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포영화 속 선지자로 환생했다 (146)화 (146/156)

#145

“악의라는 게 진짜 단맛이 나는지 짠맛이 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언제 먹어 봤어야 알죠. 우리 집은 그런 근본이 부족한 메뉴는 안 나오거든요.”

요한이 감흥 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끅.”

개구리가 짜부라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매디슨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는 고개를 내려 자신의 가슴 사이에서 돋아난 칼과 그것을 잡은 손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현실을 부정하듯 흔들리는 시선이었다. 곧 칼이 자연스럽게 빠져나갔고 날카로운 비명이 뒤따랐다. 스스로 상처를 헤집을 때는 장난을 치듯 느른하게 웃던 매디슨이 고통에 겨워 비명을 지르고 악을 썼다.

“아아아! 아아악! 아, 아파! 아파!”

요한은 그가 자신을 놀리려는 심산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아 다시금 칼을 휘둘렀다. 매디슨의 몸에는 이미 숱한 구멍이 있었고, 살이 갈라져 있었기에 과도하게 힘을 주지 않고도 비스듬하게 난 틈을 막는 건 쉬웠다. 칼은 마치 제자리를 찾아가듯 구멍과 딱 맞았다.

“너, 너어 일부, 끅!”

어두운색의 눈이 새까맣게 번들거리며 요한을 노려보았다. 그는 요한이 오른쪽 어깨를 붙드는 통에 쓰러지지도 못한 채 무력하게 칼질당해야 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횟수를 세는 데 양손이 필요해질 때쯤 그가 부르짖었다.

“어, 떻게 사람을 죽이려 들어!”

아픔이 심해서인지 매디슨은 팔과 다리를 벌벌 떨기만 할 뿐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절규와 비난이 전부였다. 그리고 요한은 내심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속내는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폐흉막 부근을 성실하게 찌르던 요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새삼스럽게 왜 이래요, 매디슨. 나보고 죽으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야, 이것도 일이네.”

“너…어!”

곤란하게 웃는 표정이 매디슨의 마지막 인내심을 건드렸다. 그는 부러진 손톱으로 요한의 팔을 긁으며 고성을 내질렀다.

“이, 이 닭하고 수간할 새끼! 불알 터뜨려 죽일 놈! 네, 네가 저지른 일을 모조리 인터넷에 올려 버릴 거야. 네 얼굴, 이름, 나이, 모두 올려서 영원히 비난받게 해 주겠어! 살인자 새끼야!”

“살인이 그렇게 거창한가? 다들 그러긴 하던데. 음, 살인자가 되는 건 큰일이긴 하죠. 사회적으로 큰 문제잖아요? 나도 가능하면 한 번으로 끝내고 싶어요. 하지만, 매디슨…….”

눈을 깜빡인 요한이 느릿하게 덧붙였다.

“당신은 산 사람이 아니라면서요? 그러면 이건 살인이 아니죠. 기껏해야 시신 손괴, 그런 거 아닐까요?”

푹, 칼이 살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쑤셨다. 근육과 혈관이 짓뭉개지는데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기묘한 몸이었다. 오그라든 성대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에 쇳소리가 섞였다. 끝이 찢어진 입술이 트집을 잡아 따지고 들었다.

“이, 개자식, 개랑 붙어먹을 새끼! 언제는 대화로, 풀자고 하더, 아아. 아파! 너무 아파! 아아, 아, 으으, 으…….”

“거절한 건 매디슨이잖아요. 사실 관계를 호도하지 마세요. 그리고 저도 여러모로 깊게 따져 봤는데, 나중에 준이가 올지도 모르는 판국에 귀신이 돌아다니도록 두기 무서운걸요.”

요한은 해충 박멸을 위해 살충제라도 뿌리는 것처럼 가볍게 조잘거렸다. 그의 태도는 야무진 이 시대의 청년답게 딱 부러졌다. 아찔한 공포가 매디슨을 덮쳤다. 살해당할 때 느꼈던 충격 못잖은 음울한 감정이 그의 발을 끌어당겼다. 그때 저 혼자 평온하고 잔잔한 얼굴이 매디슨에게 가까워졌다. 만약 평소였다면 그는 배우처럼 매끈하게 생긴 상판을 남몰래 질시했을 터였다. 하지만 뺨에 약한 홍조를 띤 남자의 유독 빛나는 눈동자를 바라보자 등줄기에 선뜩한 오한이 밀려왔다.

