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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없는 세계의 이물질 에스퍼 (7)화 (7/115)

7화.

“너 이 X발 새끼가……!”

지하의 온도가 급격히 높아지더니 순식간에 불가마처럼 변해 버렸다. 낙유성은 자얀에게 안겨 있는 지선우를 보며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굴욕을 느꼈다. 하나는 소중한 것을 빼앗겼다는 것에, 둘은 자신을 우습게 보고 있다는 것에.

“이제 봐주는 건 없어.”

울룩불룩 솟은 핏줄이 목을 타고 올랐다. 화르르, 주변 공기의 흐름이 심상치 않았다. 자얀 역시 감춰 놓은 힘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에스퍼가 막 부딪치기 직전, 지하의 문이 열리고 카오루가 등장했다. 그는 수많은 경비병과 남은 에스퍼들을 끌고 대치하고 선 두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턱 막히는 숨에 카오루는 질린다는 표정을 했다. 그의 고갯짓에 경비병과 에스퍼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낙유성을 포위했다.

[아무리 봐도 놀라운 힘이네요. 자얀 당신만큼이나.]

[비교하지 마. 나 상처받아?]

자얀의 농담에도 카오루는 진지했다.

[어쩔 거예요.]

그는 자얀의 품에 안겨 헐떡이고 있는 지선우를 턱짓하며 물었다.

[내 키스가 좋았나 봐. 귀여워.]

[자얀.]

자얀은 한쪽 눈썹을 까딱이며 픽 웃었고, 카오루는 고개를 저었다.

[개인적으로 저 소년과 이 아이, 둘 다 서블로 들어와 큰 전력이 되어 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이 아이가 가진 힘은 특별하죠. 듣도 보도 못한 힘이에요. 우리가 본능에 잡아먹히는 걸 막아 줬어요.]

카오루가 깊이 숨을 내쉬며 말했다.

[몸도 개운하고, 정신도 맑아졌죠. 이 아이만 있다면 언제든 위험 부담 없이 힘을 쓸 수 있어요. 그건 기적이에요. 식량을 몇 배나 구할 수 있고, 뤙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맞설 수 있죠. 우리의 가족을 지킬 수 있다고요.]

카오루의 목소리가 감격으로 젖어 들었다. 시큰둥한 자얀에 비해 카오루는 지선우를 마치 하나의 신처럼 보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카오루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눌렀다. 지금은 환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신이 나타났다면 다시 사라지지 못하도록 지상에 묶어 놔야겠지.

[이 아이는 우리에게 필요해요. 다른 선택지는 없어요, 자얀.]

[그래. 동의해.]

[하지만 저 소년은 아니에요. 물론 전력이 돼 준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제거할 수밖에 없어요. 그는 세계수가 어디 있는지 봤어요. 이대로 우리 가족이 될 수 없다면 위험 분자가 될 게 분명해요.]

[우리 도련님, 싹수가 노랗긴 하지.]

[네. 뤙에게 세계수의 위치를 알릴 수도 있고, 혹은 이 아이에 대해 얘기할 수도 있죠. 아니면 그가 직접 무리를 만들어 새로운 세력이 될 수도 있고요. 젠장, 우리는 이미 동경만으로 충분하단 거 알고 있죠?]

[뤙, 좀생이 녀석. 왜 그렇게 날 괴롭히는 건지. 으응, 사실 날 좋아하는 거 아닐까?]

[자얀!]

[알겠어. 화내지 마.]

자얀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제야 카오루는 자얀에게서 지선우를 넘겨받았다.

[이 아이는 괜찮아요. 특별한 힘이 있다지만 전투 능력은 없어 보이니까. 반항한다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저 소년만 좋은 선택을 해 주면 좋겠는데…….]

카오루가 말을 끌었다. 그도 낙유성이 그들에게 곱게 붙지 않으리란 걸 대략 느꼈기 때문이다. 자얀 역시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선택의 결과를 알렸다.

[네 말이 맞아. 서블의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조금의 타격을 입는다 해도 미래를 위해 처분하는 게 나아.]

[안타깝군요.]

[설마 내 탓 하는 건 아니지? 애초에 나는 육아 쪽으론 소질이 없어. 그리고 도련님 얼굴을 봐. 때려죽여도 내 말은 안 듣게 생겼잖아?]

카오루, 날 나쁜 어른으로 만드는 건 치사해. 자얀이 은은하게 미소를 띠었다.

[그럼 구역장과 감독의 승낙이 떨어진 거지?]

뒤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천천우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드디어 저 마음에 안 드는 애새끼를 두들겨 패 줄 수 있다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특히 그는 ‘우’ 앞에서 받은 모욕을 절대 잊지 못했다.

흐흐흐, 천천우가 비열하게 웃음을 흘리자 옆에 있던 동료들이 어깨를 으쓱이며 혀를 찼다.

[유치해.]

[시끄러워! 보복은 확실하게, 그게 남자다!]

천천우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동료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다구리가 남자냐.]

[아아, 나는 저 애 마음에 들었는데에……. 잘생겼잖아? 애인 없으면 입후보하려 했단 말이야.]

[천. 너도 신묘한 힘을 쓰는 저 뽀얀 꼬맹이를 독점하고 싶어서, 괜히 질투 나니까 저 녀석을 패 주고 싶은 거 아냐?]

