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 없는 세계의 이물질 에스퍼 (4)화 (4/115)

4화.

낙유성의 두 눈에 핏대가 바짝 섰다. 노려보는 눈이 너무 무서웠다. 원래도 조금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긴 했지만, 이 정도로 사리 분별 못 하고 화를 내진 않았는데. 지선우는 떨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이라면 자신 역시 타인에게 가이딩을 해 주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의심스러울 정도로 가이딩의 흔적이 없어.’

거기다 가이딩을 해 주니 모두 이상하게 반응했다. 마치…… 처음 받아 보는 것처럼.

‘……아. 하지만 유성이가 이토록 불안해할 걸 알았다면 가이딩을……. 아니, 나는 그래도 했을 거야.’

지선우가 꿀꺽 침을 삼켰다. 한국은 에스퍼보다 가이드가 많은 구조다. 그렇기에 가이딩을 한 번도 못 받아 본 에스퍼를 보기란 어렵다. 즉, 그는 처음으로 가이딩을 단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날 선 에스퍼의 기운을 느꼈단 말이다.

그리고 그건 마음 한구석을 물렁거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동정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가이드의 본능이라고 해야 할까. 뭐가 됐든 언제 어느 순간이든 폭주할 것처럼 일렁이는 파장을 못 본 척할 수는 없었다. 오지랖이라며 화를 낼지라도.

‘나는 가이드니까.’

지선우가 다시 한번 낙유성을 불렀다.

“유성아…….”

“……하아.”

화를 꾹 삼키려 노력하는 낙유성의 상처받은 눈이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유성아, 일단 그 사람 놔줘. 제발.”

“…….”

“형이 잘못했어.”

“…….”

“응?”

지선우는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손을 뻗어 하얀 뺨을 쓸었다. 반복되는 접촉에 낙유성이 풀 죽은 아이처럼 눈꼬리를 추욱 내렸다. 그러다 잡고 있던 사람을 바닥으로 꽤나 세게 던졌다.

아이고……. 내심 한숨을 내쉰 지선우는 다시 한번 갈색 머리 남자를 비롯한 이들에게 사과를 전한 후 낙유성과 함께 떠나려 했다. 그래, 분명 그러려고 했는데.

[미안해. 하지만 널 보낼 수는 없어. 네 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

[천천히 대화로 풀려고 했는데, 역시 위험 분자가 맞습니다. 자얀!]

바닥에 쓰러져 있던 천천우가 어느새 지선우를 잡고 목덜미로 칼을 들이댔다. 그리고-

쿵!

“큭!”

[네 보석이 잡혔으니 움직이지 않을 거지, 들개?]

자얀이 낙유성을 억지로 꿇어 앉힌 뒤 그의 두 팔을 꺾어 제압했다.

[유감스럽게도 널 보낼 수는 없어. 작은 꼬마야.]

“뭐, 뭐야……. 또 왜, 아니, 왜……. 가이딩도 해 줬는데.”

창백한 안색으로 지선우가 제 목덜미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천천우를 올려다봤다. 원망 섞인 눈동자에 천천우가 움찔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유, 유성이 놔줘요. 괴로워하잖아!”

[으응, 쉬이- 움직이면 들개가 다쳐.]

지선우가 버둥거리자 자얀은 느긋하게 발을 들어 낙유성의 등을 밟았다. 꾸욱, 등이 눌린 채 팔이 당겨지자 낙유성의 입에서 고통 어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유성아!”

혼절해 버릴 정도로 하얗게 질린 얼굴. 바들거리는 작은 몸. 지선우의 안타까운 모습에 천천우가 안절부절못했다.

[제대로 잡아, 천.]

[이 정도면 됐잖아. 이 애는 우리한테 필요한 존재야. 이런 대우는 안 어울려.]

천천우의 말에 카오루가 자얀을 쳐다봤다.

[자얀. 이쪽 손님을 방으로 모시게 허락해 주시죠. 심문은 거기서 하겠습니다. 기절하면 소용이 없어요.]

자얀은 태연히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래. 나도 곧 가지. 들개 한 마리만 정리하고. 생각보다 위험하거든, 이 아이.]

“큭…… 놔. X발, 놔! 선우 형 건들지 마!”

[봐, 너무 팔팔하잖아. 이대로 또 슬라임이 되는 건 사양이야.]

무엇보다 저 작은 꼬마를 데리고 도망가면 안 되고 말이야. 중얼거린 자얀은 자비롭게 웃었다. 마치 천사 같은 미소였다.

[잠깐만 쓸모없어지자, 들개야.]

자얀은 고통스러워하는 낙유성에게 다정히 속삭이며 그의 한쪽 팔을 손쉽게 부러뜨렸다.

“유성아-!”

뿌드득! 지선우의 비명과 팔이 뒤틀려 부러지는 소리가 동시에 방 안을 울렸다.

* * *

[오늘도 남겼군.]

달그락, 그릇을 내려놓는 손길이 조금 짜증 나 보였다.

[나름 귀한 대접을 해 주는 건데. 으응, 이걸 몰라주네?]

저 개 같은 말보다 고장 난 라디오를 듣는 게 더 나을 거다.

[이봐, 들개. 다들 널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하아, 한숨을 한 번 내쉰 은발이 기다란 손가락으로 눈썹을 긁적이며 말했다. 당연히 난 무시했고.

