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해서, 지하 4층으로 내려가시면 됩니다만, 저…… 약도라도 좀 그려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일 보세요. 가 보겠습니다.”
생각보다 실험실까지의 길은 길고 복잡했다. 설명을 듣다 그냥 같이 가 달라고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생각을 털어 버렸다. 아무리 내가 길치라지만 한 건물 안에 있는 건데 그까짓 걸 못 찾을까.
그렇게 코웃음을 치고 당당히 길을 떠나오긴 했는데.
‘……못 찾겠다.’
무슨 건물이 이렇게 복잡해? 협회일 때도 이사장실을 제외하곤 그다지 드나들지를 않아서 그런가, 모든 길이 낯설었다.
‘지하 4층으로 가라고 했지.’
나는 지하, 지하 되뇌며 점점 내려갔다. 중간중간 특별한 출입증이 필요한 곳도 있었으나 자리를 지키는 가드들이 내 얼굴을 알아보고 별다른 의문 없이 통과시켜 주었다.
이 문, 저 문 열어 보며 실험실을 찾던 나는 벌써 세 번째 문을 열고 있었다. 이번에는 문 앞을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굳게 잠겨 있기에 몇 번 덜그럭거리다 그냥 힘으로 열어 버렸다. 사실 부술 생각은 없었는데 약간의 짜증 때문에 힘 조절을 하지 못했다.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점등 하나 켜지지 않은 어둑한 복도가 일자로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습하고 눅눅한 곰팡내가 짙게 풍겼다.
사용하지 않는 곳인가? 아, 젠장. 그럼 이번에도 꽝? 도대체 그 빌어먹을 실험실은 어디야? ……하, 그냥 돌아갈까. 슬슬 찾는 것도 지쳤다. 알 수 없는 호기심이 발동해 한 번 확인이나 해 볼까 했는데 이렇게까지 못 찾는 걸 보니 그냥 포기하고 퇴근이나 하라는 신의 계시일 수도 있겠다.
돌아갈까 말까 고민을 하던 그때, 저 멀리서 희미한 소음이 들려왔다. 일반 사람이라면 듣지 못할 아주 작은 소리였다.
뭐지? 저쪽에 뭐 다른 게 있나?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감각을 집중했다. ……역시 이상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그래, 딱 이것까지만 확인하고 그만두자.’
마지막이란 생각에 복도를 걸어 끝에 도달하니 또 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음. 무언가 기괴하고 스산했다. 나를 부르는 것 같으면서도, 비명을 내지르는 것 같은…… 아주 기분 나쁜 신음이었다. 아니, 신음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일단 ‘사람’이 내는 소리는 아니었다.
“씨X 뭐야…….”
중얼거리며 천천히 문고리를 잡았다. 차가운 금속이 미묘한 소름을 가져왔다.
철컥, 철컥! 역시나 잠겨 있었다. 뭔가, 열면 안 된다는 강렬한 직감이 들었지만 나는 애써 무시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철컹─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눈부실 만큼 쏟아지는 불빛, 주변을 감싼 새하얀 벽, 그리고…….
—낙유성 에스퍼?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고개를 들어 올리자 통유리 안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김강민이 시야에 들어왔다. 홉뜬 눈동자와 크게 벌려진 입으로 한껏 놀랐음을 표현한 그가 다급히 정신을 차린 후 마이크에 대고 말을 이었다.
—낙유성 에스퍼가 왜 거기서……. 아니, 어떡…… 그, 문, 아니. 하, 아니죠. 당장 그곳에서 나오세요!
“뭐?”
—안 들립니까? 왔던 문…… 젠장! 뒷문 이중으로 보안해 놨을 텐데 어떻게 열었…… 아! 문, 문 열려 있는 거 아니죠?!
욕지거리까지 하며 화를 내는 모습이 생소했다. 도대체 왜 저렇게 흥분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김강민이 있다면 실험실에 도착했다는 건가? 의문을 가지려던 찰나였다.
“뮤웅…… 응…….”
발밑에서 기괴한 신음이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내린 나는 눈앞에 보이는 생명체에 그만 덜컥, 숨을 멈추고 말았다.
“므응…… 뮹!”
인간도…… 그렇다고 동물도 아닌 괴상한 모습의 생명체가 꾸물거리며 내 발등에 몸체를 비비고 있었다. 철퍽거리며 징그러운 촉수를 발목에 감고 계속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끽끽 쏟아 냈는데, 언뜻 기뻐하는 느낌을 받았다.
‘기분 나빠, X발.’
“메…… 므으…….”
“끄응…… 끄! 뮤응.”
심지어 하나가 아니었다. 저 멀리 각각 흩어져 있던 것들 역시 날 향해 스멀스멀 다가왔다. 전부, 심하게 표현하자면 역겨울 정도로 생김새가 이상했다.
“이게 뭔데!”
다리에 엉겨 붙는 녀석을 발로 차 버리며 위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젠장, 징그러워.”
욕을 중얼거리던 그때, 김강민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렸다.
—낙유성 에스퍼, 홀 중앙으로 이동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뭐?”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생겨서 그래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아까는 당장 나가라더니 도대체 뭐야?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미융…… 뮹.”