[미, 미, 미미미, 미쳤냐, 너희! 그런 거 아니거든! 난 그냥 ‘우’같이 착한 애가…… 저런 사나운 새끼한테 끌려다니는 게 싫을 뿐이야. 나라면…… 뭐, ‘우’를 소중히 대할 텐데…… 싶어서.]

천천우는 얼굴이 벌게진 채로 카오루에게 안겨 바르작거리는 지선우를 흘긋댔다. 작고 하얀 게 자꾸만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저 시커멓고 음울하게 생긴 새끼 옆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저번에도 억지로 끌고 가려 했고! 분명 ‘우’도 저런 놈한테서 벗어나고 싶을 거다.

와글와글 시끄러운 소리에 카오루가 손바닥을 짝 마주쳤다.

[자, 사담은 끝입니다. 모두 집중하세요. 최대한 밖으로 유인해야 합니다. 세계수가 재생 능력이 뛰어나대도 조심해야 해요. 만약 어렵다면 세계수를 보호하며 싸워야 합니다. 우리들의 특기, 몰이사냥 시작입니다.]

전투 준비를 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퍼졌다.

* * *

흥분하지 마. 뿌드득 이를 갈며 나는 최대한 감정을 누르려 노력했다. 분노에 사로잡혀 이성을 놓으면 오히려 능력 컨트롤이 떨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최대한 신속히 놈들을 죽인다. 그리고 지선우를 탈환하고 그대로 이곳을 탈출한다.

‘그래, 내가 바보였어. 진작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처음이나 두 번째나 모두 지선우의 안전 때문에 전투를 포기했었다. 그러나 이번엔 아니다. 놈들은 지선우에게만큼은 해를 가할 생각이 없어 보였으므로.

물론 아니라 해도 멈출 생각은 없다. 어차피 계속 말랑하게 굴면 지선우를 빼앗기는 것은 똑같다. 그럴 바에야 조금 다치더라도 강경하게 나가는 쪽이 정답이다.

‘지선우도 알겠지. 본인의 선택이 틀렸다는걸.’

……혹시나 이번 일로 자책하거나 슬퍼한다면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휴가 신청을 내야겠다. 이곳저곳 지선우를 데리고 여행을 다녀야지. 어디가 좋을까? 너무 길게 쉴 수는 없으니 간단하게 일본이나 대만으로 다녀올까. 아니면 별장을 하나 사서 오붓한 시간을 보낼까.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것만 보다 보면 이곳에서의 일은 싹 잊을 거다. 아, 아니면 집에서 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하루 종일, 어디도 가지 말고 우리 둘만의 평화를 되찾는 거야.

“그게 좋겠다, 선우 형.”

콰직! 바닥에 쓰러진 쓰레기의 얼굴을 발로 짓밟으며 차오른 숨을 골랐다.

[끅- 크윽, 커억…… 컥!]

흥분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생각을 끝내고 나니 눈앞에 서 있는 건 은발 하나였다. 주위는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처참했다. 나는 쥐고 있던 머저리의 머리채를 놓으며 입에 고인 핏물을 바닥으로 뱉어 냈다.

“퉤, ……X발 덥다.”

땀으로 흠뻑 젖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지선우, 많이 뜨거울 텐데. 빨리 끝내야지. 저 멀리 널브러져 있는 지선우를 쳐다보며 저린 손을 쥐었다 펼 때였다. 가까이서 낮은 그르렁거림이 들려왔다.

[젠장, 더워.]

은발이 우두둑 목을 꺾으며 다가온다.

[하, 망할. 이봐 도련님. 도대체 날 몇 번이나 죽인 거야?]

놈이 너덜너덜해진 모습으로 웃는다. 상의는 전부 불타 매끈한 상반신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었으며 머리와 얼굴 곳곳엔 검은 재와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바퀴벌레 같은 새끼.’

지긋하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 던졌다. 후끈한 바람이 맨몸에 닿아 왔다.

조금은 시원해지길 바랐는데 영 소용이 없다. 이럴수록 지선우의 가이딩이 필요했다. 목이 바짝 마르고 슬슬 정신이 불안해지는 게…… 지선우에 대한 강한 갈증이 끊임없이 솟구쳤다.

“끝내자.”

한 손으로 대충 머리를 털며 말했다.

[이게 좋겠네.]

놈은 떨어져 있던 쇠 창을 하나 집어 들었다. 저 살벌한 쇠 창이 내 심장을 뚫거나 놈이 활활 불타 재가 되거나, 아마 이번에 판가름이 나겠지.

[애들이 많이 다쳤어. 그래서 말인데, 네 시체를 담 너머 걸어 둘 생각이야. 괴물들이 널 먹으려고 우글우글 기어 나오겠지. 그럼 난 네 살점을 뜯어 먹은 그것들의 숨을 거둬 네 보물에게 먹일 거다. 우리가 늘 그랬듯 말이야.]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에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한국말로 씨불여, 이 X발롬아.”

놈과 내가 동시에 서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아니, 뛰어들려 했다. 뜬금없이 누군가가 막지 않았더라면.

나는 급브레이크를 밟은 사람처럼 덜거덕거리며 가까스로 몸을 멈췄다.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막 부딪치려던 나와 놈을 중재시킨 사람은 지선우였으니까.

“하아, 형…….”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나와 은발 사이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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