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손에 닿은 거울의 감촉은 예상한 만큼 싸늘하고, 놀랄 만큼 미지근했다. 어둡기만 하던 눈꺼풀 안쪽에서 빛이 나돌았다. 그리고 서준은 자신의 선택을 곧바로 후회했다.
끔찍한 참살이 그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거울은 상대방을 도살하는 두 사람의 행적을 유유히 지켜보았다. 날카롭게 살을 찢는 칼날과 흩날리는 붉은 핏방울,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흥분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캠리의 미간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 쓰러지는 리이미아의 몸뚱이, 무릎을 떨구고 피를 토하는 캠리……. 서준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한 막장 파멸극이었다. 그들은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살인을 실행했다.
도대체 평소에 서로를 향한 원한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일말의 여지도 없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단 말인가? 바닥에 스며들지 않고 웅덩이처럼 고이는 핏물을 보았을 때는 목뒤에 소름이 쭈뼛 돋을 지경이었다. 기묘한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거울 속으로 홀연히 사라진 시체와 피에 서준의 가볍게 감은 눈꺼풀이 움찔 떨렸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거울 속에 있던 리이미아가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서준은 마치 그가 제 피부를 뜯고 나가는 듯한 불쾌한 감촉을 느꼈다. 본래는 몰랐어야 할 감각이었다. 겹쳐 있던 몸이 둘로 나뉘는 자극은 눈, 코, 혀, 귀, 살갗 중 어느 것도 통하지 않았다. 살과 뼈로 이루어진 육체가 감당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온전히 새로웠으되 기쁠 것 하나 없었다.
코 안쪽에서 뜨끈하게 뭉친 피가 주룩 흘러내렸다. 서준. 등을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이름이 불렸다. 어제보다 낮은 목소리는 독을 마셔 목이 상한 탓이다. 피와 내장 조각을 토해 내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벌겋게 충혈된 안구는 튀어나올 듯 불룩했다. 서준. 뒤에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녀를 죽인 살인자의 그림자가 막 방에서 나가는 중이었다. 리이미아는 피에 젖은 가슴팍을 쓸어내리더니 발끝에 걸리는 곰 인형을 발로 찼다. 그는 흥겹게 콧노래를 불렀고 인형은 복도를 향해 길게 날아갔다. 거울은 제게 비친 장면을 정직하게 보여 주는데 서준에게 감상을 표하라고 한다면 꼭 혀에 스며드는 철분의 맛만큼이나 역겨웠다고 평가를 할 터였다.
하지만 그의 눈은 아직도 뜨이지 않았다. 감긴 눈꺼풀 안쪽에서 거듭 빛이 번졌다. 반사적으로 손을 떼려고 했지만 서준의 시선은 빛무리가 뭉쳐 만들어 낸 환상에 이끌렸다. 거울 표면의 해묵은 먼지가 손바닥에 쓸려 묻어나는 것조차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는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의미도 없이 거울에 철썩 달라붙었다.
거울에 비치는 건 멀뚱하니 얌전한 표정을 한 남자였다.
기억하는 것보다 머리카락이 길었고 언뜻 보이는 눈썹은 짙었다. 야위었는지 뺨의 살이 조금 내렸다. 덕분에 콧대와 턱의 윤곽이 한층 더 뚜렷해 청년보다는 사내라는 느낌을 풍겼다. 그는 왜인지 충격받은 듯이 눈을 크게 뜨고는 거울을 빤히 바라보는 중이었다. 목깃에는 조그만 거미가 굼지럭굼지럭 움직였다. 셔츠에는 멍청한 글씨체로 오지의 마법사 따위가 적혀 있었다.
서준은 순간적으로 하늘처럼 맑은 색의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건 우연이었다는 걸 증명하듯 남자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때가 탄 볼이 보였다.
“어?”
그리고 비전은 갑작스럽게 끝났다. 거울은 충분히 보여 주었다는 듯이 새침하게 굴었다. 긴 속눈썹이 팔락거리며 여러 번 눈을 감았다 떴지만 하나뿐인 눈은 얼빠진 제 낯짝 외에는 볼 수 없었다.
