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포영화 속 선지자로 환생했다 (145)화 (145/156)

#144

매디슨의 분노는 불합리했다. 비록 요한이 쥐꼬리만 한 논리를 가지고 지껄여 댄 헛소리가 그를 모욕했을지언정 칼침을 놓으려던 것은 매디슨이 먼저였다. 그러나 요한은 본의 아니게 비이성적인 사람 몇몇과 교류 아닌 교류를 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는 봉사 활동에 나온 청년처럼 산뜻한 어조로 매디슨을 달래 주었다.

“왜 자학하고 그래요? 매디슨,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죠.”

요한의 말은 겉만 번지르르했지, 알맹이라고는 과육을 다 벗겨 낸 사과 심지만도 못했다. 제게 나쁜 건 기민하게 감지하는 매디슨이 말속에 든 저의를 눈치챈 것도 당연했다. 그는 속이 답답한 것처럼 물리적으로 열린 가슴을 크게 헐떡거렸다. 호흡이 필요한 육신은 아닌 듯했으니 기분상의 문제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뛰지 않는 심장에 아무리 바깥바람을 쏘여도 머리끝까지 차오른 울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매디슨이 칼을 든 채 버럭 고함쳤다.

“별 해괴한 음모론은 다 들고 오면서 왜 내가 귀신이라는 건 안 믿어? 목 위에 달린 건 장식이야? 왜 제일 간단한 답을 외면하는 거냐고!”

코앞에서 야유를 들어도 요한의 낯짝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의 뻔뻔하다 못해 당당하기 그지없는 태도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요한은 우주에서 날아온 외계 생명체와 직접 조우한 전적이 있었고, 정부의 은밀한 실험에 관해 그 편린을 엿보았으며, 사설 연구소의 신비롭고도 불법적인 시도의 흔적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자칭 악마라는 것과 마주치기도 했지만 그 또한 영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이었다.

“그야 매디슨은 도저히 20그램으로는 안 보이잖아요. 아무리 체중계가 없다지만 그쯤은 알죠. 그러니까 내 생각에 당신은 유령보다는 강화 인간……. 아니, 약화 인간 뭐 그런 게 아닐까 해요.”

대체 나이가 몇인데 귀신을 믿느냐며 어이없어하는 눈빛에 매디슨은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그는 뒤늦게 눈앞의 저 남자가 말이 안 통하는 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매디슨이 해야 할 일도 하나밖에 없었다. 더 왈가왈부하는 대신 창백한 손으로 칼을 고쳐 잡았다.

아직 한 사람밖에 죽이지 않은 칼은 날이 매섭게 서 있었다. 칼날을 무디게 만들었던 지방이나 기름 따위는 모조리 거울 속에 빨려 들어간 뒤였다. 매디슨은 그의 한평생 단 한 사람을 죽였고, 수단은 독이었다. 하지만 제 가슴팍을 들쑤셨던 칼을 들자 살의가 맹렬하게 솟구치며 몸을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불시에 찔러 오는 흉흉한 날붙이에 요한도 조잘거리던 주둥이를 겨우 다물었다.

“후후후…….”

실에 이끌리는 인형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도 매디슨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그로서는 분한 일이었지만 요한과의 체격 차이가 너무나 확고했다. 몸을 활용하는 기량의 격차 또한 상당했다. 처음 시도했던 습격이 무위로 돌아갔을 때는 눈앞이 다 아찔했다. 매디슨이 직접 가하는 공격은 힘과 속도가 모두 모자랐다. 칼끝이 집요하고 살기가 넘쳤으나 오직 그뿐으로, 결정적인 실력이 부족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기괴하게 꺾이는 팔과 다리는 저 살덩이를 저미기 충분한 저력이 있었다. 칼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요한의 목젖을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요한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흡!”

그는 제 몸뚱이를 믿고 방심하는 태도를 보여 매디슨을 기쁘게 만들어 주지 않았다. 칼이 찌른 건 텅 빈 허공이었다. 매디슨은 손목을 비틀어 곧장 경동맥을 그으려 했지만 요한이 한 발 더 빨랐다. 그는 매디슨의 눈과 발을 기민하게 엿보며 몸을 피했다. 허튼소리를 줄줄 내뱉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치 예민한 경계였다.