“매디슨, 이런 고통을 더 당하고 싶지 않다면 보다 제대로 된 제안을 해야죠. 당신이 할 말은 그런 추저분한 욕설이 아니라 곰 인형의 행방을 안다든가, 사실 곱게 가방 속에 모셔 두었다든가……. 그런 내용이에요. 잘 생각해 봐요. 정말 몰라요?”

“흐으, 흐으으으…….”

숨이 끊어질 때의 모진 고통을 소리로 표현한다면 아마 매디슨의 비명과 똑같을 것이다. 그는 허파가 쪼그라들도록 몇 번이고 참담한 소음을 뱉어 냈다. 요한은 도대체 죽은 사람을 어떻게 죽여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아 곤란한 시선으로 그의 초췌한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음.”

물론 염두에 둔 계획이 없지야 않았다. 새파란 눈이 새것처럼 매끄러운 칼날에 비쳤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토록 조그만 칼로 뼈를 네 번이나 자르는 건 더할 나위 없는 시간 낭비가 분명했다. 요한의 비정하고 인간 같지도 않은 셈을, 마찬가지로 파렴치한 종자가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상반신의 자상이 크게 벌어진 이후로 매디슨은 두 다리를 볼썽사납게 휘청거렸다. 그는 신음만 흘리던 목구멍을 쥐어짜 겨우 사람의 언어를 만들어 냈다.

“흐으, 아, 알아. 나, 내가. 곰 인형, 알아. 내가, 봤어! 봤다고……. 검은,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진작 죽은 상태이지만 더는 고통을 당하기 싫었는지 매디슨이 허겁지겁 입을 열었다. 그의 눈에는 간절한 빛이 묻어났다. 요한은 환하게 웃으며 매디슨의 늑막강을 잘랐다.

“아.”

“흐으…….”

단언컨대 이번만큼은 고의가 아니었다. 요한의 손은 기계적으로 몸에 난 구멍을 따라 움직였고, 마침 이번 차례가 그쪽이었을 뿐이다. 우연하게도 마지막으로 칼이 들어간 구멍은 ‘캠리’가 처음으로 ‘리이미아’를 찌른 곳이었다.

매디슨이 작게 앓는 소리를 뱉더니 바닥으로 쓰러졌다. 무릎 아래쪽을 지탱하던 힘이 완전히 사라진 바람에 그의 몸뚱이는 속이 빈 허물처럼 무너졌다. 조금 미안해진 요한이 눈썹 끝을 축 내렸다. 그는 칼을 왼손에 쥐고는 오른손으로 매디슨의 어깨를 흔들었다.

“아, 미안해요. 실수였어요, 매디슨. 더 안 할 테니까 일어나 보세요.”

제법 구미가 당기는 의견이었을 텐데도 매디슨은 미동조차 없었다.

“매디슨?”

의아해진 요한이 그를 뒤집었다. 그런데 매디슨의 용태가 심상찮았다. 악독한 눈빛은 부옇게 흐려졌고 바닥에 뒹구는 육신은 나무토막처럼 굳어 차가웠다. 요한은 당황스러워 연거푸 그를 불렀다.

“매디슨, 일어나요. 하던 말은 마저 해야죠. 이렇게 가 버리면 나는 어떡해요.”

하지만 채근해 보아도 매디슨은 정말로 죽은 사람처럼 고요했다. 난도질당해 끔찍한 가슴께를 가리지도 못하는 모양새를 보니 두 번 다시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칼을 내려놓은 요한이 뒷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는 매디슨의 앞에 쪼그려 앉아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요한은 여자의 고함을 들었다.

***

그리고 서준은 여자의 비명을 들었다.

막 첫 번째 방에서 나가려던 그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뭐, 뭐였죠. 방금?”

