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묻잖아, 새끼야.”
송여환이 이를 드러내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분노라는 감정이 마치 색으로 선명히 보이는 것만 같았다.
‘왜…… 네가 그런 얼굴로 화내는 건데.’
녀석은 꼭 나라 잃은 사람처럼 거대한 울분을 담은 채 내 멱살을 잡아 올렸다. 거친 행동이었으나 전달되는 진동을 통해 녀석의 손이 벌벌 떨리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아이러니하게도 송여환은 겁에 질려 있었다. ……도대체 왜? 무엇이 두려워서?
“뭔 개짓거리냐고, 이게!”
송여환의 잔뜩 구겨진 콧잔등과 날카로운 송곳니, 돌아 버리겠다는 눈빛은 꼭 한 마리의 성난 야차 같았다. 어린아이들이 봤다면 당장 오줌을 지릴 만큼 사나웠다.
하지만 나는 그런 녀석이 어째선지 조금 웃겼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고. 그냥, 그랬을 뿐이다.
‘햇볕 냄새…… 되게 좋네.’
나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우스운 생각을 하며 녀석에게 붙들린 그대로 눈을 감았다. 사실, 제정신을 유지할 만한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어차피 송여환은 계속해서 나를 방해할 텐데 이 이상 발버둥 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을까.
지선우에 이어 송여환, 너희 모두 내게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구나. 정말 이해되지 않는 놈들이다. 이런 아무 가치 없는 인간을 왜 그렇게 살리고 싶어 하는 걸까.
‘……가치도 없는 인간을…….’
그렇게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 * *
깊은 어둠 속. 나 혼자만 덩그러니 서 있다. 여기는 어디지? 아까 전 분명…… 아, 설마 죽은 건가? 그럼 여기가 지옥이란 곳일까.
‘그르르르륵-!’
……뭐야, 낮의 괴물?
‘그르르르르!’
아직 죽지 않은 거구나. 아아, 그래…… 별로 놀랄 일도 아니지. 됐으니까, 빨리 와서 죽여.
‘그르르르, 크아아아!’
그래, 어서 나를 갈기갈기…….
‘뭘 포기하려 한 거야.’
……하, 또 너냐? 맞아, 아까도 너였지.
‘낙유성.’
송여환.
제발 좀 그만해. 나는 너무 피곤하단 말이야. 더 귀찮게 했다간 너부터 죽여 버릴 테니 좋게 말할 때 꺼져. 꺼지라고, 아는 척 말고 꺼져 버리란 말이야. 이 빌어먹을 새끼야!
나는 녀석을 떨쳐 내기 위해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뻐억! 손에 닿는 감각이 생생했다.
“……꺼, 져…….”
“넌 어째 자면서도 나만 보면 꺼지라고 하냐.”
또렷하게 들려온 음성. 깊은 심해 속에서 다급히 끌려 나온 사람처럼 숨을 들이켜며 눈을 떴다.
“허억! 하아, 하…… 하아…….”
헐떡거리며 호흡을 가다듬는데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뭔가 싶어 시선을 돌리자 보이는 건…….
“송여환?”
흐트러진 머리칼에 불그스름한 뺨 등, 엉망이 된 얼굴의 송여한이 나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저 새끼 얼굴이 왜 저래?’
“눈 뜨자마자 사람 면상이 이래서 많이 당황스럽지? 괜찮아, 괜찮아. 설마 맞은 나보다 때린 네가 더 당황스럽겠니.”
저 몰골을 내가 만들었다고? 이 새끼가 사람 기절했다고 막 덮어씌우네. 나는 어지러운 머리를 탈탈 털며 몸을 일으켰다. 잠깐 머리가 핑글 돌았지만,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뭐야, 여기.”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녀석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해 왔다.
“응. 보다시피 우리 집.”
“……뭐?”
내가 왜 너희 집에 있는 건데? 황당함에 막 따지려던 찰나,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깔끔한 인상의 중년이 들어왔다. 뭐지? 저 얼굴…… 어디서 한번 본 적이 있는데.
나를 향해 허리를 숙이는 사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분명 봤는데,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아.”
기억났다.
‘안녕하십니까. 송가(家)의 집사장, 오문태라 합니다.’
“잡상인…….”
“집사장, 오문태라 합니다. 잠은 편히 주무셨는지요, 유성 도련님.”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허리를 펴 인사하는 사내의 말에 팔뚝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도련님……?’
아니, 뭐. 물론 아예 처음 듣는 말은 아니다. 부름의 의미는 다르겠지만 은발 녀석도 항상 나를 도련님이라 부르며 놀려-
[아리아, 가엾게 여겨 줘. 제발…….]
순간 잊고 지냈던 녀석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몸이 멈칫했다. 심장에 칼이 꽂힌 채 절망하며 죽어 가던 녀석.
‘이름이 분명, 자얀…….’
기억하기 싫은 과거가 떠오르려던 그때.
“아이고오~ 우리 도련님 얼굴은 왜 요지경이 되셨을까?”
찰칵, 찰칵, 찰칵! 정신을 깨우는 방정맞은 셔터 소리가 들렸다. 놀란 티를 숨기며 시선을 돌리자, 송여환을 찍어 대고 있는 집사장이 보였다.
“사진 찍지 말고 얼음 팩이나 가져다줘.”
“섹시하셔라. 브- 이.”
“두 번 섹시하다간 죽겠는데…….”
