹을 축 늘어뜨리곤 나를 조용히 끌어안았다.
“에구…… 속상해라.”
“뭐야, 갑자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를 꽉 껴안은 품이 싫지 않았다. 송여환 특유의 시원하고 상쾌한 냄새도 좋았고, 단단하고 따뜻한 가슴도 좋았다. 이 온기가 나를 마법처럼 안정시킨다.
“낙유성. 항상 말하지만, 힘들면 그만둬도 돼.”
“…….”
일정한 리듬에 맞춰 등을 토닥여 오는 손길이 한껏 예민해졌던 감각을 부드럽게 이완시켰다. 몸까지 나른해지는 기분이 들어 설핏 웃음이 샜다.
“형, 나는 밀항도 각오하고 있어.”
“미친놈.”
“나? 나 완전 미쳤지.”
송여환이 나를 껴안은 채 뒤뚱뒤뚱 걸음을 옮겼다. 나는 녀석을 굳이 쳐 내지 않았다. 멀리서 우리를 본다면 다 큰 사내놈 둘이 꽤 징그러운 짓을 하고 있다 생각하겠지. 하지만 뭐, 싫은 건 아니란 게 중요했다.
“아직도 모르냐? 나는 너한테 완전 미쳐 있잖아. 흐흐. 사랑의 도피를 떠나자, 유성아.”
“까불지.”
거짓말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겨우 녀석의 웃음과 위로 몇 번으로.
* * *
집으로 돌아와서도 송여환은 나를 신경 썼다. 물론 매 순간 녀석은 나를 챙겼지만, 오늘은 그 강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섰다. 예를 들어, 밥을 먹을 때 나는 흰 쌀밥을 푸는 것을 제외하곤 그 어느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젓가락이라도 들라치면 갈색 푸들 한 마리가 재빠르고 야무지게 반찬을 올려 주었기 때문에.
‘혀엉~ 이것도 먹어 봐.’
‘제발. 혼자 먹을게.’
‘섭섭하게잉! 사실 밥도 먹여 주고 싶어.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 알았어. 노려보지 마.’
이대로면 아예 턱받이하고 송여환에게 삼시세끼 ‘먹임’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까지 일 정도였다. 그렇게 한쪽만 행복한 식사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자유를 얻나 했는데…….
지금, 목욕하는 와중에도 배려라 쓰고 집착이라 읽는 녀석의 챙김은 끝나지 않았다.
“어깨가 많이 뭉치셨네요, 우리 고객님.”
커다란 탕에 반쯤 누워 몸을 노곤히 푸는 나와 달리 송여환은 내 뒤에 앉아 어깨를 안마사급으로 주물러 주었다. 아주 기가 막힌 조합이었다.
“피곤하다.”
나는 물을 퍼내 얼굴을 적시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어깨를 조몰락거리던 송여환이 퍼뜩 말을 걸어왔다.
“뭐?! 이래도 피로가 안 풀려? 안 되겠다. 혈을 찾아 눌러 줄게. 안 그래도 요새 개인 과외받고 있거든.”
“X발 도대체 그게 무슨 과외…… 하, 제발. 그만해.”
내 혈을 찾겠다며 달려드는 송여환을 힘으로 제압해 물속으로 풍덩 끌어들이고 나서야 녀석의 지랄이 멈추었다. 벌거벗은 나와 달리 송여환은 잠옷 차림이었는데, 전신이 홀딱 젖은 생쥐 꼴이 되어서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배시시 웃었다.
“좋냐.”
“어. 완전.”
하얀 뺨을 발그레 물들이는 꼴이 귀여웠다. 오늘따라 더 어려 보이네……. 나는 픽 입꼬리를 올리며 녀석의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려 줬다.
“애냐.”
송여환의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며 묻자 녀석이 찡그리듯 웃는다.
“그건 좀 별로다. 음, 남자로 봐 줘.”
“뭐…….”
나는 옆에 앉은 녀석의 얼굴을 보다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어느새 불룩해진 바지 앞섶이 보였다.
“그래, 애는 아닌 거 같네.”
“……불가항력이야. 형의 예쁜 몸을 보는데 어떻게 반응을 안 해? 내가 고자도 아니고.”
여전히 녀석의 ‘예쁘다’는 칭찬은 받아들이기 어색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처럼 말했다.
“너랑 있으면 정신없어.”
“하하, 욕이야 칭찬이야?”
송여환이 젖은 옷을 벗어 던지며 물었다. 드러난 몸은 에스퍼로 활동했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아 탄탄했다. 예전이라면 질색했을 두툼한 몸이 지금은 나름의 눈요기가 되었다. 나는 송여환의 가슴을 집요하게 훑으며 나른히 대꾸했다.
“상황에 따라 다른데…… 오늘은 칭찬이지. 네 덕에 복잡했던 머리가 가라앉았거든.”
“그건 다행인데, 형이 왜 우울했는지는 말 안 해 줄 거야?”
“우울?”
“응.”
물을 퍼 세수를 한 녀석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나는 내 감정의 제대로 된 이름을 알게 됐다. 덩어리들의 죽음을 본 이후 느낀 감정……. 그건 분노가 아닌 우울이었다. 속이 답답하고 자꾸만 처지는 기분. 그래. 그건 활활 타오르는 화가 아닌, 안타까움이 섞인 슬픔이었구나.
‘그도 아니면 동정이었거나.’
나는 눈을 깜빡거리며 송여환을 쳐다봤다.
“……속이질 못하겠네.”
스스로도 자각 못 한 상태를 참 귀신같이 알아채는구나, 송여환.
“응?”
“아냐. 그보다…… 아까 말인데.”
나는 본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고, 송여환은 얘기에 집중하면서도 간간이 내 어깨 위로 따뜻한 물을 손으로 가득 퍼 부어 줬다. 굳이 칭찬받기 위해 노리고 하는 행동은 아닌지 시선은 내게 고정한 채 집중하고 있다는 티를 냈다.
“미친 새끼들. 내일 당장 가서 정식으로 항의 넣을 거야. 형이 있는데 총을 쏴?”
얘기를 전부 들은 송여환이 분노하며 팔팔 날뛰었다. 물 튄다, 자식아.
“그리고 아무리 실, 아니…… 그, 아무튼! 그거라도 형 앞에서 그런 식으로 죽이는 건 너무하잖아.”
“너랑 있다 보니 나도 많이 물러졌나 보다.”
예전이었다면 이런 일에 눈 하나 깜짝 안 했을 텐데. 나는 뒷말을 삼키며 괜히 송여환의 뺨을 툭 건드렸다. 뜨끈하고 매끈한 게 자꾸만 손이 간다.
“형. 너무 힘들면 말해. 언제든 형이 원한다면 그만둘 수 있으니까.”
언제든. 내가 원하면. 그 말이 이상하게 큰 위로가 됐다. 나는 편안해진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슬금슬금 다가온 녀석의 손이 내 손을 깍지 껴 잡았다. 나는 손을 한번 내려다보곤 다시 송여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빨개진 귓불이 눈에 띄었다.
“…….”
나는 치우라거나 징그럽다고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녀석의 손을 마주 잡아 줄 뿐. 이게 현재 우리 사이의 거리였다. 아주 많이 가까워진, 그런 거리.
가이드 없는 세계의 이물질 에스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