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송여환의 눈동자는 핏줄이 툭 터져 붉어 보였다. 사람이 너무 화가 나고 한이 맺히면 피눈물을 흘린다는데, 딱 그 짝이었다.
에스퍼가 본인의 힘을 최고치로 끌어 올리는 두 가지 방법. 폭주와 강제 각성. 송여환은 두 가지 다 겪어 본 적이 없었다. 인망이 두터워 그를 돕겠다는 가이드가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본인이 푼 힘이 어느 쪽인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눈앞의 개새끼를 처죽이고 말겠다는 분노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지막 유희는 되겠구나.」
“야, 쓰레기.”
번개를 다루는 S급 에스퍼. 두 번째 국가 레벨 능력자. 브릭트스컴트의 차남. 얼굴값 못하는 대표적인 놈. 코드번호 858-N-002: [송여환].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는 남자.
“난 한 사람한테밖에 안 져.”
보답받지 못할 사랑을 위해 그는 망설임 없이 목숨을 걸었다.
* * *
「너는 약해.」
오른팔이 잘려 나간 모습으로 오메가가 말했다. 이미 힘의 90%를 압축하여 권능을 넘긴 탓에 재생조차 하지 못하는 몸이었으나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신이었다. 비록 인간이 닿을 수 있는 위치까지 떨어지긴 했지만, 위엄을 지킬 만큼의 역량은 충분히 내고 있다는 말이다.
번개를 다루는 초월적인 힘을 지닌 인간은 그런 신에게 쉬이 유린당했다. 지지 않겠다며 큰소리를 친 것과 달리 처참할 정도였다. 물론 낙유성과 지선우, 두 사람을 지키며 싸워야 한다는 불리한 조건이 붙어 있긴 했지만.
오메가는 피범벅의 인간을 보며 나름의 칭찬을 건넸다.
「그럼에도 잘 버티는구나.」
“쿨럭, 헉…… 칭찬해도, 별로, 윽, 안 기쁜데…….”
송여환은 다 죽어 가는 모습으로도 이죽거렸다.
‘젠장, 이미 한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갓 태어난 새끼 사슴처럼 제대로 서지 못하고 몸이 휙휙 꺾였다. 대미지가 많이 축적된 탓이다. 긴장을 푼다면 구역질이 왈칵 쏟아질 만큼 피곤했다. 얄미운 팀원들이 본다면 당장 팀 리더를 그만두라고 야유를 퍼부을 정도로 멋없는 모습이었다.
송여환은 픽 입꼬리를 올렸다. 피가 흘러 들어간 한쪽 눈이 바르르 떨렸다.
‘아무래도 이젠 한계지…….’
그는 뒤돌아 쓰러져 있는 낙유성을 쳐다봤다. 죽더라도 낙유성만큼은 살리고 싶었으나 자신이 없었다. 염원한다고 이뤄질 일도 아니고.
모든 전력을 끌어내 봐도 괴물 새끼의 팔 한쪽을 날리는 게 전부다. 차이는 컸고, 당장의 극복은 어려웠다. 그렇다면 어떡해야 할까. 송여환은 색색 숨을 몰아쉬는 낙유성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와 자신은 커피 한잔 제대로 마셔 본 적 없는 사이다.
‘뭘 봐. 꺼져.’
심지어 자신만 보면 미간을 찌푸리는 놈이며, 둘 사이에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목숨을 걸 만큼 대단한 사이가 아니라는 소리다. 목매는 건 늘 자신뿐인 관계.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유? 간단하다. 쟤가 존나 예쁘니까. 어지럽던 머리가 개운해졌다.
“하, 허억…… 나, 진짜, 흐윽, 호구…… 새낀가 보다.”
뺨에 상처, 흉 지면 안 되는데……. 숨을 몰아쉬며 멍하니 생각한 송여환이 다시 한번 몸을 꼿꼿이 세웠다. 이내 그의 입에서 한 자 한 자 힘을 준 말이 뱉어졌다.
“만약에 내가 오늘 살아남는다면, 그땐 너, 절대 포기 안 한다.”
푸른 핏줄이 온몸에 도드라짐과 동시에 그의 머리 위로 세상을 뒤흔들 만한 우렁찬 우레가 울려 퍼졌다. 오메가는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모든 것이 한데 뭉쳤다.
「아름다워.」
오메가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자신조차 잠시 움찔거릴 정도의 힘이라니. 쿠르릉, 쿠르릉.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오메가는 아이처럼 환하게 웃음 지었다.
「들어 봤다. 뇌신 아래 인간들을 돌보는 용이 있다고.」
「……과연 엇비슷하게 재연했군.」
「이 몸, 몹시 즐겁다.」
「비록 전력을 낼 순 없으나, 있는 힘껏 진심을 다해 보도록 하지.」
오메가를 속박하고 있던 족쇄가 부서졌다.
「와라, 용.」
송여환은 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의 부름 아래, 여의주를 문 뇌룡이 번쩍이는 벼락불을 떨어뜨리며 나타났다. 최후의 발악이었다. 뇌룡은 오메가를 향해 아가리를 쩍 벌리고 달려들었다.
번쩍-! 주변이 하얗게 변했다. 완전한 화이트 아웃이었다.
“허억, 학…… 하악, 헉!”
쿨럭, 쿨럭! 후드득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송여환은 무릎을 꿇고 마른기침을 거세게 토해 냈다. 피는 멈추지 않고 흘렀다. 코, 눈, 귀. 넘어선 안 되는 선을 넘은 대가였다.
‘그래도…… 끝났나?’
