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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없는 세계의 이물질 에스퍼-80화 (80/115)

80화

“누가 보면 네가 싸우러 가는 줄 알겠다.”

“어.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형 말고 내가.”

사실 이곳은 본부에서 출입 승낙을 한 사람을 제외하곤 출입이 절대적으로 제한되는 곳이라 들었다. 그럼에도 초대받지 못한 송여환이 따라올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브릭트스컴트’라는 거대한 배경 때문이었다.

어떤 압박을 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송여환은 당당히 출입 승낙을 얻어 굳이 굳이 내 보호자를 자처했다.

“개소리 지껄이면 바로 집 가는 거야.”

“너한테 저 사람들 하는 모든 소리가 개소리잖아.”

“…….”

정곡이었군.

송여환과 영양가 없는 만담을 나누며 저 멀리 서 있는 본부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검은 정장을 입은 그는 본인을 김강민이라 소개하며, 일이 끝날 때까지 앞으로 내 전담을 맡아 많은 보조를 할 것이라 말했다. 송여환이 콧방귀를 뀌긴 했지만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번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텐데.”

“알면 좀 잘 대해 주시죠? 또 예전 협회처럼 뒤통수쳐서 언플할 생각도 말고.”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감히 누가 그럴까요.”

왠지 송여환과 김강민이란 사람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스파크가 튄 거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그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현재 본부 총괄을 담당하시는 본부장님도 낙유성 에스퍼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는 김강민을 따라 내부로 들어갔다. 주변에서 흘긋거리는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옆에 떡하니 버티고서 ‘뭘 보냐’는 아우라를 뿜어내는 송여환 덕에 신경 쓰이진 않았다.

하다 하다 녀석은 자신이 연예인보다 더 유명하니 형이 아닌 자길 보는 거라며 부담 갖지 말라는 말까지 해 댔다. 자랑인지 위로인지 모를 그 말에 픽 웃고 말았다.

* * *

본부장이란 사람과의 대면도 어렵지 않게 끝이 났다. 꽤나 젊은 여자였는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내게 협력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해 왔다.

“억지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낙유성 에스퍼의 힘은 인류에 큰 희망이 될 겁니다.”

사실 인류 따위 알 게 뭐냐, 나는 송여환이 개죽음당하는 걸 막고 싶어 온 것뿐인데…… 라고 말하려다 별 쓸모도 없을 테고, 앞으로 이것저것 이용해 먹으려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게 더 나을 거란 판단이 서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인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회의를 몇 시간 동안 이어 갔다. 다만, 모두 현장 경험이 없어서인지 썩 커다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누에고치를 통으로 태워 버리는 건 어떨까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일 있습니까? 기각!”

“낙유성 에스퍼가 분명 SS급이셨는데, 계속 밀어붙여 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군과 외부 용병들도 지원할 텐데.”

“기각! 능력자들 간의 싸움에 일반인이 끼어든다는 부분부터 현실성이 없잖아요. 그리고 지금 가이드가 없다는 거 전부 알고 계시죠? 형이 폭주까지 가면 정말 답이 없는 겁니다. 최대한 능력 사용의 폭을 줄여야 해요.”

끝없는 기각, 기각, 기각이 펼쳐졌다. 분명 보호자 격으로 따라온 송여환이건만, 녀석은 어느샌가 중심이 되어 회의를 끌어갔다. 오랜 시간 에스퍼로서 활동을 해 온 경력이 있어선지 나 대신 목에 핏대를 세우고 터무니없는 의견들을 칼같이 잘라 내며 교통정리를 깔끔히 해냈다.

“하아~ 힘들다.”

진전이 없는 회의를 중단하며 송여환이 기지개를 켰다. 나도 뻐근한 목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역시 말로 들어 봤자 별 도움이 안 돼. 직접 가 보는 게 낫겠어.”

“뭐?”

“어차피 해야 할 일이잖아.”

“이, 이렇게 급하게? 나 아직 마음 준비 안 됐어!”

“네가 할 게 뭐 있어. 내가 가는데.”

입을 떠억 벌린 녀석이 ‘허!’ 코웃음을 치더니 바람난 애인 잡으러 온 사람처럼 눈을 매섭게 치뜨며 성이 난 말투로 쏘아 대기 시작했다.

“형은 항상 그런 식이야. 사람이 걱정을 해 줘도 왜 참견하냐는 식! 우리가 남이야?”

나는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주변에선 그런 나와 송여환을 보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생각해 보니 견원지간으로 알려진 우리가 이렇게 보호자까지 자처할 정도로 가깝게 지내니 그럴 만하다 싶었다.

“저기요. 저한테 집중하세요, 낙유성 씨.”

다른 생각을 하던 중 송여환이 내 뺨을 부드럽게 감싸 올리며 말했다.

“뭘.”

“형이 저 빌어먹을 누에고치 안에 들어가서 두 시간 안에 못 나오면 칼이고 총이고 다 챙겨서 쳐들어갈 거야.”

“미쳤냐.”

“형한테 미쳤지.”

“송여환.”

“알지? 지금의 나는 몬스터한테 한 대만 맞아도 바로 죽는 거. 완전 가루처럼 흩어질걸?”

