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치워.”
나는 놈이 건네는 철통을 내려다봤다.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가 푹 끓여져 있었다. 미끄덩해 보이는 데다 꿉꿉한 냄새도 풍겨 절로 구토가 올라왔다.
혹시 유치한 괴롭힘인가 의심했지만 내 상태를 확인하러 온 지선우가 ‘여기 음식만큼은 먹기 힘들더라’ 하고 웃는 걸 보고 모두가 같은 걸 먹는구나 깨달았다. 도대체 이게 뭔지 알 수는 없지만, 굶으면 굶었지 이딴 걸 입에 넣고 싶지는 않았다.
[음? 도련님, 컨셉에 맞게 놀 거야?]
은발이 혼자 킥킥거리며 음식물 쓰레기를 가득 퍼 내밀었다.
[그래그래, 도련님도 아직 아가지. 자아~ 아앙, 하세요.]
안 그래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는데. ……이 개 같은 새끼들이 자꾸만 나를 자극한다.
“하아, 치워라.”
[뜨겁지 않아. 후후 불었는걸.]
“꺼지라고!”
멍청하고 더러운 것들이 뭔가 단단히 착각하는 거 같다. 못 죽이는 게 아니라, 지선우의 부탁 때문에 참고 있는 건데. 뿌드득 이를 갈며 놈의 손을 팍 쳐 냈다.
캉! 떨어진 철통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퍼지며 구질구질해 보이는 음식물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이제야 좀 속이 시원하네.
“너나 실컷 주워 먹어.”
[하하, 카오루가 보면 회초리를 들겠어.]
은발의 눈이 가늘어졌다.
[들개와 도련님의 비슷한 점이 뭔 줄 아나?]
“이만 꺼져.”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거야. 꼭 혼이 나야 그 고고한 자존심을 내려놓지.]
놈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가볍게 손을 마주 잡고 웃었다.
[그래, 우리 도련님 혼 좀 날까.]
“나가라고 했…… 윽!”
다시 한번 윽박지르려던 순간, 놈이 재빠르게 내 위로 올라타 손목을 강하게 쥐어 왔다. 잘 붙고 있던 뼈가 또다시 비명을 내질렀다.
에스퍼의 악력은 보통 사람의 몇 배나 되며, 급이 높을수록 곱절이 된다. 그 때문에 나 역시 어디 가서 밀리는 힘은 아니었으나 역시 신체 강화계…… 짜증 난다, 진짜.
“이, 개, 씹…….”
태워 버릴 생각으로 능력을 발휘하려던 나는 함부로 다치게 하면 안 된다며 몇 번이고 내게 당부하던 지선우를 떠올리곤 그만뒀다. 덕분에 팔이 고통으로 부들거렸다.
“큭, 야, ……비켜.”
[넌 작은 꼬마랑 달라. 거칠게 대해도 쉽게 망가지지 않지.]
숨이 가빠지며 식은땀이 흘렀다. 팔의 고통보다 자꾸만 쌓이는 스트레스와 발산되지 못한 찌꺼기 같은 힘의 누름이 나를 힘들게 했다.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이건 화병일까. 이마에 핏대가 불룩 서는 게 느껴졌다.
“제발, 좀 가라…….”
[잘 들어, 도련님. 이곳에서 먹이는 소중해. 방금 네가 던진 그거 하나하나 잡아 오는 게 얼마나 귀찮은 줄 알아?]
놈은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이빨이 있으면 씹어. 음식은 던지는 게 아니야.]
“읍!”
[유치는 전부 빠졌을 나이잖아?]
“아, 읍…… 우, 윽!”
입안으로 놈의 손가락이 거칠게 쑤셔 박혀 꺽, 소리가 절로 났다. 동시에 진득한 침이 입술 옆으로 흘러내렸다. 괴로움에 도리질 쳤지만, 놈은 봐주지 않았다. 오히려 무자비한 손길로 내 혀와 입천장을 마구 더듬고 긁어내렸다.
