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짐승을 다루듯 채찍을 휘두르고, 인간이 아닌 샌드백을 다루는 양 주먹과 발로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이곳저곳 녹이 슨 꼬챙이로 안구를 찌르기도 했다. 놈의 몸은 끊임없이 재생했기에, 그야말로 죽여 달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올 학대였다.
하지만 놈은 그런 가학적인 괴롭힘을 어딘가 멍하니, 마치 모든 걸 포기한 표정으로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묵묵히 견뎌 냈다.
‘꼴 좋다, 병신.’
나는 벽에 머리를 기댄 채 가쁜 호흡을 뱉어 냈다. 상처로 인해 열이 오른다. 어깨가 타들어 가는 것만 같은 통증이 일었다. 또한 몸의 부담으로 인해 능력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하아…….”
X발, 체력만 회복되면 지선우를 찾아 이곳을 빠져나가야…….
‘나가서 뭘 어쩌자고? 말이 돌아가자는 거지, 결국 그 새끼를 위한 선택이었잖아. 봐. 지금도 날 찾지 않잖아.’
……아냐.
‘아아, 그래. 그 새끼가 옆에 있는데 나 따위가 생각이나 나겠어? 사실 이대로 죽어 주길 바라는 걸지도 모르지. 죄책감 없이 그 새끼한테 갈 수 있으니까.’
……그만해, 이 등신 새끼야. 나는 지끈거리는 두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몸이 아프니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의심하지 말자. 지금 형은 내게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상태일 텐데. 장발, 그 새끼한테 감금이라도 당하고 있는 거겠지. X발, 형 몸에 손가락 하나라도 대 봐. 죽여 버릴 거야. 맞아. 맞아……. 분명 형이 나를 찾고 있을 거야. 그래, 그게 맞아. ……그게 맞아야 해.
“끅, 윽!”
찡- 울리는 통증에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차라리 혀를 깨물어 버릴까, 순간 고민할 정도였다. 미간을 찌푸리고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 숨을 고르던 때였다. 여러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굳게 닫힌 감옥의 문이 열렸다.
“허억…… 헉, 하아…… 하.”
[끌고 가.]
“뭐…… 야…… 씹, 으윽!”
배려 없는 손길이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챘다. 고통에 크게 휘청이자 반항으로 알았는지 굽어 있던 등을 걷어찬다.
[빨리 걸어. 굼벵이 새끼야.]
[짐승이 두 발로 걸으려 하다니!]
놈들이 무어라 조롱 섞인 웃음을 터뜨려 댔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놈들이 질질 끄는 대로 끌려 나갔다. 감옥 안 사람들의 눈이 내게로 향했다. 그들은 웅성웅성 말을 주고받다가 나를 끌고 나온 놈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창살을 치자 급히 시선을 돌렸다.
[이 새끼는 통어를 모른답니다.]
[기본 교육조차 못 받은 놈이군. 정말 바깥 괴물과 다를 게 없어.]
[어이, 짖어 봐! 응? 끼에에엑 해야지? 동포잖아.]
마치 기름이 번들거리는 것 같은 징그러운 눈동자가 내 얼굴을 집요하게 쳐다본다. 나는 저 눈을 알고 있다. 현대 시대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실수하길 바라던 수많은 에스퍼가 꼭 저런 눈을 하고 있었다.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때는 그것들의 얼굴을 보기 좋게 뭉개 놓을 수 있었다는 거고, 지금은…….
“퉤!”
겨우 침을 뱉는 정도일까.
[이게 미쳤나!]
얼굴에 침을 맞은 놈이 내 머리통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뻑!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한 충격에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 건방진 새끼. 아주 요절을 내 버려야지. 이봐!]
나는 바닥에서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쏟아지는 발길질을 견뎌 냈다. 그 모습이 거슬렸는지, 한 놈이 넝마가 된 내 어깨를 손톱으로 꾸욱 누르며 살점을 마구 헤집기 시작했다.
고통으로 눈이 뒤집힐 것 같았으나 저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어금니가 깨질 만큼 이를 악물자 나를 둘러싼 놈들이 하던 행동을 우뚝 멈췄다.
[……독한 새끼. 거, 하는 짓 한번 재밌네.]
놈들은 신기한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들처럼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이거 입에서 비명 나오게 하는 사람이 내일 야간 보초 제외 어떱니까!]
[그거 좋네! 나와 봐, 내가 먼저 할 테니까!]
[어이! 너희도 잘 봐 둬! 어! 거기, 애새끼들도 계속 빽빽거리면 이 새끼처럼 되는 거야!]
나는 느리게 눈을 굴렸다. 모두 공포에 질려 나를 흘끔거리고 있었다. 그중 은발과도 눈이 마주쳤다. 놈은 여전히 멍한 시선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어째 그것이 조금 웃겼다. 그리고 물어보고 싶었다.
‘넌 X발 이 고통을 어떻게 버텼냐?’
수염이 길게 난 개새끼 하나가 내 뺨을 콱 쥐어 잡고 음흉하게 웃었다.
[내 차례까지 버텨. 쉽게 비명 지르면 안 된다. 응?]
‘난 뒈지게 아픈데.’
[시작해. 이 새끼, 벗겨.]
* * *
“당신들 유성이 손끝 하나라도 건드려 봐!”
지선우는 제 앞을 막고 있는 거구의 사내에게 소리를 질러 댔다. 그는 뤙의 최측근으로, 지선우를 보호·감시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자였다.
[상처가 덧날 수 있으니, 자리에 앉아 기다려 주십시오.]
