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물론 정일문은 인정해 주지 않았다. 처음엔 농담하지 말라며 웃다 곧 화를 냈다. 갑자기 찾아와서 퇴직이라니 웃기지 말라고 길길이 날뛰었다. 그러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불같이 화를 냈다.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의 모든 분노를 듣고 사실대로 얘기했다. 정신적인 문제로 던전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당연하게도 정일문은 그것을 ‘지선우’의 빈자리 때문이라 여기고 이번엔 회유를 하기 시작했다.
“다른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받으면 되잖아, 응? 원하는 조건은 전부 맞춰 줄게. 제발, 유성아.”
그러나 그 방법도 먹히지 않자 끝내는 협박이 돌아왔다.
“너! 가면…… 가면 후회할 거야.”
“나 그동안 형한테 섭섭하게 한 거…….”
없다고 하기엔 양심에 찔리는 게 많았기에 하던 말을 쏙 집어넣고 말을 바꿨다.
“형. 얼굴 붉히며 끝내지 말자.”
“야! 웃기지 마. 회담장에서 내 면 다 날린 것도 이해해 줬는데 퇴직이라니. 이렇게 무책임하게 가는 게 어딨어. 너, 너 이렇게 가면 내가 진짜 가만 안 둬!”
“어차피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어, 난.”
이미 많은 걸 잃었고, 버렸다. 지금은 송여환과 그럭저럭한 생활을 보내고 있지만, 어차피 한 달 뒤 나는 모든 걸 끝낼 것이다.
“간다.”
“야, 낙유성! 유성아, 유성아-! 야! 야악!”
뒤에서 악에 받쳐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십몇 년이나 달고 있던 ‘에스퍼’란 타이틀을 벗어던지는데 생각보다 덤덤했다. 아니, 조금은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마음이 텅 비어 버린 이 후련함은 대체 뭘까.
‘……짐이나 좀 꾸려 갈까.’
이제 펜트하우스나 내 차도 반납을 해야 하니, 원래 살던 곳으로 가서 중요한 물품 몇 가지만 챙겨 송여환의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그리 생각하는데 문득 ‘돌아간다’는 단어에 꽂혔다.
“허? 웃기네. 아주 객식구 역에 제대로 몰입하고 있잖아.”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허공을 노려봤다. 여우 같은 송여환이 꼬리를 살랑이며 빨리 돌아오라 재촉하는 환영이 보였다. 으, 싫어. 나는 괜히 허공에 손을 휘적거렸다. 그때, 핸드폰이 웅웅 울렸다.
[송여환]
“……너도 양반은 못 되겠다.”
절로 싱거운 웃음이 흘러나왔다. 더 귀찮게 굴기 전에 돌아가야겠다.
* * *
“뭐어어! 퇴사아?”
“비켜. 안 보여.”
“대뜸 차 키 달라더니 협회에 다녀온 거야?”
“안 보인다고 했다.”
“나한테 정일문 이사장님이 전화 와서 형 오면 연락 달라고 했는데, 그게 이것 때문이야? 그래?”
“하나, 둘-”
“비, 비켰어.”
앞머리만 올려 묶은 송여환이 큰 덩치를 쭈글쭈글 숙이며 말했다. 옆에서 슬쩍 노려보는 거 다 티 난다고 해 줘야 해 말아야 해. 나는 고개를 흔들며 보던 드라마에 집중했다.
한참을 보다 옆에 뚱하니 앉아 있는 송여환을 흘긋거리지도 않고 물었다.
“야. 술 있어?”
“그렇게 마시고 또 마시고 싶어? 꿈이 알코올중독자야?”
“백수 된 기념으로.”
“진짜 얘기 제대로 안 할 거야?”
“제대로 할 게 뭐 있어. 들은 그대론데.”
송여환은 답답해했지만 난 정말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주변 정리란 이런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만 들었다. 만약 놈이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아마 화를 내지 않을까. 나를 좋아한다고 했으니까.
음……. 티브이에 고정했던 시선을 툴툴거리는 녀석에게로 옮겼다. 그러자 놈도 시선을 맞춰 왔다. 우리는 눈싸움을 하듯 고정된 시선을 한동안 떼어 내지 않았다.
녀석은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다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사랑해.”
……역시 가벼운 놈이다.
“자라. 등신아.”
녀석의 이마를 딱 때리고 다시 티브이로 시선을 돌렸다. 옆에서 아프니 죽느니 하는 엄살 어린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웃긴 새끼.”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조용히 웃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정일문에게서 몇 번이고 회유의 연락이 왔지만 내게 닿는 일은 없었다. 나는 결정을 번복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정말 에스퍼로선 끝이라는 결론을 못 박았다.
그러자 생각보다 매서운 대가가 돌아왔다. 여러 기사와 더불어 온갖 SNS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난무하기 시작한 거다. 자발적인 퇴직은 어느샌가 퇴출로 바뀌었고, 그 이유엔 추접한 카더라가 줄줄이 엮여 기다란 꼬리를 만들었다.
