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쓸데없이 힘 빼네.’
어차피 저들이 뭘 하든 나와 관계없으니 약간 모자란 건가, 생각하며 관심을 껐다. 적어도 저 쓰레기 같은 것들이 식탁 위로 올라오기 전까진 말이다.
“웁!”
덜컹, 식탁이 흔들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으나 나는 그런 것들을 전혀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손등으로 입을 막은 채 헛구역질을 참는 데만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친 새끼들!’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X발!’
나는 또 한 번 속으로 욕을 중얼거리며 믿기지 않는단 표정으로 내 앞에 놓인 낡은 철통을 내려다봤다. 그곳에는 아까 잡은 지네 몬스터의 조각난 시체가 담겨 있었다. 조리한 것처럼 보이는 게 더욱 끔찍했다. 설마 내게 처음 건넸던 음식도 이런 거였나?
“제정신이 아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괴물 시체를 먹는 사람들을 훑어봤다. 누더기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철통 혹은 이가 나간 그릇에 담긴 괴물 시체를 거부감 없이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으…… 아무래도 이곳엔 먹을 게 없다 보니 이런 식으로 음식을 구하나 봐.”
“너 미쳤냐? 먹지 마!”
나는 괴물 시체를 먹으려는 지선우를 뜯어말렸다. 기겁한 내 표정을 본 지선우가 민망해하며 웃었다.
“이미 너 기절했을 때 많이 먹었어. 으음, 배가 너무 고팠으니까. 그리고 이곳에 남기로 한 이상 각오한 거야.”
지선우는 씩씩하게 대답하곤 내 손에서 제 몫의 음식을 가져갔다.
나 역시 이곳에 온 뒤로 며칠이나 굶은 상태였다. 거기다 능력도 꽤 썼기 때문에 에너지 보충이 필요한 상황. 그러나 이건 아니다. 나는 먹어 보라는 지선우의 권유에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한숨을 쉬었다.
“하아, 됐다…….”
“유성아, 너 먹은 거 없잖아. 응?”
“알아서 할게.”
정상적인 음식을 기대한 내가 등신이지. 진절머리를 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앞에 텅! 낡은 철통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하!]
……또 이 녀석이냐. 여기 온 후 계속 시비를 걸어 대던 머저리였다.
[안 먹냐?]
내려다보는 얼굴이 굉장히 불량했다. 나는 턱을 괸 채 고개를 기울이는 것으로 알 수 없는 말에 대한 대답을 대신했다. 꺼지라는 뜻이었다.
“…….”
[왜. 도련님 입맛에는 이런 게 안 맞나 보지?]
놈이 건들거리며 앞에 자리를 잡더니 보란 듯이 지네 사체를 뜯어 먹기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토가 쏠렸다. 놈의 이죽거리는 눈빛이 내게 닿았다.
[야. 먹어.]
훅, 내 앞으로 먹던 덩어리를 내민다.
“X발, 거지새끼가 더럽게.”
“유성아.”
“하, 씹.”
나무라는 지선우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차가워서 입가를 움찔했다. 됐다. 상대하지 말자. 괜히 형한테 미움받고 싶지도 않고. 나는 먼저 자리를 뜨겠다는 의미로 몸을 일으켰다. 주변에서 나를 흘깃거리는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
[어디 가.]
덥석, 팔이 잡혔다. 머저리가 이를 드러내기 전 짐승들처럼 입가와 콧잔등을 잔뜩 움찔거리며 사납게 짖어 댔다.
하아, 이건 진짜 나랑 말이 안 통해서 다행인 줄 알아야 하는데. 나는 한숨을 내쉬며 사람을 울리는 1,018가지 욕설을 떠올렸다.
[잘난 척 그만하고 먹으라고!]
“놔.”
[네 표정 엿 같아. 알아?]
“좀 놓으라고. 새끼야.”
머저리가 잡은 손을 뿌리치고 몸을 돌렸다. 잡힌 팔뚝이 신경 쓰였다. 더러운 게 묻은 것만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 습하고, 찝찝하고, 덥다가 춥다가, 냄새나고.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 아니, 마음에 드는 게 있을 리가.
나는 손으로 미간을 꾹꾹 눌렀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았다.
“먼저 가서 좀 쉴게.”
“……응. 저기, ……정말 미안해.”
“……별.”
내 눈치를 살피는 지선우에게 설핏 웃어 줬다.
[젠장, 마음에 안 드는 새끼.]
“유성이가 원래 입맛이 예민해서 그래요. 나쁜 뜻은 없으니 오해는…….”
[아, 너한테 뭐라는 게 아닌데! 미, 미안해. 선우…….]
머저리와 떠드는 지선우를 흘끔 보곤 자리를 떴다.
이곳에 온 이후 계속 머물던 창고를 향해 걸었다. 걷던 도중 오랜 굶주림과 피로감으로 인해 잠깐 비틀거렸다. 머리가 핑- 돌고 약간의 식은땀이 흐르는 게 아무래도 조금 자 둬야 할 것 같다.
“하아.”
조금 지치네. 걸음을 멈추고 마른세수를 했다. 점점 더 조여 오는 두통에 윽, 자동으로 신음이 흘렀다. 어쩔 수 없이 잠깐 쉬고 가기 위해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가만히 백 초를 세고 있는데 낯설면서 익숙한 향이 맡아졌다. 나는 가까워지는 기척을 느끼며 담담히 말을 뱉었다.
“손대지 마.”
