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마치 비에 푹 젖은 강아지 같은 얼굴. 나는 한껏 예민해졌던 감각이 시들하니 식는 걸 느꼈다. 한참 어린 꼬맹이랑 쓸데없는 자존심 싸움을 한 것 같아 묘한 현타까지 찾아왔다.
사실 송여환과 그리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이상하리만치 놈이 어려 보였다.
“안 돼?”
“어.”
“따악 한 번도오?”
“…….”
강아지 꼬리라도 밟은 것 같은 이 묘한 죄책감은 뭐지? 송여환이 입술을 말아 물며 초조하게 재촉해 오는 걸 본 나는 짜증스레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러나 욕설을 중얼거리는 입과 달리 몸은 착실하게 놈의 옆자리로 가 주저앉았다.
그래, 이건 전부 송여환에게 가진 부채감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하는 행동일 뿐이다. 이 녀석에겐…… 갚아야 할 게 꽤 있으니까.
“국 먼저 먹어 봐.”
송여환은 나를 흘끔거리곤 조심스레 권했다. 헤실헤실 웃는 얼굴이 얄미웠지만 이미 앉은 거, 몇 수저는 떠야 만족하겠거니 싶어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수저를 들었다. 진한 녹빛을 띠는 미역국은 냄새가 참 고소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국을 망설임 없이 떠 입에 넣었다. 어차피 별맛도 못 느낄 게 뻔한데 뭐…… 라고 생각한 나는 순간 두 눈을 크게 떴다.
‘맛있다.’
약간 짭조름하면서도 시원하고,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맛. 잃어버렸던 입맛이 싹 돌아오는 그런 맛이었다. 특별하진 않았지만 기본기가 충실하다고 해야 할까? 눅진눅진한 미역이 혀를 자극했다.
아무 말 없이 한 수저 더 뜨자 송여환이 입을 크게 벌려 웃는다.
“입에 맞아?”
“…….”
“그랬으면 좋겠네.”
나와 송여환은 아무 말 없이 식사를 이어 갔다. 대화 한마디 없는 침묵 속의 시간이 딱히 불편하거나 거슬리진 않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한 공기를 전부 비웠다. 나는 손으로 아랫배를 살살 문질렀다. 배가 부르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었다.
“한 그릇 더 줄까?”
가만히 고개를 내젓자 송여환은 내가 싹 비워 낸 그릇을 보곤 자신의 손맛이 남다르다며 자랑을 해 왔다. 그러다가 돌연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이 미역국, 사실 우리 집에선 용기를 내야 할 때마다 먹는 음식인 거 알아?”
송여환은 물을 마시며 말을 고르더니 아주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엄마 말이야, 맨 처음 형이랑 누나 낳고 엄청 울었대. 으음, 뭐라고 해야 하지? 그냥 너무 무서웠대. 부모가 된다는 것도, 애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용기가 안 났다더라고. 거기다 애를 안아 봐도 행복감보단 두려움만 커져서 더 놀라셨나 봐.”
우리 엄마 안쓰럽지 않냐며 송여환이 눈꼬리를 축 내렸다.
“주변에서는 아이 낳는 고생, 아이 얼굴 보면 싹 날아간다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지. 혹시 내게는 모성애가 부족한 게 아닐까? 싶은 고민도 생기고 뭐 여러모로 힘드셨나 봐. 엄마 말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커서 많이 혼란스러웠대. 사실 그게 당연한 건데 말이야…….”
뽀드득. 놈이 물잔 입구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조용한 집 안, 마찰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그러다 아빠가 미역국을 끓여 왔는데, 그게 너무 맛이 없었나 봐. 간이 하나도 안 맞았다나? 너무 싱거웠대.”
나는 녀석을 말없이 쳐다봤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나는 놈답게 가족 얘기를 하는 모습이 퍽 즐거워 보였다.
“근데 또 아빠는 혼자 뒤돌아서 잘 먹는 거야. 엄마 입장에선 뭐…… 내가 산모라 패스트푸드 같은 거 못 먹으니, 아빠가 몰래 먹나 보다 싶어서 한 입 달라고 등을 툭툭 쳤대. 근데, 아빠가 엄청 울고 있더라는 거야. 완전 쭈글쭈글해져서!”
송여환은 나를 보며 크게 와하학 소리 내 웃었다.
“나름 억울하셨나 봐. 분명 레시피 열 번은 정독했는데 왜 맛이 없냐고. 아빠 생각에 국 하나도 제대로 못 끓여 주는 남자 따위, 엄마한테 믿음을 전혀 주지 못하는 게 아닐까…… 뭐, 그런 걱정을 했대. 너무 한심했다나?”
믿음……? 나도 모르게 전부 비운 국그릇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럼 송여환은 내게 믿음을 준 건가, 싶은 싱거운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완전 애처럼 꺼이꺼이 우셨대. 울 아빠 짱 귀엽지. 아, 근데 더 재밌는 건 형도 누나도 아빠가 우니까 따라서 엉엉 울고 난리가 났다는 거야. 다들 완전 콧물, 눈물범벅인데…… 엄마는 그때 속으로 그 생각을 하셨대.”
“……?”
가볍게 떠들어 대던 송여환이 문득 내게 시선을 맞춰 오며 천천히, 한 자 한 자 힘을 줘 말했다.
“평생을 지켜 주고 싶다.”
그 눈빛이 낯간지러울 만큼 따듯해 나는 괜히 멋쩍어지는 기분에 시선을 피했다. 옆에서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모른 척했다.