‘내가 지금 누굴 본 거야?’
서준은 자신이 무엇을 봤는지 자문했다. 기실 답은 너무나 쉽고 간단했다. 저토록 단정하고 수려한 낯짝의 금발 청년을 그가 두 사람이나 알 리 없었다. 바로 요한이었다. 그저 스스로 믿을 수 없었을 뿐이다. 캠리와 리이미아가 서로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는 거울이 빨아들인 괴상망측한 장면을 본 후였기에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하나뿐인 답이 계속해서 오답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멀쩡히 톰팃톳에 있어야 할 요한이 어째서 뜬금없이 흉가에 있단 말인가? 불시에 생각지도 못한 얼굴을 봤기 때문인지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평소 자기주장이 썩 심하지 않은 친구라 여겼건만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잠깐, 이 거울은 확실히 수상쩍잖아. 시체도 빨아들이고……. 내가 본 요한도 진짜 요한이 아닐 가능성이 높지.’
어쩌면 거울이 보여 준 과거는 진실로 있었던 사실이 아닐지도 몰랐다. 서준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거울을 노려보았다. 혹 이 거울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무의식을 건드리는 게 아닐까?
‘잠깐, 그러면 내가 무의식중에 요한을 보고 싶어 했단 말이야? 그것도 저렇게 꼬질꼬질한 꼴로?’
그가 지금 기껏 남은 눈 한 짝도 고장이 나 헛걸 본 게 아니라면……. 볼 언저리가 익어 떨어지기 직전의 과실처럼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랐다. 쿵, 쿵 크게 뛰는 박동이 귀에 거슬렸다. 서준은 옷 위로 가슴을 눌렀다. 그는 심히 자극적인 장면을 본 탓이라고 혼잣말했다.
“서준, 왜 그래요?”
귀엽게 콩닥거리던 심장은 캠리의 부름에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난데없이 기행을 펼치는 서준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그는 저도 모르게 황급히 바닥을 살폈다. 서준의 시선을 눈치챈 캠리가 조용히 물어보았다. 그녀의 태도는 한결같이 정중하고 예의가 발랐다.
“갑자기 바닥은 왜 그렇게 훑어봐요?”
“아, 혹시 저기 굴러다니는 알약 사이에 내 간도 떨어졌나 싶어서요.”
“간?”
캠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고동색 머리카락이 어깨에서 미끄러졌다. 서준은 애써 굳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문화 차이라고 얼버무렸다. 뻣뻣하게 굳은 안면 근육을 서둘러 정리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바닥을 쏘아보며 머리를 굴렸다. 시시껄렁한 농담은 분위기를 풀기는커녕 미묘한 정적만을 불러왔다. 칠렐레팔렐레하며 요한 따위나 고심할 때가 아니었다. 거울이 보여 준 게 진실이라면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여자는 귀신이었다. 그것도 독이 든 음료를 마시고 죽은 따끈따끈한 유령이었다.
‘심지어 자기가 마신 커피를 나한테 권한다고? 이건 더 볼 것도 없어. 악령이다.’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겉보기야 멀끔할지언정 속내는 에이프릴이나 다름없었다. 이제껏 귀신을 몇 명 만나 보기는 했지만 살아생전의 모습을 아는 건 캠리가 처음이었다. 서준은 어정쩡하게 그를 살피는 캠리의 미심쩍은 시선을 간신히 흘려 넘겼다. 눈을 내리깔고 필사적으로 골통 속 두뇌를 혹사했다. 귀신과 단둘인 것도 모자라 정체 모를 거울과 함께 있는 상황을 어떻게든 타파하려는 눈물겨운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턱을 들고 캠리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는 제가 품은 공포와 그녀가 은밀하게 갈고 닦은 살의가 전부 상대방에게 읽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숨기려고 할수록 드러나기 때문일까, 그들은 너무나 간단하게 서로의 속내를 읽었다. 건조한 목소리가 목구멍을 긁으며 튀어나왔다.
“가끔 생각하는데……. 내 인생이 유독 가혹한 건지, 아니면 이제까지가 그나마 살 만했던 거고 보편적으로 삶이 이렇게 고달픈 건지, 통 모르겠단 말이죠.”
