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비, 켜…… 좀!”
“하아, 형, 형…….”
그만두라고 놈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죽 밀어내던 찰나였다. 뺨이 눌린 채 발갛게 달뜬 얼굴로 씨익 웃은 놈이 혀를 내밀어 내 손가락 사이사이를 할짝거렸다. 유독 뜨겁게 느껴지는 살덩이가 질척한 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스윽- 핥아 올렸다.
“좋아…… 해.”
그렇게 놈과 시선이 딱 마주치자마자 아까의 열감이 미친 듯이 일었고, 알 수 없는 허기까지 동반된 괴로움이 시작되었다.
“읏, 아…….”
절로 신음이 터졌다. 등허리가 움찔거리며 목덜미를 타고 옅은 전기가 오른다. 정말이지 싫은 감각이다. 특히나 예민해진 후각이 그렇다. 아주 짙게 풍기는 송여환의 체취. 평소에는 애새끼 같은 맑은 햇볕 냄새나 풍기는 주제에 지금은 코가 마비될 정도로 싸하고 묵직한 냄새를 줄줄 흘려 대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한 건 바로 나였다. 지독하기만 해야 할 에스퍼 새끼의 냄새가, 그게…… 너무, 믿을 수가 없게도 너무 달았다. 달다 못해 입안에 침이 잔뜩 고여 당장 놈을 어떻게 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미친 거지. 그래, 미친 게 분명하다. 술? 술 때문인가? 여러 생각이 오가는 와중 내 몸은 의지를 배반해 멋대로 움직였다.
놈의 뺨에 머무르던 손이 미끄러지듯 움직여 부들부들한 머리카락을 콱 잡고 아래로 잡아당겼다. 송여환은 반항 한 번을 하지 않았다.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배시시 웃으며 내 코에 제 코를 비비적거렸다. 애교를 떨어 대는 꼴이 퍽 잘 어울렸다.
나는 더 가까워진 녀석의 열기를 느끼며 나른히 속삭였다.
“입, 벌려…….”
허락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녀석은 다급히 내 입술을 머금었다.
우리는 조금은 추접스럽다 느껴질 정도로 쪽쪽 빨고, 타액을 마구 섞으며 한참이나 서로를 탐했다. 절대 떨어질 수 없다는 듯 꽉 껴안은 채였다. 겨우 키스만으로 이런 질척한 소리가 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몽롱한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나쁘지 않았다. 나를 압박해 오는 커다란 몸집이, 특유의 체향이, 그의 모든 것이 내 허기를 채워 주었다. 송여환이 주는 따뜻한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
꿀떡이며 넘어오는 침을 삼킬수록 발가락은 곱고 허리의 잔떨림은 심해졌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가 없었다. 더, 더, 더…… 그를 원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녀석도 나도 몸이 서로에게 반응했다. 닿아 오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묵직함에 묘한 만족감이 들어 나는 망설임 없이, 아니, 어쩌면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녀석의 엉덩이를 더듬었다.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깔린 내 아래로 손을 넣더니 같은 부위를 매만졌다. 그리고 그 순간…….
지이이이잉!
“……!”
거칠게 울려 대는 핸드폰 진동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나는 숨을 들이켜며 급히 녀석을 밀쳐 냈다.
“하아, 하…….”
축 늘어진 송여환을 무시하고 곧장 침대 옆 서랍장을 열었다. 안에는 셋째 날, 참다못해 송여환의 멱살을 흔들어 겨우겨우 얻어 낸 내 핸드폰이 들어 있었다.
식어 버린 열기를 느끼며 핸드폰의 잠금을 풀자 부모님에게서 온 연락이 보였다. 엄마의 장문 메시지에는 끝없는 걱정과 수많은 고민 끝에 보낸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제야 나는 부모님께 따로 연락을 드리지 않은 내 무신경함을 깨달았다.
평소에도 내게 방해가 될까 머뭇거리며 연락을 하던 분들이란 걸 알면서……. 나는 혀를 차며 낮에 뵈러 가겠다는 답장을 차분히 써 보내곤 다시 침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토마토처럼 빨간 얼굴로 도로롱 잠들어 있는 송여환이 보였다. 이상한 건, 녀석의 기운이 잠잠해졌다는 점이다. 가이딩도 받지 않았는데 왜?
……하, X발. 알 게 뭐야. 잠시 의문을 갖던 나는 밀려오는 졸음과 피곤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선 베개와 이불을 빼앗아 바닥에 대충 드러누웠다. 잠은 쉽게 왔다. 그것도 아주 기분 좋게.
다음 날, 이른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보이는 건 까치집을 지은 채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송여환이었다. 나는 눈을 껌뻑이며 조용히 녀석을 쳐다봤고, 녀석은 그런 나를 향해 무언가를 각오한 듯 느릿느릿 절을 박았다.
“……죽여 주시옵소서.”
아침부터 살인 의뢰라니 터무니가 없다. 나는 어이가 없는 상황에 실소를 터뜨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 집은 해장을 이런 식으로 하나? 사람 놀라게 해서 숙취 없애기 뭐 그런?
“물이나 가져와.”
잠긴 목소리로 말하자 녀석이 송구하다며 무릎걸음으로 기어가 찬물을 가져왔다. 나는 물 한 병을 시원하게 비우며 물었다.