캠리가 푸르게 질린 입술을 떨면서 물어보았다. 그녀의 조그만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하지만 서준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는가? 그 역시 가느다란 팔이며 다리를 오들거리며 캠리의 옆에 찰싹 붙었다. 서늘한 체온이 닿자 조금이나마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미 들어 버린 소리를 못 들었다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라 그들은 서로 마주 보았다. 하나같이 불안한 얼굴이었다. 리이미아가 이곳에도 없는 걸 알았으니 얼른 방에서 빠져나가야 하건만 발이 바닥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캠리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손톱으로 목을 긁으며 서준의 눈치를 보았다. 피부를 벗기기라도 할 듯 신경질적이었다.

“그만해요, 캠리. 그러다가 목 다치겠습니다.”

“아, 진정이. 도무지 진정이 안 돼요. 무슨 소리였을까요?”

“글쎄요. 적어도 단말마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캠리의 낯빛이 어둡게 그늘졌다. 서준은 불안에 떠는 그녀를 위로할 변변찮은 말조차 찾아내지 못해 시선을 돌렸다. 일행이던 리이미아에 비하면 훨씬 대범하다고 여긴 캠리였지만, 흉가에서 만난 이후로 그녀는 초조한 기분을 숨기지 못했다.

‘하긴, 친한 친구랑 헤어졌으니 그럴 만도 하지. 나도 하몽 캠프장에서 위대한 크리스티나와 멀어지면 심장이 펄떡거렸으니까…….’

심장은 원래 갓 잡은 생선처럼 펄떡거리는 장기였다. 그러나 종교를 바꾸기로 마음먹은 서준은 기억을 제멋대로 개조했다.

아무튼, 그들은 조금 더 추이를 지켜보고 방에서 나가기로 합의했다. 서준과 캠리는 문에서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바짝 긴장한 채 서 있었다. 그러나 목이 매달린 인형을 계속 보자니 시시각각 정신에 타격을 입는 기분이 들었다. 서준은 차라리 창문 바깥의 동향이라도 살피는 게 나을 듯해 몸을 돌렸다.

“서준?”

캠리가 목소리를 잔뜩 낮춰 그를 불렀지만 서준은 가볍게 손만 흔들었다. 어차피 멀리 가는 것도 아니었고, 한 사람은 문을 지키고 있는 게 좋았다.

‘생각보다 먼지가 날리지는 않는걸?’

서준은 커튼을 활짝 여는 대신 살짝 걷는 정도로 만족했다. 만일 바깥에 괴인이나 괴인의 동료가 있다면 2층 첫 번째 방에 누군가 있다는 걸 들키리라. 깨진 창문의 구멍으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에는 숲 특유의 풀 비린내가 났다.

다만 서준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 창문을 닫은 상황에서는 높이 자란 나무나 멀리 푸른 하늘 따위는 보여도 막상 흉가의 아래는 살피기 어려웠다. 그쪽을 둘러보려면 창문을 열고 상반신을 내밀어야 할 성싶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는 깨끗하게 마음을 접었다. 캠리가 방 중앙에서 서준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계속 혼자 두기도 미안해 그녀에게 다가가려던 때였다. 방구석에 있는 항아리로 시선이 갔다. 사실 그것의 존재는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알았다. 워낙 큼직하니 모르는 척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다 큰 어른이 들어가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어 구태여 안쪽을 살펴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인지 자꾸만 눈길이 갔다.

사실 이유는 확실했다. 별다른 건 아니고, 서준이 살짝 걷은 커튼 사이로 들어온 햇살이 마침 항아리에 닿았을 뿐이다. 어둑한 방에서는 그만한 빛조차 영롱하니 어여뻤다. 항아리의 겉에 그려진 난해한 무늬조차 입체파다운 매력으로 비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서준은 별 고민 없이 항아리 위로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리이미아가 항아리 속에 숨을 죽이고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그는 기껏해야 흉가를 체험하러 온 얼간이들이 아무렇게나 버린 쓰레기가 담겨 있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 속에 있던 건 리이미아도, 쓰레기도 아니었다.

새하얀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처음에는 납작한 육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자, 그것은 내장이 파헤쳐진 쥐였다. 그리고 말라비틀어진 쥐의 꼬불거리게 말린 꼬리가 칼을 휘감고 있었다. 길이가 두 뼘만 한 길쭉한 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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