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어떻게 사람들을 구했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내 능력은 누군가를 구조하는 데 썩 적합하지 못했으니까. 되레 다치게 한 건 아닐지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거듭하며 나는 내게 기대어 있는 송여환을 내려다봤다.
다행히도 하얀 얼굴에 새까만 재가 묻은 것을 제외하곤 멀쩡해 보였다. 그러나 어째선지 녀석은 입을 열지 않았다. 뭐에 심사가 뒤틀린 건지 내 어깨에 얌전히 기대 눈을 껌뻑이면서도 고집스레 앞만 보았다.
……설마 능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저러는 건가? 하지만 그러지 않았더라면 녀석은 죽었을 거다.
‘화를 낼 게 아니라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뚱한 녀석을 보니 나도 점점 기분이 저조해졌다. 바로 그때,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다가왔다.
“낙유성 에스퍼님 맞으십니까.”
대꾸 없이 고개만 돌려 쳐다봤다. 그러자 두 사람 중 한 명이 명함을 내밀었다. 받지 않고 눈동자를 굴려 글자만 읽어 내리니 누에고치와 관련 있는 기관 같았다. 원래 <이능력 협회>로 불리던 그곳 말이다.
“잠깐 시간을 좀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정일문?”
“예전 이능력 협회 이사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분은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정일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다른 사람으로 교체된 건가? 잠깐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뭐가 되었든 이제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됐어.”
“잠깐이면 됩니다.”
“꺼져. 할 말 없으니까.”
“급한 일입니다, 낙유성 에스퍼님.”
문제는 이 새끼들이 물러서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힘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찰나, 내게 기대어 있던 송여환이 몸을 일으켰다. 녀석은 딱딱한 표정 그대로 나와 남자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하실 말씀 있으시면 저희, 브릭트스컴트 대리인을 보낼 테니 그분이랑 대화 나누시면 될 것 같네요. 보시다시피 제가 많이 다쳐서 이만 물러나야 할 거 같은데. 선생님들 위에 누가 계시든…… 지금 제 기분이 많이 별로라, 계속 막으면 대리인 말고 변호사와 만나게 되실 겁니다.”
송여환의 까칠한 태도에 놀란 건 나였다. 되도록 분란을 만들지 않기 위해 누구에게나 신사적인 태도를 유지하던 놈이 웬일이지?
“더 할 말 없으면 알아들으신 걸로 알고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가볍게 묵례한 송여환이 내 어깨를 감싸 이끌었고, 나는 순순히 녀석의 리드를 따랐다.
운전을 하며 집으로 오는 내내 녀석은 말이 없었다. 그저 가끔 욕설 비슷한 중얼거림을 내뱉을 뿐이었다.
나는 창문에 고개를 기댄 채 입술을 깨물었다. 대놓고 화를 내니 불쾌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는 뭐 능력을 쓰고 싶어서 썼나? 주목받을 걸 뻔히 알면서까지? ……개자식.
무거워진 차 안의 공기를 오롯이 느끼며 다시 저택으로 돌아왔다. 나는 앞서 걷는 송여환의 뒤를 따르며 방 앞에 도달했다. 녀석은 나를 보지 않고서 말했다.
“쉬어.”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울컥해 버렸다.
“야.”
“…….”
“멈춰. 송여환.”
“내일 얘기해.”
“너…… 아니, 하, 뭐가 그렇게 불만인데. 왜 X발 그따위로 구는 거냐고. 내가 괜히 능력 썼냐?”
“그런 거 아니야.”
“거짓말 마.”
“아니라고.”
“아니긴 뭐가-”
“형이 아니라 나한테 화가 난 거야,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른 송여환이 휙 몸을 돌렸다. 긴 다리를 뻗어 성큼성큼 다가오며 목에 핏대를 세우는 녀석은 정말로……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야. 화가 난 게 아니라, 울어?
“내가 너무 멍청해서 그래. 저번에 말했지, 능력을 잃은 거 후회하냐고. 그때는 아니라고 그랬는데 지금 철회할게. 어, 너무 후회된다!”
송여환이 제 가슴팍을 퍽퍽 쳐 댔다.
“몇 시간 전으로 돌아가면 난 사람들 구하려고 나대지 않았을 거야. 쥐뿔 없는 주제에 왜 그랬을까? 왜 그래서 형의 능력이 남아 있다는 걸 세상에 알린 걸까, 어? 가이드도 없는데 혹여 폭주라도 하면 어쩌려고……. 도대체, 도대체 왜 그렇게 멍청해서!”
씨근덕거리던 녀석이 마지막 말을 하곤 고개를 푹 떨구었다.
“미안해. 아직도 무의식중에 내가 에스퍼 송여환인 줄 착각했나 봐.”
“…….”
“결국 나 때문에 형이 힘을 사용했고, 그로 인해 세상에 밝혀졌잖아. 내가 다 망친 거야. 조용히, 살 수 있었는데.”
그러니까 송여환이 한껏 삐뚤어진 이유가 내가 약속을 어겨서가 아니라, 본인 때문에 내 비밀이 탄로가 났기 때문이란 거지 지금? 뭔가 기운이 쭉 빠졌다. 나는 화를 내던 것도 잊고 녀석의 이마로 딱밤을 날렸다.
