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뱀 새끼가 순식간에 나를 세게 붙들었다. 어깨와 목 사이를 짓누르듯 잡은 손 때문에 안 그래도 힘이 빠진 몸이 손쉽게 제압당했다. 큭, 절로 신음이 흘렀다. 놓으라고 발버둥을 치자 녀석이 킥킥 웃으며 속삭여 왔다.
「쉬이, 찍히고 있다고요? 내가 겨우 가려 주고 있는데 이러다 들키면 유성 씨만 민망하지.」
“놔, 씹……!”
「젠냐. 어서 해. 네 부군의 힘이 워낙 세서 이 형님이 버티기에 한계가 있구나.」
「네, 네에……. 그, 가…… 가이딩 하려면 소, 손을…….」
꼬맹이의 말을 들은 뱀 새끼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더니 코웃음을 쳤다.
「장난은 그만해야지, 젠냐. 네가 겨우 손 정도 잡는다고 SS급 에스퍼의 컨디션을 되돌려 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그렇다면 이 형님은 정말 실망스럽구나. 가이딩 교육이 부족하진 않았을 텐데.」
「그, 그게…….」
「하아, 이렇게까지 떠먹여 주고 있으면 멍청한 짓은 그만해야지. 응? 제대로 하란 말이야. 빌어먹을 젠냐 아쿠벨!」
「히익…… 히, 힉!」
「당장 네 부군을 모셔.」
「으으…….」
「어서!」
벼락같은 호통이 떨어지자 꼬맹이가 참새 부리처럼 뾰족하게 입술을 내밀더니 그대로 내게 입을 맞춰 왔다.
……이런 X발, 미친 새끼들! 역겨움에 절로 안면 근육이 일그러졌다. 나는 자유를 구속당한 몸을 마구잡이로 흔들어 댔다. 떨어져, 제발, 떨어지라고!
“읍, 읍!”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며 발광을 떨어 대던 바로 그때, 작고 축축한 혀가 버석하게 마른 입술을 가르고 들어왔다.
「……으응…….」
미끄덩한 살덩어리가 내 입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였다. 침과 침이 섞여 만들어진 질척한 소리가 귀를 통해 머리까지 궹궹 울려 댔다. 미적지근한 숨결, 부딪쳐 오는 치아, 억지로 달라붙는 끈적한 덩어리.
쩍…… 쩝, 춥…… 서툴기 그지없는 혀 놀림이었으나 끈질김 하나만큼은 인정해 줘야 했다. 우움, 움…… 춉춉, 눈가를 바르르 떨어 대는 녀석에게서 비음이 흘러나왔다.
‘X발……!’
계속해서 발버둥 쳤지만 내 몸을 억누르고 있는 뱀 새끼 때문에 제대로 된 반항을 할 수가 없었다.
형이란 놈은 내 몸을 강제로 억압하고, 동생이란 놈은 주둥이를 내민 채 내 입술을 쪽쪽 빨아 먹고 있는 끔찍한 상황. 이건 가이딩도 키스도 아니었다. 그냥 귀족 자제의 성 노리개가 된 기분이었다.
「후으, 후…… 웅.」
복숭앗빛으로 물든 꼬맹이 녀석이 잔뜩 흥분해 혀를 마구 비벼 오기 시작했다. 흐물흐물 풀린 눈동자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턱 아래로 질척한 타액이 길게 늘어졌다. 가이딩이란 게 이렇게 천박했나 싶을 만큼 집요했다.
그렇게 긴 입맞춤이 이어지던 와중, 아랫배에 묘한 열감이 찾아왔다. 송곳으로 콕콕 쑤시는 듯한 고통과 그 아래 깔린 알 수 없는 간질거림.
‘이건, 그때 겪은 그…… 아니, 뭔가 조금 달라.’
허벅지와 팔뚝에 힘이 들어갔다. 움찔움찔, 사타구니 쪽 근육과 등허리를 경련하듯 떨어 대니 낮은 웃음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제 동생 맛있나요?」
「푸…… 하!」
동시에 꼬맹이가 입술을 떼어 냈다. 뱀 새끼는 기특하다는 표정을 짓고선 꼬맹이의 뺨을 슥슥 쓸어 주었다. 물론, 나를 잡고 있던 손도 사라졌다. 마음 같아선 두 새끼 모두 당장 곤죽을 내 버리고 싶은데 아랫배를 울려 대는 자극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젠냐. 네 부군이 아주 만족하고 계신 것 같구나.」
「하아, 하아…… 네, 네에…….」
만족? 개소리. 오히려 반대겠지.
아랫배의 이 뜨거운 울림은 명백한 거부였다. 내게 들어오려는 가이딩을 마치 독극물 취급하며 몸에서 나가라고 밀어내고 있는 거다. 에스퍼에겐 절대적으로 명약일 수밖에 없는 가이드의 가이딩을 말이다.
“큭……!”
고통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러나 내 사정을 다르게 오해한 뱀 새끼는 전부 해결됐다는 얼굴로 급히 몸을 일으켜 기자들을 향해 주절주절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젠냐 아쿠벨과 낙유성 에스퍼가…….」
분명 날조 가득한 개소리인데 나는 부정 한 번을 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 빌어먹을 통증을 억누르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으니까. 나는 절치부심하며 이를 악물고, 식은땀을 뻘뻘 흘려 댔다.
「저어기, 괜…… 찮아요?」
그때 꼬맹이 녀석이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렸다. 주둥이 한 번-그것도 나는 강제적으로-비볐다고 일방적인 친밀감이라도 쌓은 건지, 이젠 아주 덥석덥석 만져 온다.
「열이 나는 거 같…… 은데…….」
그리고 토옥, 하얗고 작은 손이 내 뺨을 어루만진 순간이었다.