[송곳니가 날카롭네.]
“하아, 으……!”
놈이 손을 빼고선 씩 웃었다.
[다음에는 꼭 다 먹어. 네가 빨리 건강해져야 작은 꼬마가 기운을 내서 그 신비로운 힘을 보여 주지. 요새는 재미없게 빨빨거리며 이곳저곳 관찰만 하고 다녀. 마치 작은 새끼 쥐 같아.]
“콜록! 콜록, 콜록!”
겨우 트인 숨통에 기침을 마구 해 댔다. 머리까지 어지러울 지경이다. 나는 한참이나 숨을 고르고서야 놈을 노려봤다. 놈은 내게서 조금 떨어진 채로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더러운 새끼, 퉤!”
치고 올라오는 역겨움에 한껏 인상을 쓰고 바닥으로 침을 뱉었다. 입안 가득 구더기가 한 뭉텅이 들어찬 기분이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마치 온몸이 더럽혀진 느낌.
[아…… 하?]
놈은 한쪽 눈썹을 까딱이며 또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덜 당했구나, 너.]
은발이 다시금 다가와 손을 뻗으려던 찰나, 방문이 벌컥 열렸다.
[자얀.]
안으로 들어온 건 지선우가 아니라 안경이었다. 붕어 똥처럼 은발 옆에 늘 붙어 다니던 안경 말이다. 보고 싶은 건 지선운데 자꾸만 별 같잖은 것들이 줄줄이 등장해 대서 짜증이 솟았다.
[환자를 괴롭히면 안 되는 겁니다.]
[으응, 이건 어른으로서 하는 훈육이야.]
[당신이요? 그보다 신경 써야 할 게 있어요. 밖의 흐름이 심상치 않아요.]
[방금 나 무시했어.]
[어서요.]
[무시했어. 여린 마음에 상처가 생긴 거 같아. 아야.]
[자얀. 장난은 그만해요.]
[아야.]
[자얀.]
무슨 말을 주고받은 건지 싱글싱글하던 은발이 뚱한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그토록 귀찮게 굴더니 이번에는 눈길 한번 안 주고 쌩하니 가 버린다. 나야 안 봐서 좋지만, 혹시나 지선우와 관련된 일일까 봐 살짝 불안해졌다.
[소년, 팔 상태를 보러 왔어요.]
은발이 사라진 문 쪽만 뚫어지게 보고 있자, 안경이 슬쩍 팔을 잡아 온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불쾌한 티를 내며 피하니 놈이 한숨을 뱉었다.
[당신이 자얀입니까? 장난칠 시간 없어요. 난 바쁜 몸이라고요.]
“…….”
[고분고분하게 따라요. 손 두 번 가게 하지 말고.]
“만지지 마.”
이곳 놈들은 질척이는 게 특기인가? 싫다는데 왜 자꾸 엉겨 오는 거야. 자꾸만 내 팔을 잡으려는 놈을 쏘아봤다. 한 번 더 손대면 태워 죽일 줄 알아. 경고하듯 적대적인 기운을 흘리자 놈이 움찔한다. 이놈도 에스퍼니 지금 날 건들면 어떻게 될지 기운으로 알아챘겠지.
[이놈이나 저놈이나 짐승 새끼도 아니고, 하아…… 내가 늙는다, 늙어.]
안경은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양손을 들어 올리곤 고개를 옅게 저었다.
[포기. 포기할게요. 나는 자얀과 달리 당신을 제압할 만한 힘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중에 딴말 말아요. 난 분명 도움을 주려 한 거고, 거부한 건 당신이니까.]
말이 통하는 한국에서도 성격 때문인지 지선우를 제외하곤 길게 대화를 섞지 못했다. 그런데 이곳 놈들은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주제에 매일 일방적으로 대화를 걸어온다. 거기다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들어 보는 언어다. 영어 같기도 한데 일본어 같기도 하고, 아무튼 묘한 발음과 어투였다.
