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해외로 가자.”
입을 벌리고 티브이를 보던 내게 송여환이 문득 말해 왔다. 갑자기 뭐? 해외?
“형, 여권…… 아니다. 필요 없어. 일단 가자.”
“야, 야!”
“시간 없어. 빨리 와.”
녀석이 내 팔뚝을 잡아끌었다. 해외라니 무슨 미친 소리인가 싶다. 설마 몬스터를 피해 도망을 가자는 말인 걸까? 만약 맞다면, 썩 좋은 해결책이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설령 한국과 정반대에 있는 나라로 도피한다 해도 결국 저 몬스터와 조우하게 될 건 분명했으므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시간만 늦출 뿐, 죽음 그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이제 나를 제외한 에스퍼는 존재하지 않을 터. 그러니 지구 저 끝으로 도망친다 해도 도와줄 귀인을 찾을 순 없다.
“송여환!”
“이미 형한테 능력이 있다는 걸 아는 놈들이 있잖아! 찾아오기 전에 가야지!”
송여환이 다급히 외쳤다.
‘……내가 가면 네 가족도 위험해질 텐데?’
녀석은 알고 있는 건가? 아니면 그저 나한테만 정신이 팔려 중요한 몇몇 사실을 잊고 있는 걸까.
송여환은 내게 도망을 권유하고 있다. 내게 능력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숨기려 하고 있다. 나를 좋아하니까. 하지만 분명 나 말고도 녀석에게는 소중한 존재들이 있다. 가족, 친구, 친척, 선후배, 그 외 등등. 차고 넘칠 정도로 아주 많이.
물론, 그들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우 나 하나와 그 모든 것을 저울질해서 내린 결론이…… 나라고? 끌려가던 몸에 힘을 줘 우뚝 멈췄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제일 먼저 챙기려 할 본인의 목숨보다, 나?
“답답해도 당분간만 숨어 지내자.”
움직이지 않는 나를 보며 송여환이 설득을 해 왔다. 녀석은 다른 것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듯 나만을 신경 썼다. 올곧은 눈동자를 보니 나도 모르게 녀석을 시험하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내가 숨으면…… 많은 사람이 다칠 수도 있어.”
“그런 거 신경 안 써. 형은 능력을 잃은 거야. 그렇게 생각하랬잖아.”
“송여환. 네 가족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야.”
단호한 내 말에 녀석이 움찔했다. 눈이 크게 떠지며 입가가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무의식중에 모른 척하던 부분을 찌르니 놀랄 수밖에 없겠지.
“…….”
“…….”
가족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아무리 송여환이라도 대놓고 들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겠지. 나는 왜 내가 그런 질문을 한 건지 이해할 수 없음에도 녀석의 답을 기다렸다. 짧은 침묵에 가슴이 불규칙적으로 요동쳤다.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 이러는 걸까.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송여환은 무언가의 결단을 내린 듯 나를 단호히 응시하며 말했다.
“예외는 없어.”
충격적인 말을 한 녀석이 내 손을 세게 잡았다.
“형이 희생할 필요는 없어. 싸우지 않아도 돼. 만약 저 괴물이 이 세상에 종말을 가져온다 해도…… 나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충분히 써먹을 수 있는 ‘나’라는 방법이 있음에도 어쩔 수 없다는 녀석이 웃겼다. 가족도, 스스로의 목숨도 버릴 만큼 내가 소중하다는 걸까? 놀람과 기묘한 기분이 한데 섞여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녀석이 이어 말했다.
“형.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개인이 책임져선 안 될 문제야. 에스퍼가 없는 상태라면 국가가 국민을 지켜야지. 왜 그걸 형이 하려 해. 도대체 언제까지?”
“…….”
“잘 들어. 맹세코 형이 짊어지지 않아도 괜찮아.”
망설임이라곤 전혀 없는 모습에 순간 나도 모르게 녀석의 손을 마주 잡았다. 빈틈없이 맞물린 손을 타고 따뜻한 온기가 전신으로 퍼졌다. 마음 어딘가에서 이름 지은 적 없는 감정이 울컥 솟구쳐 올랐다.
심장까지 빠르게 닿아 오는 뻐근하고 아린 울림. 문득 한 달 후 죽으려던 내가 왜 현재까지 살아 있는지에 대해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아마 송여환이란 사람이 주는 무한한 애정과 날 선 거절에도 부드럽게 웃으며 몇 번이고 손을 내밀어 오는 저 다정함 때문이겠지.
‘좋은 사람.’
그래, 송여환이 너무 좋은 사람이니까 이런 나까지 조금씩 변한 거다.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의 미래가 끔찍해질 것이 너무나 훤히 보였다. 사람들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친구를 버리고. 오로지 나의 희생을 막기 위해 등을 돌린 송여환은 절대 기뻐하며 살아갈 수 없을 테다. 녀석은 어쩔 수 없는 천성이 ‘좋은 사람’이니까.
나를 살리고, 내게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며 위로해 주는 대신 그 많은 죄책감을 본인이 짊어질 것이다. 그러다 서서히 말라 죽어 가리라. 아마 괴물에게 심장이 뚫려 죽는 것보다 괴롭겠지. 녀석은 알까? 도망가자는 선택의 결말을? 알면서도 각오했다는 걸까? 나를 위해?