송여환이 옅은 웃음을 지을 때였다.
「꽤나 좋은 공격이었다.」
몸의 반이 날아간 오메가가 서 있었다. 아름다운 백발과 매끄러운 피부가 타 끔찍한 모습으로 서 있는 그건 기괴 그 자체였다.
“농담이지……? 하, X발.”
송여환이 거친 욕설을 중얼거렸다.
‘이제 어쩐다…….’
최소 나라 한두 개는 없애 버릴 만큼 강력한 공격조차 통하지 않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질 않는데…….’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이제 남아 있는 카드가 없다.
“빌어도 안 봐줄 거지?”
송여환이 비실비실 웃으며 묻자 오메가가 그나마 멀쩡한 얼굴 반쪽을 일그러뜨리며 서늘히 대답했다.
「흥을 꺼뜨리지 말아라, 인간.」
사뿐히 다가온 오메가가 송여환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좋은 안식을 찾길.」
아, 약하다는 건 이토록 억울한 거구나. 낙유성을 제외하곤 이런 패배감을 안겨 줄 존재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송여환이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감기 직전이었다.
“숙여, 이 멍청아!”
외침과 함께 거대한 불꽃이 오메가를 순식간에 낚아채 날아갔다. 송여환은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정확히 목표물만을 조준한 불꽃은 늘 제게 열등감을 심어 준 한 남자의 것이 맞았다. 아니, 그 기세는 더욱 강해져 있었다. 이젠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낙유-!”
송여환이 뒤를 돌자 기절한 지선우를 끌어안고 서 있는 낙유성이 보였다.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안광을 빛내던 낙유성은 송여환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풀썩, 송여환의 옆으로 쓰러지듯 주저앉은 그가 꺼져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가자.”
낙유성은 비어 있는 다른 손으로 송여환의 머리를 잡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넓은 품이 지선우와 송여환을 품었다. 같은 에스퍼로서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지만, 송여환은 낙유성을 본 순간 ‘이젠 살았구나’ 싶었다.
‘정말 만만치 않은 놈이야, 너도. 나는 어쩌다 이런 놈에게 반해서.’
송여환은 헛웃음을 지으며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생각을 했다.
「놀라워. 벌써 내 힘을 네 것으로 만들었구나.」
후드득, 살점을 떨어뜨리며 나타난 오메가는 무언가 굉장히 개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찌 보면 흥분을 한 것 같기도 했다.
「이 몸 역시 마지막 힘. 즐거웠다, 인간들이여.」
오메가의 손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낙유성이 두 사람을 놓고 앞으로 나아가며 검붉게 일렁이는 불꽃을 만들어 냈다.
「잘 가라.」
─키잉!
“……끝내자.”
두 힘이 극한으로 크기를 키웠다. 송여환은 지선우를 보호하며 그들을 등지고 서 있는 낙유성의 허리를 다른 팔로 끌어안았다.
곧 두 힘이 맞부딪쳤다. 그렇게, 오메가의 둥지가 부서졌다. 산산조각이 나 흩어지는 광경. 그것은 오메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흩날리는 백발과 아름다운 눈동자가 허공에서 바스러졌다.
「알- 파」
노랫말 같은 오메가의 속삭임을 끝으로 괘종시계가 뎅- 소리를 내며 쩌적 갈라졌다.
* * *
“윽…….”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차가움을 느끼고 몸을 일으킨 지선우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내가 왜 여기 누워 있지?’
눈을 몇 번 깜빡이던 그는 문득 스쳐 지나가는 기억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아, 음식! 음식을 찾으려고 주변을 수색하다 이상한 지하 문을 발견하고부터……. 부터…… 왜 그다음 기억이 안 나지?’
지선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뻐근한 어깨를 휘휘 돌렸다.
그는 현대에 있을 자신의 짝과 닮은 낙유성이 신경 쓰여서 먹을 걸 구하러 갔었다. 제게 못된 짓을 하려곤 했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무섭긴 한데 이상하게 시선이 간다?
거기다 키스를 하려고 했을 때 사실은…… 믿기 힘들게도, 싫지 않았다. 눈물이 나고 몸이 벌벌 떨리긴 했는데 묘하게 그 아이의 다가섬이 익숙했다.
‘……그러고 보니 난 왜 유성이 이름을 불렀을까. 유성이가 억지로 키스하려 했을 때, 뤙을 부르며 도와 달라고 해야 하는 게 맞는데.’
끙, 소리를 내며 생각에 잠겨 있던 지선우는 무심코 시선을 돌리다 그만 짧은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피로 범벅이 된 두 사람이 엉켜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안겨 있는 쪽이 낙유성이란 사실보다, 안고 있는 쪽 때문에 놀랐다.
“여, 여, 여환아?!”
원래 살던 곳에서 보던 익숙한 얼굴이 떡하니, 그것도 대뜸 피범벅이 돼 있는데 안 놀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지선우가 버벅대며 약간의 당황스러움과 격한 반가움을 담아 다가가려던 찰나였다. 따끔할 정도로 느껴지는 폭주 후의 날카로운 기운이 공격적으로 날아왔다.
“여, 여환아?”
“하아…….”
가까이에서 본 송여환의 두 눈동자는 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틀림없는 폭주의 흔적이었다. 얌전히 앉아 있는 게 놀라울 만큼 그의 기운은 과격했다.
“하아, 하…….”
송여환은 정신을 잃은 낙유성을 꽉 끌어안고서 그의 목덜미에 코와 입술을 지분거리며 다가오는 지선우를 집요하게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