“……웁.”
아까의 입맞춤이 떠오르며 참을 수 없는 구역질이 치고 올라왔다. 미끄덩거리던 감촉, 습한 숨결, 섞이지 못한 기운, 그리고 아랫배의 기분 나쁜 열감까지. 모든 게 엿 같았다.
「해서, 두 사람의 입맞춤이 세계를 구원할-!」
“우웨엑!”
컥, 컥! 우웩, 끄으, 흐, 크, 웩-!
등이 크게 들썩였다. 나는 바닥으로 엎어져 속에 있던 모든 것을 게워 냈다. 뇌랑 척추, 아니, 몸속 모든 장기가 튀어나올 만큼 격한 구역질이었다.
“허억, 헉, 으흐…… 하아, 학.”
한참을 꺽꺽 괴로워하다 노란 위액마저 뱉어 내고서야 지긋지긋한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
「…….」
그야말로 정적.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소름 끼치는 침묵이 사방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러다…….
「……힉.」
딸꾹.
「끅, 힉…… 힉, 흐…… 으……!」
회담장에 울려 퍼지는 딸꾹질 섞인 울음소리.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보이는 건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꼬맹이 녀석이었다. 녀석은 벌겋게 익은 채 몸을 바들거리다 엉엉 울음을 터뜨리며 내게 원망 섞인 저주를 퍼부어 댔다.
「최악이야! 흐윽…… 죽어, 버려!」
대꾸할 힘조차 없어 그저 숨을 몰아쉬고 있자니 에스퍼의 성난 기운이 찌릿할 정도로 느껴졌다.
「……지금 뭐 하는 거죠?」
본능적으로 반응하려던 찰나, 불쑥 튀어나온 손이 내 멱살을 잡아 올렸다. 꺼지라며 손을 쳐 내든가 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남아 있는 힘이 없었다. 싸움은커녕 축 늘어진 몸은 간헐적으로 떨리기까지 했다.
‘젠장…….’
나는 인상을 찡그리고서 뱀 새끼와 시선을 마주했다.
「지금 도대체 뭐 하시는 거냐 물었습니다.」
시뻘게진 눈동자가 번들거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토를…… 하죠?」
“…….”
「왜?」
찰칵, 찰칵! 다시금 셔터 소리가 배경음처럼 깔렸다.
「왜냐니까?」
“놔…….”
「왜!!」
아쿠벨의 뱀 새끼가 목에 핏대를 세운 채 소리를 내질렀다. 쩍 벌려진 입안이 징그러웠다. 새하얀 이와 빨갛고 질척이는 혀가 꼭 괴물처럼 보였다.
「저기 찍고 있잖아. 우리의 응? 좋은 화합을 보여 주기 알맞은 타이밍이었는데 왜, 왜 토를 하죠? 네? 이봐요, 낙유성 에스퍼. 이러면 내가 뭐가 됩니까. 이러면 아쿠벨이 뭐가 되냐고!」
놈은 눈에 뵈는 게 없다는 듯 화를 쏟아 냈다.
「내 동생의 맛이 그렇게 별로였습니까? 기자들 앞에서 토를 할 만큼? 그래도 참았어야지. 뒷골목 창놈 새끼만큼 맛이 없어도 지금은 참았어야지! ……하아, 설마 아직 후유증이 남아 있는 거예요? 당신 정상은 맞아? 괜찮은 거 맞죠?]
흔들리는 고개 때문에 멀미가 일었다.
“놔…… 윽.”
「괜찮다고 해 봐요. 아니, 괜찮아야지. 내가 뭘 포기하고 당신을 선택했는데. 이러면 안 되지. 그럼 우리 계산이 안 맞잖아. 나는 브릭트스컴트를 버리고 너를 잡았다고. 근데 이러면 내가 곤란하잖아?」
“하아, 씹…….”
「네게 내 빌어먹을 동생을 붙여 주려 했는데 왜 이러는 거야. 우리 함께 세상의 주인이 되어야지! 그래야지! 언제까지 이 좁은 한국 땅에만 있을 거야, 내가 날개를 달아 주겠다니까? 그러니까 보여 달라고요. 당신의 힘! 가능성! 어?」
쉬지 않고 떠들어 대던 놈은 갑자기 말을 뚝 멈추더니 숨을 골랐다. 크게 부풀었다 꺼지는 가슴과 굵은 핏대가 불룩 솟은 이마, 좌우로 죽죽 늘어뜨리는 입술. 모든 행동이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으음, 으음! 아냐, 아냐아냐. 침착해. 그래, 그래요. 아직 기회는 있어.」
혼잣말을 중얼거린 놈이 이내 나를 던전으로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래요. 생각해 보니 그럴 수 있습니다. 토할 수 있지. 당신이 최근 큰일을 겪었다는 거 모르는 사람 없잖아. 잘 둘러댈 수 있습니다. 기사 사진은 걱정 마세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 저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와요.]
마구잡이로 끌려가는 통에 몸 이곳저곳이 쓸리고 부딪쳤다.
「SS급의 명성을 보여 달란 말입니다. 당신의 값어치만 증명해 주면 돼. 그럼 그깟 토? 아무것도 아냐. 젠냐가 부족한 거라고 생각할게요.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그래요. 그러니까 가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화려하게 던전을 클…….]
나불대던 놈의 입이 다물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놈에게서 벗어나려고 온갖 발악을 해 댔기 때문이다. 다리를 허우적거리고, 놈의 손등을 긁어 대며 마구 난동을 피웠다. 평판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신경 쓸 겨를이 없다’가 맞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던전이 가까워질수록 잊고 있던 고통을 또다시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가이드 없는 세계의 이물질 에스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