그러자 저 징그러운 것들이 질척한 몸을 끌고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터벅터벅, 졸졸졸졸. 터벅터벅, 졸졸졸졸.
‘병아리 새끼들도 아니고…….’
나는 언제까지 이런 짓을 해야 하냐는 물음을 담아 위층을 올려다봤다. 김강민은 조용히 상황을 관찰하는 듯한 시선으로 침묵을 지키다 이내 말을 이었다.
—낙유성 에스퍼! 그것들 전부 처리해 주시면 됩니다. 그 후 앞문으로 나와 위층으로 올라와 주십시오.
“……X발, 아주 오라 가라…….”
욕설을 씹어 뱉은 후 손안에 작은 화염 덩어리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전부 태워 버리려던 찰나, ‘뮹…… 미융……’ 소리를 내며 나를 빤히 바라보는 눈동자에 멈칫하고 말았다.
“뮹, 뮹!”
내가 왜 멈췄지?
“미웅…….”
그냥 죽여 버리면 되는 건데, 이상하게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제각기 다른 해괴망측한 저 덩어리들이 어딘가 익숙하고, 자꾸만 눈에 밟혀서 도저히 공격할 수가 없었다.
—낙유성 에스퍼?
“…….”
—낙유성 에스퍼!
재촉하는 김강민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굳어 있던 손가락을 움찔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불을 없앤 다음 그에게 물었다.
“……이것들 뭐야. 뭔데 나보고 없애라는 건데.”
나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김강민에겐 다행히 그 떨림이 전달되지 않았는지 그는 여상히 대꾸했다.
—보시다시피 실험체입니다. 인조 에스퍼 개발에 실패한 실패작이고요. 안 그래도 사살하려던 차, 낙유성 에스퍼가 막아 놓은 통로를 통해 들어오신 겁니다.
……사살? 나는 그 단어에 집중하며 여전히 내게 다가와 무뮹, 무뮹 이상한 소리를 내는 녀석들을 내려다봤다. 하나같이 못생기고 징그럽다. 김강민의 말대로 실패작이라는 느낌이 풀풀 풍겨 나왔다.
……그런데 왜 죽이려는 마음이 들지 않는 걸까. 내 DNA를 이용해 만들어졌다 해도…… 딱히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인데. 나는 이 의미 모를 친밀감이 다소 당황스럽고 한편으론 불쾌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덩어리들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들지 않았다.
“뮤웅-”
다리를 질척하게 감싸고 나를 올려다보는 실패작 덩어리가, 왜인지 안타깝기까지 했다.
‘왜 그렇게 나를 보는 거야? 왜 그렇게, 기쁘게…….’
순간 저 작은 녀석을 끌어안을 뻔했다. 그냥 가만히 쳐다만 보는 건데도 마음이 멋대로 요동쳤다.
혹시 무슨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래, 실패작일지라도 에스퍼인 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니 이능력이 있을 수 있다.
‘뭘 고민해. 왜? 데려가 키우기라도 하게? X발, 빨리 죽이고 집으로 가자. 바깥에 송여환도 기다리고 있을 테고…….’
어느샌가 땀으로 축축해진 손을 들어 올렸다.
“뮹! 뮹!”
‘몸도 피곤하니까, 빨리, 죽이고…….’
애써 송여환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은 나는 이 불쾌한 덩어리들을 태워 버리기 위한 불꽃을 다시 한번 만들어 냈다. 그런데…….
“뮤우웅!”
하나뿐인 눈에 고인 눈물, 그리고 일그러진 형태의 몸으로 내게 비비적거리는 모습을 보니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힘없이 사그라들고 말았다.
‘죽일 수가 없다. 아니, 죽이기 싫어…….’
그렇게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던 때였다.
—생각해 보니 낙유성 에스퍼가 직접 힘을 쓸 필요도 없는데, 죄송합니다!
탕! 짧은 총성이 울리더니 내 앞에 우글우글 모여 있던 덩어리의 몸체가 펑! 터져 버렸다. 후드득, 바닥으로 흩어진 살점들에선 더 이상 생명을 느낄 수가 없었다.
“뮹…… 뮹.”
내 다리에 찰싹 붙은 자그마한 녀석이 몸을 덜덜 떨었다. 확실하다. 지금 이…… 만들어지다 만 생명체는 공포를 느끼고 있다.
‘이 녀석들 감정을 느끼고 있어.’
하지만 나는 덩어리들의 죽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럴 명분이 없으니까. 결국 내 다리에 매달린 작은 덩어리마저 생명을 잃어 하나의 고깃덩이가 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처참하군.’
더러운 기분이었다. 그것도 몹시, 매우.
—낙유성 에스퍼? 다치신 곳 있으십니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위층에서 마이크에 대고 말하며 나를 걱정하는 김강민은 아무런 죄책감도 없어 보였다. 뭐, 그게 당연하지. 나도 던전 안 괴물들을 죽일 때 연민 따위 느껴 본 적 단 한 번도 없으니까.
아마 저들에겐 이 덩어리들이 그럴 거다. 아니, 똑같겠지. 그러니 나도 아무런 감정을 가져선 안 된다. 이런 불쾌감도, 작은 머뭇거림도.
“없습니다.”
가이드 없는 세계의 이물질 에스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