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하, 미쳤군.”
피부를 파고드는 따끔함에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까지 엉망이면 가이딩을 받는 게 좋을 텐데 무슨 고집인 걸까. 딱히 파트너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가볍게 주먹을 쥐어 똑똑 노크했다. 단 두 번의 두드림을 끝으로 안에서 잔뜩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필요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송여환이 이런 식으로 화도 낼 수 있구나. 나는 아슬아슬한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생각을 하며 중얼거렸다.
“새끼, 성질은.”
딱 한 마디 뱉었을 뿐인데 안에서 새어 나오던 짜증스러운 외침도, 칼날 같은 기운도 뚝 멈추었다.
“……유성이 형?”
그리고 이어 흘러나온 내 이름.
“아직 정신 붙들 만한가 보네.”
일단 상태를 봐야 했기에 문고리를 잡는데, 안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려왔다.
“아, 엇, 아, 안 돼! 문 열지 마. 나 샤워도 안 했고…… 지금, 아, 아무튼 안 돼! 열면 나 뛰어내릴 거야!”
네가 샤워를 하고 말곤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지만, 괜히 예민한 녀석 붙들고 말싸움할 생각은 없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미안해. 오늘 몸이 좀 안 좋아서 하루 종일 내버려 뒀네. 형, 밥은 먹었어……?”
문 너머에서 묻는 목소리가 잔뜩 지쳐 있었다.
기실 같은 에스퍼니까 알 수 있었다. 지금 송여환의 상황이 얼마나 힘든지. 그런데, 그런 와중에 내 밥 걱정이나 하고 있다니. 뭐 저런 놈이 다 있지?
인상을 찡그리며 나도 모르게 가슴 부근을 만지작거렸다. 저 녀석이 날 걱정해 줄 때마다 마음속 어딘가가 찝찝해진다. 아니, 답답…… 아니, 간질간질한 건가?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곤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야. 멍청아. 고집부리지 말고 가이딩이나 받아. 쓰러졌다며.”
“…….”
“너 폭주하면 다 같이 뒈져. 지금 어느 정도 정신머리 있는 거 같으니까, 가서 가이드 데려온다? 얌전히 가이딩이나 받-”
“싫어. 부르기만 해.”
왜 고집인지 모를 일이다. 전에는 잘만 가이딩 받던 놈이. 슬슬 달래 주는 게 짜증이 나려던 참이었다. 송여환이 잔뜩 기죽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공간에서, 다른 사람이랑 스킨십을 어떻게 해.”
화를 내려던 그대로 굳었다. 하지만 문에 가려 그런 내 모습을 모르는 송여환은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줄줄 뱉어 냈다.
“말했잖아. 너 좋아한다고. 난 너 말곤 다른 사람이랑 손잡고 싶지도 않고, 키스하고 싶지도 않아. 그럴 바에 참는 게 나아. 죽을힘을 다해서 참을 거니까 걱정 마. 만약…… 하아, 만약의 폭주를 대비해서 협회에 긴급 요청도 넣어 놨어. 낌새가 보이면 다른 에스퍼들이 와서 제압할 거야.”
그 송여환이 1층에 가이드들이 대기하고 있는데 굳이 에스퍼를 불러서 굴욕을 당하시겠단다. 그것도 나 때문에. ……이런 무식한 순애가 다 있을까.
“……그러니까, 그만 자극하고 돌아가. 형이, 가까이에 있으면 참기 힘드니까.”
나는 입술을 질겅이며 이마를 짚었다.
알아서 참는다니 더 이상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다. 대충 알겠다 하고 걸음을 돌리면 되는 일이란 말이다. 분명 그럴 텐데…… 이상하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문 너머에서 점점 심해지는 기운 때문일까? 아니면 녀석의 흐린 신음 때문일까? 나는 정말 나답지 않은 충동에 휩싸이고 말았다.
“야.”
“……후으, 왜 안 가. 가라니까.”
“너…….”
나는 손잡이를 잡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뭔가를 각오한 것처럼 턱을 탁 치켜들며 단호히 말했다.
“딱 손잡는 거랑 키…… 스까지만 해라.”
그 이상하면 내 손에 죽는다.
“하아, 은혜 갚기다. 은혜 갚기.”
중얼거리며 문을 열었다. 끼익, 열자마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훅 다가왔다. 후회는 금방 밀려왔다. 내가 미쳤지 X발. 하지만 이미 저질러 버린 일. 나는 송여환 특유의 체취가 강하게 풍기는 어두운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
그곳엔 침묵하며 나를 집요히 응시하는 금빛 눈동자의 짐승 새끼가 있었다. 녀석은 사냥하기 전의 그것처럼 숨을 죽이고 있었다. 겉으론 아주 고요했지만, 그 주변으로 일렁이는 기운을 미루어 알 수 있었다. 송여환은 지금, 굉장히 흥분하고 있었다.
……X발. 네 맘대로 가지고 놀아라. 나는 녀석을 보며 몸에서 최대한 힘을 빼냈다. 중간에 나도 모르게 한 대 후려칠 순 있겠지만 그건 저 새끼 사정이고.
“뭐, 일단은…… 해.”
* * *
‘내가 미쳤지. X발.’
나른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제로 콜라를 꿀떡이던 나는 울컥하고 올라오는 짜증에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런 정신 나간 짓을 했을까.