“하하, 으음…… 아무튼 엄마는 그때부터 뭔가가 두렵거나 망설임이 생길 때마다 미역국을 드셨어. 엄마만의 각오를 다지는 법인가 봐.”
송여환은 어깨를 으쓱이며 개운한 표정으로 나머지 말을 이었다.
“내가 태어날 때도, 내가 아플 때도, 내가 에스퍼로 각성이 되었을 때도, 첫 던전에 들어갔을 때도, 엄마는 늘 딱 한 그릇을 비울 동안만 우셨고, 망설이셨지. 그렇게 깨끗하게 비우고 나면 누구보다 단단해지셨어. 나도 그래. 여기 오기 전에 사실 미역국 한 그릇 먹고 왔어.”
기지개를 쭉 편 송여환이 말을 끝맺었다.
“조금 더 일찍 눈을 뜰 걸 후회해. 그럼 너한테 하루라도 빨리 찾아왔을 텐데.”
나를 보는 놈의 시선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했다.
“나는 항상 조금 늦는 거 같아.”
픽 웃으며 중얼거린 말에 나는 대꾸 없이 시선을 내려 다 먹은 그릇을 다시 쳐다봤다.
배가 부르니 속이 따뜻해지고, 속이 따뜻해지니 작은 여유가 돌아왔다. 또 여유가 돌아오니 계속 도피했던 현실을 서서히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집 안 곳곳 보이는 ‘지선우’의 흔적 말이다.
또다시 마음이 술렁이던 그때, 따뜻한 손이 내 어깨를 감싸 왔다.
“용기를 내야 할 때는 내야 해.”
“…….”
“얘기해 줘. 내가 정신을 잃고 난 후의…… 그날의 마지막 일.”
“…….”
“나랑 같이 감당하자. 형.”
왜 내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저 같이 살아 돌아왔다는 유대감 때문일까? 겨우 그런 거라면 나는 사양하고 싶었다. 그런 걸로 감정을 나누고 싶지 않았으므로.
내가 송여환에게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부채감뿐이다. 더군다나 나는 혼자가 편하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그러니까, 이런 거리감을 좁혀 오는 행동 따위, 불편할…… 뿐일 텐데.
송여환은 아주 천천히 내 어깨를 당겨 아예 제 품으로 끌어안았다. 나와 비슷한 체구의 딱딱하기만 한 품이 이상할 정도로 아늑했다. 코끝에 닿는 송여환 특유의 체취가 역겹지 않았다.
‘……햇살 냄새 같네.’
나는 놈에게로 체중을 실었다. 옅게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모른 체하며.
“같이 이겨 내자, 유성이 형.”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날의 진실. 오로지 나만 알고 있는 지선우의 마지막. ……나만이 기억하는 형의 죽음.
나는 몇 번이나 입술을 벙긋거렸다. 어쩌면 민망할 수도 있는 긴 침묵의 시간을 놈은 별다른 불평 없이 기다려 줬다.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는 손길이 퍽 조심스러웠다.
평소와 달리 나는 놈을 거부하지 않았다. 꺼지라며 욕을 하지도, 껴안은 몸을 밀어내지도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편했다. 나는 한참이나 말을 고르다 나지막이 운을 뗐다.
“그날…….”
긴 얘기였다. 어쩌면 긴 죄의 고백일 수도 있고. 송여환은 추임새 하나 없이 가만히 내 얘기를 전부 들어 줬다.
“나는 선우 형을 버리려고 생각했었는데, 형은 망설임 없이 자기를 희생했지.”
현실로 돌아와 매일 밤 달라지길 빌던, 그날의 결말. 그러나 당연하게도 정해진 결말이 변하는 일은 없었다.
“형 부모님께도 사실을 전하지 못했고.”
송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하다는 게 전부 옳은 건 아니니까. 증명할 수 없는 진실은 혼란만 가져올 뿐이잖아. ……선우 형님 부모님에 대해선 조금 더 생각해 보자.”
나는 가만히 송여환의 말을 듣다 놈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무거울 텐데도 놈은 가뿐히 나를 받치고 있었다.
“내 탓 안 해?”
“뭘.”
“선-”
“선우 형님 그렇게 된 게 왜 네 탓이야.”
송여환은 재빨리 내 죄책감을 끊어 내며 말했다.
“다른 건 다해도, 자학은 하지 마.”
덤덤한 목소리. 하지만 나를 감싼 송여환의 손에는 강한 힘이 들어갔다.
나는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마 긍정할 순 없어도 정일문이 내게서 지선우의 흔적을 빼앗아 가려 했던 그때와 달리 송여환의 접근은 그다지 불쾌하지 않았다. 아니, 조금은 위로를 받은 것 같기도 했다.
……위로. 위로라.
“같이 하나둘씩 천천히 해 나가 보자.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부 해결될 거야. 아, 일단 협회랑 우리 회사랑 얘기를 나눠 보려고. 현실적인 문제부터 해결하고 가야 편…… 응? 뭐지, 왜 웃을까?”
“그냥.”
“그냥이 어딨어.”
송여환이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빨리, 얘기해 줘.”
닿아 오는 숨결에 나는 몸을 움찔하곤 송여환을 밀어내려 했다. 안겨 있다는 자각이 들자 익숙지 않은 간질거림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녀석은 나를 놓질 않았다. 되레 밀어내지 말라며 더더욱 내게 파고들어 왔다. 마치 큰 개 같았다. 애교 많고, 사람 좋아하는 골든리트리버 같은 큰 개. 나는 밀어내던 것을 멈추곤 조금의 멋쩍음을 담아 얘기했다.
“싫어하는 놈한테 이렇게까지 위로를 해 준다는 게 대단하다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