“후후. 두 분이서 알콩달콩하신 걸 보니 이 늙은이 마음까지 청춘이 되어 버리는 것만 같군요.”
“……내 얼굴 상태 똑바로 보고 하는 소리지?”
집사장은 싱그럽게 웃고는 식사 준비를 마치면 다시 오겠다는 말을 전하고 사라졌다. 순식간에 무언가가 휘리릭 진행되어 버린 기분이다.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채로 멍하니 서 있자 송여환이 어깨를 으쓱이며 방 한쪽을 눈짓했다.
“일단 씻어. 아침 준비하려면 시간 좀 걸리니까. 원래는 방에서 간단히 먹어도 되는데…… 제대로 차리려는 거 보니, 아마 누나랑 형이 같이 먹겠다고 대기 타고 있나 봐. 둘 다 너 팬이었거든.”
종알종알 떠드는 녀석을 보다 나도 모르게 한 마디를 툭 뱉어 냈다.
“……도련님.”
의미는 여러 개였다. 진짜 도련님인 송여환의 모습이 낯설어서, 문득 떠오른 은발 녀석의 입버릇이 생각나서 등등.
사실 그냥 무시해도 될 혼잣말이었는데, 송여환의 반응이 이상했다. 놈을 보며 도련님이라고 딱 한 마디만 했을 뿐인데 갑작스레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아니힣’, ‘촤’ 같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며…… 아랫도리를 세웠다.
“불, 부, 불가항력이야!”
뭔데 저거. 순도 백 퍼센트의 혐오감을 담아 불룩해진 부분을 노려보자 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형이 뭘 알아! 비켜!”
얼굴이 벌겋게 변해 허둥지둥 화장실로 달려가는 놈의 뒷모습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무릇 사내라면 아침마다 저러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저 녀석은 깨어난 지 꽤 되지 않았나? 하여간 미친 새끼야.
* * *
“흐아~ 배부르다. 완전 과식했어.”
배를 통통 튕기며 침대로 엎어지는 놈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놈이 마치 ‘손’이라는 명령을 들은 개처럼 제 손을 턱 올린다.
“말고.”
“깍지?”
슬그머니 손깍지를 껴 오는 놈을 노려봤다.
“내 휴대폰이랑 지갑 달라고.”
“그건 왜.”
이게 진짜…… 나랑 장난하잔 것도 아니고.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 대신 손만 까딱거렸다. 그러자 송여환이 몸을 일으켰다.
“안 돼. 너 아직 못 나가.”
“헛소리하지 마.”
송여환은 대꾸 대신 한쪽에 놓여 있는 티브이를 켰다. 거기선 한창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회담장 사건에 대한 보도였다.
앵커는 심각한 표정으로 줄줄 떠들어 댔고, 다른 채널로 바꿔 봐도 모두 그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중 몇몇은 ‘에스퍼의 한계’라는 타이틀을 가져다 붙이며 자극적인 내용을 쏟아 내기도 했다.
“네 기사는 최대한 막았어. 하지만 그게 다야. 뉴스 메인에 걸리지 않았을 뿐이지, 시간이 흐를수록 소문이 점점 퍼질 거야.”
송여환이 한숨을 내쉬곤 이어 말했다.
“은연중 떠돌아다니는 영상도 있고……. 하, 도대체 어디서 그런 걸 구하는 건지.”
녀석이 짜증스레 머리를 쓸어 올렸다.
“아무튼 당분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기 전까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 좋아 보여. 이사장님이랑도 연락했어. 네가…… 선우 형님 잃고 그 여파로 능력 컨트롤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셔.”
“하.”
“그래서 한 달 정도 여기 머무르면서 치료에 집중해 보자고 했어. 우리 할아버지 사유지라 아무나 막 들어올 수 없거든. 멋대로 정한 건 미안하지만, 나도 같은 의견이야. 네가 조금 쉬었으면 해.”
나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송여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네가 내 보호자라도 돼?”
“어. 내 장래 희망이야.”
“야.”
“먼저 비꼰 건 너야.”
나와 송여환 사이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문득 내가 왜 이 녀석과 이런 주제를 가지고 말다툼을 벌여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엄연히 이건 내 일이고, 녀석은 끼어들 자격이 없다. 나는 도와 달라는 말을 한 적도, 바란 적도 없으니까.
건방진 새끼, 좋아한다고 고백하면 무슨 권리라도 생기는 줄 알았나?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닥치고 비켜. 정일문 만나서…….”
녀석을 지나치며 말하는데 어깨가 잡혔다. 돌아보니 웃음기를 걷어 낸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 건가 싶을 만큼 냉담했다.
“만나서 뭐라고 하게? 장례식은 어떻게 치를지 의논이라도 하게?”
이번엔 송여환이 입매를 삐뚜름히 올렸다.
“너 진짜 나한테 왜 그러냐?”
“뭐?”
“왜 내 앞에서 자꾸 몇 번이나 죽……!”
핏대가 선 목과 일렁거리는 사나운 기운. 명백한 분노였다. 녀석은 내게 화를 내고 있다. 그러다가도 입술을 꽉 깨물며 최대한 화를 참으려는 꼴이 너무 싫었다. 마치 나를 지켜 줘야 한다는 것처럼, 상처를 주면 안 되는 것처럼,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그런…… 가치 없는 인간을 보살피는 것처럼.
‘가치 없는 인간.’
내 인생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끔찍한 감각이 또 한 번 느껴졌다.
가이드 없는 세계의 이물질 에스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