창문이 없어 그늘진 방에서 그들은 조용하게 서로를 살폈다. 굽 없는 쪽의 구두를 오른손으로 바꿔 쥔 요한이 슬쩍 입을 열었다.

“매디슨, 곰 인형은 어디에 뒀어요?”

“뭐?”

이번에는 칼로 어디를 찌를까 고민하던 매디슨이 제 귀를 의심했다. 요한은 그가 잘 듣지 못했을까 봐 더 또박또박 다시 말했다.

“매디슨이 아무렇게나 던진 가엾은 곰 인형 말이에요. 당신이 몰래 촬영한 영상에서는 바닥에 던진 게 마지막 등장이었는데 지금은 통…….”

그도 가능하면 싸움에 집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눈알을 굴려 보아도 바닥에 떨어져 있을 처량한 곰 인형이 보이지 않았다. 그건 무척 중요했다. 서준의 손에 닿고, 서준의 시선이 머무르고, 어쩌면 서준의 입술이 스쳤을지도 몰랐다. 파렴치한의 볼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그러나 핏발이 서도록 눈알을 틈틈이 돌렸지만 곰 인형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때 요한이 입을 벌리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새파란 눈이 이채롭게 반짝거렸다.

“아.”

“뭐, 뭐야.”

매디슨은 본인이 해 놓은 짓이 하도 많아 지레 찔린 듯이 대꾸했으나 딱히 그를 골리려는 심산은 아니었다. 단순히 이해했을 뿐이다. 요한은 열렬한 시선으로 매디슨을 바라보았다.

만약 휴대 전화에 저장된 동영상이 진실이라면, ‘캠리’와 ‘리이미아’가 싸우며 내뱉은 발언도 대사가 아니라 실제로 나눈 대화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곰 인형은 매디슨이 훔쳐 왔거나, 빼앗았다는 뜻이다. 서준이 직접 선물했다면 ‘캠리’의 반응이 그토록 거셀 리가 없었다. 요한의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쳤다. 그들의 대화는 많은 것을 시사했다.

서준은 아직 이곳에 오기 전일 가능성이 높았으며, 무엇보다 그가 급작스럽게 흉가를 찾는 이유는 매디슨을 향한 연정 따위가 아니라 곰 인형을 되돌려 받기 위해서일 터였다. 잘못 끼워진 퍼즐이 제자리에 꿰맞춰지듯 머릿속이 명료해졌다.

곰 인형을 선물한 건 요한이었다. 그리고 서준은 그 자그마한 인형을 위해 이렇게나 형편없는 폐가에 들르기로 했다.

요한의 뺨에서 반지르르한 광채가 맴돌았다. 매디슨이 뻣뻣한 얼굴을 와락 구길 정도로 느닷없는 변화였다. 축축하게 젖어 평소보다 색이 짙어진 눈이 매디슨을 향했다.

“우리가 이렇게 싸울 필요가 있을까요?”

요한이 자애로운 목소리로 운을 뗐다. 그는 맵싸한 코를 훌쩍이며 굽이 없는 구두를 선물처럼 살짝 내밀었다. 정말 건네주려는 건 아니고 악수 비슷한 느낌이 나도록 흉내 낸 것이었다. 당연히 매디슨이 받아들일 리 없었다. 오히려 그는 구두를 내려다보며 분노를 삭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요한은 혼자 주절거렸다.

“여기, 인기 많은 흉가라면서요. 매디슨은 나 말고 다른 사람 죽이면 되잖아요.”

“인제 와서 무슨 말인가 했더니, 목숨 구걸이야? 많이 늦었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 웃기는 소리 마. 다음 같은 건 없어. 다른 사람도 없어. 바로 네가 여기서 죽는 거야.”

매디슨은 자신을 대신해야 마땅한 제물에게 잠깐이라도 섬뜩한 감정을 느꼈다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높이 솟은 광대뼈를 씰룩거리며 주제도 모르는 제의를 단칼에 거절했다.

“넌 벗어나지 못해. 이곳에서 나를 대신해 이 거울 속에서 영원히 썩어 들어가는 거야…….”