“하아…….”
짜증의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저번의 사건 이후 송여환이 틈만 나면 내 앞에서 온갖 아픈 척을 하며 수작을 부려 댔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눈에 훤히 보이는 개- 수작을.
‘형, 나 몸이 안 좋은 거 같아.’
‘형! 왠지 파장이 불안정한데!’
‘혀엉!’
……죽일까. 와그작, 손안에서 캔이 우그러졌다. 조금 봐줬다고 기어오르는 게 아주 수준급인 녀석이다. 나는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지치지도 않나.”
매일 구박만 하는 내가 뭐 그리 좋다고 저 난리인 건지 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금만 해도 티브이를 보며 대충 눈에 들어오는 장소에 ‘예쁘네’ 한마디 했을 뿐인데, 전화기 붙들고 항공권을 알아보고 있다.
“멍청이.”
나는 녀석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진짜 귀찮고, 진짜 짜증 날 때도 많지만, 보고 있다 보면 꽤 웃기는 놈이라 나름 시간은 잘 갔다. 거기다 형, 형 하며 쫓아다니는 게 나쁘진…….
“형! 차라리 전용기를 띄울까?”
“얼굴 가까워.”
“뭐? 뽀, 뽀……?”
“치워.”
“한 대 맞고 한 번 뽀뽀?”
입술을 쭉 내민 녀석의 주둥이를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그렇게 언제나 그랬듯 송여환의 말도 안 되는 애정을 거부하며 별거 없는 하루하루를 보낼 거라 믿었는데…… 세상이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 주기 시작했다.
[긴급 속보입니다.]
-삑.
[화요일 뉴스데스크입니다. 현재 서울 도시 한복판에-]
[건물이 무너지고-]
-삐삑.
[목요일 뉴스데스크입니다. 군부대와 협회 관계자들이-]
[제거하려 해 보았지만 가까이 다가가기조차-]
[하루하루 능력을 잃어 가는-]
-삑.
[토요일 뉴스데스크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누에고치, 사라지는 던전과 힘을 잃은 에스퍼들. 재앙일까요, 희망일까요.]
모든 것이 변하고 말았다.
* * *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그중 많은 인파가 밀집한 XX구 사거리 한복판에 빌딩 수십 개를 붙여 놓은 듯한 크기의 누에고치가 떨어졌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로, 빠른 대처를 하지 못해 수백 명의 사상·사망자가 발생했고, 그 외 다수의 문제가 나타났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 누에고치를 제거할 힘도, 건물의 잔재들에 깔린 많은 사람을 몇 초 만에 구할 힘도, 기적처럼 상처를 치료할 힘도 더 이상 인류에겐 남아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이능력자가 하나둘씩…… 그러다 전부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누에고치 때문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흔히 ‘에스퍼 또는 가이드’라 불리는 사람들은 제각각의 능력을 갑자기 잃고 말았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이능력이 사라짐과 동시에 ‘던전’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게 됐다.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했고, 두려워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적응해 갔다. 아니, 어쩌면 더 환영했을지도 모른다. 에스퍼와 던전의 부재에. 심지어 몇몇 사람은 ‘누에고치’를 섬기는 이상한 종교 단체까지 만들어 냈다. 인간의 끝없는 전투를 끝낸 신의 사자라고 떠받들면서.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나, 바뀐 것이 두 가지가 더 생겼다.
첫 번째는 필요 없어진 이능력 협회가 누에고치를 전담하는 기관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한 달 뒤 죽으려던 한 남자가 아직까지 숨 쉬며 살아 있다는 것이다.
던전 트라우마로 인해 어떤 전투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무능력 에스퍼이자 오메가의 권능으로 인해 이능력을 잃지 않은, 현재 세상에 남은 마지막 에스퍼. 낙유성이.
* * *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아직 모르잖아.”
이게 더 수상하지 않냐? 검은 선글라스에 검은 모자, 그 위에 한술 더 떠 검은 후드까지 뒤집어쓴 나를 거울로 쳐다봤다. 누가 봐도 범죄자상이다. 이럴 거면 그냥 집에 있는 게 낫지 않나…….
“……그냥 너나 다녀와.”
나는 나와 달리 화려하게 꾸민 송여환을 흘겨보며 말했다.
“아, 왜! 아쿠아리움 가고 싶다며.”
그냥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펭귄 보고 ‘생각보다 귀엽네’ 딱 한 마디 했을 뿐인데 그게 어떻게 아쿠아리움에 가고 싶다는 말로 해석이 되는 거지.
나는 나를 질질 끌고 나가는 송여환의 등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에스퍼도 아닌 녀석에게 함부로 힘을 쓰기도 뭐 했다. 잘못 건들다 픽 죽어 버리면 곤란하니까.
“내가 알아서 갈게. 놔.”
“안 돼. 나 지금 너 억지로 끌고 가는 척, 손잡고 사심 채우는 중이야. 방해하지 마.”
바보 같은 녀석은 내게 구박을 먹으면서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웃음을 띠었다. 하긴 요 두 달간 송여환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진 날이 없었지. 하여간 특이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녀석이 열어 준 문을 지나 조수석에 올라탔다. 탁, 문까지 착실히 닫은 녀석은 촐싹대며 운전석으로 향했다.
가이드 없는 세계의 이물질 에스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