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우웁! 읍!’
양손을 허공에서 휘적휘적 저으며 무력하게 입안을 빼앗긴 송여환은 문득 제 몸의 힘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엔 당황해서 알아채지 못했는데 입맞춤이 길어질수록 힘의 흐름을 알아챘다.
그런 두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자얀이 예리한 눈썰미로 무언가를 알아냈다.
‘[……하?]’
놀랍게도 입맞춤이 지속되어 갈수록 낙유성은 회복을 하고 있었다. 얼굴의 멍이나 찢어진 피부 따위가 그랬다. 또한 느껴지는 에스퍼의 사나운 기운도 잠잠해지고 있었다.
‘[이런 기생충 같은 게…….]’
자얀은 비틀린 웃음을 짓더니 송여환에게 붙어 있는 낙유성의 머리통을 콱 잡아당겼다.
‘아…….’
흐리멍덩한 얼굴이 자얀을 향했다. 발그레한 뺨과 침으로 축축하게 젖은 입술이 무척이나 싸게 보였다.
‘[천박한 게 잘 어울려. 네가 원하는 만큼 나를 줄 테니까, 정신 차리면 꼬마에 대해 불어.]’
‘아, 으, 읍……!’
자얀은 일그러뜨린 웃음을 짓곤 낙유성을 잡아먹을 듯 몰아붙였다. 크게 입을 벌려 상대가 들어오기 쉽게 배려하는가 하면, 또 반대로 두툼한 살덩이를 마구잡이로 얽으며 압박을 하기도 했다.
한참을 질척한 소리를 내다 고개를 비틀어 고여 있는 모든 타액을 빨아 먹었다. 두 사람의 울대가 바쁘게 움직였다. 목에 핏대를 바짝 세우고 낙유성의 목덜미부터 턱 부근, 뺨까지 손으로 감싸 잡은 자얀은 숨을 고를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거친 입맞춤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신음이 흘러나왔다. 더운 공기가 훅 퍼지고, 송여환은 손등으로 입술을 가린 채 그런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터져 버릴 듯이 크게 뛰는 심장을 여실히 느끼며.
질투인지 낙유성을 향한 더러운 집착인지 그로선 알 길이 없었다. 그냥, 눈앞의 광경이 너무 보기 싫었다. 제 것이 아닌데도, 제 것을 빼앗긴 느낌이 들어 불쾌하고 화가 났다.
‘적당히 해.’
송여환이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둘을 떼어 놨다.
‘[하, 지금 무슨 치정 싸움하나?]’
‘이봐, 형씨. 마지막 경고야.’
‘[이러다 혼나? 강아지야.]’
공기의 흐름이 팽팽하게 당겨진 때였다.
‘흣…….’
낙유성에게서 흐린 음성이 새어 나왔다.
‘……내가, 아니야…….’
그는 악몽을 꾸는 것처럼 두 눈을 질끈 감고 횡설수설 말을 뱉었다. 쏟아져 나오는 말에는 두서가 없었다. 중간중간은 아예 발음이 뭉개져 신음 같았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를 비집고 기어 나오는 단어들이 자얀의 귀에 정확히 꽂혔다. 지선우, 그리고 뤙. 낙유성은 헐떡거리며 애원하듯 중얼거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꾸준히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사색이 된 송여환이 낙유성을 추스를 동안 자얀은 그가 뱉은 단어들을 곱씹었다.
‘[……뤙…….]’
자얀의 눈이 가늘어지다 크게 뜨였다.
‘[……설마, 하, 그래…… 그렇군.]’
집요한 남자는 비상한 눈치로 끝끝내 정답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비틀린 웃음을 지은 그의 고개가 저 너머 어딘가로 향했다.
‘[가족들의 무덤을 보러 갈 핑계가 생겼군.]’
그 후로는 간단했다. 자얀은 바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마을을 그려 송여환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더 이상 낙유성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는 뜻으로 한발 물러서는 모습까지 보였다.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았으나 당장 위태로운 낙유성의 상태 때문에 송여환은 알고도 속아 주는 마음으로 그를 따랐다. 또한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세계에서 현지인이라 할 수 있는 자얀의 곁을 떠나는 건 아주 멍청한 짓이었으니까.
그렇게 세 사람, 정확히는 한 사람을 업은 두 사람은 오가는 대화 없이 온종일 걷고, 또 걷는 걸 반복했다.
송여환은 긴 거리를 걸으며 단 한 번도 자얀에게 낙유성을 넘기지 않았다. 자얀 역시 송여환이 알아서 짐 덩이를 떠맡아 주겠다는데 거절할 필요는 없었기에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반응을 끝냈다.
여정은 쉽지 않았다. 몇 번은 길을 잘못 들어서 며칠이나 걸어왔던 거리를 되돌아가기도 해야 했다. 와중에 낙유성은 밤이 되면 죽은 듯 감고 있던 눈을 떠 모자란 힘을 갈구했는데, 도저히 그가 타인과 붙어먹는 걸 볼 수 없었던 송여환은 제힘만을 나눠 주려 했다.