칼이 손처럼 거울을 가리켰다. 뾰족하기 그지없는 삿대질에 요한이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충격적인 몰골이었다. 환하게 빛나던 머리카락에는 회색 먼지가 뒤덮였고 눈썹과 코끝에는 왜인지 검댕이 묻어 있었다. 목깃에는 거미줄이 엉겨 붙고 조그마한 거미도 간신히 달라붙어 달랑달랑 흔들렸다. 장담할 수 있었다. 지금 같은 몰골로는 백만장자도 차일 게 분명했다.

매디슨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였으나, 어쨌든 요한은 초조해졌다. 동상에 걸린 것처럼 손과 발이 차갑고 근질거렸다. 이런 꼴로 서준과 재회할 바에야 차라리 만나지 못하는 편이 나았다. 남자도 단장하려면 이런저런 준비가 필요했다. 이런 데서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었다. 요한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매디슨, 당신은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말했죠?”

“왜, 아직도 못 믿겠어?”

“아니요. 믿을게요. 매디슨의 말이 옳아요. 당신은 죽은 사람이고, 지금 말하고 움직이는 건 시체고, 내 앞에 있는 건 유령이죠. 전부 이해했어요.”

그는 자신이 했던 말을 전부 뒤집다 못해 매디슨이 했던 주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매디슨의 눈매가 가느스름해졌다. 그는 입을 새의 부리처럼 모아 비죽거렸다.

“이제야 무서워진 거야? 그래도 소용없어…….”

“이미 죽은 사람이라면, 또 죽어도 내 탓은 아니라는 거죠?”

요한은 대답과 동시에 구두를 던졌다. 작은 거미도 허공을 날았다. 굽이 없는 쪽 구두는 철썩 소리를 내며 매디슨의 안구를 덮쳤다. 화끈한 고통이 그의 눈가를 엄습했다. 짤막한 비명이 매디슨의 입술을 벌리고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문제였다. 그가 신경 써야 하는 건 시야가 가려졌다는 점이다.

매디슨이 앞을 보지 못한 건 아주 잠깐이었다. 그리고 요한에게는 그만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요한은 남은 구두로 칼을 잡은 손목을 세게 내리찍었다. 딱딱한 굽이 붙어 있는 구두는 원래 주인의 손을 망치는 데 훌륭히 제 몫을 했다.

“아악!”

끔찍한 비명과 함께 칼이 검붉은 나무 바닥으로 떨어졌다. 요한은 잽싸게 칼을 주웠다. 형세는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매디슨은 요한을 따라 하듯 제 구두를 하나 붙들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구두는 몹시 초라해 보일 뿐이었다. 매디슨은 망가진 손을 뒤로 숨기고 흉악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망가진 화장은 더 이상 그의 푸르스름한 낯을 가리지 못했다. 긴 손톱이 칼을 가리켰다.

“그걸 들어서 어떡하려고? 나를 또 죽일 거야? 나를 찌를 거야? 이곳에, 칼을 넣고……. 흐, 흐흐!”

미치광이처럼 웃음을 터뜨린 유령이 구두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요한의 눈에는 그가 몰래 찍었던 동영상에서 곰 인형을 던지던 모습이 겹쳤다.

“요한. 요한이라고 했지. 네 이름. 그래, 요한. 넌 어리지. 사람을 죽인다는 걸 몰라. 살인의 죄를 네가 감당할 수 있겠어? 악의라는 건 너처럼 어린 녀석이 품을 만한 게 아니야.”

매디슨이 양손으로 가슴에 난 상처를 잡아 벌렸다. 그의 심장은 차게 식어 있었다.

“나와 캠리의 감정은 더 농후했어. 벌집을 부수고 흘러내린 꿀처럼 지독하게 달았지. 악의라는 건 말이야, 너 같은 아기한테는 독성이 있단다.”

과시하듯 긴 손가락이 심장을 건드렸다. 뼈 안쪽에 곱게 숨겨져 있어야 할 장기가 외부에 드러난 광경은 목덜미가 서늘해지도록 섬뜩했다. 하지만 요한은 손수 표적을 넓혀 준 매디슨의 호의를 모르는 척할 정도로 예의 없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칼을 역수로 쥐고 돌덩이 같은 심장을 향해 찔러 넣었다.

매디슨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요한 젠틸은 단 한 번도 악의를 지니고 사람을 죽인 적 없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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