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으음…….”
낙유성은 목을 울리더니 송여환을 자연스럽게 끌어안았다. 단단하고 커다란 가슴이 안면을 꾹 눌렀다.
‘허어업- 형, 근육이 끝내줘요.’
송여환은 생선을 발견한 도둑고양이처럼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양손을 주먹 쥔 채 턱 아래에 모으고 최대한 몸을 움츠려 낙유성의 ‘포상’을 한껏 즐겼다. 글러 먹었다는 자각은 있으나 후회는 없었다. 말했지 않은가,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몇 년 동안 햄스터 고환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면 이렇게 된다고.
자는 사람인데 뭐 하는 짓이냐고? 양심 없냐고?
‘응! 없다-!’
“헤헤헤헤.”
눈뜨시면 자진 신고하고 뚜드려 맞겠습니다. 송여환은 악어의 눈물을 줄줄 흘리며 다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송여환은 어색하게 웃었다.
‘이거…… 진짜 약간, 위험한데.’
장난 아니라 진심으로 남자의 한계를 시험받는 느낌에 송여환은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진짜 행복하고 좋은데, 진짜 행복해서 죽을 것 같다. 이것이 호상이란 걸까……?’
후덥지근해진 공기, 묵직해진 아랫도리, 끊기기 직전의 이성.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져 송여환을 계속해서 괴롭혀 댔다.
‘음…….’
시간이 지날수록 포상은 고문이 됐다.
‘X됐다. 애국가 사 절까지 외워도 안 돼.’
화장실이 너무 급했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 변태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마지막 인간성을 지켜 내고자 송여환이 눈물을 머금고 낙유성을 밀어내려던 찰나였다.
“좀…….”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낙유성이 침대에서 기어 나가려던 송여환을 꽉 옭아맸다. 완벽한 구속이었다. 힘을 세게 주어도 풀리질 않았다.
‘이 형…… 힘이!’
송여환은 급한 아랫도리 사정을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봐주지 않고 몸을 버둥거렸다. 그러나 상대는 꿈적하지 않았다. 그저 좋았던 낙유성의 근육들이 이젠 두려웠다.
‘와, 이 형 팔뚝으로 힘들어 가는 거 보소.’
만약 낙유성이 눈을 떴는데 아랫도리를 푹 적신 자신을 발견한다면…….
‘살해당한다!’
송여환은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젠장!’
어떻게든 벗어나야 했다. 그저 안겨 있다 들켜서 몇 대 뚜드려 맞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송여환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시 한번 낙유성을 낑낑 밀어냈다.
‘너랑 결혼도 못 했는데 이대로 죽을까 보냐!’
원대한 꿈을 이루기 전에는 못 죽는다. 각오를 다지고서 한참 씨름을 하던 중이었다.
“……왜, 잠이 안 와?”
불쑥, 아주 낯설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읍!”
큰 손이 뒤통수를 부드럽게 감싸며 입을 맞춰 왔다. 송여환의 두 눈이 튀어나올 만큼 커졌다. 어두운 방, 하나의 침대 위에서 짝사랑하던 상대와 입을 맞추고 있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무슨 잠꼬대를 이렇게 감사하게 해?!’
상대도 확인하지 않고 냅다 입술부터 박아 보는 남자가 좋냐? 두툼한 팔뚝으로 끌어안고, 조금 강압적으로 하는 키스가 그렇게 흥분되냔 말이다! 일반적인 도덕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절대 공감 못 할 이런 비동의적, 경박스러운 잠꼬대가 서프라이즈 선물같이 느껴지다니 제정신인 거냐고, 송여환!
‘……너무 좋은데요? 꺄홀~’
사실 눈을 감은 채 하는 입맞춤이라고 우습게 봤다. 기껏해야 입술 표면 좀 몇 번 빨아 보는 게 전부겠거니 생각했단 말이다. 그런데…… 이 남자, 생각보다 진심이었다.
“하아, 으…… 음.”
입술을 가르고 들어오는 뜨거운 살덩이 하나에 송여환은 허벅지를 바르르 떨었다. 축축하고 습한 낙유성의 혀가 입안을 가득 채우는 자극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잘생긴 남자는 거기 말고 혀도 큰 건지, 눈이 회까닥 뒤집힐 만큼 입안을 능숙히 압박해 왔다.
“응, 음…….”
송여환의 눈가가 발그레하게 물들어 갔다. 기다란 속눈썹이 파들거리고, 하얀 뺨은 한 번 깨물면 달큼한 과즙이 나올 만큼 먹음직스러운 복숭아같이 변했다.
여유를 즐기는 자신과는 다른, 다정한 듯 거친 스타일의 키스 방법이 나쁘지 않았다. 사람의 타액이 이토록 달게 느껴지는 것도 신기했다. 꼴깍꼴깍, 잘도 넘어간다. 절로 올라간 손이 낙유성의 몸을 더듬었다. 어깨, 날갯죽지, 허리 등등. 평소보다 높게 느껴지는 체온이 귀여웠다.
‘아기도 아니고, 잠 좀 잤다고 열이 오른 건가? 키스는 짐승처럼 하면서.’
송여환의 입꼬리가 짧게 올라갔다. 반면 똑같이 제 몸을, 그것도 엉덩이를 집요하게 더듬는 손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낙유성이니 뭐, 나쁘진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슬슬…… 폭발하겠는데?’