서준은 정면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고 뒤로 발을 옮겼다. 당연하지만 금방 막혔다. 그는 등에서 느껴지는 매끈한 촉감에 속으로 욕설을 지껄였다. 캠리는 시간 끌기에 불과한 말에도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있죠, 서준. 그보다 저에게 알려 주지 않을래요? 어떻게 알았어요?”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스테인리스 보온병을 바닥에 내려 두었다. 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하도 긴장한 탓에 피부가 다 따끔거릴 정도였다.
“목은, 역시 독이었습니까?”
“그것까지 알았어요?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차라리 모르는 편이 좋았을 텐데.”
나지막한 웃음소리는 기구하게도 그녀의 새로운 목소리와 어울렸다. 눈앞이 아찔해지는 현기증을 간신히 이겨 낸 서준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리이미아는 어떻게 된 겁니까?”
문득 그는 이미 알고 있으면서 물어보는 제가 무척 한심하게 느껴졌다.
“리이미아는 내가 찔러 죽였어요. 아무래도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곤란하게도 그도 나도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
캠리는 가볍게 인정했다. 그러고는 옆방에서 가져온 칼을 꺼냈다.
“이걸로요.”
“그 칼, 설마.”
눈물이 찔끔 흘렀다. 도주로가 너무 짧았다. 서준은 저것에 찔리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시퍼렇게 변한 낯짝으로 서준이 검지를 들어 손가락질하자 캠리가 입술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요. 이걸로 리이미아를 죽였어요. 그래도 나름대로 숨긴다고 인형이 잔뜩 있던 방에 꽂아 놨었는데, 왜 옆방에 갔는지, 원. 이 흉가요. 참 신비한 곳이라니까요. 죽은 나도 이렇게 돌아다니는 걸 보면 말이에요.”
평온한 어투였다. 캠리의 상냥한 손길이 칼날을 쓰다듬었다.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요.”
서준이 본 바에 따르면 저 매끄러운 칼은 리이미아의 오장육부를 탐험한 경력이 있는 베테랑이었다. 그는 경력자를 존중할 줄 알았다. 침을 꼴깍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혀 밑바닥이 바짝바짝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
“왜 날 죽이려는 겁니까? 혹시 내가 당신한테 잘못한 게 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혓바닥으로는 사과 운운하면서도 서준은 터무니없는 오발탄에 맞았다고 자조했다. 당초 캠리와 안면을 튼 지 얼마나 지났다고 그 짧은 시간에 원한을 샀겠는가? 과연 그의 생각은 다르지 않았다. 캠리가 아쉬워하며 손사래를 쳤다. 칼을 든 손이었다.
“잘못이라뇨, 서준. 당신은 그런 적 없어요. 오히려……. 서준도 알지 않나요? 나는 당신한테 호감이 갔어요.”
그녀가 살아 있던 시절에 말했거나, 하다못해 독이 든 커피를 권하기 전에 들었다면 조금쯤은 귀담아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목숨줄이 간당간당한 와중에 타인을 배려하는 고운 심성이 있다면 그 인간은 서준이 아닐 터였다. 그의 모난 눈초리에 캠리가 억울하다는 듯 눈썹을 아래로 축 내렸다.
“정말이에요. 난 정말로 당신을 죽이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저 어디까지나 당신이 나와 같아지길 원하는 것뿐인걸요. 그래요, 거울을 본 이후로 나는 내 마음에 솔직해졌어요. 이 해방감을 당신도 맛보았으면 해요.”
“하겠냐?”
어처구니가 없어 콧방귀와 함께 거절하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서준의 기가 찬 목소리에 캠리가 조용히 한숨을 내뱉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까지 왔으니 커피는 영영 안 마시겠네요. 유감이에요. 정말로 유감이에요, 서준.”
그녀는 천장을 한번 올려다보고는 칼을 고쳐 잡았다. 입술 끝이 비틀렸다. 캠리의 턱이 천천히 내려왔다.
“사실, 나도 이쪽이 더 익숙하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