손끝 한 번 스친 적 없는 가이드와의 난잡한 관계, 룰도 모르는 도박, 심한 알코올 중독…… 이건 좀 맞나? 아무튼 협회까지 침묵을 지키자 사람들은 진실인 양 살을 붙여 가며 비난과 비판을 쏟아 냈다. 종국에는 협회가 내 뒤를 봐주다 못해 버린 게 아니냐는 말까지 돌았다.
아주 이때다 싶어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긴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나는 인터넷 안에서 가지고 놀기 좋은 먹잇감이 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완벽한 추락이었다.
하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들이 무어라 욕을 하든 별 관심도 없고, 화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길길이 날뛰는 건 송여환이었다. 놈은 내게 계속해서 기자회견을 하자는 둥 고소를 하자는 둥 제안했지만 전부 거절했다.
그러자 끝내 송여환은 자신도 협회를 나오겠다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멍청이가. 나는 송여환의 팀원이나, 시민들의 안전 따위를 들먹이며 녀석을 말려야 했다.
뭐,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가 어쩌다 보니 브릭트스컴트의 보호 아래 있어, 귀찮은 취재에 쫓기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인터넷 안에서의 낙유성이 얼마나 얻어터지든 현실의 나는 지루하지만 평온한 생활을 이어 갔다.
“으음…….”
침대에서 한참을 부스럭대다 눈을 떴다. 잠깐의 침묵 후, 시선을 굴려 창밖을 쳐다봤다.
“허…….”
아무리 백수라지만 바깥이 어두워질 때까지 잠을 자다니. 예전의 나라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나는 길게 하품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일곱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음…….”
주변을 둘러봤으나 누군가 들어온 흔적 따윈 보이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방문을 열었다. 그 앞에는 샌드위치와 과일이 하얀 쪽지 한 장과 함께 쟁반에 놓여 있었다.
[부족하시면 방 안에 있는 버저를 눌러 주십시오.
-오문태 집사장-]
“……?”
샌드위치를 입에 물며 고개를 기울였다. 이곳에 온 지 시간이 꽤 지났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매일 아침, 송여환이 직접 나를 깨우고 같이 식사했으니까. 심지어 일을 나가야 할 때도 꼭 내 방에 들러 다녀온다며 인사하고 나가던 놈이다.
‘오늘은 왜……?’
나는 녀석의 방을 찾아갈까 하다 순간 ‘아니지. 내가 왜, 굳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뒀다. 대신 방에 준비된 버저를 꾹 눌렀다. 물론 송여환이 신경 쓰여서가 아니라 식사가 부족해서였다. ……뭐, 겸사겸사 녀석에 대해 물어볼 수도 있고.
버저를 누른 지 정확히 5분 만에 집사장이 찾아왔다. 그는 늘 그렇듯 깍듯한 모습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어 깨우지 못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식사를 준비할까요? 유성 도련님.”
저 도련님 소리 그만두게 할 수는 없나? 나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목뒤를 쓸다 멋쩍게 입을 열었다.
“그보다 그 녀석, 송여환은…….”
“예? 막내 도련님 말씀하시는 겁니까?”
집사장이 고개를 들더니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내가 송여환의 안부를 물을 줄 몰랐다는 표정이다.
나는 슬쩍 시선을 피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된다거나 하는 게 아니다. 그저 매일 찾아오던 길고양이도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으면 신경 쓰이는 법이다. 그래, 딱 그 정도의…… 그러니까…… 그런 거다.
“큼큼!”
조금의 긴 침묵 후, 오문태 집사장이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침착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막내 도련님은 현재 방 안에서 쉬고 계십니다. 아침에 쓰러지셨거든요.”
“쓰러져……?”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예. 주치의를 불러 들어 보니 가이딩 부족으로 나타난 증상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술자리를 하고 나서 송여환이 폭주의 기운을 보였다. 그때 어찌어찌 잘 넘긴 것 같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하긴 에스퍼의 쌓인 독을 풀 수 있는 건 오로지 가이드의 가이딩뿐이긴 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문득 어째서 송여환이 가이드를 부르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 쓰러질 정도라면 본인의 몸 상태는 본인이 제일 잘 알 텐데 말이다.
“……안 그래도 여러 번 권유를 드렸는데 극구 거절하셨습니다.”
에스퍼에게 가이딩은 목숨과 직결된 문제다. 거기다 가이딩 부족으로 쓰러질 정도면 꽤나 위험하단 뜻이다. 싫어도 받아야 했다.
“혹시 몰라 S급 가이드분들이 1층 응접실에 대기하고 계시긴 합니다만…… 몇 번이나 들어가려 해도 막내 도련님께서 불같이 화를 내셔서……. 차라리 잠들어 계시면 나을 텐데, 가까이만 다가가도 그 온화한 분이 소리를 지르시니 방법이 없습니다.”
한껏 예민해진 에스퍼에게 함부로 다가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다. 나는 과일 하나를 입에 쏙 집어넣곤 고개를 끄덕였다. 신세 지는 것도 많으니 도움을 좀 줘 볼까.
“그럼 기절이라도 시키지, 뭐.”
만약의 상황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내가 부르기 전까진 근처로 아무도 오지 말라는 말을 전하곤 나 혼자 녀석의 방으로 다가갔다.
가이드 없는 세계의 이물질 에스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