이쯤 되면 나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나는 송여환이 괴로워질 걸 알면서, 내가 편해지기 위해 현실을 외면할 수 있을까?
‘아니. 이젠…… 못하지.’
상관이 없다고 모른 척하기엔 녀석에게 받은 이 온기가 소중해진 참이다.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까지 개운해져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다른 방법을 찾든 누에고치를 태우든 도망이 아닌 선택을 내리려던 순간, 벌컥- 방문이 열리더니 심각한 표정의 집사장이 들어왔다. 평소라면 정중히 노크했을 남자가 예의를 어긴 채 꽤나 다급한 목소리로 송여환을 불렀다.
“도련님.”
그러나 눈동자만큼은 내게로 향해 있었다. 나는 그 의미를 단박에 알아챘다. 이런 시기에 나를 찾아온 손님이라면 뻔했으니까.
“지금 바쁘니까 다음-”
“나를 찾아왔습니까.”
송여환의 말을 끊고 집사장을 향해 묻자 그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송여환과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만나 보겠다 대답했다. 여전히 하루가 힘이 들고 내 존재 가치에 대한 의문이 들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 있다. 아니, 살려 주었다.
그러니 이번엔 나 역시 그를 지키고 싶다. 생명뿐만 아니라 그의 신념까지. 송여환이 스스로를 저버릴 선택을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녀석은 녀석인 채로 빛나야 했다.
‘나로 인해 망가지는 널 보고 싶지 않아.’
그 이유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아직 싸울 수가 있다.
나는 옆에서 미쳤냐며 화를 내는 송여환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속으로 생각했다. 전부 네 덕분이라고.
“형!”
‘하지만 내가 싸우는 이유를 알게 되면 넌 그것대로 힘들어하겠지.’
그러니 송여환, 이건 비밀이다.
“야! 낙유성!”
끝까지 나를 붙잡는 녀석의 뺨을 손등으로 툭 치고 집사장을 따랐다. 다시 한번 에스퍼 낙유성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만나서 영광입니다.”
“영광은 개뿔. 이용해 먹을 생각에 신나셨겠지.”
비꼬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송여환을 슬쩍 눈짓했다. 녀석은 팔짱을 낀 채 대놓고 ‘나 지금 굉장히 언짢음’ 하는 표정으로 앞에 앉아 있는 두 명의 사내를 흘겼다.
묵묵히 욕을 먹고 있던 사내 중 한 명이 큼, 헛기침을 하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용…… 예. 맞습니다. 어떤 식으로 말씀하셔도 그렇게 느끼신다면 그게 맞겠죠. 그러니 입에 발린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립니다. 도와주십시오, 낙유성 에스퍼.”
옆에 있던 다른 사내도 똑같이 고개를 숙였다.
“유일하게 힘을 잃지 않은 사람이 낙유성 에스퍼라 다행입니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 아니, 기적입니다.”
인류의 희망이니 기적이니 그런 말을 듣고자 이들을 불러들인 게 아니다. 그저 내게 소중한 걸 지키고 싶기에 이용하려 부른 것뿐이다. 저 누에고치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송여환의 생각은 다른지 그들의 말이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나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하! 가만히 들어 보려니 열 받아서 안 되겠네. 희망? 기적? 너무 염치없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이봐요. 그쪽들도 알지 않아요?”
“아…… 저기, 송여환 씨 진정하시고-”
“왜요? 너무 유명해서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거짓말할 생각 말고 말해 봐요. 그간 사람들이 형한테 얼마나 잔인했는지. 온갖 SNS에서 퇴물이니 쓰레기니 사람 조롱해 댄 거, 이때다 싶어서 토하고 쓰러져 가던 사람 사진 이리저리 돌려 댄 거 다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 아무것도 안 했잖아.”
“…….”
“뭔 있지도 않은 카더라 들이밀면서 해명하라는 국가 청원도 있었어요. 그때 누구 하나 낙유성 믿어 준 사람 있어? 사람 하나 생매장하는 거 아주 쉽더만. 근데 이제 와, 뭐? 형이 왜, 누굴 위해서, 저 무식해 보이는 녀석과 싸워야 하는 건데!”
너를 위해서…… 라고 말하고 싶지만 목에 핏대까지 세우고 화를 내는 모습을 보니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좋아 보여 그냥 침묵했다. 평소에는 리트리버처럼 순한 녀석이 나와 연관만 되면 투견처럼 변해 버린다. 나는 여전히 날뛰어 대는 녀석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사실 우리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해 여러 번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무심히 넘기려던 나를 송여환이 끌어다 앉히고, 같이 술을 마셨다. 그러곤 항상 ‘형, 너 그거 괜찮은 게 아니라 괜찮은 척하는 거야. 어? 다 고소해야지 그딴 것드을!’ 하며 날 대신하듯 길길이 날뛰어 댔다.
뭐…… 따지고 보면 불쾌했던 것도 맞고, 송여환의 주장이 틀린 말도 아니니까.
가이드 없는 세계의 이물질 에스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