사내가 지선우의 한쪽 다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상처 부위엔 아주 귀한 약초가 으깨 발렸고, 오로지 뤙에게만 사용되는 깨끗한 붕대 또한 감겨 있었다.
그러나 지선우는 그런 배려가 전혀 고맙지 않았다. 오히려 놀림을 당하고 있는 것과 진배없었다.
“유성이 데려와. 약속했잖아, 얌전히 있으면 만나게 해 주겠다고!”
얼굴이 벌게져라 소리를 지르고 있을 때였다.
[넌 그놈 얘기밖에 안 하는군.]
비처럼 눅눅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뤙.”
[언제나 그놈만 찾고 있어. 내가 버젓이 네 옆에 있는데 말이지.]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에요. 내가…… 내가 이러라고 당신을 거기서 풀어 준 줄 알아요? 어떻게 사람이 은혜를 원수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 그게 이곳의 현실이야. 걱정 마. 아직은 한 놈도 죽이지 않았으니까. 처형일은 따로 잡도록 할 거다.]
“처형…… 이라뇨. 죽인다고? 그 사람들을?”
대답이 없는 뤙을 보고 지선우가 경악했다.
“거기엔 아이들도 있어. 기껏해야…… 여, 여섯 살 정도 된.”
[…….]
“도대체 왜, 왜…… 당신들은 서로 끊임없이 상처 주는 거예요! 어째서 짐승처럼 사냥하고 죽이는 거냐고! 같은 사람이잖아. 이건 말이 안 돼. ……그래서는 안 되는 거잖아.”
겁을 집어먹은 듯 웅크려진 어깨가 가련히 떨렸다. 하얗고 작은 게 눈물도 많다. 촉촉하게 젖은 눈가가 뤙의 시선을 끌었다.
‘정말, 이 아이는 책 속에서만 봤던…… 꽃 같구나.’
뤙은 저도 모르게 지선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가 거부하듯 몸을 비틀었다. 닿는 것조차 싫다는 것처럼. 그러곤 고개를 푹 숙인 채 중얼거렸다.
“유성이랑 만나게 해 줘.”
유성. 또 그놈이었다. 거슬리는 이름. 뤙의 두 눈에 푸른 불꽃이 팍 튀어 올랐다. 그는 자신을 쳐다보지 않는 운명을 향해 다시 한번 손을 뻗었다.
[그놈을 네 앞에서 죽이면 넌 내 것이 되나?]
이성이 마비되는 분노는 낯설다. 똑똑하지 못한, 마치 어린아이의 심술 같은 이런 추하고 부끄러운 감정은 처음이었다. 고작 자신을 보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살의가 들끓다니.
“지금 뭐라고…….”
[넌 계속 그놈과 돌아가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지. 그게 나를 미치게 만든다는 걸 모르는 것 같군.]
“유성이한테 손대기만 해!”
[네 앞에서 그놈의 사지를 찢어 줄까?]
“그러기만 해, 죽여 버릴 거야!”
충격으로 눈이 커진 지선우가 뤙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씨근덕거리는 그의 모습에서 낙유성을 향한 애정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한 사내를 얼마나 미치게 만드는지도.
[나를 원하면서 떠나가려 해.]
“읏!”
[솔직해져. 네가 원하는 건 나다. 그놈이 아니라, 나라고!]
지선우의 어깨를 쥐는 뤙의 손등으로 핏줄이 바짝 솟아올랐다.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전해져 오는 강한 집착에 지선우는 흡, 숨을 들이켰다. 오로지 자신만을 담는 눈동자가 무서우면서도 묘하게 안심이 됐다. 지선우는 그런 감정이 드는 스스로가 거북해 일부러 외면했다.
“당, 당신 따위 원하지 않아. 나는 유성이랑, 그 애랑 돌아갈 거야! 내, 내가 사랑하는 건 유- 읍!”
작은 몸이 억지로 딸려 간다. 뤙은 지선우의 턱을 한 손으로 잡은 채 입을 맞췄다. 있는 힘껏 도리질을 치고, 단단한 가슴팍을 밀어내도 사내는 마치 바위처럼 꿈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이 빠지는 건 지선우 쪽이었다.
젖은 소리가 방 안을 울리고, 약한 신음이 옅게 흘러나왔다.
“하아, 하…… 응…….”
[하아…….]
입을 맞추기만 했을 뿐인데도 믿을 수 없는 큰 만족감이 들었다. 뤙은 다시 한번 눈앞의 아이에 대한 소유욕을 느꼈다. 목숨을 거는 한이 있더라도 빼앗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날 선택해. 제발, 곁에 남겠다고 말해.]
지선우의 발그레해진 하얀 뺨을 손등으로 살살 쓰다듬으며 뤙이 말했다. 그러나, 흥분과 열감으로 부들부들 떨면서도 작은 아이는 결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하면 안 돼. 나는 그럴 수 없어. ……내가 어떻게 그래. 그 애한테 어떻게 그래, 내가.”
울먹이던 지선우가 축 늘어진 손을 들어 올려 뤙의 단단한 가슴팍을 밀어냈다.
“……유성이, 한테…… 보내 줘요…… 제발.”
‘유성. 그게 네 목줄이란 말이지.’
뤙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서늘해졌다.
‘그럼 내가 끊어 주마.’
그가 문을 지키던 사내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철퍽, 한 고깃덩이가 들어왔다. 그렇게밖에 표현되지 못했다.
“……!”
지선우는 몸을 덜덜 떨며 고깃덩이 앞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