“말해. 뭔데.”
“…….”
“야.”
“……기억 안 나…… 요? 날 텐데, 형이 막 싫다고 했는데.”
진짜 뭔 상황이지. 아침부터 스무고개 하자는 것도 아닐 테고. 슬슬 짜증이 나 미간을 확 찌푸리며 똑바로 말하라고 윽박질렀다.
송여환은 어깨를 움찔하다 다시 납작 엎드렸다.
“내가…… 형, 형…….”
“네가 형이라고?”
“아니, 아니…… 내가 형, 큼…… 형, 자는, 자는데 키, 키키, 키…….”
말하는 꼴이 답답해 조용히 페트병을 우그러뜨렸다. 내 행동의 의미가 잘 전달됐으리라.
“키, 키스하고! 엉덩이도 더듬고! 냄새를 많이 좀…… 많이 맡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역시 잘 전달되었네. 근데 뭐?
“진짜, 진짜 미쳤나 봐. 술에 너무 취해서, 아니, 술에 취해도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분명 형이 비키라고 했는데 내가 막 억지로 그렇게 막 어? 하고 어? 하, 한, 했나? 했는데…….”
송여환은 바닥에 머리를 찧을 정도로 납작 엎드려 내게 빌고 또 빌어 댔다. 도중에 무섭게 해서 미안하다는 헛소리까지 첨가해서.
……그러니까 정리를 하자면, 어제의 키스와 약간의 애무가 강제적으로 이뤄진 거라 믿고 있다는 거다. 이…… 내가 말이다. 그것도 송여환에게 힘으로 밀려서.
‘하, 등신.’
하지만 굳이 진실을 말해 주진 않았다. 저 오해가 마침 딱 필요했으니까. 나는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흘리듯 중얼거렸다.
“……싫다고 했는데 말이지.”
단 한 마디에 송여환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나는 녀석을 향해 손만 죽- 내밀었다.
“미안하면 줘 봐.”
“뭐, 뭐, 집부터 넘길까?”
“아니. 집은 필요 없고. 차.”
“차?”
“어. 내놔, 차 키.”
“외출…… 은…… 아직 안 하기로……. 기자들도 많을 테고…….”
“곤히 자는 사람 덮쳐 놓고 뭐?”
텔레포트 같은 이능력이 없는 이상, 다른 교통수단이 없다면 서울 시내까지 가기 어려운 외곽의 대저택이다. 특히나 부모님 댁까지 들러야 하기에 차는 필수였다.
한 번 더 손을 까딱이자 송여환이 우물쭈물했다.
“진짜 딴 건 안 될까?”
이 새끼가 꼭 사람 소리 지르게 만들지. 결국 놈을 잠든 사람한테 손이나 대는 희대의 성추행범으로 몰아가고 나서야 나는 차 키를 얻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따라오겠다는 녀석을 떼어 놓고 아주 오랜만에 외출에 나섰다.
* * *
가볍게 핸들을 돌려 부모님 댁으로 향하는 길.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신경 쓰이게 진짜.’
나간 지 채 20분도 되지 않아 전화가 벌써 일곱 번이나 왔다. 받는 족족 빨리 돌아오라는 성화에 사고 나면 책임질 거냐 따지니 그제야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내가 애새낀 줄 알아…….”
혼자 중얼거리며 몇 시간을 달려 찾은 본가. 나는 걱정하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괜찮다는 말을 몇 번이나 전해야 했다. 마지막엔 누가 와서 나를 아냐 묻는다면 절대 아는 척 말라는 당부까지 해 드렸다.
기자들을 생각해서 한 말이었건만. 되레 부모님의 걱정만 더 사 버렸다. 말주변이 없는 내 탓이었다.
“가 볼게요.”
인사를 전하고 다음으로 들른 곳은 협회였다. 송여환과 얘기가 됐다고는 하나 고작해야 한 달의 휴가였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더 이상 ‘에스퍼’로서의 휴가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어차피 회담에서의 사건도 있겠다, 확실한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나는 익숙하게 인사해 오는 비서에게 눈짓하며 이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쁜 거 아니지.”
“이게 누구야! 유성아!”
정일문은 의외로 나를 반겼다. 갑자기 찾아와 놀란 기색은 있어 보였지만 불쾌해하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나를 붙잡고 몸은 괜찮은지, 가이딩은 잘 받고 있는지, 치료는 어떻게 돼 가고 있는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짐짓 걱정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아마 그 속뜻은 언제 복귀할 수 있냐는 거겠지.
“앉아. 앉아서 얘기하자. 내 정신 좀 봐. 내가 너를 세워 놓고 얘기했다. 어어, 홍차? 홍차 마실 거니? 커피?”
“아니. 괜찮아.”
“쿠키 방금 구운 거 있는데 가져다 달라고 할게. 아니면 아예 나가서 밥 먹을까? 점심은 먹었니?”
“아냐. 그보다…… 형.”
나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계속 생각해 왔던 말을 천천히 내뱉었다. 바로 에스퍼로서의 낙유성을 버리겠다는 말이었다. 즉, 퇴직이었다.
가이드 없는 세계의 이물질 에스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