이건 무슨 신종 협박이지? 의기양양한 채 ‘나 완전 연약해’ 하고 씰룩거리는 얼굴이 진심으로 얄미웠다.

“그러니까 내가 직접 죽으러 들어가기 전에 알아서 잘 빠져나와.”

배시시 웃는 녀석의 얼굴은 아주 맑고 예뻤지만, 머리통 속에 들어 있는 집착은 굉장했다. 저 녀석이라면 정말 목숨을 걸 것 같아 괜히 식은땀이 났다.

‘지금 누구 때문에 이 짓거릴 하고 있는 건데…….’

나는 송여환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 * *

—카메라도 잘 확인됩니다.

가슴 한쪽에 달린 초소형 카메라에서 작게 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예.”

—비상시 바로 탈출해 주십시오. 또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낙유성 에스퍼의 안전 또한 우선으로 두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무선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김강민이었다. 여러 번 내 안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송여환의 압박이 생각보다 잘 먹혔구나 싶어 설핏 웃음이 샜다.

모두가 잠든 새벽. 나는 달밤 아래 홀로 서 있었다. 눈앞에는 새하얀 누에고치가 있고, 바람은 차갑다.

‘더 눈에 띄고 싶지 않으니까…….’

저번 마트에서의 사건이야 조금 억지스럽지만 나름 건물 붕괴와 연관된 폭발이라 둘러댈 수 있었다. 하지만 또 한 번 대낮에 능력을 쓰면 더 이상 둘러댈 변명도 없을 것이다. 본부 사람들처럼 눈치 빠른 녀석들이 또 없으리란 보장도 없고.

‘정체를 숨긴 히어로’ 같은 거창한 콘셉트질을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나 굳이 대중에 노출돼 쓸데없는 어그로를 끌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에 최대한 눈에 띄지 않을 시간대를 골랐다.

다행히 본부 역시 협회와 달리 명예나 유명세를 원한 것이 아니었기에 기꺼이 내 의견을 받아들여 줬다.

‘뭐…… 안 들킬 거란 자신은 또 없지만.’

나는 누에고치를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어쩌면 마트에서보다 더한 난리를 칠 수도 있을 거 같단 불안감이 느껴졌다.

—형! 아, 알겠다고요. 잠시만 얘기하는 것도 안 돼요? 형, 나 여환이! 들리지? 잘 다녀오고. 낮에 말했듯이 두 시간이야. 아니면 나 진짜 쳐들어간다-!

긴장으로 굳어지던 몸이 익숙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풀어졌다. 나는 옅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멍청이.”

이내, 누에고치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심장은 두근두근 뛰었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던전과 유사하다는 유전 정보가 있어 혹시나 또 개 같은 발작이 일어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괜찮을 것 같았다. 아직 느껴지는 기운도 없고.

“올라가겠습니다.”

—안전에 유의하며 부탁드리겠습니다.

누에고치 가까이 접근했음에도 다가오는 기척은 없다. 나는 본부에서 준비한 기계를 이용해 저 멀리 로프를 쏘아 올렸다. 화살처럼 신속하게 날아간 것이 입구 끝에 덜컥, 걸린 것을 확인하곤 그대로 버튼을 눌렀다. 줄이 빠르게 감기며 내 몸을 끌어 올렸다.

생각보다 더 손쉽게 침입한 ‘굴’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텅 빈 안쪽과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를 바람, 그리고 서늘하고 축축한 기분이 드는 게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동굴 같았다.

꼼꼼히 주변을 둘러본 뒤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너무 조용해서 내 걸음 소리만 들려왔다. 꽤나 깊숙하게 들어왔다고 생각되는데 보이는 풍경은 같았다. 마치 똑같은 장소를 빙빙 돌고 있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바로 그때였다.

‘……!’

등줄기가 오싹해질 정도의 소름 끼치는 시선이 느껴졌다. 대상을 확인하려던 찰나, 시선의 주인이 한발 먼저 빠르게 다가왔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흩날리는 새까만 머리카락과 유리알 같은 눈동자. 그 녀석이었다. 누에고치의 사내.

—낙유성 에스퍼! 최대한 유하게,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대화를 나눠 주십시오. 정보가 필요합니다.

본능적으로 공격하려던 나는 들려오는 지령에 멈칫했다.

‘그래, 일단 거리를 벌리고…… 그다음 녀석의 반응을 살피자.’

머릿속으로 행동 단계를 정하고 막 실행하려던 때, 놀랍게도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그리운 냄새가 나.”

말을 할 줄 아는 건가? 생각보다 낮은 목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키도 웬만치 큰 게, 의외의 압박감이 들었다.

“이 몸의 재료와 연이 있었나 보지.”

녀석이 내 생각을 끊어 내며 나머지 말을 이었다.

“재료?”

도통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아 되묻자 녀석이 갑작스레 손을 뻗어 왔다. 내게 닿기 전,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멈춘 녀석의 손. 그리고…….

“대화를 엿듣는 건 예의가 아니지.”

“……!”

콰직, 카메라와 통신기가 동시에 부서졌다.

가이드 없는 세계의 이물질 에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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