……도대체 지선우는 이런 거지 같은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겠다는 거지? 뭐, 어쨌든 내 팔이 다 나을 때까지라고 했으니까. 그 후에는 억지로라도 지선우를 데리고 돌아갈 생각이다.
[그런데…….]
안경은 바닥을 더럽힌 음식물을 보고 미간을 확 좁혔다.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군요. 서블의 아이였다면 회초리를 들었을 거예요.]
내 시선도 안경을 따라 미끄덩거리는 괴상한 음식물로 향했다. 지선우도 참, 사서 고생이다. 돌아가면 맛있는 거나 잔뜩 사 줘야지.
[이건 나름 환자용 특식이었어요. 자얀이 자기 몫까지 함께 넣은 건데 이런 식으로 엎어 버리다니. 이봐요, 소년. 살코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는 알아요? 보통은 내장류를 먹는다고요.]
안경은 철통으로 음식물을 다시 집어넣었다.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솟아 고개를 돌렸다.
[당신과 함께 온…… 그러니까, ‘우’ 씨는 잘만 먹는데. 당신은 정말……. 만약 천이 봤다면 또 한 소리를 했을 거예요.]
계속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던 안경은 한숨과 함께 그대로 나갔다. 느낌상 혼이 난 것 같기는 한데…… 뭐 어쩌라고 싶다.
이로써 드디어 방 안이 조용해졌다. 원하던 침묵을 되찾아 내심 기뻤다. 나는 뻐근한 목을 돌리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계속 누워만 있는 것도 정말 고역이었다. 몸도 찌뿌둥한 게 샤워나 한 번 했으면 좋겠는데.
문득 사고 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던 지선우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흠……. ……으음……. ……역시, 할까?
망설임이 길긴 했다. 약간 주춤했던 것 또한 인정한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SS급이든 뭐든, 쾌남 지선우는 본인이 정한 것을-거의 내 안전이나 사고에 대한 것이지만-어겼을 경우 매우 무섭게 화를 내므로.
물론 이곳에 남고 싶어 하는 건 지선우고, 그 때문에 형이 내 눈치를 좀 보긴 하지만, 그것과 이건 별개다. 어쨌든 형이 ‘하지 마’ 했으니까 나는 하면 안 되는 게 맞다.
‘……맞지만, 인간적으로 너무 찝찝하잖아.’
이 정도는 형도 이해해 줄 거다. 그리고 사고 치지 말라 했지, 샤워하지 말라곤 안 했다.
‘그래, 빨리 다녀오자.’
결론이 정해진 나는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방을 나가는 건 처음이었으나 걱정은 없었다. 거지 같은 장소라도 샤워실 정도야 어디든 있을 테니까.
나는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머리도 감고 싶고, 뜨거운 물에 몸도 담그고 싶었다.
“…….”
제대로 둘러본 이곳은 정말로 심각했다. 폐허 중의 폐허라고 해야 할지. 도대체 왜 이런 곳에서 살고 있는 걸까. 아이나 노인도 있겠지?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쓰지 말자. 어차피 팔만 다 나으면 곧 떠날 곳이니까.’
그렇게 이곳저곳을 걸었는데 샤워장은커녕 화장실도 안 보였다. 그냥 전부 쓰레기장이라 불러도 될 만큼 낡고, 오래되고, 악취가 나는 기분 나쁜 곳들뿐이다.
‘괜히 걸었네.’
땀만 나서 오히려 더욱 찝찝해졌다. 그냥 돌아갈까. 웃통만 벗고 있어도 시원해질 텐데.
“……아.”
돌아가자 마음먹었지만 크게 간과한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나는…… 그러니까, 생각보다 길치다. 물론 한국에서야 워치가 있기도 했고, 언제나 지선우가 옆에 붙어 있어 괜찮았지만.
‘음…… 뒤돌아서 쭉 가면 되겠지.’
눈썹을 긁적이고 가볍게 발걸음을 돌린 찰나, 어디선가 ‘또옥……’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