[이런.]
눈을 뜨니 살랑이는 은발이 보였다. 그리고 재수 없는 상판도.
“기분 잡치게.”
나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네 말은 알아듣기 힘들어.]
“비켜.”
진짜 변태 새끼다. 언어가 안 통하니 대화가 될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 굳이 계속 말을 거는 이유가 뭘까?
[도련님. 아리아의 말에 따르자면, 네가 내 선조라는 거지?]
나는 놈을 무시하고 가던 길을 가려 했다. 그런데.
“윽!”
은발이 갑작스레 내 어깨를 잡고 벽으로 몰아붙였다. 커다랗고 듬직한 상체가 나를 압박해 온다. 지선우가 아닌 타인, 그것도 나와 비슷한 체구를 가진 사내새끼랑 가슴이 맞닿는 느낌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아리아가 너희에게 잘 대해 주라 했잖아. 그런데 내 애교가 좀 격해.]
비키지 않으면 태워 버리겠다는 제스처를 하려 했지만, 다시금 핑 도는 머리에 몸이 크게 흔들렸다.
“씹, 읏.”
[경계하지 마. 그냥 인사하러 온 거니까.]
은발이 내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며 중얼거렸다.
[앞으로 우리가 꽤나 난잡한 관계가 될 거 같거든. 그러니까 잘 부탁해, 선조님.]
“역겹게 굴지 마.”
화르르! 미간을 팍 찌푸린 채 놈에게 위협을 가했다. 뜨거워지는 온도를 느낀 건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양손을 올리며 멀어진다. 지긋지긋한 벌레 새끼. 지선우도 없는데 아주 바싹 태워 버릴까?
“…….”
[우리 도련님은 참 짓궂다니까. 봐 봐, 형아 머리카락이 전부 타 버릴 뻔했어.]
상황을 가늠하듯 눈을 가늘게 뜨자 은발이 혀를 놀려 대곤 사라졌다. 힘이 쭉 빠진 나는 식은땀으로 젖은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냐고, 지선우.
* * *
“오늘도 안 먹을 거야?”
“응.”
“너 그러다 쓰러져.”
“며칠 굶는다고 안 쓰러져. 됐고…… 형이나 줘.”
“또. 또 말 이상하게 하지.”
지선우가 부루퉁하게 중얼거리며 안겨 왔다. 나는 작은 몸을 부드럽게 품으며 그의 머리카락에 코를 마구 비벼 댔다. 간지럽다고 목을 울리는 웃음소리가 나긋해서 듣기 좋았다. 은은하게 들어오는 가이딩이 들쑥날쑥한 내 기분을 평온하게 만들었다.
그의 설명으로 알게 된 이곳, 서블이라 불리는 장소에 머문 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 정확히 세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 주 이상은 머무른 것 같다.
그동안 나는 물과 가이딩만으로 버텼다. 다른 불편함은 감수하더라도 몬스터를 먹는 행위는 도저히, 정말 도저히…… 아직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몸은 힘들지만, 인간의 존엄은 지켜 내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 원래 시대에 비해 그렇게까지 힘쓸 일은 없어서 빈둥거리는 시간이 많았다. 따지자면 국가 공인 에스퍼가 되기 전, 이능력 사관 학교에서 받았던 10일의 무박 훈련이 더 최악이었다.
‘그때는 뭘 해도 맞았는데.’
밥을 느리게 먹어도, 잠시 눈을 붙이려 해도, 심지어 그냥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도 맞았다. 그래, 그때에 비하면 여기가 차라리 나았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놈들과 지선우가 먹을 몬스터 잡기, 가끔 불 지펴 주기 정도가 전부니까.
그걸 제외하고는 종일 누워서 뒹굴뒹굴하는 게 일과다. 여러 지식을 전파하고 도움을 주러 다니는 지선우와는 너무 달랐다. 하긴, 저 정도로 움직이려면 지네든 오크든 씹어 먹고 봐야겠지. 거기다…….
“……또 어떤 새끼한테 해 줬어?”
“너 말 그렇게 하지 말랬지.”
……X발, 에스퍼 대여섯은 늘 가이딩해 주니 체력이 동나는 건 당연했다.
가이딩을 해 주겠다 말한 이후, 지선우는 착실히 내 앞에서 바람 아닌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다 사람 좋고 정의로운 지선우의 천성 때문이니 윽박지를 수도 없고. 점막 접촉은 하지 않기로 약속했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점막 접촉을 하면 내가 빡돌 걸 아는 지선우가 알아서 선을 지키는 것도 있긴 하지만.
[선우. 들어갈게!]
“앗, 유성아, 이것 좀 놔 봐. 천천우 씨가…… 읏.”
“꺼지라 해. 나 가이딩 받는 거 안 보여?”
나는 일어서려는 지선우를 더욱 세게 끌어안고 그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온 머저리가 크게 흠칫했다.
[……!]
그래. 저게 싫단 거다. 지선우는 엄연히 내 가이드인데. 몇 번 가이딩 좀 받았다고 제 가이드를 빼앗긴 듯 구는 저 건방짐이 싫었다.
“눈 깔아.”
[…….]
나는 사나운 시선을 숨기지 않는 머저리를 향해 더욱 기세를 높였다. 날고뛰어 봤자 내 급에 미치지도 못하는 버러지가 감히 어디서 이를 드러내. 압도적인 기세 차이로 놈을 조금씩 깔아뭉개니, 머저리가 이를 악물고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