낮에는 낙유성을 업은 채 횡단하고 밤에는 힘을 나눠 주느라 송여환 역시 시간이 갈수록 한계에 다다랐지만, 사랑의 힘인지 뭔지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채 동경의 코앞까지 올 수 있었다. 애지중지하는 모습은 천하의 자얀까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러니 그런 고생을 해 지켜 온 만큼 낙유성이 눈을 떴을 때 감격의 눈물이라도 줄줄 흘리든가, 아니면 그에 걸맞은 대가라도 요구할 줄 알았는데 이 재미 없는 남자는 생색 한 번을 낼 줄 몰랐다. 그저 배시시 웃으며 ‘안녕, 낙유성’ 한마디만을 건넬 뿐이었다.
* * *
동경.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떠한 반응도 보일 수가 없었다. 그저 눈앞에 떡하니 존재하는 스산한 기운의 요새를 멍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사실 아직도 무언가를 생각하기엔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두통에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자동으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봐, 도련님. 어디까지 기억나지?]
딱딱, 은발이 핑거 스냅으로 주의를 끌곤 능글맞게 물어 왔다. 히죽 올린 입꼬리가 한 대 쳐 버리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억? 무슨 기억을 묻는 거지?’
짜증스러운 한숨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머릿속 어디에선가 희미한 빗소리가 재생됐다.
‘죽어. 죽어서 사죄해!’
거대한 돌을 들고 나를 노려보는 지선우.
“아…….”
작은 탄식이 터졌다. 그제야 나는 서서히 몸을 타고 올라오는 따뜻한 온기를 눈치챘다. 몸에 피가 도는 게 느껴졌다. ……나, 살았구나.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이어 잇새로 욕설이 흘렀다. 완벽하게 끝났을 거라 믿었는데 기어코 살아남다니. 정말 지긋지긋하게도 질긴 목숨 줄이었다.
어쩌면 비겁한 선택의 대가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형을 놓을 용기가 없어, 그가 끝내 주길 바라 반항 한 번을 하지 않았으니까. 찌질한 책임 전가였으나 그렇게라도 형과 내 사랑이 끝나길 바랐다.
하지만 무참히 실패. 나는 현재 상황이 너무 어지럽고 낯설었다. 분명 죽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정에 없이 살아나 버려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말 그대로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마음도, 생각도, 모두.
[이런…… 별로 기뻐 보이지 않는데? 괜한 짓을 한 건가 걱정이 되는군.]
좌절하듯 마른세수를 하는데 은발의 비아냥이 떨어졌다. 죽다 살아난 주제에 감사 인사는커녕 되레 청승을 떨어 대니 영 꼴 보기 싫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놈의 시비를 맞받아칠 여유가 한 줌도 없었다. 살아난 것도 당황스러운데 다짜고짜 동경이라니. 놈도 저곳에 퍽 좋은 기억이 있는 게 아닐 텐데……. 동경을 찾아온 이유. 아무리 멍청하다 해도 조금만 머리를 굴려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찾고 있는 거냐. 지선우.”
피곤함에 전 목소리는 탁하고 우울했다.
[그 또한 도련님한테는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닌가 봐. 으응, 유감이야.]
“확신해?”
내 물음에 은발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마도.]
저기에 지선우가……. 손등이 움찔했다. 눈을 뜨자마자 직면한 문제가 너무 버거웠다. 실제로 며칠이 흘렀든 내게는 지선우가 나를 공격한 날이 당장 어제와 같았다.
심지어 다시 눈을 뜰 거라는 생각조차 안 했기 때문에 지선우를 어떤 마음으로, 또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지 아직 감도 잡히지 않은 상태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죽음조차 허락하지 않는 걸까? 분노보단 억울함이 들었다.
솔직히 이젠 지쳤다. 그 어떤 감정의 정의도 내릴 수가 없었다. 꼭 망가진 인간이 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형에게 왜 그랬냐고 따지고 싶은 한편, 그냥 모른 척 무시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냥 내가 미친 걸까? 아니면 그 한정으로 발휘되는 호구 기가 남아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지간한 놈이라고 혀를 차도 할 말은 없다.
“하.”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무지 적극적으로 형을 찾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머리가 욱신거릴 때마다 파도 같은 배신감이 들어찼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가 증오스럽냐 묻는다면…… 글쎄, 너무 어려웠다. 한편으론 혹시 미워하고 싶으니 만나고 싶지 않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엮이게 된다면 나는 또 바보 같은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르므로.
“하아, 젠장…….”
복잡한 머릿속에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위가 쿡쿡 쑤셨다. 자칫 잘못해 정신 줄을 놓으면 그대로 미쳐 버릴 것 같아 나는 있는 힘껏 스스로를 다잡았다.
참 배알도 없지. 아니, 없는 게 배알뿐만은 아니다. 줏대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거기다 멍청하기까지. 내가 싫어하는 인간 군상의 대표가 바로 나 자신이라니 그야말로 충격이다.
나름 똑똑하다고 자부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리석기 그지없다. 이토록 미련한 인간이란 걸 미리 알았더라면 진즉에 혀 깨물고 광명이나 찾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