마음 같아선 이미 수백 수천 번은 놈을 죽이고도 남았다. 하지 못하는 건 글쎄, 부러진 이 팔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오래된 붕대로 딱딱한 나무 판과 함께 감싸인 팔을 내려다봤다. 지선우의 가이딩 덕분인지, 아니면 그냥 내 체질 덕분인지 부러진 뼈는 염증 없이 잘 붙고 있었다.

다만 팔을 볼 때마다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도련님이라고 해, 도련님. 웃기지?]

“시끄럽다. 아가리 닫아라.”

[뭐 썩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앙칼지고 깔끔 떠는 게 영 밥맛이라고들 하거든.]

“하아…… X팔, 존나 앙알거리네.”

실실거리는 은발을 노려봤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별 관심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좋다면 극단적으로 좋고, 싫다면 그 또한 제대로 싫어한다. 참고로 사람에게 이토록 ‘싫음’이란 감정을 느낀 건 참 오랜만이었다.

면상 갈겨 버리고 싶네.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팩 돌렸다. 계속 바라보고 있다간 부러진 팔로 놈의 안면을 날려 버릴 것 같았다.

거기다 더 열받는 건, 두 다리가 멀쩡한데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지선우. 빌어먹게 소중한 나의 가이드가 이곳에 남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지선우…….”

한숨처럼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유성아-!’

놈들이 지선우의 목에 칼을 들이댄 그날, 나는 결국 폭주의 반응을 보였다. 기억나지 않지만, 지선우가 그랬다니 맞을 거다.

아무튼 정신을 반쯤 놓고 모든 걸 태워 버리려던 나를 지선우가 아등바등 가이딩으로 멈춰 세웠고, 그 모습을 본 녀석들이 자꾸만 말을 걸었다고 한다. 나를 가리키면서.

그 뒤로는 뭐,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지선우의 결론이 주욱 이어졌다.

여전히 말은 통하지 않았으나 가이드의 본능인지 뭔지, 그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가이딩’이라는 걸 직감으로 알아챘다고. 가이드만 느낄 수 있는 에스퍼의 파장이…… 지선우의 표현을 따르자면, 아이들처럼 울먹거리며 따라붙어 느껴졌다던가? 이게 뭔 개소린가 싶지만, 그랬단다.

물론 처음에는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 했다. 내가 염병을 떨 정도로 싫어하는 걸 알기도 하고, 또 나를 다치게도 했으니까.

그러나 결국 본인은 어쩔 수 없는 가이드라고 지선우는 나를 향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자꾸만 느껴지는 불안정 파장을 가까이 두면서, 괴로워할 에스퍼를 알면서 모른 척하기란 양심에 찔린다고.

‘에스퍼인 유성이 넌 평생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일 거야. 내가 오지랖을 부린다고 생각하겠지.’

지선우가 흐리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마치 깊은 호숫가에서 혼자 놀고 있는 아이를 보는 기분이라고. 내 새끼를 다치게 했지만, 그럼에도 똑같은 어린아이니까. 그 아이가 호수에 떨어져 죽을 걸 뻔히 알면서 모른 척할 수 없었다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정신을 차린 내가 그렇게 물었을 때, 지선우는 여전히 흐릿한 낯으로 답했다.

‘시간을 줘.’

‘무슨 시간. 내가 저 새끼들을 죽이기 전까지의 시간?’

‘나도 화나. 널 다치게 한 건 용서할 수 없어. 하지만…….’

‘하지만?’

‘……여기 좀 이상해. 파장이 저 지경인데 나타나는 가이드가 한 명도 없다는 게 말이 되니? 유성아, 나도 정말 저 사람들이 밉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버리고 갈 수는 없어. 내가 설득할게. 어떻게든 협회로 데려갈 테니까. 그때까지 네가 이해하고 도와주면 안 될까?’

개소리. 진짜 개소리. 그렇게 비웃으려 했는데.

‘나는 가이드잖아, 에스퍼를 지키는.’

내 두 손을 꼭 쥐고 당당하게 다른 새끼들을 신경 쓰겠다 말하는 망할 가이드에, 아니, 내 가이드의 피곤한 얼굴에…….

‘……어차피 형은…….’

‘유성아아, 응? 제발.’

‘……하아, 마음대로 해라.’

나는 이길 수가 없었다.

‘대신 내 팔이 다 나을 때까지야.’

‘응응!’

‘하여간 대답은 잘하지. 그리고 가이딩도-’

‘가이딩은 해 줘야 할 거 같…… 은데.’

‘최소한으로 해. 점막 접촉 싫어. 불쾌해. 그땐 나 진짜 여기 뒤집는다.’

‘아, 알겠어. 손이랑 포옹만! 약속할게.’

그렇게 대화를 나눈 지도 벌써 며칠이나 흘렀다.

“슬슬 괜찮은 거 같은데.”

약간의 알싸한 통증은 있지만, 이 정도쯤이야 참을 만했다. 애초에 그렇게 대단한 부상도 아니고. 무엇보다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입맛이 많이 까다롭나 봐? 일하지 않는 이방인에게 양식을 내주는 것만으로도 우린 꽤나 많은 자비를 베푸는 건데.]

계속되는 무시에도 은발은 기죽지 않고 또 말을 붙여 왔다.

현재 내가 있는 공간은 누가 돈을 주고 있으라 해도 미쳤냐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후미진 곳이었다. 아주 오래된, 퀴퀴한 냄새가 나는 창고였는데 딱히 내가 싫어서라기보단 그냥 건물 자체가 전부 이런 거 같았다. 뭐, 거지 같은 새끼들이 퍽 어울리는 곳에 사는구나 싶어 조금 웃기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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