“악!”
“……너무 한심해서 말도 안 나온다.”
“미, 미안.”
“됐어. 안 그랬으면 네가 죽었을 테니까.”
“…….”
오해가 풀렸으니 이제 그만 방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송여환이 내 팔뚝을 콱 잡아챘다. 조금 피곤하던지라 얘기할 게 있으면 빨리 하라는 의미로 고개만 돌리던 순간, 녀석이 내 뺨에 입을 맞췄다.
쪼옥!
“……!”
너무 놀라 몸이 굳었다.
“방금 그 말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못 참았어.”
X발 무슨 말을 했지, 내가?
“너무 늦은 인사긴 하지만 진심이야. 살려 줘서 고마워. 사랑해, 유성이 형.”
빌어먹을 새끼가 한 번 더 내 뺨에 입을 쪽 맞추곤 제 방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저걸 쫓아가 반 죽여 놓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상상만으로 끝냈다. 기껏 살려 놓은 걸 내 손으로 죽여 버리면 아까우니까.
“징그러운 놈…….”
나는 손등으로 뺨을 문지르며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 송여환 하는 꼴을 보니 지진이 일어나기 전 느꼈던 공포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야겠다. 괜히 또 뭐라도 하겠다고 나댈 거 같으니까. 아니면 걱정한답시고 쓸데없이 달라붙어서 하루 종일 지분대겠지.
녀석의 입술이 닿았던 뺨이 묘하게 화끈거리는 것 같아 뺨을 비비는 손길이 조금 더 거칠어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송여환의 ‘곁’이 점점 익숙해져서 곤란했다. 같이 식사하고, 아침과 밤마다 인사를 나누며, 가끔은 위로받고, 또 쓸데없는 말들로 하루를 채우는…… 온기 어린 사람의 곁.
나는 복도에 달린 창문으로 시선을 옮겨 새까만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제발, 내가 느낀 불안이 헛수가 되길 바라며.
* * *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불길한 예감은 늘 맞아떨어진다. 마트에서의 사건이 있은 지 정확히 3일째가 되던 날.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던 도중 긴급 뉴스가 터져 나왔다.
[속보입니다! 현재-]
생중계되는 티브이에선 하얗고 커다란 고치가 크게 진동하며 기묘한 소리를 퍼뜨리고 있었는데, 꼭 사람의 비명이나 짐승의 울부짖음을 닮아 소름을 일게 했다.
끔찍한 광경에 느긋하게 차를 마시던 송여환의 손에서 찻잔이 미끄러졌다. 나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깨진 찻잔을 쳐다봤다. 산산조각이 나 본래의 곱던 형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저게, 뭐야……?”
송여환의 떨리는 음성을 따라 내 시선은 다시 티브이로 향했다. 흔들리는 앵글 사이, 고치의 중앙 부분을 뚫고 한 사내가 걸어 나온다. 휘이잉- 거세게 부는 바람에 나부끼는 검은 머리카락과 주변을 훑는 공허한 눈동자. 현실감이라곤 전혀 없는 상황이 보란 듯이 펼쳐지고 있었다.
저 누에고치에서 사람이 나올 거라고 그 누가 예상했을까. 아니, 사람이긴 한 걸까? 만약 누에고치가 새로운 형태의 던전인 거라면? 저놈이 몬스터라면? 여러 생각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놈에게로 온 신경이 집중됐다.
현재 능력을 가진 에스퍼는 아마 나뿐일 거다. 그럼, 내가 싸워야 하는 걸까? ……던전 생각만 해도 빌빌거리는 내가?
“형.”
“…….”
“형, 유성이 형!”
집중하던 나를 깨운 건 송여환이었다. 나는 티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정신을 퍼뜩 다잡았다.
녀석은 아주 불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괜찮냐고 물어 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후 나오는 말은 없었다. 송여환도 마찬가지였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지금 상황에서 어떤 말을 꺼내든 그 끝에는 ‘에스퍼’의 필요성을 언급해야 한다는 걸 둘 다 알고 있으니까.
“…….”
“…….”
침묵이 길게 흐르고, 참다못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야. 만약 저 녀석이 몬스터라면-”
“그렇다 하더라도 형이랑은 관계없어.”
송여환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내 말을 싹둑 잘라 버렸다. 차갑기까지 한 목소리였다.
‘어떻게 관계가 없어.’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티브이에서 커다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나와 송여환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지금 정체불명의- 사내가— 막 군사용 헬리콥터를 격추-]
여러 잡음이 섞여 지지직거리는 화면 너머, 충격적인 현장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었다. 리포터의 손짓에 따라 움직인 카메라가 잡은 것은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바닥으로 추락하는 헬리콥터 한 대와 손을 뻗은 채 공격을 가하고 있는 의문의 사내였다.
티브이에선 사라졌던 몬스터의 재등장이라는 자극적인 타이틀을 만들어 뉴스를 이어 갔고, 현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초토화가 되었다. 사내의 손짓 몇 번에 군사용 장갑차부터 헬리콥터까지 모조리 부서졌다.
지옥도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광경.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평화로웠던 시간이 모두 거짓말 같았다.
가이드 없는 세계의 이물질 에스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