질척해진 입술을 떼어 내며 송여환은 자극이 극한에 달한 아랫도리에 곤란한 얼굴을 했다. 이대로 덮치지 않은 것만 해도 솔직히 평화상을 받을 만큼 대단하다 생각되지만…….
‘역시, 일단 살고 보자.’
송여환은 ‘주인분? 죄송합니다만 한계랄까요’ 하며 꺼떡거리는 제 아랫도리에 ‘아,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사장님!’ 사정사정하며 가까스로 낙유성을 밀쳐 냈다.
“화장실, 화장실…….”
그리고 빠르게 방을 나서려는데, 뒤에서 뒤척이는 소리와 함께 절망적인 한마디가 들려왔다.
“으음…… 선우야.”
방문을 잡은 송여환의 손이 움찔했다.
“…….”
그럼 방금 그 키스는……. 아. 짧은 탄식과 함께 송여환의 입매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이거…… 애국가보다 더한 효과가 있네.’
쯧,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 쓰린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젠장…….”
송여환은 그대로 주저앉아 무릎에 고개를 파묻었다.
‘미워 죽겠다, 낙유성.’
* * *
‘……워. ……더워.’
심각한 더위가 느껴졌다.
‘……뜨거워.’
꼭 불가마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다. 아니면 불에 달궈진 돌덩이가 나를 꽉 끌어안고 있다거나. 나는 이 더위를 떨치기 위해 몸을 비틀어 댔다.
젠장, 뭐지? 집이 이렇게 더웠나. 보일러는커녕 전기장판도 없는데. 찬 기운만 넘실거리는 집 안에 이토록 뜨거운 게 있다니. 나는 계속해서 몸을 뒤척거렸다. 하지만 딱딱하고 뜨거운 더위는 떨어질 생각이 없다는 양 더욱 찰싹 붙어 왔다.
“음…….”
목에서 절로 짜증 섞인 신음이 흘렀다. 아, 되게 귀찮게 구네. 더워, 덥다고! 나는 팔로 더위를 마구 밀어냈지만, 등에 거머리처럼 붙어 다리까지 꽉 옭아맨 그것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으…… 더, 음…….”
“더워? 찬 바람 불어 줄까?”
“응…….”
“호오~ 호오~”
후끈함이 가득한 목뒤로 시원한 바람이 닿자 소름이 돋았다.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고, 등허리 아래로 개미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간질거림이 느껴진다. 그 차가움이 꿈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정신을 단박에 현실로 훅 끌고 올라왔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시선을 내렸다. 토닥토닥, 나를 감싼 채 배를 두드리는 하얗고 커다란 손.
“…….”
조용히 고개를 돌리자 팔의 주인이 멈칫하는가 싶더니 약간 주눅이 든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구, 굿 이브…… 닝?”
“……이, 썅…….”
“……수술한 곳만 피해서 때려 주면…… 갸아악!”
힘껏 꺾은 고개 뒤로 뻐억! 박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쓰흐, 아무래도 부러진 것 같은데 이거. 내 잘난 콧대 어쩔 거야…….”
송여환이 콧대를 만지작거리며 계속해서 볼멘소리를 했으나 나는 놈을 무시한 채 냉수를 들이켰다. 차가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 들끓던 속을 식게 만들자 한결 기분이 가라앉는다.
나는 컵을 내려놓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낮과 달리 새까만 하늘 위로 둥근 달이 떠 있었다.
“안 가냐.”
내 질문에 송여환이 뾰족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가겠냐?”
그러고선 깔끔해진 거실을 가로질러 부엌으로 향했다. 제집처럼 행동하는 모양새가 뻔뻔했다. 청소는 또 언제 한 거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뒤에서 송여환이 벼락같이 나를 불렀다.
“어딜 가! 밥 먹어!”
“……뭐?”
“아뜨뜨! 비켜, 비켜!”
호들갑을 떨어 댄 놈이 가지고 나온 건 지글지글 끓고 있는 뚝배기 미역국이었다. 식탁도 아닌 거실 테이블 위로 뚝배기를 올린 송여환은 곧 어묵볶음, 계란프라이, 고사리무침, 더덕구이 등등. 잡다한 반찬까지 작은 그릇에 올려 조신한 걸음으로 한 상을 내왔다.
얼이 빠진 나는 놈의 해괴한 짓거리를 말리지도 못하고 그저 방관했다.
“뭐 해. 식어. 빨리 와.”
송여환이 나를 향해 손을 파닥파닥 흔든다.
“너…….”
“직접 한 거야. 완전 구렁이, 아니…… 구렁이는 내 아래고, 난 우렁이.”
“아니, 씹, 너. 하아…….”
어디서부터 화를 내야 할지 몰라 혼란에 빠졌다. 그런데 이 사고뭉치 녀석은 되레 나를 재촉하며 제 옆자리를 팡팡 내려쳤다.
“아- 식는다고.”
허, 이젠 아주 짜증까지 낸다. 나는 제자리에 서서 입술만 벙긋거렸다. 입맛이 없는 건 둘째치고, 이 집 안에서 지선우가 아닌 타인과 단둘이 밥을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낯설었다. 이상하고, 말이 안 됐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나는 송여환을 향해 적당히 하라는 경고를 던지려 했다. 그런데 놈이 검지를 슥 올리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애원했다.
“한 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